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현재 25개 구(區)로 나눠져 있다. 처음엔 종로·중·용산·동대문·서대문·성동·영등포구 등 7개 구로 시작했다. [중앙포토]
●종로구 종로(鍾路)라는 명칭은 성문의 개폐 시각을 알려주는 종루(종각·보신각종)에서 비롯됐다. 1943년 구제도를 실시하며 ‘종이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명명했다. 서울 25개 구청과 전국 기초단체 가운데 여전히 행정서열 1위다.
●중구 區제도가 실시되면서 서울의 ‘가운데(中)’에 있다는 데서 얻은 명칭이다. 서울시청이 있으며 종로구와 함께 서울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를 제외한 나머지 부산·대구·인천·대전·울산광역시에도 中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용산구 『증보문헌비고』에 ‘백제 기루왕 21년(서기 97년) 용이 나타났고 해서 용산(龍山)이라 했다’라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양화나루 동쪽 언덕의 산형이 용이 있는 형국이라 생긴 이름’이라고 각각 적혀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조선 영조 27년(1751년) 때 성곽 서쪽에 설치한 한성부(漢城府) 서부(西部) 9방(九坊) 중의 하나인 용산방(龍山坊)이란 지명으로 사용됐다.
●성동구 서울을 에워싸던 ‘성곽의 동쪽(城東)’을 뜻한다. 4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광희문을 통해 도성을 빠져나오면 보이던 들녘이 있었다. 이곳은 ‘동쪽 들녘’이란 뜻의 ‘동교(東郊)’로 불렸다.
●광진구 1995년 성동구에서 분구됐다. 한강의 나루(津)였던 광나루에서 유래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한강은 광주(廣州) 경계에 이르러서 도미진(渡迷津)이 되고, 다음에 광나루(廣津)가 됐다’는 기록이 있다. 광나루가 인근 지명인 광주와 상관없이 ‘강폭이 넓은 나루’에서 나왔다는 설도 유력하다.
●동대문구 “동대문에서 유래했지만 동대문구에 동대문은 없다.” 역사 시험과 퀴즈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다. 동대문(흥인지문)은 1975년 이전까지만 해도 동대문구 관할이었다. 하지만 행정구역이 조정되면서 동대문구의 창신동이 종로구에 편입됐다. 그래서 창신동에 있던 동대문도 종로구 관할로 넘어갔다. 현재 동대문은 창신동이 아니라 종로 5·6가동에 속해 있다.
●중랑구 1988년 동대문구에서 분구됐다. 분구의 기준이 됐던 중랑천(中浪川)에서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중랑천의 유래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대동방여전도』 등에 중량포(中梁浦)라는 지명이 기록돼 있는데 발음이 변했다는 설이다. 대나무(竹)의 잎과 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물결(浪)에 비유한 죽랑(竹浪)을 소리 나는 대로 다시 쓰다 보니 ‘가운데 물결’이란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성북구 1949년 서울의 동대문·종로구와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 지역이 합쳐지면서 신설됐다. 성북동(城北洞)에서 나온 지명으로 조선 영조 41년(1765) 성곽 수비를 위해 어영청(御營廳)의 북둔(北屯)을 ‘성곽 북쪽(城北)’에 설치한 것에서 유래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한성부(府) 동서(署) 숭신방(坊) 동소문외계(外契) 성북동(洞)에서 지명으로 쓰였다.
●강북구 1995년 도봉구에서 분구됐다. 한강 이북(江北)에 위치했다는 뜻으로 강남·강서·강동구와 유래가 같다. 분구 당시 옛 지명인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서 따온 ‘숭인구’, 북한산 인수봉과 인수동에서 따온 ‘인수구’와 경합한 뒤 구명으로 확정됐다.
●도봉구 1973년 성북구에서 분구됐다. 이 지역 명산인 도봉산(道峰山)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조선 왕조를 여는 길(道)을 닦은 봉우리(峰)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학문을 연마하고자 도(道)를 닦았던 봉우리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노원구 1988년 도봉구에서 분구됐다. 옛날 이 일대는 갈대(蘆)만 무성할 뿐 인가가 없어 행인들이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숙식 편의를 제공하는 여관인 원(院)이 현재 상계동 인근에 세워졌는데 노원(蘆院)으로 불렸다. 이후 노원역(蘆院驛)도 생겼다. 그냥 단순히 갈대(蘆)가 많은 들판(原)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은평구 1979년 서대문구에서 분구됐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시대 지명인 연은방(延恩坊)의 ‘은(恩)’자와 상평방(常平坊)의 ‘평(平)’자를 합성해 은평면(面)이란 지명을 만든 데서 유래했다. 1949년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은 서대문구에 편입됐다가 다시 분구돼 ‘은평’이란 옛 지명을 찾는다.
●서대문구 “동대문은 동대문구에 없고, 서대문 옛터도 서대문구에 없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도시 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핑계로 서대문(돈의문)을 철거했다. 그런데 1943년 구 제도를 실시하며 서대문 터가 있던 곳을 포함해 서대문구로 명명했다. 그런데 197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대문 터는 종로구(평동)와 중구(정동)의 사이에 놓여 관할권이 서대문구에 속하지 않게 된다. 현재 서대문구 휘장(심벌)에 그려져 있는 문 역시 서대문이 아니라 독립문이다.
●마포구 1944년 서대문구와 용산구의 일부 지역이 분리돼 신설됐다. 원래 이 지역엔 삼개 혹은 삼포(三浦)로 불리는 호수 세 곳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말 ‘삼’으로 발음되는 한자 ‘마(麻)’가 붙으면서 마포(麻浦)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이곳 물가(浦)에 베옷을 짓는 마(麻)가 많이 재배돼 마포가 됐다는 것이다.
●양천구 1988년 강서구에서 분구됐다. 분구 당시 신정동에서 따온 ‘신정구’와 경합한 뒤 구명으로 확정됐다. 양천(陽川)은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햇볕이 잘 들고 냇가의 물이 맑아 ‘밝은 태양과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뜻으로 고려 충선왕 2년(1310년) 때 처음 지명으로 쓰였다.
●강서구 1977년 영등포구에서 분구됐다. 한강 서쪽(江西)에 위치했다는 뜻이다. 부산에도 1989년 생긴 강서구가 있다.
●구로구 1980년 영등포구에서 분구됐는데 중심동인 구로동에서 이름을 얻었다. 옛날 이곳에 ‘9명의 장수한 노인(九老)’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금천구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됐다. 고려 태조 23년(940년) 이 지역은 금주(衿州)로 불리며 옷깃 금(衿)자와 처음 인연을 맺는다. ‘옷깃처럼 펼쳐진 넓은 고을’이란 뜻이다. 고려시대 줄곧 금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년) 금천현(衿川縣)으로 개칭됐다. 태종이 인구가 적은 마을의 경우 주(州) 대신 천(川)이나 산(山)으로 개칭하라고 명령해 천(川)을 붙여 금천이 된 것이다. 금천현이란 이름은 이후 정조 19년(1795년) 시흥현으로 변경될 때까지 400년 가까이 불렸다.
●영등포구 무속신앙인 ‘영등(靈登) 굿’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영등(永登)으로 한자가 변형 표기된 뒤 물가를 뜻하는 포(浦)가 합쳐진 것으로 보고 있다. 구한말 이곳에 경인·경부 철도가 부설되면서 교통·사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943년 구 제도를 실시하면서 영등포구가 생겼는데 1963년 경기도 지역이 대거 서울시에 편입돼 크게 확장된다. 현재 강남구·강동구·송파구를 제외한 한강 이남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당시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이 넘는 208㎢. 영등포구는 이후 관악구·강서구·구로구·동작구·서초구·양천구·금천구 등 7개 구로 나눠졌다.
●동작구 1980년 관악구에서 분구됐는데 국립현충원이 있는 동작동(銅雀洞)에서 이름을 땄다. 『해동지도』·『조선지도』·『대동여지도』에 동작(銅雀)이란 지명이 적혀 있다. 이 지역에 많이 분포하던 검붉은 구릿빛의 돌을 뜻하는 옛말인 ‘동재기’를 한자로 적다 보니 ‘동작’이 됐다는 설이다. 구릿(銅)빛을 띠는 참새의 한자어 ‘작(雀)’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관악구 1973년 영등포구에서 분구됐다. 이 지역 명산인 관악산(冠岳山)에서 유래했다. 관악산은 ‘갓(冠)’을 세워놓은 듯한 산꼭대기의 모습에서 이름을 얻었다. 악(岳)은 ‘큰 산’, ‘높은 산’을 뜻하는 한자다. 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파주 감악산, 포천 운악산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으로 꼽혔다. 행정 명칭으로 처음 쓰인 것은 1963년 경기도 시흥군 신림리·봉천리 일대를 영등포구에 편입하면서 출장소를 ‘관악출장소’로 명명하면서다.
●서초구 1988년 강남구에서 분구됐는데 중심동인 서초동(瑞草洞)에서 이름을 얻었다. 옛날 이곳은 서리풀이 무성했다 해서 이를 한자로 표기한 ‘상초리(霜草里)’ 혹은 ‘서초리(瑞草里)’로 불렸다고 한다. 또 물이 서리어 흐르는 벌판이라 해서 ‘서릿벌’이라고 한 것이 변해 ‘서리풀’이 됐다는 설도 있다.
●강남구 1975년 성동구에서 분구됐다. 한강 이남(江南)에 위치했다는 뜻으로 서울에서 한강을 중심으로 이름을 짓는 첫 사례가 됐다. 이후 강서·강동·강북구를 명명할 때도 적용했다. 원래 강남은 ‘영등포의 동쪽’을 뜻하는 ‘영동(永東)’으로 불려 1973년 영동출장소가 설치됐다. 이 출장소가 구로 승격하며 ‘강남구’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었다.
●송파구 1988년 강동구에서 분구됐는데 중심동인 송파동(松坡洞)에서 이름을 얻었다. 송파동의 유래는 세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 조선 문종 즉위년(1450년) 기록에 따르면 ‘연파곤(淵波昆) 지역이 물살이 빠르지 않으니 나루터로 하겠다’는 경기관찰사의 요청이 나온다. 이후 연파곤→소파곤(疎波昆)→소파리(疎波里)→송파진(松坡津)으로 음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옛날 이 지역에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소나무 언덕을 뜻하는 ‘송파(松坡)’라고 칭했다는 설이 있다. 셋째, 소나무가 서 있었던 언덕 한쪽이 파여 떨어지는 바람에 이곳을 송파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강동구 1979년 강남구에서 분구됐다. 한강 동쪽(江東)에 위치했다는 뜻이다. 천호(千戶)출장소가 구로 승격하며 ‘강동구’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