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고려의 장수였다. 고려는 불교 이념을 토대로 나라를 다스렸던 불교 국가였는데 고려말 타락한 불교계는 조선 건국 후 유교에 밀려 나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보신각의 역사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이념으로 유교를 받아들였다. 유교의 군자도리에 따라 궁궐을 짓기 전에 조상을 모시는 종묘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을 짓고 그 가운데 경복궁을 지었다.
경복궁을 둘러 싼 성곽에는 4개의 대문을 만들고 도성 안에는 보신각을 지었다. 보신각은 1395년에 지어졌으며 보신각에 종이 걸린것은 1398년이라고 한다.
조선은 4대문과 보신각에 유교의 음양오행중 '오행'의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을 넣어 이름을 지었다.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지문 그리고 가운데 보신각, 그 중 '신'을 중심에 두고 종소리와 함께 유교의 덕목들이 세상에 퍼져 나가기를 기원했다.
조선시대 보신각의 종은 새벽 4시 파루에 33번을 치고 오후 10시인 인정에 28번을 쳤다. 새벽에 치는 종소리 33번과 함께 도성의 4대문이 열리면 한양은 하늘이 열리듯 활기를 띄었고 밤에 치는 종소리 28번과 함께 4대문이 닫히면 도성 안과 밖은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보신각 33번 타종의 의미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미산 꼭대기에 33천(도리천)이 있는데 도리천을 중심으로 사방에 8개의 하늘이 더 있으며 이곳에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나온 33천에게 하루를 시작을 알리고 보살펴 달라는 의미로 33번 타종을 했다.
현재 매년 새 아침을 열면서 종을 33번을 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정에 28번의 종을 치는 이유는 28개의 별자리를 뜻하며 백성들이 밤동안 하루의 고단함을 잊고 편히 쉴 수 있기를 별에게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3'이라는 숫자는 우리 역사 속에 많이 등장한다. 가까운 예로는 3.1만세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이 있고 장원급제의 인원을 33명으로 한것이 그렇다.
보신각은 임진왜란과 6.25를 거치며 소실되고 파손되어 중간중간 복구되면서 자리도 몇차례 옮겨 졌다. 보신각의 종도 금이 가면서 소리에 이상이 생겨 1985년 새 종으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 여전히 매년 대한민국의 새해를 희망의 소리로 열어주고 있다
<출처: http://kimstreasur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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