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여인네가 힘들어하던 우물
그런 샘이 있는 집도 가뭄이 든 여름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 공동 우물이나 흐르는 개울물을 길어다 생활용수로 사용했으니 십여리길 물을 길러 나서는 아프리카 여인들 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또아리 정수리 위에 대고 배기는 고통은 피할수 없었고 매파를 놓고 인연이 있어 출가하고 보니 물동이 이는일 배울때도 실수로 물동이 몇개 깨뜨렸겠지만 시어미께 혼날 생각에 홀로 눈물 지은 아낙네는 그 물동이는 동이안에 작은 바가지 하나 살짝 얹는것이 물 넘치는 것을 조금이나마 방지 할 수 있는 작은 센스가 되기도 했답니다 부엌 한켠에 큰 독을 놓고 물을 채우면서 부터 이니 그 해방감도 달콤했으리라... 이제는 상수도가 있어 그 물지게도 내다 버리고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만 세상입니다
그만큼 육체적으로 편해졌으련만 세상이 함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편함이 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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