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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유신 할아버지 김무력장군

오늘행복스마일 2010. 7. 29. 15:41

김유신 할아버지 김무력

 

고구려.신라.백제 삼국은 전쟁터에서 전사한 왕들의 복수전으로 더욱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었으며 백제의 성왕은 옥천전투에서 김유신의 할아버지 무력장군에게 전사당하였다.

 

 

 

 

 

 

김무력(金武力)은 서기 518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讓王;구해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5세 되던 532년9월 신라 법흥왕이 가락국을 공격해오자 구형왕은 나라를 신라에 양여하였다.

 

아들 세종,무력,무득 3형제는 경주에서 활약했는데, 특히 진흥왕때 명장 이사부(異斯夫)를 도와 북방경략에 참여하였다.

당시 백제는 성왕이 즉위하여 538년 도읍을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옮기고 신라와 화친하여 백제 중흥을 꾀하고 있었다.

 

성왕은 551년 한강유역을 되찿으려고 고구려를 공격하여 옥천지방에서 한강유역에 이르는 6개군을 탈환했다.

그러나 이때 신라는 곤경에 처한 고구려와 동맹하여 백제가 탈환한 6개 군을 모두 빼앗아 이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했으며, 무력은 이때 싸운 공로로 신주 도독이 되었다.

 

 

백제의 성왕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554년 대가야와 연합하여 신라 관산성(管山城;충북 옥천)을 공격했다.

당시 관산성에서는 신라의 군주 우덕(于德)이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백제군의 공격에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마침 신주에 있던 무력은 자신이 거느린 병력을 이끌고 급거 출전하여 그해 7월 성왕을 지금의 대전 동구 직동(피골)에 있었던 노고산성에서 전사시켰으며, 4명의 좌평을 참살하고 병사 2만9천여명의 수급을 베는 대승을 거두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졌다.

 

 

무력의 한강유역 쟁취와 관산성 전투의 승리는 신라의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으며 무력 역시 신흥 무장으로서의 발판을 확보하게 되어 신라 사회의 최고위 인물로 부상되었다.

무력이 임명되었던 군주직은 당시 신라 제1급 인물이 받던 최고위 지방관직이었는데, 무력은 47세인 564년 장자 서현을 낳고, 579년 10월 16일 향년 62세로 별세했다.

벼슬은 각간에 이르렀고 부인 박씨는 법흥왕비 보도부인의 동생이었다.

 

출처 : 동원동
글쓴이 : 동수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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