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달라이라마의 <용서>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용서에 관한 글들을 인터넷으로 찾아 보던 중 영화 [밀양]에 대한 많은 블로그 글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글 들을 통해 밀양의 원작은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 [벌레이야기]이고, 피해자가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이야기 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절망감을 그린 것이라는 사전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밀양]이 내가 이창동 감독의 작품중 유일하게 보지 못한 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서둘러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ㅇ 영화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영화는 푸른 하늘이 보이고 주인공 신애가 밀양으로 가는 도중 차 고장으로 서 있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카센터 사장인 종찬은 신애의 차를 고치지 못하고 신애와 그의 아들 준을 자신의 차에 태우고 밀양으로 들어온다. 신애와 종찬은 밀양이 “비밀 밀, 볕 양”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라는 이야기를 나눈다. 신애는 남편의 고향에서 피아노 학원 원장이며, 어린 아들과 함께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또, 신애는 땅을 알아보는 행동과 땅에 관련한 전화통화를 통해 돈이 많은 척 한다. 이런 이유로 신애의 아들 준이 유괴되어 죽게 된다.
아들이 죽은 후 신애는 너무나 고통스럽다. 신애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약국의 김집사가 전도하려 하지만 신애는 신을 원망하는 반응만을 보인다. 신애의 고통은 아들의 사망 신고를 위해 방문한 동사무소에서 극에 다르고 교회의 부흥회에 참여한다. 교회 부흥회에서 오열하는 신애는 안식을 얻게 되고 이후 한껏 밝은 모습과 표정으로 종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가끔씩 고통은 찾아오고, 범인의 딸 정아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외면하고, 또 운전부주의로 건널목에서 마주친 행인으로부터 “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면 답니까?”라는 말을 듣고 나서 범인을 용서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신애는 교도소 면회실에서 범인과 마주앉아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대화 중에 범인이 자신은 이미 종교에 귀의했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신애는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이후 신애는 예배당을 찾아 신도들의 기도를 방해하고, 신애를 위해 기도 방문한 사람들을 내쫓고, 야외 부흥회에 “거짓말이야”라는 가요를 크게 틀어 방해하고 김집사의 남편을 유혹해 간음하려 하는 등 이상행동을 계속한다. 결국 신애는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장면이 바뀌고 병원에서 퇴원하는 신애에게 꽃을 들고 온 종찬(병원은 정신병원인 듯 하다). 신애와 종찬은 머리를 자르기 위해 방문한 미용실에서 범인의 딸(정아)을 만나게 된다. 정아는 신애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고 정아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할 때 신애는 참지 못하고 미용실을 뛰쳐나간다. 집으로 돌아온 신애는 집 마당에 거울을 놓고 자르다 만 자신의 머리를 불편한 자세로 자르는데 이때 종찬이 들어와 거울을 들어준다. 신애가 자른 머리카락은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개숫물에 젖은 땅에는 햇볕이 비춘다.
영화를 보고나니 송강호라는 비중 있는 연기자가 맡은 종찬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았고, 정말 이 영화가 용서를 이야기하려는 영화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영화 포스터를 보니 “이런 사랑도 있다”, “이창동 감독의 사랑 이야기”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ㅇ 신애 자신에 대한 사랑이야기
신애는 자기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욕구에는 흥미가 없고 존중하지도 않는다. 종찬이 대쉬해도 신애는 관심 두지 않는다. 그런 신애는 불행하다. 그녀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고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은 신애를 배반하고 불륜을 저질렀다. 그러나 신애는 남편의 불륜을 부정한다. 아마도 신애는 밀양에서 터전을 잡는 것이 남편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신애는 죽은 남편을 사랑했었고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돈이 많은 미망인 이라는 것을 꾸며내고 싶었던 그래서 자신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밀양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 신애에게 또 다른 고통이 찾아 온다. 아들 준의 사망. 신애가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고통을 치유하려고 노력하고 범인을 용서하려는 과정에서 신애는 또 다른 배반을 느낀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럴 권한은 주님에게도 없어요.” 신애는 신에 대한 원망으로 신을 부정한다. 각종 종교 활동을 방해하고 최후에는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신에 대한 최후의 저항을 하게 된다.
자살 시도가 미수로 끝나고 정신병원에서 퇴원 후 신애는 미용실에서 자르다만 나머지 머리를 스스로 자른다. 마치 자신이 그 동안 괴롭혔던 집착을 잘라내듯. 남편을 용서하고, 범인을 용서하고...
결국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를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하는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며 자기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사랑이다.. (달라이라마 “용서”에서 발췌)
이로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자기자신을 사랑하게 된 신애의 어두웠던 마음에 한줄기 밀양(비밀스러운 빛)이 스며드는 것을 보여준다.
ㅇ 신애에 대한 종찬의 사랑이야기
영화 도입부에 종찬은 신애의 차량을 수리하지만 고치지 못하는 장면은 신애와의 사랑이 쉽지 않음을 그리고 신애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신애가 종찬의 차를 타고 밀양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신애와 종찬이 함께 할 사이가 될 것을 예고 하는 듯 하다.
종찬은 신애의 가게에 가짜 상장을 걸어주고, 부동산 유지를 신애에게 소개시켜 주는 등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신애에게 망신당하고 신애의 동생에게는 종찬이 신애의 타입이 아니라는 말까지 듣는다. 그래도 종찬은 신애를 따라 다닌다. 신애가 동사무소에서 사망신고 할 때도, 부흥회에서도, 교도소에서 범인과 대면할 때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에도 신애의 뒤에는 항상 종찬이 서 있었다.
종찬은 신애의 거짓된 모습을 알았음에도 신애가 김집사 남편과 간음행위를 한 뒤 자신을 찾아와 희롱했어도 그리고 신애가 자살 시도 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애를 사랑한다. 그런 종찬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신의 머리를 자르려는 신애 앞에 거울을 들고 당당히 서 있는다.. 종찬의 자리는 신애의 뒤가 아니라 이제 앞에서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비록 강렬하진 않지만 마치 밀양처럼(은근하고 따사로운 햇볕처럼) 신애를 비쳐주고 지켜주는 종찬의 사랑을 상징하는 듯 하다.
ㅇ 신의 사랑
햇볕 한조각에도 주님의 뜻이 있다는 김집사의 말이 의미하는 신의 뜻은 곳곳에 암시적으로 보인다. 차안에서 하늘만 보이는 영화의 첫장면, 유괴당한 아들을 그리워하며 소파에서 아들의 코고는 소리 흉내내고 있을 때 마루에 떨어지는 한줄기 빛, 범인을 용서하기위해 방문한 교도소 앞마당에서 신애가 쳐다보는 하늘, 그리고 [밀양] 마지막 장면에서 종찬이 든 거울을 보며 신애가 스스로 자른 머리카락이 마당에 떨어지고, 마당 한 귀퉁이에는 개숫물에 젖은 바닥위로 한줄기 햇살이 비쳐진다. 마치 만신창이가 된 사람 또는 그 어떤 곳이라도(미천함에 관계없이) 신의 비밀스러운 의지(과연 누가 신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해석할 수 있을까?)가 있다는 것 처럼...
이창동 감독은 세가지의 사랑이야기(내 맘대로 해석한...)를 영화의 마지막 한장면으로 집약시켜 버리는 천재성을 발휘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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