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한국사의 이해, 티비강의에서 사극을 소재로 중요한 역사상을 교정, 또는 부각시키려고 하였더니... 그동안 사극을 거의 보지 않았으니 갑자기 일거리가 많아지고 머리가 아프군요. 여기저기서 글을 찾는데... 가령 아랫글도 제목은 고려전기 천추태후라는 인물을 다룬 것처럼 하고 있으나 사극 전반에 걸친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역사연구회 사이트에서 옮겨왔고, 사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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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 : 고려사회와 동아시아 질서
김기덕(중세1분과)
항상 사극하면 조선시대였던 것이 2000년대 들어 고려, 고대, 근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고구려에 대한 것이 두드러지다가 최근에는 다시 고려가 많이 조명되고 있다.
<천추태후>에 대한 것을 소개할까 하다가, 본 글에서는 사극이나 역사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송호정교수도 그러한 관점에서 글을 썼으며, 이러한 논쟁은 지속될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림 1) 천추태후 포스터 <출처 : kBS 홈페이지 www.kbs.co.kr>
흔히 사실(팩트)과 상상력(픽션)이 결합된 역사영화 혹은 TV 사극을 팩션이라고 한다. 다음은 팩션논쟁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다.
영상역사물 가운데, 가장 대중들과 가까운 것은 역사영화와 TV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 말부터 한국영화의 부흥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 이른바 대박을 낸 영화들은 주로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영화였다고 할 수 있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 <공동경비구역JSA>, <왕의 남자> 등을 들 수 있으며, 그 외에 <한반도>, <화려한휴가>, <황산벌>, <혈의누>, <황진이>, <신기전>, <궁녀> 등 많은 영화가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영화의 유행과 함께 TV 사극 또한 지상파 3사에서 매일 방영될 정도로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역사영화와 TV 사극의 유행과 관련하여 역사왜곡과 관련된 팩션논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팩션논쟁이 역사영화와 TV 사극에 집중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역사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라는 특성상 기본적으로 역사사실에 입각하여 전개되어야 하며, 역사적 상상력 또한 역사자료의 빈 공간을 역사적 맥락에서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픽션이 게재될 여지가 적다고 할 수 있다.
역사 관련 애니메이션은 역사영화와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중의 관심을 갖는 창작 애니메이션이 거의 제작되지 않고 있어 논쟁 또한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역사관련 게임도 많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게임의 특성상 역사전문가가 게임을 실제 경험한 뒤 그것을 비평하기가 쉽지 않으며, 또한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가 역사적 사실과는 가장 동떨어져 있다는 선입관도 작용하여 거의 비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역사영화와 TV 사극 중에서도 역사왜곡과 관련된 팩션논쟁은 TV 사극에 집중된다. 그것은 영화란 어차피 허구의 산물이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또한 영화는 기본적으로 일회성이며, 영화를 관람하는 계층과 인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TV 사극은 수십 차례 진행되는 대하사극의 형태로 방영되어 일정기간 지속적이며, 사극을 시청하는 계층도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연령층에 걸쳐 있으며, 시청인원도 어떤 분야보다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TV 사극은 국가와 국민이 요구하는 정서가 비교적 농후하게 표출되어 있으며, 그런 점에서 시대의식을 추출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사 연구자들은 일찍부터 TV 사극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해 왔다. 처음 단계에서는 주로 사극의 역사왜곡을 단편적으로 지적하는 수준이었다. 사극이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여 준 점은 인정하지만, 사극의 왜곡된 고증이나 상상력이 일반대중에게 잘못된 역사이해와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사극도 많이 진화하였다. 전용 세트장을 당시의 건축상황에 맞게 마련하고자 하였으며 복식도 시대상황에 맞게 복원하고자 하였다. 작가들은 나름대로 원사료와 전문적인 연구업적도 많이 섭렵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도 아직 역사가들을 제대로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다음 단계 역사가들의 사극 비판은 역사적 상상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상력이 당시 시대의 분위기와 가치관, 행동양식에 맞아야 그 시대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TV 사극이 역사가가 생각하는 시대 정황과 분위기와는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것 자체는 정당할 수 있으며, 또한 사료에 빠져 있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것도 당연한 것이지만, 이 경우에도 시대정황과 분위기를 무시하고 얼마든지 상상해서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달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시대적 한계와 관계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시장』의 장총찬식의 비현실적인 설정이므로, 결코 역사적 진실을 창출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권덕영은 장보고를 다룬 <해신>을 대상으로 하여, 최소한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인정될 수 있는 사항들을 뽑아낸 후 상상력을 위주로 하는 사극에서도 이러한 확실한 역사적 사실은 왜곡해서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림 2) 해신 포스터 <출처 : kBS 홈페이지 www.kbs.co.kr>
비슷한 시각에서 신병주는 조선 세종시대는 자료가 별로 없는 시기도 아닌데, <대왕 세종>에서는 있는 자료도 버리면서 마음대로 상상하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하였다.
(그림 3) 세종대왕 포스터 <출처 : kBS 홈페이지 www.kbs.co.kr>
이처럼 최소한 유지되어야 할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하지 말것과 새로운 상상력도 시대 정황에 맞게 하라는 한국사 연구자들의 주장에 대해, 김기봉은 다른 견해를 피력하였다. 기본적으로 역사도 재구성이라는 포스트모던니즘의 입장에 서 있는 김기봉은 사실과 허구의 이분법을 부정한다.
즉 역사가의 역사서술은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 사실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 모든 역사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모든 역사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텍스트라는 점에서 연극처럼 연출된 것이며, 따라서 역사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사실과 허구를 조합한 팩션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봉은 또한 탈근대에서 문자로 표현된 팩션을 ‘소설역사’로 지칭한다면, 영상으로 제작된 것은 ‘영상역사’로 일컬어 질 수 있다고 표현하고, 근대 사극이 사실주의 문법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영상으로 구현한 ‘역사영화’라면, 탈근대 ‘영상역사’는 반대로 영상적 허구라는 골격에 역사적 사실이라는 살을 붙인 형태라고 구분하였다.
전자에서 허구적 상상은 역사적 사실을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반면, 후자에서는 영상적 허구 자체가 목적이고 역사적 사실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상역사’로 구현된 팩션사극에 대해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데, 이는 근대 사실주의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팩션이 지향하는 목표에 대하여 김기봉은 사실과 허구의 근대적 경계를 허무는 팩션이라는 양식은 ‘꿈꾸는 역사’를 지향한다고 보았다. 즉 소설과 사극이 그리는 역사는 ‘현실의 역사’가 아닌 ‘꿈의 역사’이며, 그 꿈은 당대 사람들의 꿈이 아닌 지금 우리의 역사적 꿈을 대변한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과거 있었던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비해, 팩션은 현재의 우리가 그 시대에 일어났기를 바라는 ‘대안 역사’를 구현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그러므로 현재의 꿈으로 과거 역사현실을 왜곡해서는 안되지만, 일어났던 현실로 있을 수 있는 가상현실을 꿈꾸는 것을 막아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동안 소위 팩션작품을 둘러싼 논쟁에서 한국사 연구자들과 김기봉은 직접적으로 논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론적 주장에 있어 너무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김기봉의 주장은 치밀한 팩션분석에 바탕을 두고 나온 것이지만, 지나치게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역사해석에 경도되어 있어 도출된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김기봉의 각각의 주장에 대한 논쟁보다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필자의 견해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역사적 사실’·‘역사적 상상력’·‘역사적 진실’이라는 요소로 고민해 왔다. 물론 여기에서 역사적 사실도 반드시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것도 편차가 있는 것이어서 역사적 사실이라는 범주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목표는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 사실을 기록한 자료를 이용하여 자료비판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담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료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인가를 자료비판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역사적 사실을 이용하면서, 자료가 말하지 않는 부분은 역사적 맥락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결국 역사적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료해석이 달라지거나, 혹은 역사적 맥락속에서 동원된 상상력이 달리 설정된다면 또 다른 역사적 진실이 도출될 수 있다.
즉 같은 주제를 두고 얼마든지 다른 역사적 진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역사적 진실이 통설(通說)로 인정되며, 새로운 자료비판과 검증과정, 재해석과정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진실이 통설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역사가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실제 적용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항상 직간접적인 관련 자료에 의해 증빙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영상역사에서는 이 상상력을 보다 자유롭게 펼치고 싶어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역사가들은 상상력도 시대정황과 분위기에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비전문가가 역사의 시대정황과 분위기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역시기록의 비어 있는 행간만 상상하는 수준이 아니다. 소위 퓨전사극이라는 장르는 시대 자체를 뛰어 넘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시대정황과 분위기라는 제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급기야는 TV 사극 <바람의 화원>에서는 신윤복을 남자에서 여자로까지 바꾸어 놓았다. 원로 미술사가 안희준교수가 ‘심각한 역사왜곡’이라는 걱정어린 비평을 내긴 했으나, 오히려 역사학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는데, 아마도 비평할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 팩션의 역사적 상상력은 기본적으로 용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앞에서 역사가들이 그 시대인의 가치관, 행동 양식, 시대 분위기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은, 그렇게 되어야 사극이 그 시대의 ‘역사적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떠한 상상력이 동원되든, 결국 그것은 무엇을 말하기 위하여 그렇게 상상했는가, 즉 어떤 관점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러했는가,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 어떠한 메시지를 주는가 라는 점을 검토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극이 말하고자 하는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보다 중요한 논쟁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논쟁을 통해 TV 사극이 시도한 역사적 상상력의 정당성 여부가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점을 좀더 부연하자면 이제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을 ‘역사이해의 특수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전통적인 역사가의 사실기록을 우선한 방식이 있고, 상상력 위주의 영상역사 방식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새롭게 등장한 영상역사의 방식도 역사이해의 또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이해의 다양한 특수성도 결국 ‘역사적 진실’을 찾고자 하는 ‘역사해석의 보편성’에서는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특수성을 인정해주되, 역사적 진실을 찾고자 하는 보편성의 맥락에서 비평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보다 수준높은 논쟁으로 진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역사가의 역할과 영상역사에 복무하는 자들의 역할은 차이가 있다. 아무리 역사가가 사극 작가나 제작자와 같은 상상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상력을 논문으로 발표할 수는 없다.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실제 벌어진 사실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작가의 역할을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즉 팩션의 역사적 상상력을 보다 자유롭게 놓아 주되,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져보는 논쟁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필자의 다분히 파격적인 견해에도 몇 가지 단서는 반드시 덧붙이고 싶다.
첫째는 TV 사극 작가나 PD들도 현재의 상황을 심각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즉 지금의 퓨전사극 일변도의 경향이나 제멋대로 상상하여 비트는 것이 항상 환영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쉬운 것은 퓨전사극 못지 않게 시대의 정황과 복식, 세트, 언행, 생활상이 잘 복원된 정통사극도 균형있게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때 역사다큐멘터리에서도 MC가 예전 재현 화면에 마구 들어가는 방식이 재미있고 인기도 끌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소멸되었다. 사람들이 식상하여 사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팩션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허용하되 그것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로 상상력을 평가하자고 했으나, 시대정황과 분위기에 맞추면서 그 시대의 역사상을 잘 보여주면서도 재미있는 정통사극이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극단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들에 비해 지속적인 관심과 의미가 부여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의 제 마음대로 상상하여 만들어지는 TV 사극 경향은 오히려 사극을 망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팩션 관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둘째는 팩션에 있어서도 영화와 TV 사극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TV 매체를 통한 역사교육은 오늘날 가장 영향력이 큰 역사교육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영화보다 TV 사극에서는 가능하면 극단적인 상상력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흔히 역사왜곡논쟁이 제기될 때마다 일부 역사가들은 ‘TV 사극에서 역사적 사실을 바꾸어 놓아 청소년들로 하여금 잘못된 역사이해를 갖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이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견해도 솔직히 필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TV 사극에서 이야기 전개를 위해 바꾸었다고 하여,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들은 TV가 갖는 파괴력과 영향력을 고려한 역사 설정에 있어 좀더 사려깊은 태도는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셋째는 앞으로 역사가와 사극 제작자의 논쟁은 협력적 분업관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마크 C. 칸즈는 영화를 검토하는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은 우리가 빚지고 있는 영화 제작자들을 책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검열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을 ‘이 책이 영화에 대한 역사가의 논박이 아니라 응답으로서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역사가와 사극 제작자들은 서로 역할이 다르다. 역할이 다르므로 부딪칠 수도 있지만 서로 상생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앞으로 역사가의 문제제기는 이러한 방향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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