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김홍신] 인간시장(1권) 1. 악동일기 / 2. 귀신사냥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8. 15:49

1.악동일기



기찻길 옆에는 꼬마들이 된통 많았다. 입심 건 동네 청년들은 새벽 기차의 화통소리에 선잠 깬
어른들이 괜히 이부자락 펄럭여 가며 애새끼만 퍼질러 놨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청년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다.
 
꼬마들이 심통 사나운 말썽꾸리기들이긴 했지만 토끼새끼처럼 얼렁뚱땅 태어난 게아니라,
정식으로 어머니의 배꼽을 통해 나온 애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기차 화통소리 때문에 얼렁뚱땅 태어난 놈보다도 더 피맺힌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샛강 다리 밑에서 주워온 놈. 나는 여학생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이가 될 때까지
이런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엄마, 날 누가 났어?"
 
"내가 났지 누가 나."
 
"어디서 났어?"
 
"배꼽으로."
 
어머니는 언제고 주저하는 법 없이 이렇게 명쾌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어머니의 말이 반쯤은 거짓말일 거라고 믿었다.
 
"아빠가 기차 화통 소리 때문에 놀라서 일어나지 않았어? 아빠는 기차 화통 무서워하지 않았어?"
 
"그까짓 걸 왜 무서워해?"
 
이런 내 질문과 어머니의 대답은 거의 매일 계속되었다. 그래서 내 어린 가슴에도 내가 분명히
어머니 배꼽으로 태어난 정상적인 아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무리 내가 어머니 배꼽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주장해도 어른들은 여전히 나를 샛강 다리 밑에서 주워다 키운,
동냥아치들이나 사는 그런 더러운 곳에서 주워온 놈 취급을 했다. 입심 건 그들 말대로라면 우리 아버지는
가위를 쩔그럭거리며 다니는 곰보딱지 엿장수 영감이거나 굴뚝 청소하러 다니는 먹물영감, 땜장이 박씨,
외팔이 동냥아치, 철뚝 건너에 사는 곱추 따위였다.
 
거기에 대면 우리 어머니는 더 형편무인지경이었다.
사거리에서 교통순경처럼 팔 흔들며 춤추는 미친년이기도 했고, 공설시장 모퉁이에서
쓰레기 청소하는 할마씨이기도 했다. 떡장수 아줌마나 미나리밭에서 코 박고 죽은 동냥아치,
채소장수 째보아줌마, 남의 걸 채뜨려 먹고 사는 삼신벙어리 따위였다.
 
어른들이 이 가련한 꼬마에게 그처럼 악담을 퍼붓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대개 나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국민학교 다니는 꼬맹이한테
피해를 입는다는 게 말 같지도 않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밝히지 않을 수가없다.
 
꼬마치고 나한테 코피 터지지 않은 애가 없었다. 그 시절만 해도 검정 고무신짝으로
먼저 콧잔등을 후려쳐서 코피만 쏟게 해 버리면 이기는 때였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나 같은 꼬맹이는 상대방에게 맞아 코피가 나면 그 코피를 손바닥 가득 묻혀서 땅바닥에
쓱쓱 문대어 모래가 잔뜩 묻은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따귀를 올려붙이고 만다.
 
그렇게 되면 녀석의 볼때기에는 내 귀여운 손자국이 닷새쯤 남아있게 되고 녀석은
그때부터 감히 도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그것이 치고 패고 물고 할퀴는 어른들의 그 악받치는 싸움질,
못된 것은 죄다 동원해서 싸움의 모법답안이나 만드는 것 같은, 그런 치사한 어른들과 다른 점이었다.
 
요즘 꼬마들이야 존경하는 부모님의 수법대로 싸움질을 해야만 효자 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 시절에는
맞고 들어오는 놈 무조건 지는 놈, 순박한 놈만 존경받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선생님도 그렇게 가르쳤고
책에도 그렇게 씌어 있었고 우리 부모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 알기를 똥친 막대기처럼 알았다. 오른쪽 뺨을 맞거든 왼쪽 뺨도 내놓으라니.
그런 걸 믿는 녀석이 나한테 걸렸다간 헌집 벽 털리듯, 천당 갈 힘도 없게 두들겨 맞을 게 뻔했다.
 
지금 내 나이 스물 두 살, 아직도 하나님에 대해선 감정이 썩 좋지 않은 나이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비교적 후하게 점수를 주는 나이가 되었다.
하나님껜 죄송한 얘기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죄다 털어놓겠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건 십자가에 발가벗고 있는 예수에게 내가 이 다음에 커서 우연히 부자가 되면
고급 복지로 옷을 해 입힐 생각을 한 것에 대해선 치부책에 꼬박꼬박 적어 뒀다가 내가 재수없게 천당에
가거든 꼭 괜찮은 자리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 더 솔직히 얘기한다면 나는 예수의 잉태와 출생, 성모 마리아의 숫처녀 임신, 예수의 기적,
그리고 부활과 승천 따위에 대해 아직까지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이게 죄가 되나요?
내가 배꼽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내게 있어서 공갈쟁이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하나님은 언제 한번 나타나셔서 뭔가 털어놓으셔야 할 겁니다.
 
사내 나이 스물 두 살이면 하나님과도 한판 붙어 보고 싶은 나이가 아닙니까?
어쨌든 하나님은 지금부터 내가 털어놓는 내 마귀 같은 행위에 대해서 조금만 눈을 감아 주셔야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해 존경심을 철회하지 않는 길이며, 그것만이 내가 하나님을 헐뜯지 않는 유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야 세상일을 무엇이든 다 알고, 어디든 다 계시다니까 빤히 아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터무니없이 이 나라의 대통령도 될 거라고 믿었다. 그 당시에 이미 별을 일곱 개나 달고
다녔으니까. 비록 미군들이 버린 깡통을 오려붙인 것이긴 했지만. 사실 나는 왕국을 세워서 황제가 되고 싶었지만
이 나라에 그런 제도가 없었고 황제학교나 왕초학교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 녀석...... . 한자리는 떼어놓은 당상이다. 저 귀를 봐요. 저런 쪽박귀는 난생 첨입니다.
아주머니는 태후자리 앉게 생겼습니다. 내 말이 틀리면 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부처님도 저 아이를 보면 화들짝 놀랄 겁니다. 소문내지 말고 키우시오. 인물은 소문 내서 키우면 꺾입니다.
멋대로 키워도 큰 인물감입니다. 그때 가서 내 말이 맞으면 이 객승을 잊지나 말아 주시오."
 
그러면서 중은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나는 다듬잇돌 위에 앉아서
그 중의 뻔질거리는 머리에다 고무총을 쏘고 싶었다.
 
"나는 왕이 되고 싶지, 그까짓 대통령을 하기 싫어."
 
내가 큰 소리로 볼이 메어 외친 소리였다. 어머니는 후다닥 뒤주를 열고 양은 그릇으로
하나 가득 쌀을 퍼내어 중에게 공손하게 내밀었다.
 
"태후가 주신 이 공양은 부처님께 꼭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은 또 한번 합장을 하고 돌아섰다. 어머니도 합장을 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를 번쩍 안았다.
 
"너 커서 뭐가 될래?"
 
어머니의 그런 기쁨에 떠는 모습을 그때 이후에 단 한번도 나는 본 적이 없다.
 
"왕초!"
 
사실 난 그때 하나님이라고 대답할 생각이었지만 어머니의 들뜬 표정 앞에
그처럼 엄청난 인물이 되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기찻길 옆 동네의 왕초가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니 탓이었다. 일 주일이 멀다 하고 들랑거리는
그 중대가리 때문에 어머니는 나를 내 멋대로 굴러먹게 했다.
 
"너는 대장이다. 누구한테든 져선 안 돼. 이겨야 된다. 엄마가 다 책임질 테니까 걱정 말고. 알았지?
넌 대장야. 아무도 널 이길 수 없어. 넌 왕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있다. 알았지? 힘으로 안 되면
물어뜯어서라도 이겨야 돼. 엄마가 책임질 테니까. 알았지? 넌 훌륭한 사람이 된다."
 
어머니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를 충동질했다. 어머니는 공설시장의 박수무당과 댓골 곱추 만신과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중이 부추기는 대로 나를 들썩거리게 했다. 내가 꼬마대장이 되는 데에는 우리
어머니의 한 많은 투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꼬마들을 괜히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검정고무신짝을 휘둘러 대도 어머니는 나를 더욱 부추길 뿐이었다.

"애들이 뭘 알아요? 즈들끼리 투닥거리는 걸 가지고 뭘 어른이 나서고 그래요. 애들이란 싸우며 크는 거지요.
뭐. 뉘 집자식은 뭐 쌈 않고 큰답니까? 치료해 주면 될게 아네요. 뭐 그렇게 분하시면 우리 총찬(總贊)이를
댁의 아드님보고 패 주라고 하세요. 애들 쌈질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세요. 누군 뭐 남의 자식이라고
안 귀여운 줄 아세요."
 
어머니는 매일 이런 식으로 말싸움을 했다.
 
"그래도 매일 맞고 들어오니, 이거 어디 속상해서 살겠어요? 정도가 있어야지요.어머니가 좀 다스려야지
그냥 뻗대고 그러시면 이 동네에서 애 키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부인네들 대꾸도 대충 이런 식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고 나를 향해 돌진하곤 했다.
 
"이놈 자식. 이 나쁜 자식. 다시 그럴래, 안 그럴래?"
 
어머니는 죄없는 방바닥을 마구 때렸다.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런 어머니의 연극에 걸맞게 굴었다.
 
"다시는 안 그래요. 안 그럴게요. 아이고, 그만 때려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뭐 이 정도였다. 그걸로써 어머니와 내 연극은 끝이다.
 
나는 기찻길 옆에 사는, 화통 소리에 얼렁뚱땅 태어난 녀석들의 왕초가 되었다.
어머니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 그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내 부하들은 모두 깡통으로 오려붙인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누룽지를 갖다 바치는 횟수나 눈깔사탕 들고 오는 횟수,
책가방 들어다 주는 횟수, 수영하러 가서 옷 지켜 주거나, 참외 서리해다 바치는 횟수 따위,
더러는 숙제 대신해 주는 따위로 계급장은 오르락내리락했다.
 
내게 잘만 보이면 일등병에서 하루아침에 별을 너덧 개나 달 수도 있었고 잘못 보이면 형편없이
강등되기 일쑤였다. 내가 달고 있는 별판 일곱 개만 빼고 꼬마들은 언제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계급장을 떼었다 붙였다를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을 수백 개나 달고 다니고 싶었지만 내 모자가 작아서,
그리고 대장 것만은 별판이 유난히 커서 일곱 개 이상을 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다음에 진짜 왕초가 되면 수십 명의 장정이 모자를 들고 쫓아다닐 수 있게 만들어서
수천 개의 별판을 달아 둘 생각을 품었다.
 
기찻길 옆 동네라고 해서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착각일 것이다.
거기엔 아주 엄격한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상관의 명령이면 절대복종밖에 없었다.
나이가 어리거나 계집애거나 상관 없이 상급자에겐 무조건 경례를 해야 했고 상관의
명령이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어른들처럼 시시하게 항명을 한다든지, 뒷구멍으로 욕을
한다든지, 조잡스럽게 투서질이나 모함 같은 것을 우리는 하지 않았다.
 
숨바꼭질할 때도 왕초는 찾아내서는 안 되었다. 깡통차기나 집뺏기놀이나 사다리놀이에서도
왕초는 술래가 될 수 없었다. 왕초는 딱지치기나 구슬치기에서도 늘 따야만 했다.
 
왕초의 명령은 거역할 수 없는 법이었다. 부하들은 총알이 핑핑나는 훈련소 사격장에서
탄피를 파오기도 했고 불발폭탄을 캐다가 엿장수에게 팔아 돈을 가져와야 했다.
 
나는 그런 황제였다. 이를테면 나는 사설(私設) 왕국의 황제였다. 그런 나도 결국 왕위를 버릴 수밖에 없는
사건 앞에 서게 되었다. 그건 내 친구이면서 언제나 계급이 낮은 내 부하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는 내 아저씨뻘 되는 소년이기도 했다.
 
교각이 다섯칸이나 되는 철교 아래에는 물결 깊은 구간이 있었다. 그 철교를 누가 먼저 건너뛰는가,
기차가 어디쯤 왔을 때 철교를 건너뛰는가, 레일 위에 누워서 기차가 달려올 때 누가 제일 늦게 일어나는가,
철교의 침목 끝에서 누가 물구나무를 가장 오래 서는가 따위의 시합을 한 주일에 한 번쯤 시키곤 했다.
 
나는 내 부하들에게 담력을 키우는 훈련을 부단하게 시켰던 것이다.
훌륭한 왕초 밑에 허약한 부하 없는 법이니까.

소년은 그날도 첫 도전에 실패하여 계급이 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소년은 재도전을 했다.
계급이 낮으면 하루 종일 그놈의 상급자의 심부름과 누룽지 수발과 알밤 세례, 술래 따위에
시달리기 때문에 소년은 재도전했던 것이다.
 
소년은 오랫동안 장질부사에 걸려서 신체가 허약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보다 높은 항렬을
가졌다는 내 뒤틀린 심사 때문에 소년의 계급은 낮았다.
 
기차가 달려왔다. 소년은 철길을 뛰기 시작햇다.  소년은 침목을 세 개씩 네 개씩......
정신없이 뛰었고 화통은 그 목청 사나운 소리로 빼각빼각 악을 썼다. 우리들은 박수를 쳤고
동네 어른들은 철교 아래 미나리밭으로 와르르 몰려갔다.
 
철교는 길었다. 그 높이는 우리들 키의 일곱 길이나 되었고 시퍼런 강줄기의 물은
아가리를 따악 벌리고 있었다.
 
소년은 빨랐다. 그러나 기차는, 그 더럽게 못생긴 기차는 더욱 빨랐다. 소년은 뒤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소년은 자빠졌다.
 
"뛰어 내려. 빨리 뛰어 내려!"
 
소년의 어머니는 이렇게 악을 썼고 동네 어른들도 따라서 소리질렀다.
 
"영구야아 영구야아! 뛰어. 빨리!"
 
소년의 어머니는 목이 쉬었다.

"뛰어내려. 뛰어! 뛰어! 뛰어!"
 
소년은 일어나서 뒤를, 그 화통의 대갈통을 힐끔 쳐다보고 철교를 한 칸밖에 남지 않은
철교를 뛰기 시작했다. 기차는 쏜살같이 소년을 덮쳤다. 소년은 없어져 버렸다.

하나님, 그 소년이 지금 천당에 있습니까? 말씀 좀 잘 해 주세요. 본심은 아니었다고요.
그때부터 난 왕초자리를 내놓게 되었다고요. 어차피 죽을 거 때묻지 않고 죽어서 차라리
소년이 행복한 거라고 거짓말이라도 해 주세요.
 
소년은 멍석으로 돌돌 말려서 철길 옆에사는 곱추영감 지게로 떠났다.
 
달도 없는 밤길을 걸어서, 별 무더기만 쏟아지는 수리조합 둑을 따라서, 우리들이 뱀을 잡아 목에 걸고
놀던 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부하들을 데리고 살금살금 뒤쫓아갔다.
 
곱추는 삽질을 했고 우리들은 묘등 아래서 오줌을 누고는 거수경례를 했다. 곱추는 자꾸만 봉분을 삽으로 때렸다.
소년이 아플거라고 생각했다. 곱추는 한참 동안 소년을 때리고 담배 한 대를 뻑뻑 빨았다.
 
불꽃이 예뻤다. 소년처럼.
 
우리는 봉분을 실컷 때리고 내려가는 곱추에게 돌팔매질을 했다. 곱추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나는 소년의 무덤 앞에 엎드려 거수 경례를 했다. 그러고는 내 계급장, 미제깡통으로 만든
계급장을 무덤 앞에 붙였다. 나는 울지 않았다. 왕초였으니까.
 
그때부터 한동안 기찻길 옆 동네는 조용해졌다.

코피 나는 녀석도, 여선생이 변소에 들어갈 때마다 변기통 밑을 들여다보는 녀석도, 교실의 유리창 도르래와
철골을 빼가는 녀석도, 학교의 철봉과 그네마다 똥칠해 놓는 녀석도, 개구멍으로 극장구경 갔다가 들켜서
영화간판 쓰는 아저씨에게 빨간 페인트로 '축 개구멍'이라고 얼굴 가득히 씌어져 나오는 녀석도,
왕국을 세우기 위해 산 속에 굴을 파놓고 무기를 숨겨 두는 녀석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스물 두 살이나 된 지금까지 내가 꿈꾸던 왕국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 어머니는 비록 내가 4전 3패 1승이란 각고 끝에 이류대학의 대학생이 되었지만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나는 닥치는 대로 휘젓고 돌아다닐 판이다.
그래서 세상을 좀 더 환히 알고 난 뒤에 내 꿈을 펼쳐 나갈 심산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그래야 하는 거니까. 훌륭했던 사람과 위인은 모두 그랬으니까.
동화책에도 위인전에도 역사책에도 모두 그렇게 씌어 있으니까.

 

 

 

2.귀신사냥



'모친위독급하향요미숙'
 
하숙집 아주머니가 내민 전보용지에 씌어있는 내용이었다 정확하게 열 자. 띄어쓰기도 하지 않은,
못생긴 타자글씨 열 자였다. 아마 기본료만 내기 위한 계집애 동생의 착안이었을 것 같았다.
 
나는 전보용지를 북북 찢어서 쓰레기통 속에 처박아 버렸다.
 
"총찬이 학생, 집에 안 갈 거여?"
 
하숙집 아주머니가 이렇게 물었다.
 
"생각해 보구요."
 
"생각이 다 뭐여? 어서 가봐야지. 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데...... ."

대해서 믿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순전히 극성스런 우리 어머니 때문이었다. 걸핏하면 모친위독,
급거 하향하라는 전보를 보내곤 해서 이 형편없이 가슴이 여린 외아들을 놀라게 만들곤 했다.
 
시외전화를 걸어 보았자 속기는 매한가지였다.
 
"말도 마라, 이 자식아. 어찔어찔하고 골이 쏟아지려고 해서 밥 한 술을 먹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 줄 아냐?
눈앞에 있는 게 모두 서너 개씩으로 보여서 픽픽 쓰러지지...... . 누가 얘기를 해도 뭔 말인지 통 들리지도
않고...... . 에미 죽거든 훠얼훨 춤추며 젯상 차려라...... ."
 
번번히 속는다고 생각하면서 내려가보면 이웃 동네 처녀의 사진을 내놓고 후다닥 장가를 가라고 조르거나,
전화가 있는 집으로 하숙집을 옮기라거나, 새벽에 기차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서 아들이 내려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역전까지 달음박질을 한다거나 하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게 고작이었다.
 
내가 전화가 없는 하숙집을 골라 다니는 이유가 바로 어머니의 극성스런 전화질 때문이었다.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덴 당할 재간이 없게 마련이었다.
 
이튿날 오후에 전보 두 통을 한꺼번에 받았다. 어제 것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가방을 챙겨 들고 하숙집을 나섰다.
오늘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어머니가 올라올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군복 입은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 같으면 아마 거의 틀림없이 부대 정문 앞에 자리를 깔고서 내 아들 내놓으라고
매일매일 소리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부대 안에 이부자리를 들고 들어와서 아들을 껴안고
자려고 해서 골치를 썩히다 못해 제대를 시킬 거라고 생각했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면서 나는 서울이라는 데가 촌놈들 사는 데는 여러 가지 불편한 것 투성이란 생각을 했다.
이렇게 멀리에다가 터미널을 만들 바에야 아예 전국을 서울시내 버스로 통용을 시키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표를 끊으면서, 고속버스에 올라타면서도 나는 계속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야 할지를 망설였다. 않는다. 그래서 내가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지 않도록 늘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어쩔수 없이 고속버스를 타게 되면 반드시 운전사 뒷자석에 타라고 당부한다.
만약에 사고가 나더라도 운전사 자신이 죽기 싫어서 운전석 쪽으로 사고를 내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이 사고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어째서 고속버스를 불신하는 지에 대해서 약간씩 깨닫곤 한다.
 
기차는 레일 위로만 달리지만 고속버스는 운전사 마음대로 달리기 때문이라는 것과 장거리를 뛰는
고속버스는 너무나 낡아서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를 만큼 고물이라는 사실을 잦은 이용으로 간파했기에
 
교통부가 교통사고부로 개명하기 싫다면 저 무섭게 달리는 공동묘지를 저렇게 두 눈 멀뚱하게 뜨고
내버려 둬선 안 될 것이다. 내가 만약 왕국을 세워 황제가 된다면 교통부를 없애고 우마차부를 신설할 것이다.
 
안내양은 어째서 종아리가 훤히 보이는 짧은 치마와 알몸의 윤곽이 드러난 꽉 끼는 옷을 입게 되었을까?
저것이 서버스 정신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왜 운전사는 반바지에 웃통을 훌렁 벗게 하여
남성미를 보여 주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그런 거야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여권운동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겠지 뭐.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번만은 어머니한테 속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초췌한 모습, 뭔가 불안한 표정, 저것이 모른다.
 
"어머니, 늦었습니다. 어디 편찮으세요?"
 
내가 뛰어들며 어딘가 찔린 듯 상을 찡그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까칠거리는
손마디에서 나는 어머니가 머지않아 한 줌의 흙이 될 거라는 걸 짐작했다.
 
"총찬아, 이눔 자식아...... . 이제사 오냐...... ."
 
어디 한 군데 물기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머니 얼굴에 두 줄기 물방울이 생겼다.
어머니는 얼른 돌아누웠다.
 
"그나저나 저년이...... ."
 
어머니는 웃목에 쪼그리고 앉은, 놀란 토끼새끼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는 미숙이를 가리켰다.
 
"미숙이가 왜요?"

갈켰더니...... 퇴학시킨대여...... ."
 
"아니 왜요?"
 
"저년한테 물어 봐. 에이구, 이놈의 팔자가 어떻게 되려구. 창피해서 낯짝 들구 다닐 수가 있나...... ."
 
"퇴학이라니? 미숙아, 무슨 얘기야?"
 
내가 미숙이를 향해 다그치자 미숙이는 고개를 숙이고 벽 쪽으로 더 물러났다. 얼굴빛이 창백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내 목소리가 의외로 컸다. 하나밖에 없는 계집애 동생이었다. 어머니 나이 마흔에 얻은,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부끄러운 망신살이 뻗쳐 낳은 계집애였다.
 
어머니가 낳은 자식은 미숙이까지 모두 10명이었다. 그러나 모두 낳자마자
건졌다고 했다. 그런 뒤에 생각지도 않게 미숙이를 얻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현대의학의 힘을 빌어 낙태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었다.
 
"뵈기두 싫으니까 나가 뒈져, 이년아."
 
어머니는 이렇게 비명처럼 소리 지르고는 재차 돌아누웠다. 그러고는 가래 섞인 목소리로
 
"저것이 웬수라니까. 챙피해서 어떻게 살꼬. 니가 저년 얘기 좀 들어 봐라. 복장 터져서 난 말 못한다."
 
그러고는 학교에서 날아왔다는 쪽지를 내 앞에 던졌다.
 
"이쪽으로 와 봐."
 
내가 일어나자 미숙이는 훌쩍거리며
 
"오빠.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
 
겁에 질린 미숙이의 첫마디였다.
 
"잘못이 없는데 퇴학을 시켜?"
 
가라앉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방에서 새어 나왔다.
 
"말해 봐, 어떻게 된 건지."
 
"오빠한테 숨김없이 말할 테니까 다 들어 보고 내가 잘못했으면 내쫓아도 좋구,
큰 잘못이 없다면 오빠가 해결해 주고 가."
 
여고 2학년짜리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들었던 막대기를 슬그머니
밀어 놓고 미숙이의 얘기를 차근차근 메모하기 시작했다.
 
미숙이는 울면서 얘기를 했다. 어린애 같기만 하던 녀석에게서 나는 성숙해지는 여자의 냄새를 맡았다.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울먹이며 얘기하는 동안 안방의 어머니는 계속 미숙이에게 욕을 하기만 했다.
 
"내가 잘했다는 건 아냐, 오빠. 처벌이 너무 지나치고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조건 불량학생
취급 당하는 게 억울한 거야. 정말 죽고 싶어."
 
미숙의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피가 펄펄 끓는다는 걸 알았다.
 
"알았어. 내가 해결해 줄게. 딴 맘 먹지 말고 어머니가 뭐라든 끽소리 말고 있어. 알았지?"
 
"...... ."
 
미숙이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교문 앞에 버티고 서있는 규율반 학생 두명의 눈빛이 영 꺼림칙했다. 순진한 여학생의 눈빛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와 도리짓고땡에 어쩌면 저 여학생들의 살벌한 눈빛이 수녀가 운영하는 이 가톨릭학교의
융통성 없음을 증명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톨릭학교니까 천주님이 그렇게 시키겠지, 뭐.
 
살벌한 교칙을 만들어 놓고 여학생들을 마치 수녀처럼 만들려고 하는 저 사랑의 이중성 앞에
미숙이가 희생당한 것이었다.
 
교장실로 들어서자 훈기와 향기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난로의 붉은 불꽃과 한아름이 넘는
국화송이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어서 오세요. 미숙이 오빠시지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어디 한군데 나무랄 데 없는 인자하고 자상한 모습이었다. 깨끗한 피부와 반듯한 용모,
금테 안경알과 빛나는 눈동자, 웃음기 나이를 도대체 측정할 수 없는 교장수녀였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교장수녀는 미숙이를 퇴학처분할 수밖에 없는 배경설명을 했다.
교장수녀의 얘기와 미숙이의 얘기는 거의 틀린 데가 없었다. 다만 미숙이는 미숙이의 입장에서 얘기를 했고
교장수녀는 교장수녀의 입장만을 얘기한 것이 다를 뿐이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미숙이가 잘했다는 말씀을 드리러 온 게 아닙니다. 분명히 미숙이가 교칙을 위반한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런 가혹한 처벌을 철회해 주십사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학교 밖에서 사복을 입고
돌아다녔다거나 사복을 입고 자전거를 탓다거나 또는 공공연히 시킨다는 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교장수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미숙이가 세 번씩이나 사복을 입다가 지적을 받았고, 세번째는 사복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우리 선생님이 지적을 하니까 그대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집 문 앞에 잠깐 나갈 때도 반드시 교복을 입어야 하나요?"
 
"그래야지요."
 
"그렇다면 여학생은 자전거를 타면 안 되나요?"
 
"우린 자전거를 못 타게 하진 않습니다. 타고 안 타고는 학생들 자유지요."
 
"교복치마 입고 탈 수는 없잖습니까? 교복치마를 입고 타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는 바지를 입고 타는
귀여운 모습이 여학생들이 어두운 밤에 국민학교 운동장이나 공터에 가서 자전거를 배우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이 학교 학생들의 통행금지인 여덟 시 이후에 자전거를 배운 학생은 통금위반,
사복착용의 죄를 만들어 갖게 됩니다."
 
교장수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웃음기가 그치지 않았다.
 
"미숙이 경우는 달라요. 세번째 잡혔을 때 담임수녀님이 벌을 줬는데 도망을 갔어요.
우리 학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착한 딸들이 그런다는 건 말도 안 돼요.
더구나 미숙이는 견진까지 받은 천주님의 딸예요. 수녀님을 속이고 도망을 간다는 것은...... ."
 
"교장수녀님. 이 학교 교칙에, 이처럼 담임선생님이 학생을 아침부터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교문에
손 들고 벌을 세우는 조문이라도 있습니까? 그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를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교문에 손을 들고 서 있게 해서 어쩌자는 겁니까?
그것이 교칙이고 그것이 가톨릭학교의 엄격한 규율이며 이 학교의 자존심입니까? 학생은 학생처럼 자라야지
수녀님처럼 자라기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수녀님들이 수녀님이 되기 위해 배운 대로 가르치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학교는 아직도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 훈육, 지시, 감독, 처벌밖에 없는 셈입니다."
 
내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교장실과 연결된 교무실에서 교감과 미숙이의 담임선생이
 
"차마 미숙이 오빠에게 말 안 하려고 했지만...... ."
 
교장수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교감이 내게 눈짓으로 대꾸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미숙이는...... 자전거를 배우러 나가서 남핵생들과 어울렸어요. 동네 사람들이 당직교사한테
신고를 해서 나가봤더니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어울려 놀고 있었어요. 우리로선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더구나 그 점만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칙에 대해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세요."
 
조금 전의 표정과는 너무나 다른 찬바람이 도는 냉랭한 얼굴이었다.
 
"주일날 성당에 와서 성당에 다니는 남학생들과 어울려 노는 건 어째서 처벌하지
 
"그것과는 달라요. 더 말씀 마세요."
 
"아닙니다. 절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남학생들은 예배당에 다니는, 기독교 학생회 회원들이었습니다.
그날 그 학생들이 배구시합을 하는데 우리 미숙이가 옆집 사는 친구 부탁으로 인원이 부족한 여학생팀에
들어가 배구를 하고, 시합이 끝난 뒤에 같이 어울려서 놀았습니다. 예배당에 다니는학생들과 어울리면
퇴학당한다는 게 교칙의 어디에 명시되어 있습니까? 벌건 대낮에 그애들이 발가벗고 음탕한 장난을 했습니까?
그때 같이 어울린 다른 학교 여학생들은 어째서 멀쩡합니까?"
 
교감이 내 어깨를 붙잡고 밖으로 밀어 내려고 했다.
 
"가만히 계십시오. 나도 한때 신학교에 복사(服事), 성가대원, 종교 반장,학생회장까지 한 착실한 신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신자이지만 이 썩어빠진 교칙과 수녀님의 횡포는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폭로해서라도 바로잡는 데까진 바로 잡아야지요. 이 학교 재단은 수녀님 당신들 것인지 모르지만
저 수많은 학생들은 당신들 것이 아닙니다."
 
교감과 몇 명의 남자 선생님들에게 끌려나온 나는 양호실 철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온 교감의 낮빛이 어두워 보였다.
 
"안 되겠어요. 한사코 번복할 수 없다고 저러시니...... .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 생각엔......전학증서를 해드릴
 
교감은 뭐가 그리도 송구스러운지 두 손을 비비면서 연신 굽실거렸다.
 
"저도 우리 미숙이를 이런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학증서 해 주십시오."
 
높다란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나는 바짓가랑이를 내리고 오줌을 갈기고 싶었다.
뒤를 쳐다보았다. 성모 마리아상이 하얗게 서 있었다.팔에 안긴 아기예수도 하얗다.

천주님 당신은 아십니까? 차라리 중세 가톨릭처럼 교황이 첩을 얻고 수녀원 마루밑에서 어린애
두개골이 쏟아져 나오고 면죄부를 팔아서 성직자가 부자가 되는 세상이 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이 세상과 우주를 만들었으니까 그렇다면 저 혼자 살아서 히스테리컬한 저 일부 수녀의
행위를 어쩌실 작정입니까? 잘 모르겠다고요? 아마 그러실 겁니다. 당신은 늘 그렇게 애매모호했으니까요.

나는 그 길로 몇 군데를 쫓아다녔다. 신부도, 교육계 인사도, 행정 관료들도 무두 교장수녀의 의사를 존중했다.
이미 결정된 퇴학처분을 번복하지 않는 것이 교육적 견지에서 타당한 것이라고 했다.
 
하긴 아무리 스물 두 살짜리 사내의 얘기가 타당하다고 해도 그건 결국 애들의 얘기일 것이다.
 
그날 밤에 나는 약방에 가서 콘돔을 한 다스나 샀다. 그리고 바람을 잔뜩 집어넣어 수녀원 담 너머에 던져 버렸다.
너머로 신부의 옆모습이 뚜렸하게 보였다. 신부의 귀는 유난히 커 보였다. 매일 남의 죄를 듣기 위해서는
귀가 보통사람보다 커야 할 것 같았다. 세상사람들의 죄악을 몽땅 알고 있는 신부는 얼마나 통쾌해 할까.
아마 신부는 세상 사람들이 더 흉악범이기를 고대할지도 모른다.
 
"죄인에게 강복하소서...... . 저는 강간을 했습니다. 강도질을 했습니다. 도둑질을 했습니다.
신공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예배당에 나갔습니다. 밀떡을 받아 먹고는 잘근잘근 깨물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수녀를 강간했으며 십자가를 불쏘시개했으며 성모 마리아가 숫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
 
신부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그리고 나를 일어났다.

"내려온 김에 살풀이나 보구 가거라."
 
어머니가 짐을 챙기는 나를 붙잡아 앉혔다.
 
"살풀이는 무슨 살풀입니까. 저 기집애 외삼촌 댁에 맡겨 놓으면 어머니 신간 편하고...... .
오히려 잘 된 건지도 몰라요."
 
"택일 했으니 잔소리 말고 보구 가. 맏상주 없이 어찌 살풀이를 하것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상경길을 막고 나섰다.
 
"차암 어머니두...... . 그깐 살풀이한다고 뭐가 돼요?"
 
"차암이라니. 느이가 이만큼이라도 살아가는 게 다 이 에미가 밤낮으로 신주 박수무당하고 할미만신의
살풀이가 당상인 걸 느이가 몰라서 그렇지. 한바탕 휘둘러 놓고 나면 잡것들이 범접이나 하는 줄 아냐?"
 
어머니는 박수무당과 할미만신의 단골손님이었다.
그 무당들의 공수에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사족을 못 쓰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어머니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의 갑작스런 운명 앞에 나약하고 한 많은 여자로 돌아서 버린 것이었다.
 
"박수하고 만신이 느이들한테 얼마나 공덕을 들이는지 아냐?"
 
어머니는 내가 대학생이 된 것마저도 무당들의 공덕이고 어머니가 섬기는 신주의 점지 때문이라고 했다.
그놈의 만신이다 박수다 해서 바친 재물만 해도 한재산은 될 게 아녜요. 믿을 게 따로 있지요.
차라리 그 돈을 가지고 여행이나 다니시고 구경이나 좀 하세요. 뭐가 더 아쉽다고 자꾸 이러세요."
 
"저런 저런. 이눔아 우리 신주께서 들으실라. 우리가 무슨 기운으로 지탱하는지 알기나 하고 이러는 거냐?
저눔이 복을 차던져도 분수가 있지."
 
"살풀이한다고 미숙이가 다시 학교에 가지기를 해요, 제가 갑자기 고등고시에 합격을 하겠어요.
제발 이제 그만 좀 두세요."
 
"저눔이 삼신벙어리 말문 여는 걸 못 봐서 저러지...... . 예끼 이눔아, 우리가 목숨 부지하고 이만큼이라도
지탱하고 사는 게 뉘
 
"그래서 어떻게 하실 작정예요?"
 
"아직도 우리 집안에 서양귀신이 붙어서 그러는 거다. 훠이훠이 내몰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동티나서
움죽도 못하고 귀신될껴. 알것냐?"
 
어머니는 양심적인 판사처럼 단호하게 잘라 말하고 고실댁에게 장거리를 보아오라고 했다.
 
굿판이 벌어졌다.
 
징과 장구와 고리짝 두드리는 소리가 동네 전체를 시끌덤벙하게 만들었다. 그 소리들은 내게 아련한
향수 같은 걸 주었다. 서커스를 개구멍으로 들랑거리며 들었던 소리이기도 했고 풍물장수가 숨넘어가듯
지껄이는 음조이기도 했다. 아니, 농악대 패거리의 자발맞은 모둠뛰기인 것 같기도 했고 떠돌이
 
나는 철둑 위에 앉아서 그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옆에 앉은 다혜(茶惠)는 우리 집의 굿거리 장단이
재미있는지 발장단을 치고 있었다.
 
"나는 저놈의 소리만 들으면 춤을 추고 싶어. 고고나 디스코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율동으로 말야."
 
나는 다혜에게 우리집의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엉뚱한 소리를 했다.
 
"누군가 그랬어. 백인종보다 황인종이, 황인종보다는 흑인종이 훨씬 율동 있는 족속이라고.
나도 무당의 장단 소리를 들으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싶어. 그게 속일 수 없는 핏줄 때문일 거야."
 
다혜는 그런 식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굿판을 벌여 놓고 있는 우리 집에 대해서
 
"백인들이 곧잘 우리더러 유색인종이라고 하지? 다혜도 우리가 유생인종이란 걸 인정하니?"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해. 인정할 건 해야지. 찬이는 너무 세상을 부정하는 데 문제가 있어."
 
다혜도 내 수치스러워하는 심정을 이해했는지 내 말꼬리를 물고 들어왔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백인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우리나 검둥이들이 유색인종이지만 우리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백인은 탈색인종이고 흑인은 유색인종이다. 그러나 흑인을 기준으로 삼으면 우리는 탈색과정의
인종이고 백인은 탈색완료의 인종이잖아. 엄밀하게 따지려면 인류의 조상, 아메바도 좋고 아담과 이브라도 좋고...... .
그들의 혈색이 어떤 것이었는지 찾아내야만 할 거야. 그렇지 않니?"
 
"말 되네."
 
다혜는 한마디로 잘라 대답하고 배시시 웃었다.
 
"무당이 굿거리를 하면 정말 병이 낳을까? 난 이해할 수 없어."
 
"나을 수도 있지. 정신요법으로 가능한 거니까. 의학에도 플래시보 효과라는 게 있잖아.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오지에 선교하러 가서 치약을 만병통치약으라고 하니까 그걸 먹고 바르고
병줄이 잡혔다니까. 우리가 흔히 살갖이 긁힌 줄 모를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상처를 발견한 뒤에야
따갑고 아프다는 걸 느끼는 것 같은 것 말야."
 
나는 다혜에게 계속 유식한 척을 했다. 주름잡는다고 하는 것일 테지만.
 
"찬이 엄마 같은 신경통 환자도 그렇게 될까?"
 
"난 잘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가 효과를 본다니까 그런 줄만 알아야지 머."
 
슬그머니 뒤로 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정말 효과를 보는지 어떤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늘 효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는 반박할 증거가 없었다.
 
"귀신 본 적 있어?"
 
다혜는 틈이 벌어진 침목 사이에 돌멩이를 넣으며 물었다.
 
"귀신?"
 
나는 도리어 반문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렸을 때 귀신 잡으로 다녔었잖아?"
 
"흐흐흐흐...... ." 죽였다면서 귀신 타죽은 재를 꼬맹이들 이마에 시커멓게 발라 주고 그랬잖아."
 
"그랬었지. 넌 별걸 다 기억하고 있구나. 난 까마득히 잊어버렸었는데."
 
"잊을 리가 있어! 이래봬도 난 그때 간호대장이었었는데. 별을 다섯 개나 단."
 
다혜는 그 당시에 간호대장 노릇을 했었다. 지금은 고작 간호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이지만.
 
다혜가 우리 동네를 떠난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그 뒤에는 단 한 번도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을 때 만났다. 그렇게 만나자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야구 대항전의 응원을 하다가 만난 것이었다. 그녀는 명문 사립대학교의 응원부원이었다.
 
고적대 특유의 짧고 새빨간 치마를 입고 하얀 수술을 흔들어대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아랫도리가
경직되는 것 같았다. 어떤 여자라도 허벅지만 보게 된다면 온통 이 세상엔 천사투성이일 것이다.
짧은 치마 입은 천사가 없는 것을 보면 하나님도 여자의 복장에 대해 꽤나 신경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공부가 더 안 되는 거 같아서 올라갈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
 
다혜는 간호원 국가고시를 앞두고 고모님네 집에 내려와 있었다.
 
"나랑 같이 가면 되잖아. 나도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를 봐야 돼."
 
"정확히 언제 갈 테야?"
 
"내일 굿판이 끝나니까 모레나 글피쯤 가면
 
다혜는 레일 위를 깨금질로 걸어서 고모네 집 쪽으로 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혜를 홀딱 마시고 싶었다.
 
굿판이 끝났다. 어머니는 군불을 많이 때서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땀을 흘리고 있었고
할미만신은 어머니의 머리맡에 앉아서 소지를 올리고 있었다.
 
"일루 돌아 누시게."
 
박수무당이 명령조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땀을 닦으며 흘끔 내 눈치를 보았다.
박수무당이 괴춤에서 쌈지를 꺼냈다. 그 속에서 침과 침판이 나왔다.
그리고 화장품병과 촛물 먹인 노끈이 한 발쯤 나왔다.
 
어머니의 허벅지는 천사의 허벅지가 아니었다. 꺼칠한 살갗에 여자다운 호주머니에서 한지 뭉치를 꺼내
방바닥에 펴 놓았다. 어머니의 신경통 치료 때문에 침자리를 확인할 하지도(下肢圖)였다.
하지도에는 엉덩이에서부터 발목까지의 인체그림이 나타나 있었다. 반점처럼 찍은 점 위에 한자로 풍시(風市),
족삼리(足三里), 현종(懸鐘), 곤륜(崑崙), 신맥(申脈)이라고 씌어 있었고 다른 한지에는 환조(環조),은문(殷門),
위중(委中), 승산(承山)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박수무당이 어머니를 옆으로 누인 자세에서 허벅지 위쪽에 침통을 대고 침을 손가락으로 쳤다.
침통을 빼고 손으로 더 꼭 눌렀다 뺐다. 그러고는 그 부위에 사정없이 침질을 했다.
 
"참으시게."

매정하리만큼 침전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꿈쩍도 않았다.
침자국마다 아주 작고 예쁜 핏방울이 맺혔다. 어머니의 허벅지는 그래서 참 예뻐졌다.
 
할미만신이 화장품병을 거꾸로 들고 그 병 속에 촛물 먹인 노끈을 태우고 있었다.
 
"붙여."
 
박수무당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였다. 할미만신이 화장품병을 침으로 쪼은 부위에 붙였다.
어머니가 꿈틀거렸다. 어머니의 하체에는 화장품병이 네 개나 매달려 있었다.
 
"쯧쯧 악혈이 너무 많네. 그러니 신기가 있을 턱이 있나. 부적 간수 잘 하시게. 이러다 귀신 씌우면 어쩌나."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박수무당이 손을 댈 때마다 어머니의 하체는 이상스럽게 꿈틀거렸다.
 
나는 박수무당의 턱을 한 대 갈기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나이와 까칠하고 늙은 어머니의 살갗 때문에
박수무당의 행위를 참고 견딜 수 있었다.
 
부항이 끝나자 할미만신은 화장품병으로 만든 부항기를 뜯어냈다. 검붉은 피가 배어나온 어머니의 하체에서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한 줌의 자양분 많은 흙을 연상했다. 손으로 핏자국을 닦아 본 박수무당이
엄지손가락으로 부항놓았던 자리를 꾹꾹 눌렀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가늘게 비명소리를 내곤 했다.
 
나는 그때 어째서 아버지의 모습을 감독으로 단련된 팔뚝, 목욕탕에 같이 갔을 때 보았던 그 당당하던 아랫도리,
그렇게 매일 밤 억수로 취해 들어오면서도 동네가 떠나가도록 목청껏 부르던 유행가 소리. 어른 키로 일곱길이나
된다는 새다리의 난간에서 떨어지고도 한 달이나 버티다 죽은 아버지였다.
 
나는 어머니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마흔 아홉에서 쉰 서너 살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십수 년간 시달리고 있는 신경통만 아니라면 도시 여자들처럼 춤바람이 나도 좋을 그런 나이인 것만은 확실했다.
 
박수무당과 할미만신이 떠났다. 그들 뒤에서 고실댁의 남편이 지게 위에 쌀과 명태와 푸성귀들을 지고 따라갔다.
 
이튿날 상경하려고 나서는데 어머니는 나를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든지 해야 할 모양이다. 더 못 견디게 아프다."
 
부항 놓았던 자리가 둥글게 검은 진주색을 띠고 있었다.
 
"효험이 없단 말예요? 침도 맞고 부항도 놨는데요?"
 
"소용없나 보다. 더 움쩍도 못하겠는 걸 보니."
 
잔병치레가 심한 어머니였지만 이렇게 엄살에 가까운 하소연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가는 얼굴로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이눔아, 에미 죽을 모양이다. 이렇게 팽개치고 떠나면 어쩌자는 겨?"
 
나는 그 길로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외삼촌을 불렀다.
어머니는 친정식구들을 더 신뢰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외삼촌 부른 걸 좋아했다.

개태골은 우리 집에서 시오리 길이었다. 박수무당과 할미만신은 개태골 대나무숲이
우거진 산등성이 옆에 나란히 살고 있었다.
 
"쥔 계십니까?"
 
내가 마당으로 들어서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 마루 밑에 있던 강아지가 깽깽거리며 자지러지게 짖었다.
 
"워디서 오셨지요?"
 
박수무당의 딸 같은 계집애가 방문을 열고 대꾸했다.
 
"박수어른 어디 가셨나요?"
 
"신주 모시러 가셨는데요."
 
"만신도 같이요?"
 
"그런가 봐요."

어디로 굿판을 벌이러 갔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계집애는 장소를 모르고 있었다.
 
"아가씨, 어머니는 없어요?"
 
"돌아가셨죠."
 
순박해 보였지만 말을 시켜 보니까 느물거리는 게 여간내기가 아닌 성싶었다.
 
"아버지가 오시면 방죽거리에서 왔다 갔다고 하세요. 어머니가 굿하고 침 맞은 뒤로 더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다고요. 그래서 돈을 되물리러 왔었다고요. 만약 되물려 주지 않으면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고 콩밥 먹인다고요. 알았죠?"
 
계집애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비쭉 내밀었다.
 
"웃기지 마요. 우리 아버지 장안 귀신이 다 손 놓은 사람도 살린 사람예요.
나으면 병원비 되물려주는 거 봤어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작작 하고 가요!"
 
당찬 계집애 목소리였다. 나는 돌아서서 계집애에게 윙크를 했다.
 
"지금부터 아가씨를 좋아할 거예요. 그러나 아버지에게 반드시 꼭, 정말 꼭 돈을 되돌려받을 거예요. 두고 보쇼."
 
계집애는 내 등 뒤에다 대고 썩을 놈, 벼락 맞아 뒈질 놈, 염병할 놈 하며 욕을 했다.
나는 뒤도 쳐다보지 않고 대숲 옆길로 내려갔다.
 
나는 그길로 다혜에게 쫓아가 며칠만 서울길을 늦추자고 해 놓고 철물점에 들러 우악스럽게 생긴
부엌칼 한 자루를 샀다. 숫돌에 대고 10분 쯤 갈자 칼날이 허옇게 섰다. 칼을 신문지에 말아
청바지 뒷주머니에 사람들에게 무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신나는 일도 드물 것이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박수무당과 할미만신은 만만찮은 인물들이었다. 굿판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늙은이들이라서 내 행위를 어린애 장난처럼 취급했다.
 
"고얀 놈. 어따 대고 신주돈을 내놓으라 마라냐? 썩 물러가라 이놈 요절을 낼 테니."
 
박수무당은 마루 위에 버티고 서서 호령을 했다.
 
"조놈이 환장한 게 분명하구만. 존엄하신 신주님 앞에서 꺼떡거리다간 성한 다리몽둥이가 작신 부러져 요놈아."
 
할미만신은 내게 소금을 뿌리면서 악귀 물러가라고 주문을 외기까지 했다.
 
"당신들은 면허도 없이 침을 놨어요. 당장

"콩밥? 먹여다구 이눔아, 어린 놈이 대왕마마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다간 서(혀)물고 나자빠지지.
아암 나자빠지구말구."
 
이런 식의 입씨름으로 끝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세상에 자기들이 모시는 신주 이외에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방법을 바꾸어 밤 10시가 넘었을 때만 밤마다 찾아갔다. 부엌칼을 마루에 꽂아 놓고
매일 밤을 꼬박꼬박 지새우기 시작했다. 마당에 장작불을 지펴 놓고 밤을 꼬박 새우며 나는 악다구니를 썼다.
 
그들은 조금씩조금씩 기력을 잃어 갔다. 점점 악쓰는 소리도 줄어들었고 저주하는 소리도 줄었다.
그리고 신주에게 나를 역벌하라는 소리도 그만두었다. 꼬깃꼬깃한 지폐 10만원을 마당에 내던졌다.
 
"그럼 반타작만 하자."
 
나는 그 돈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흐물흐물 웃었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가져간 돈에서 정확히 반을 내놓은 것이었다.
 
"네놈 같은 독종은 첨 본다."
 
할미만신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내 뒤통수에다 대고 한 말이었다.
박수마당의 딸내미가 멀찍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튿날 낮에 나는 개태골을 찾아갔다. 박수무당의 딸내미가 화들짝 놀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계집애는 방구석에 몸을 사리고 앉아서 나를 어제 저녁 때처럼 노려보았다.
나는 달려들어 계집애 입술을 훔쳤다. 김치냄새가 났다.
 
"한번만 접때처럼 욕지거리를 하면 그 땐 발가벗겨서 홀짝 마셔버릴 거야. 알았어?"
 
계집애는 입술을 손으로 쓰윽 딱고는 돌아서 나오는 내게 욕지거리를 시작했다.
 
"염병할 놈, 벼락 맞아 뒈질 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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