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신교영화 (4)
Ⅱ 영화 <어둠의 자식들>에는 '제1부
카수영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영화는 '가수(카수)'로 불리는
창녀 영애( 영애는 가수가 되고픈 꿈에 무작정 상경을 한 처자이다. 가요학원의 광고를 보고 상경한
영애는 학원 원장에 의해 무명 작곡가 탁봉오에게 팔아 넘겨지게 된다. 두 사람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동거생활을 하였다. 떠돌이 유랑극단 생활을 하는 중에도,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고 '아주 예쁜' 딸을
갖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사내는 동네 불량배들과 시비끝에 파출소에 붙들려가고, 그 와중에 앓아 누웠던 아이가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 그 때부터 영애의 유랑이 시작되고,
종내에는 술집으로 흘러들어 가기에 이른다. 화숙은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먹여살려야 할 딸 아영이 있다. 이제 그만 나가 달라는
포주를 향해 화숙은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라고
호소하기까지 한다. 영애는 그런 화숙과 아영이 못내 안쓰럽다. 치열하게 살아가던 화숙은 어느 날 교회전도사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같이 불쌍한 여자들을 사랑하셨다죠?"라고 묻는 화숙에게,
전도사는 "못써요, 예수님을 그런 데다
비유하면"이라고 응대하면서, "이러니까 이 골목 사람들이
비난을 받는 거"라고 말한다. 화숙과 전도사 사이에 시비가
붙게 되고, 시비끝에 교회측에서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누가 그 교회 전도사를 건드린 모양"이라고 말하면서 불안해 한다. 화숙은 교회당을 찾아가서 속옷차림으로
시위를 벌이고, 그로인해 경찰서로 붙들려 간다. 화숙은 수용소에 수용되고, 결국 자살을 감행하고 만다.
화숙의 죽음은 교회의 이미지와 오버랩되고 있다. 창녀들이 혼자 남겨진 아영을 돌보게
된다. 그녀들은 아영과 함께 살면서 새로운 활기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녀들의 활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아동위원( 영애는 아영을 데리고 떠난다. 그녀는 구멍가게를 하면서 아영을 키우려 한다. 하지만, 아동위원이 영애를 찾아내어
'나라에서 보호해야 하는 아이'를 '막되 먹은
창녀'에게 맡길 수 없다고 말한다. 이웃들도 '몸파는 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동네 추잡해질까 겁나니까 떠나
달라고 말한다. 아영은 시립아동보호소를 거쳐서 크리스찬 가정에 입양된다. 영애는 아영의 양부모가
출석하는 교회를 찾아간다. "아영이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나요"라는 양모(養母)의
물음에, 영애는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가난했지만, 아영이 엄마는 착하고 깨끗한 여자였어요"라고 대답한다. 영애는 아영과 함께 살고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아영을 양부모에게 보낸다. 아영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Ⅲ 영화 <어둠의 자식들>에는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나타나 있다. 영화에서 교회는 창녀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들을 적대시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예수그리스도 본연의 삶과는 대치되는 것이다.
영화 <어둠의 자식들>의
한국교회 인식은 <과부춤>에 비하면 덜 체계적인
편이다. <과부춤>이 모성성(母性性)으로부터 기독교가 이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 것에 비하면, <어둠의 자식들>은
어떤 대안의 가능성까지를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아영의 양육을 맡은 양부모가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상정되고 있는 점에서, 제도로서의 교회와
신앙심 깊은 크리스찬을 구별하고자 한 의식의 일 면을 엿볼 수는 있다. /신 광 철
<한신대교수.종교문화학>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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