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Pasado 14] 피도 눈물도 없이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14. 10:22

피도 눈물도 , 포스터

 

유쾌한씨는 안산 친구 백일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잃었다. 그가 길을 잃고 내린 곳은 S시의 메가박스 앞. 버스가 11시 반이면 끊기는 터라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영화관이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는가. 유쾌한씨는 그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잠이 많은 유쾌한씨라 심야영화를 볼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서이다. 웬만큼의 영화가 아니고서야 분명 자게 될 유쾌한씨. 평균 취침시간이 11시, 최저수면시간이 7시간인 유쾌한씨에게 심야영화는 곤욕이 아닐 수 없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서 곤한 잠을 자야할 것인가 영화를 한 편 볼 것인가. 이만큼 진솔하고 곤욕스러운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머뭇거리다 유쾌한씨는 큰 맘을 먹고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친구를 불러내 "피도 눈물도 없이"를 2장 끊어 놓고 기다리는데 친구는 꽤 걱정이 되는 눈치다. 얘가 영화를 보다 자지는 않을는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류승완, "다찌마와 Lee"를 봤을 적만 해도 이 사람이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이런 생각을 날려 주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류승완 표 영화다. 인터넷을 기웃거리다 보니, 이 영화를 본 관객 사이에서는 조그마한(?) 표절 시비가 있는 듯 싶다. 평론가들도 딴지를 걸지 않는데, 대중이란 참 무서운 법이다. 하지만 류승완이 표절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유쾌한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장르적 유사성이나 동일성을 표절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극단적인 얘기지만, 어디 유능한 다른 감독에게,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들었던 동일한 조건을 주고(동일한 배우, 동일한 세트 등등) 영화를 표절해보라고 해봐라. 아마 시도해 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류승완이 아니면 누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는가. 한국 영화에 있어 큰 특징이라 하면 장르의 애매모호함, 이것저것 버무려 놓은 듯한 영화, 즉 장르의 혼합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박수를 쳐줄만 하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면, 자신의 영화를 "펄프 느와르"라는 장르 영화라고 규정짓는 것은 아니될 소리다. 신조어를 만들어 내(펄프 느와르라는 말을 류승완 감독이 만든 건 아니지만) 내 영화는 이런 장르의 영화라고 설명 할 수 있을까. 아직은 그러기에 이른 듯 싶다. 그저 류승완표 영화라고 하면 족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들어 낸 사람은 류승완 감독 자신 본인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또 다른 류의 영화를 처음으로 창조해 낸 것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가 아니면 누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어떤 장르라고 일컫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2시간은 지루하다. 화려한 기교로 화면을 꽉꽉 채우고 있음에도 지루한 것은 왜일까? 우선 액션신이 너무 길다. 여기서 액션을 접고 넘어가도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액션은 계속된다. 그렇게 길게 끌고 나가려고 했다면 장면 장면을 부드럽게 연결했어야 했다. 근데 연결 동작의 하나 하나의 장면들이 독립된 동작처럼 느껴지는건 왜일까. 그저 짧게 치고(보여주고) 나왔다면 그런 느낌은 줄어들었을텐데, 감독의 욕심이다. 힘들게 찍은 것들을 그냥 버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스토리 진행에 있어 내용이 없다. 액션 사이 사이에 스토리를 집어 넣는데, 이것은 너무 평범하고 지루하다. 별 내용이 없다고나 할까. "피도 눈물도 없이" 자체가 평범한 내용이다 보니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루함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걸 염두해서 인지 중간 중간에 코미디를 많이 삽입했다. 물론 우끼다. 근데 우낀 것 까지는 좋은데 시나리오 전개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웃기고 싸우고 웃기고 싸우고의 반복이라고나 할까. 내러티브 전개에는 신경 쓸 틈이 없다.

"피도 눈물도 없이"를 보는 재미 중에 하나라면 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도연의 용기있는(?) 변신이며 신구, 백일섭, 김영인, 박찬기 등의 중장년 배우들의 코미디 연기, 침묵맨이라고 불리는 무술감독 정두홍의 출연. 관객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주는 요소들이다. 배우들이 노력하는 모습 또한 보기 좋았다. 이 영화 자체로는 좋았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 씁쓸함이 남는 것은 왜였을까. 그것은 바로 "신구, 백일섭, 김영인, 박찬기"  같은 중년 배우들 때문이다. 연기 변시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겠지만, 다른 배우들에 비해 그들의 연기는 눈물겹다.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중년 배우들의 코미디 연기가 TV에서나 영화에서나 일종의 유행처럼 되버렸지만, 그 유행이 너무 상업적이라 너무 아쉽다. 연기의 관록이 쌓인 그들을 위한 영화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인지.. 아마도 힘들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제 시작이다. "다찌마와 Lee",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를 통해 그는 관객들에게 충분한 자신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이제는 그가 만든 영화를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류.승.완" 이름 세글자를 듣고 관객들은 영화를 볼 것이다. 그러한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릴 것인가 아닌가, 첫 장편 영화라고 할 수 있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보여주었던 초보적인 연출 모습들을 버리고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는 그에게 달렸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출처 : 바벨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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