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유덕화 주연의 영화 ‘묵공’을 보았다. 사카미 켄이치의 소설 ‘묵공’도 읽었고, 히데끼 모리의 만화 ‘묵공’도 읽었다. ‘묵공’에 대한 세 가지 텍스트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밤잠을 설치면서 읽었던 게 바로 히데끼 모리의 만화 ‘묵공’이다. 오늘은 이 히데끼 모리의 ‘묵공’을 주요 텍스트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전쟁의 미덕(美德)>
평화를 가장 큰 적(敵)은 전쟁이다. 아니 전쟁은 평화의 약탈자이다. 이는 세살 먹은 아이부터 여든이 넘은 어르신까지 잘 아는 사실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단 한번도 없던 적이 없었다. 항상 인류 곁에서 민초들의 삶을 억누르고, 목숨을 위협했다.
전쟁은 사선에서 싸우는 군인들만의 몫은 아니다. 살인과 방화, 강간, 약탈이 쉬지 않고 벌어지는 한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 아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히데끼 모리의 『묵공』을 보면 사회적 약자들이 전쟁에서 당하는 고통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파괴와 처참한 죽음에도 전쟁이 자주 일어났던 건 '전쟁의 미덕(美德)' 때문이다. 전쟁이 무슨 미덕이 있냐고 쓴소리를 듣겠지만 있는 걸 없다고 거짓말할 수는 없다. 과연 자본주의에서 전쟁의 미덕은 뭘까?
자본주의가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덕(德)으로 추켜세우는 게 바로 '소비'다. 항상 자본주의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논리로 세상을 지배한다. 소비가 미덕인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비행위는 무엇일까. 사치, 타락··· 아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건 바로 전쟁이다. 우리는 전쟁이 불러온 파괴가 자본주의를 살리는 밑거름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이 지배층들에게 주는 달콤함보다 대부분의 민초들에게 주는 고통이 더 컸다. 고통이 그만큼 처참하고 컸기 때문에 역사를 뒤적거리다보면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들을 생생하게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다가온다.
혹시 묵가(墨家)를 아십니까? 이들은 주로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활동하던 반전·평화주의자들이었다고 한다. ‘묵공’의 주인공 '혁리'도 바로 묵가의 한 사람이다.
묵(墨)은 성씨를 뜻하는 게 아니다. 그럼 왜 이들은 왜 묵가라고 불렸을까? 묵가(墨家)의 묵(墨)은 죄인의 이마에 글씨를 쓴 뒤 칼로 새겨내고 먹물을 칠하는 형벌의 하나인 묵형(墨刑)을 뜻한다. 즉, 묵가란 형벌을 받은 죄인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묵공’의 주인공 혁리의 이마를 보면 묵형의 흔적이 있지 않은가.
여기서 묵가가 형벌을 받은 죄수들의 집단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노자의 가르침대로 정치가 혼란하고 삶이 찌들대로 찌들면 백성들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이럴 땐 통치권력이 아무리 폭정을 펼쳐도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국가의 형벌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로 묵가가 이런 사람들이다. 여기서 묵가는 반체제적인 성격을 가진 집단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먼저 침공하지 않는다>
묵가의 사상은 반전·평화사상으로 간디의 '비폭력(아힘사)'과는 좀 다르다.
만화 ‘묵공’의 혁리를 보면 비폭력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성인이 아니다. ‘묵공’은 첫 장면부터 조나라의 침입으로부터 위나라의 양성(위나라 국경지대에 있던 城)을 지키러 가는 전투병 혁리를 등장시킨다. 조나라의 대군은 침착하게 성을 공격할 준비를 한다. 위나라 양성은 방어준비는커녕 조나라 군대의 침입 때문에 공포에 휩싸여 있다. 양성 주민들의 희망은 묵가뿐이다.
그런데 도와주러 온 묵가인은 단 한 명 혁리뿐. 결코 그는 전쟁을 막기 위해 조나라와 양성간에 협상을 주도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능력이 없다. 그는 다만 묵가의 철통같은 규율 속에서 자라난 전투병일 뿐이기에.
혁리는 먼저 침공하지 않는다는 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양성의 도움 요청을 받아 방어하러 왔을 뿐이다. 그는 주민들을 방어수성전에 동원하기 위해 패전 뒤 당할 피해에 대한 공포를 이용한다. 혁리, 그는 비폭력을 지켜내는 평화의 사도가 아니다. 묵가를 변질시킨 설병(묵가의 일원이자 혁리 동지)의 이 지적하듯이 전쟁없이 살 수 없는 인물이다. 혁리의 전쟁이 “전쟁이 평화를 지키는 전쟁”이었더라도.
묵가는 대부분 하급 군졸이나 기술자 출신이었다. 그들에게는 군인의 윤리가 배경에 깔려 있다. 혁리도 비록 변절한 묵가의 명령은 어겼으나 철저한 군인의 윤리로 무장된 사람이었다. 더욱이 묵가는 보통 군인들과 달리 군인의 직업윤리를 철학으로 끌어 올렸다. 그들은 싸우는 기술만 익힌 인간병기가 아니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어전쟁만 했던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의 반전·평화사상은 비폭력이 아니라 비공(非攻)사상이다. 즉, 침략전쟁에 반대하여 방어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약자를 위한 방어전쟁으로 모든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평화세상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폭력은 나쁜 것이었지만 침공전쟁을 막기 위한 반폭력은 정당한 폭력이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묵가의 비공사상 또한 폭력에 뿌리를 둔 가치관이 아니냐고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백성의 의지와 무관하게 처참한 살육전쟁이 벌어지던 춘추전국시대. 그 시대에 아힘사를 외친다고 고통의 현실에서 어떤 윤리적 실천방법이 나올 수 있을까? 전쟁은 그 어떤 성인도 막지 못했던 인류의 잔혹한 사회경제적 행위 아닌가.
<모든 도는 결국 이데올로기였다>
춘추전국시대는 인간의 존엄이 곤두박질한 채 사회정의가 사라진 혼란의 시대였다. 글 꽤나 배웠다는 지식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지식을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권력자에게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그들이 내세웠던 도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일 뿐이었다. 지식인들의 도는 결국 백성들에겐 가혹한 통치 철학이었다. 오죽했으면 노자가 모든 도(道)라 불리는 것은 다 도가 아니라고(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했겠는가. 얼마나 백성들을 공포와 굶주림, 전쟁의 상황으로 몰아넣었으면 이랬을까.
이렇듯 춘추전국시대에 도라 일컬어지던 그 모든 사상들은 전쟁과 혼란한 시대를 통치할 때 필요했던 이념이었을 뿐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반전·평화사상이고 평등사상을 실천했던 묵가는 왜 역사에서 사라졌는가?
만화『묵공』을 보면 묵가의 사라짐을 묵가의 내부 분열에서 찾는다. 묵자로부터 3대 전양자까지 평등한 세상과 평화를 이루고자 헌신한 그들도 세상의 욕망과 욕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고고하게 세상을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묵가의 몰락은 천하통일 뒤 진시황이 이사의 정책을 받아들여 분서갱유를 벌이고 탄압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천하통일 뒤 묵가는 비합법조직으로 비밀스럽게 존재하면서 서서히 소멸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진시황이 보기에도 묵자 사상의 핵심인 반전·평화와 평등이념은 방치할 수 없었던 불온한 것이었다.
유가로 통일되어 가는 사상의 흐름과 권력의 탄압은 중국의 역사에서 묵가라는 존재를 신화 속의 사건으로 묻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패전의 참혹함>
『묵공』은 히데끼 모리의 만화보다 사카미 켄이치의 소설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물론 소설이 만화의 원작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왜, 사카미 켄이치는 하고많은 소재 중에서 진시황의 천하통일 시대에 묵가의 몰락을 담은 소설을 내놓았고, 또한 히데끼 모리는 소설보다 더욱 사실주의적으로 섬세하게 그렸는가.
이는 세계2차대전의 패전군인 일본의 패전과 관계가 깊다. 좀 황당하리만큼 읽새(독자)를 당황하게 한 ‘묵공’의 라스트 장면은 군국주의 세력에 의해 더 이상 일본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말았으면 하는 작가의 염원이었다. 그 장면이 비록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트려도(개인적으로 히데끼 모리의 ‘묵공’에서 이 라스트 신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는 작가의 외침이기 때문에 외면하기가 힘들다.
만화를 보신 분들은 양성 방어전투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혹함을 한 번 떠올려 보라. 성에서 추락해 조나라 병사와 몸뚱이가 엉겨 붙어 죽은 양성 농부의 시체. 남편을 잃고 울부짖는 아낙네들과 아이들.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죽은 조나라 병사. 이 장면은 꼭 ‘맨발의 겐’에서 핵폭탄 폭발 뒤 유리 파편에 온 몸이 박힌 채 죽어 가는 시체들과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이 모든 죽음과 살육은 패전 뒤 일본의 현실이었다.
패전의 참혹함을 그린 『반딧불의 묘』를 본 뒤에 난 고민했었다. 전쟁의 참혹함과 일본도 전쟁의 피해자라고 외치는 한 일본 지식인의 깨달음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의 경험을 가진 나라를 모국(母國)으로 가진 나에겐 일본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였기 때문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이끌었던 자들은 지배계급의 군국주의자들이고, 다수의 일본인들은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물론 제국주의 전쟁으로 두 번 다시 경험하지 싫은 피해를 당한 일본인들의 고통은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 민중들의 암묵적인 동의없이 파시즘적 통치, 제국주의 정책을 펼칠 수 있었을까?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제국주의 정책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일본 민중들이 과연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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