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영화《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22. 23:18

 

최은희
영화《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주요섭의 원작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신상옥 감독, 임희재 각색,

최은희·김진규 주연의 흑백 35밀리 영화로 1961년 제작되었다.

 줄거리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살고 있는 어느 시골집 사랑방에

서울에서 내려온 화가(김진규)가 손님으로 들게 된다.

 

그 손님은 며느리 남편의 친구였다.

 

과부인 며느리와 그 손님 사이엔 피차 연모의 정이 오간다.

 

과부의 어린 딸(전영선)이 손님을 아빠처럼 따르며 '매개체'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완고한 집안과 동네의 이목 때문에 끝내 맺어지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만다.

 감상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잊혀졌던 사랑의 정서(情緖)가

과부와 손님 사이에 살며시 되살아 오르다가 자지러져버린,

그런 아쉬움과 미련이 있는 소품(小品)이었다.

 

아역(兒役) 전영선의 연기가 뛰어났고,

김진규·최은희의 '은근한 사랑'의 연기도 호감이 갔다.

 

문자 그대로 문예영화의 가작(佳作)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제1회 대종상에서

각본·감독·아역상,

 

제9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탔다.

 

 

주요섭(朱耀燮, 1902년 11월 24일 ~ 1972년 11월 14일)은 대한민국소설가이다. 본관은 신안(新安)이다. 형은 주요한이며 동생은 주영섭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내천면 신양리 외가에서 개신교 목사 주공삼(朱孔三)의 4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으며, 평안남도 평양 본가에서 성장하였다. 형 주요한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후장(扈江)대학을 마친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대표작으로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의 마담》등이 있다.

 

신상옥(申相玉, 1926년 10월 18일 ~ 2006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경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52년에 16mm 영화인 《악야》로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영화배우였던 부인 최은희1953년에 결혼하여 2남 2녀를 두었다.

아내인 최은희가 1978년 1월 14일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 이후, 그녀의 행방을 찾다가 그 역시 같은 해 7월 19일홍콩에서 납북되었다. 북조선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 총장을 맡으면서 《소금》, 《불가사리》 등을 만들었다. 1986년 3월 13일에 최은희와 함께 오스트리아 에 있던 도중에,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탈북하였다.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2000년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6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천주교 공원묘지이다.[1]

그를 기리는 《공주 신상옥 청년 영화제》가 2007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2]

 

최은희(崔銀姬, 1926년 11월 20일 ~ )는 대한민국배우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를 통해 영화 배우로 데뷔하며,

1953년에 영화 감독 신상옥과 결혼했다.

 

1978년 1월 14일홍콩에서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지시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었으며,

남편 신상옥도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가 같은 해 7월 19일에 역시 납북되었다.

이후 약 8년 동안 이 부부는 북한에서 영화 활동을 하면서 영화 17편을 찍었다.[1]

1986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 에 있던 도중에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탈북하였다.[2]

 

김진규 [金振奎]

영화배우.

대정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가서 1942년 일본 오이타 현[大分縣] 우사농업대학[宇佐農業大學]을 졸업했다. 귀국하여 악극단에 가입, 연기세계에 뛰어들었다. 1947년 장미가극단을 창설, 대표로 활약했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 문제작 〈피아골〉에 주연을 맡아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사랑〉(1957)·〈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오발탄〉(1962) 등에 출연하여 전형적인 한국 미남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주로 성품은 좋으나 사회적인 능력은 없는 우유부단하고 연약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했고 특히 리얼리즘 계통의 영화들, 〈오발탄〉이나 〈잉여인간〉(1964), 〈카인의 후예〉(1967) 등에서 그 완숙미를 보여주었다. 〈성웅 이순신〉(1971)을 직접 제작·감독·주연했으나 연출가로서는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뚜렷한 대표작 없이 침체기에 빠졌다. 마지막 대표작은 이만희 감독의 〈삼포가는 길〉(1975)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한 중년의 전과자 역을 뛰어나게 소화해내 비평계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여러 차례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65년에는 〈벙어리 삼룡이〉로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또한 영화인협회 연기분과 위원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영화인협회 이사장, 배우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출처 : 시너먼
글쓴이 : 시너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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