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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25전쟁 시 최초 38선을 넘은 주력부대는 중공군이었다.

오늘행복스마일 2019. 2. 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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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시 최초 38선을 넘은 주력부대는 중공군이었다.

 

2018317일 우리와 접경을 둔 중국이 현 시진핑 주석을 국가주석으로 재 선출하는 표결에서 전체 2970표중 반대0표인 만장일치 찬성으로 재추대하였다. 이로서 중국의 시진핑은 모택동 이래 최대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명실상부하게 떠오르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진입하는 문을 열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시진핑이 미국트럼프대통령 중국방문 시 베이징에서 한국은 옛적에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상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문재인대통령은 이 말에 아무런 반론을 펴지 못했다. 고구려 영양왕 23년 을지문덕 장군이 청천강(살수)에서 중국 수나라(장수-우문중, 우문술)를 무찔러 3년 뒤 멸망되게 하였고, 또한 당나라는 고구려 연개소문과 양만춘에게 안시성 전투에서 대패했다. 중국의 한족과 우리민족은 당당히 국가대 국가의 대등한 국가관계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당시 세계만방에 공시하는 기회를 놓쳤다. 시진핑은 이 역사적 사실을 동북공정에서 찾았다.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라는 논리를 적용하고 그 바탕에서 중국의 천자와 조선의 왕의 주종관계와 조공형태를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거리낌 없이 한반도를 비하하는 언사를 토로했다. 국가 간의 최소한의 대등한 예의를 묵살한 것이다. 이런 사고는 그 저변에는 중국이 진시황제가 제국을 세운 뒤 중국은 줄곧 오늘날까지 제국주의를 꿈꿔온 의도가 깔려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정부가 꿈꾸는 중국몽(中國夢)이다. 그동안 중국이 침체하면서 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뿐이다. 우리의 고구려사를 우리민족의 기억 속에서 삭제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역사학계나 정부가 무신경한 것은 포식자 중국을 두려워하기 때문인가.

 

우리를 애처롭게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중국의 위협을 받았고 오늘날까지 집요하게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6·25 전쟁에서 중공군이 195010월에 압록강 너머로 침입해 유엔군과 싸워서 통일을 방해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며 모두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애초에 38선을 넘은 북한군의 주력이 실은 중공군이었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506월 중공군 출신 조선인 병사들은 북한군의 3분의 1가량 되었다. 그들은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얻은 전투 경험을 지녔었고 북한군의 놀랄 만한 전투력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뿔뿔이 북한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북한군에 편입되었다. 북한군 5사단, 6사단 및 7사단은 아예 중국에서 편성되어 이름만 북한군 편제를 따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5사단의 전신인 중공군 164사단과 6사단의 전신인 중공군 166사단이 19497월에 편성되어 북한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국가 수립을 선포한 것이 1949101일이었으니, 국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기도 전에 중국은 남한을 병탄할 준비를 마쳤다는 얘기다. 과거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조선과 베트남이 독립국가를 이룬 것과 대조적으로 티베트와 몽골은 중국에 예속되어있다. 중국은 아직도 오족공화론(五族共和論:티벹 몰골 신장 동북(만주조선), 장족, 몽고, 회족, 만주족을 한족과 함께 공존한다는 논리)을 되 뇌이며 한반도를 예속시키는 전제군주국으로의 진군을 감행하고 있다. 그 전초가 시진핑의 중국 황제주석 등극이다. 시발점이 2018317일 시진핑 황제 만장일치 찬성이다.

 

앞으로 중국은 제국주의 실현을 공격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등소평은 중국인민을 배고픔을 면해주려 집권시절 명령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선택했다. 이로써 공산당은 통치의 정당성을 잃었다. 중국은 민족주의를 부추김으로서 잃은 정당성을 되찾으려 했고 경제가 발전해서 자유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 중국공산당정권은 민족주의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다. 그 임무가 시진핑 어깨에 얹어졌다. 이제는 중국의 입김에 한반도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봉착되어있다. 인구수 145천만의 거대중국이 5000만의 한반도를 지정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초대 대통령이승만의 지혜로 구축한 한미동맹으로 미국의 보호아래 나라의 운명이 유지되었으나 미국의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가 중국과의 빅딜로 대한민국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을 수도 있음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은 베트남을 가장 무서워한다. 베트남은 중국어선이 공해상에서 자국영해로 들어오면 반드시 침몰시켜버린다. 심한 경우는 한판 전쟁을 하자고 중국에 대든다. 베트남의 저력은 세계최강 미국을 격퇴시킨 자부심으로 중국을 우습게보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 국경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원인은 베트남이 캄보디아침공으로 야기된 1979년 중월 전쟁에서 중국의 60만 병력이 월남군에 대패하며 중국은 철저한 실패의 전쟁임을 인정했다. 베트남의 병력은 캄보디아에 1989년까지 주둔하고 있었다. , 월 전쟁에서 베트남은 병력을 캄보디아에 주력부대 대중국전쟁에는 종속부대만 투입했다. 거대중국이 베트남의 종속부대에 60만 대군이 참패하는 수모를 거둔 뒤 중국은 베트남 국경에서는 감히 육지나 해상에서 국경이나 영해를 침범하지 못한다. 중국어선도 반드시 폭파해버린다. 우리는 서해상에서 우리영해를 침한 중국어선에 해양경비대가 맞아죽는 일도 허다했다. 중국이 얼마나 우리를 깔 보고 있는지 그때마다 중국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이것이 슬픈 대중국관계의 현실이다.

 

이번의 시진핑 재선출로 북한 김정은도 불편한 입장이 되었다. 김일성, 김정일 세습으로 내려온 유훈은 중국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중국통 장성택이 총살당한 것은 장성택 기쁨조였던 리설주가 무명의 은하수 관현악단 시절 성상납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지만 실은 중국통으로 중국의 내정간섭을 차단하려는 강한 조치였다. 이번에 김정은의 화해의 손길은 미국의 전방위 경제압력에 굴복하는 면과 중국의 부상을 꺼리는 양면이 작용한 것 같다.

점점 거세지는 중국의 지남철 자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버티려면 우리는 중국과 맞서는 세력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우리가 미국 및 일본과 긴밀히 협력해야할 가장 근본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힘이 정의인 약육강식의 시대에는 포식자와 먹이만이 존재할 뿐 보호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은 현실화하기 어렵다. 중국이 부상한다면 우리도 맞먹는 방위력이 존재해야만 한다. 우리도 핵을 보유하면 어떨까 하는 황당한? 생각도 해본다. 북한의 핵시설을 남북한 공동으로 하는 엉뚱한 생각의 통일을 꿈꿔본다. 미국은 언젠가 한반도를 떠난다. 그 때 우리의 좌표는 어딜까? 이것이 궁금하다.

 

2018319

 

율 천

 

 

출처 : 겨울 바다와 파도
글쓴이 : 이 율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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