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영화 [박하사탕]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7. 15:46




요즘 갑자기 예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이 생각난다. 얼마전 회사 동료들과 망년회에서 박하사탕에 대한 얘기를 했지만 잘 정리가 되지 않아 다시 정리해 본다.

 

영화는 주인공인 김영호가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죽음의 순간에 영화 관객이외에는 아무도 듣지 않는 주인공의 그 외침이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하다. 영화는 철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단계적으로 과거로 빠져든다. 영화와는 달리 시간순으로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야학을 하는 순수한 청년 김영호는 야유회에서 박하사탕 같은 첫사랑 윤순임을 만난다. 영호는 군대에서 광주 민주항쟁의 진압군으로 투입되어 얼떨결에 어린 여학생을 사살한다. 졸업후에는 서투른 신참내기 형사로서 고참 선배들의 강요로 고문형사가 된다. 운동권 학생을 고문하는 과정에서 영호는 자신의 가학성에 놀라게 된다. 박하사탕 같은 순수한 청년은 점점 자신의 가학성을 통제할 수가 없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고, 그의 인생은 점점 망가지게 되는 데 IMF와 친구의 배신 등으로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로부터 버림받는다. 그는 죽어가는 첫사랑 윤순임의 병상을 찾아가 박하사탕을 들고 오열하지만, 영호의 파괴된 내면은 그를 더 이상 순수의 시절로 돌아갈게 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철길 위에 서게 된다.

 

순수 청년 김영호는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그는 표면적으로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대가 낳은 피해자이다. 군대는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고, 고참형사는 그를 고문형사가 되도록 강요 했다. 여기에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만드는 가학적인 구조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사회생활이 기본적인 인간은 어떻게든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있다. 그것이 선()이건 악()이건영화 [박하사탕]에서는 이런 구조를 슬며시 보여준다. 고참 형사가 영호에게 고문을 강요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고참형사가 영호를 가학적으로 만들고, 영호는 운동권 학생을 고문하면서 그를 가학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운동권 학생은 그의 아들에게로 그 가학성을 전염시킨다. 그런데 김영호는 다른 사람에게만 가학적이지 않았다. 그는 너무도 순수한 청년이어서 자기 자신에게도 가학적이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영혼마저 파괴하는 삶을 선택한다. 


결국 이 사회를 건강하게 구성하는 것도 우리들이고, 가학적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들이라는 생각이든다. 중학생 아이가 자살하는 뉴스를 보면서 그 순수한 영혼을 파괴한 친구들의 가학성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짐작할 수 도 없고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지만, 최소한의 행위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그것은 특히나 이 시점에서(현재의 시대 상황이)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 내면의 영혼을 돌봐야 한다는 것, 내 속에서 들리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운동을 해도되고, 독서, 음악감상등 취미생활을 즐겨하여도 되고 또 종교 생활을 하여도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목사나 스님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로 만드는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나꼼수의 봉도사 정봉주 전의원이 수감된다. 그가 수감되어야 하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봉도사가 수감되는 것은 그 모습 그대로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로 생각된다. 그래서 내가 회사 망년회에서 주절거리다 말아버린 영화 [박하사탕]의 메시지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비율은 작지만 히틀러 같은 미친놈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도 정도는 조금 약하지만 단군이래 가장 꼼꼼하신 그 분이 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그 분이 아니라, 그 분의 말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무비판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돈 욕심을 가지고 계신 그분이 사라진다 해도 영화의 고참형사처럼 가학적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는 우리들이 있는 한, 그것을 제재할 우리의 양심이 저 어두운 그늘에 가리워져 있는 한, 또 다른 꼼꼼함이 다른 얼굴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무서워해야 할 것은 권력이나, 판검사, 경찰 그리고 권력과 야합해 언론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워 폐간되어야 마땅한 조중동이 아닌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나라당이 아무리 패악질을해도 다시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며,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권력에 무비판적인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싶다...


출처 : 이제서야 보이는 세상
글쓴이 : 갈루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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