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창옥의 줌인zoom in 3 소설가.방송인 김홍신
2009년 겨울호 한창옥의줌인- 김홍신소설가
2009년겨울호
한창옥의 줌인zoom in 3 /김홍신
인터뷰 중에 한창옥. 김홍신
때 2009년7월21일(화) 오후2시 김홍신작가 자택
대담 글. 한창옥(발행인.편집주간)
정의롭고 정의를 보고 못 참는 부분에 관해서는 닮고 싶은 거고.
좀 위악적인 것은 제가 징벌하고 싶은 거죠.
김홍신 소설가 인터뷰
김홍신 작가의 서울 서초동 자택으로 출발했다. 동네가 조용하여 발자국소리까지 담장 안으로 들어갈까 조심스런 매우 아늑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주택가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다. 검은 잔줄무늬 흰 셔츠의 아담한 체구로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환한 미소가 내 뒤를 따라 들어온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빛이 났다.
20년 넘었다는 소나무가 잘 정돈 되어있는 마당에 아담한 화단을 지나서 1층 거실을 통해 2층 서재로 안내를 받았다. 햇볕이 잘 들어오는 이층 서재는 삼면이 빼곡하게 바닥에서 천정까지 틈 하나 없이 각종서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역시 빼곡한 책만큼 연륜을 쌓아 온 작가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글. 편집주간 한창옥
몇 번이나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약속이 지연되다가 가을호가 이미 편집에 들어간 즈음 겨울호에 나갈 줌인 인터뷰를 하게 되어 준비가 이르긴 했지만 부산에서 서울까지 일정이 없으면 자주 못가는 형편이라 다른 일정과 맞물려 있을 때 마침 그 날짜에 약속을 해주신 배려가 감사했고 만나 뵙게 되어 다행이었다. 먼저 인터뷰라 생각지 마시고 삶과 문학에 대한 말씀을 가벼운 마음으로 해주셨으면 하는 운을 떼었다
아, 그럼요, 편한 대로 하세요.
1. 사담이지만 15년 전 부산 해운대구 반송에서 한 정당의 출마 유세 현장에서 지원 유세 하던 작가님을 뵙기 위해 시간을 내서 현장에 갔었는데 기억 하실지?
아, 네 기억납니다, 참 오래전 일이죠.
(환히 웃는 싱그러운 중년의 모습에 창밖을 서성이던 태양도 안을 힐끗 거린다. 그때 1층 주방에서 녹차와 포도음료가 올려져왔다)
2.. 30세에 소설로 등단 할 당시 혹시 최연소가 아니셨는지?
답-그게 76년이니까, 29살이죠. 그러나 늦게 한 편이죠, 작가로서 빠른 건 아니에요.
3. 아, 그렇군요... 그리고 진부한 질문일까요? 문학은 우리 인간에게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문학이란 갈등을 풀어가는 것
답- 문학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고 명답을 찾는 겁니다. 흔히 주례사에서 일심동체가 되란 말을 많이 하죠, 어떻게 일심동체가 돼요 말도 안돼요, 달라야죠,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인간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어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차이의 문제예요. 사랑을 하는데도 어떤 이는 많이 주려고만 하고 어떤 이는 많이 받으려고만 하면 갈등이 생기죠. 갈등을 양산할 수밖에 없죠. 갈등이란 것은 문학의 기본이에요.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고 하면 옳고 그름으로 딱 규정 되는 게 아니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도 있듯이 문학이란 갈등을 풀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에서 갈등은 기본구조라고 봐요. 한자풀이로 보면 갈등은 칡넝쿨이 엉킨듯 하거든요, 남의 인생을 옳고 그름으로 평면적으로 들여다보기 쉬워요. 그러나 문학이란 바로 이러한 갈등을 조화롭게 하는 언어 행위인 것이죠.
4. 한 해 보통 100회 정도의 대중강연을...? 섭외가 오는 대로 응하시는 건지? 그렇다면 대상의 범위는?
답- 아주 다양하죠, 최고위ceo단체에서부터 군소재지의 부녀자와 노인들, 사법연수원, 고검장부터 검사들, 교장, 교감선생님, 유치원 원감, 여성단체모임 등 청소년 지방자치단체, 대학생층과 최고경영대학원생, 특수대학원생 등 대체적으로 낮 시간엔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습니다. 대상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계층이며 요청하는 대로 다 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3분의 2는 응하지 못하고 있어서 죄송하죠.
5. 시골에 계신 노인들과는 어떻게 소통이 가능할까?
답 -젊은이들부터 70대 후반까지 계시니까 처음에는 소통이 될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의외로 소통이 잘됩니다.
“세상이 복잡합니까? 내 머릿속이 복잡합니까? 세상이 복잡한 게 아니라 내 머릿속이 복잡한 겁니다.” 라고 시작하면 대체로 공감하시지요.
요즘은 인생에도 인생 사용설명서가 있다는 얘길 합니다. 6월에 '인생사용설명서'라는 책을 냈습니다. 핸드폰, 가전제품은 ‘사용설명서’대로 사용하면 오래 쓰고 고장이 안 나 는데, 인생에도 사용 설명서가 있지만 저부터 설명서대로 잘 안 써요.
6. 너무나 바쁘게 사시는 건 아닌지? 아니면 바쁜 게 차라리 행복일 수 있겠지만 푹 쉬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답- 평생 휴가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저 산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걸으며 마음을 비워요. 아내가 오랫동안 병석에 있었기에 휴가라는 게 더욱 없었어요, 대신에 봄가을로 보좌관들과 세미나를 겸한 의료봉사를 떠나요 16년 째 하는 의료봉사인데 전국을 다녀요.
역사소설 <<대발해>>를 쓰기 위해 중국, 러시아, 사할린, 일본 등을 10여 차례 방문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자료와 유적을 발굴하며 발해 주요 지역을 답사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고구려, 발해의 주요 방어성인 백암 산성(현 연주성)이에요. 살펴보니 요새며 방어진이 정말 견고하고 특수했습니다. 성벽 밑으로 강이 흐르고 해저가 설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관리 소홀로 성이 훼파됐고 중국 사람들이 하다못해 국내성의 성벽 쌓았던 돌을 가져다가 빨래판으로 쓴다는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혔습니다. 게다가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우리 문화재를 보수해 자국 문화재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얘기에 울분이 일었습니다.
7. 누구나 살면서 현실에 불만과 좌절을 느낄 때가 있는 법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이 깨어 있어야
답- 불만, 좌절보다는 행복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행복은 마음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습니다.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이니까 평균 수명만 믿지 말고 지금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하고, 나를 알아야 하고, 두 번째는 왜 사는가를 깊이 고심해보고 세 번째는 살아있으려면 지금처럼 사는 게 좋은지 내가 변화하는 게 좋은지 꼼꼼히 따져봐야겠죠, 이런 몇 가지를 공책에다 써보세요. (함께 웃음)
한번 써보면 아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그런 것들을 점검해서 바꿔봤으면 좋겠습니다.
8. 소설가 김한길 의원과 가수 조영남씨와 절친하다는 건 다 알고 있는데, 요즘도 자주들 보시는지? 인연이 된 계기는?
조영남 선배가 ‘사랑’ 이란 제 시를 즉석에서 노래로 만들어
답- 인간성 좋고 정직하고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죠. 영남이형 주축으로 오래 전 부터 한자리에 모여 식사도 하고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바빠서 자주 못 봐요. 언젠가 지인들 모임에서 조영남 선배가 ‘사랑’이란 제 시를 즉석에서 노래로 만들어 불러 모두 감탄 했어요.
소설가 김한길이 쓴 가사에 곡을 붙인 ‘화개장터’가 있는데 이번에도 조영남의 독창회 ‘40년만의 귀향’을 상의하다가 즉석에서 노트를 찢어 오선지를 그리고 순간에 음표를 그려 1분 30초 만에 곡을 완성했어요.
‘사랑’ 육필원고 란
9. 가족 얘기도 들려주세요?
답 -회사원인 아들은 지난 여름에 결혼했고 구두디자인을 공부하는 딸아이는 외국에 유학 중입니다.
천식으로 10년간 투병하던 아내를 2004년 저세상에 떠나보내고, 애써 밝은 표정 짓다가도 힘들어 하는 아이들 보면 왈칵 가슴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지난 여름, 외아들을 결혼시키면서 혼자 준비하며 무척 어려웠죠. 십 여 년 간 천식으로 고생하더니 한창 선거운동으로 바쁠 때 아내를 잃었습니다.
아픈 아내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병석에서도 총선 출마를 권유했습니다. 여자 없으면 편할 것 같지만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쓰던 작은 지갑 하나를 잃어버려도 너무 안타깝고 아쉬운데 ... (서재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10. <문학세계사>에서 출간 한 첫 시집 ‘한 잎의 사랑’ 은 독자들이 알기론 아내를 향한 시들로 묶은 시집으로 알고 있는데?
답 - 그건 아니에요 문학작품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98년부터 써온 백 여 편의 시중 62편을 골라 발표를 한 것입니다.
11. 의정활동 8년 연속 1위 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지난 현역시절. 상임위에서는 송곳 질문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어 그렇게 멋지게 활약을 하셨을까? 1호 법안 얘기도 조금은 궁굼 한데?
답- 기초생활 보호법과 의약 분업, 장애인 강제불임수술 등 법안을 발의했어요.
의약분업을 앞장서서 주장한 이유 중 하나는 강대국이 한국에서 인체실험을 하는 것을 방지하고, 또 하나는 항생제 오남용으로 파생하는 해악을 예방하기 위해서였죠.
외국에서 의약품 제조하기 전에 개발 전 인체실험을 한국에서 하며 우리국민의 건강을 망쳐 놓는 겁니다. 백신의 인체실험을 아동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어느 누가 자기자식을 내놓겠어요?
그래도 하긴 해야 하니까, 그러나 실험하기 좋은 게, 한국 사람은 약을 좋아하고 주민등록이 있어 통계가 잘 잡히는데다 아동시설을 이용하는 거예요. 고아원 원장과 병원이 은밀히 협약을 해요. 아이들 예방주사나 감기치료를 해주고 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한국에서 통계가 가장 정확하게 나오는 겁니다. 2003년에 미국이 우리정부를 무려 28번이나 협박한 증거도 추적, 공개했습니다.
(결국 미국과 다국적 제약회사의 압력에 의해 국가정책이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법안을 만들어 친권자의 허락이 없이는 아동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12. 81년 펴낸 장편소설 인간시장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해 오늘날까지 밀리언셀러 작가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그동안 펴낸 소설. 중국 고전 평역서. 에세이 등 120권이 넘는 것으로 안다. 정말 상상도 못할 저력이다. 특히 최근 발간한 <인생을 맛있게 사는 지혜>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맛있게 사는 지혜를 생각하게 된 것은?
인생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살려고 하면 사람 냄새 안나
답- 핸드폰을 새로 사면 조그만 설명서 책자가 따라오는데 두꺼운데다 펼쳐보면 글씨가 아주 작습니다.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서 사용할 필요는 없어요. 대충 쓰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얼른 펴보거나 아니면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빨리 습득할 수 있거 든요. 인생도 처음부터 너무 계획적으로 살려고 하면 사람 냄새가 안 나고. 살다가 문제가 있을 때, 괴로울 때, 아플 때, 갈등이 쌓을 때 그걸 계기로 펼쳐보면 확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으로 썼습니다.
13.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어떻게 터득시켜주는 걸까?
답-사실 저도 속세에서 유명한 작가로, 국회의원으로. 이른바 돈도 벌어 봤고 명예도 가져 봤고 권력도 누려봤는데 결국 그게 행복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은 착각합니다. 돈이나 명예. 그런 것들은 사는 데 편리할 수 있을망정 행복의 도구는 결코 아닙니 다.
그래서 제가 물어봐요.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다들 대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고는 하는데, 사실 마음 밖에서 찾아요. 우리가 늘 숨을 쉬고 있잖아요? 숨 쉬는 게 행복입니까? 불행입니까? 하면 행복이라고 그러는데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걸 슬쩍 일러주는 거죠.
14. 인간시장의 장총찬이란 인물은 바로 작가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위악적인 것은 제가 징벌하고 싶은
답- 장총찬과 김홍신의 공통점이 있다면, 상당히 정의롭고 정의를 보고 못 참는 부분에 관해서는 닮고 싶은 거고. 좀 위악적인 것은 제가 징벌하고 싶은 거죠.
그런 두 가지 의미를 담아서 상대적으로 ‘다혜’ 라는 여성을 그런 여성이 있으면 사랑해 보고 싶은 제 감성을 담아본 것이고. 주인공은 저의 영혼 일부와 제가 부러워하거나 닮고 싶은 인물과 제가 싫어하는 성격을 함께 담아놓은 그릇이라 보시면 됩니다.
15. 이번에 대단한 공을 들인 장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 김홍신 <대발해> 전10권을 출간하고 나서 제4회 통일문화대상과 불교문학상을 수상하셨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대발해 얘기를?
1986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이미 ‘동북공정’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답- 거란 쪽 기록에 '평양성을 함락하면 남자를 다 죽이라'는 말이 나와요. '발해 남자 셋이 모이면 호랑이도 잡는다' 는 얘기도 있습니다. 발해가 그런 나라였어요. 그런데 발해 자체 기록이란 게 3대 문왕의 공주들 무덤에서 발굴된 비문 1400여 자뿐이에요.
발해에 관한 기록 중 99%가 중국 것입니다. 중국이 '발해는 말갈의 나라'라고 하니까, 그런 것처럼 돼버린 거죠.
1986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그곳 재야 사학자로부터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뒤집으려 한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한다” 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게 점점 사실이 되어가더라고요? 1998년 국회의원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미 그때는 ‘동북공정’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어요.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할 때 우리가 흔히 아는 오랑캐 이(夷)자를 보세요. 큰 대(大)자 안에 활 궁(弓)자가 들어간 형세입니다. 본래는 군자를 의미하는 글자였죠. 따라서 동이족(東夷族)은 ‘동쪽에 사는 군자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번역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중국 사서에서 할 위(爲)자를 번역하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보낸 국서는 ‘하라’라고 하고 우리가 중국에 보낸 국서는 ‘하옵소서’ 로 번역한 겁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소설에서 이걸 하나하나 바로잡았죠.
16. 대하소설 김홍신 <대발해>출간은 대조영이 세운 발해의 260년 역사의식 고취라는 커다란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구려가 망한 668년부터 시작해서 926년에 끝을 맺는 <대발해>는 96년도부터 8년간이나 구상,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멸망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대 서사시를 2005년 여름부터 대학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12.000장 분량의 원고를 2년여 간 육필로만 집필하셨다는데? 그 후 건강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계시다는 얘기도 들었다. 현재 건강은?
답- 3년 동안을 소설을 쓰느라 집안에서 두문불출 칩거했습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고 운동도 하지 않고 새벽까지 펜으로 글쓰기를 하는 통에 오른팔에 마비증세가 왔습니다. 허리 통증도 심해 계속 침도 맞고 있습니다.
표정은 늘 굳어 있고, 머리숱도 부쩍 줄은 데다 볕을 못 쫴서 생긴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늘 피부약을 바르고 있어요, 지금도 선크림을 발랐어요.
(말이 3년이지 준비기간까지 8년이란 세월을, 만년필도 3개의 촉이 모두 마모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 불굴의 정신은 우리 모두 새겨볼만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화장한 듯 피부가 곱다고 느꼈는데 선크림 때문이었다) )
17. 중국의 역사 조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발해를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통합국가로 알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발해는 고구려의 왕족이 세운 나라
답- 중국의 역사 조작은 아주 유치합니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을 사서에 천개소문(賤蓋蘇文)이라고 써놓았지요. 연개소문이 누굽니까.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 태종을 죽게 한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성을 천할 천(賤)자로 바꾼 겁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대중상, 대조영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거란족장 이진충(李盡忠)과 그의 처남 손만영(孫萬榮)은 이진멸(滅)과 손만참(斬)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후손까지 다 죽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당서는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을 걸걸중상(乞乞仲象)이라고 표기했습니다. 걸씨는 말갈의 성씨예요. 대조영의 부하였던 걸사비우는 말갈족 출신 장수거든요. 중국의 역사가들이 대중상의 이름을 바꿔놓은 겁니다. 그것도 ‘걸’자를 두 번 반복해 쓰면서까지. 발해의 시조 대조영(大祚榮)과 그의 아버지 대중상을 말갈인으로 기록한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 등 중국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신당서 발해 말갈전에 ‘대조영은 고구려 별종(別種)이다’는 문구가 있죠. 일부에서는 그냥 고구려 장수라고 얼버무리고, 한쪽에서는 말갈에서 귀화한 고구려인이라는 중국측 해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방계 왕족의 후손입니다. 고구려 왕의 성은 본래 높을 고(高)자를 썼어요. 세월이 흘러 후궁이 많이 생기고 거기서 나온 왕족이 늘어나니 왕족을 둘로 갈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겐 큰 대(大)자를 성씨로 내려줬습니다.
결론적으로 발해는 고구려의 왕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발해가 고구려와 말갈의 통합체 라는 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말갈은 발해가 다스린 땅의 일부분이었을 따름이에요. 발해의 땅이 옛 고구려 땅을 모두 포함하는데, 고구려 멸망 30년 뒤에 말갈 사람들이 그 곳에 들어와 살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300년 후라면 몰라도.
18. 소설을 위해 8년간의 투자와 중국. 러시아 등 발해의 유물을 찾아 탐사하고 컴퓨터 사용도 아닌 펜으로만 썼다는 것에 역시 대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인호(소설가 최인호)형과 “우린 죽을 때가지 손으로 쓰자”고 약속
답- 젊은 시절에 인호(소설가 최인호)형과 “우린 죽을 때가지 손으로 쓰자”고 약속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다들 이메일로 원고를 주고받으니 불편할 때가 많아요.
이어령 선생이 우리가 손으로만 쓴다고 “날아가는 상상이 나비나 벌처럼 날을 때 그걸 딱 잡을 수 있는 건 컴퓨터가 아니냐? 그러니 그걸 써라”라고 했습니다. 그때 인호 형과 제가 그렇게 약속하고 서로 배반하지 말자고 했는데 둘 다 아직까지는 배반을 않고 있습니다.
(쑥스러운 웃음으로 육필원고 한 뭉치를 꺼내어 보여주는 모습 또한 다정다감하다. 그 많은 원고 분량을 모두 손으로 작업한 그림 같은 필체를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
19. 순수한 소설가로 활동할 때와 정치인이 된 후 소설가로 활동할 때의 달라졌던 상황들이 많았지 않았을까?
머슴 노릇을 하면 결코 금단현상이 생길 수 없다
답- 처신하기가 더욱 어려워 졌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면 누리는 게 엄청 많습니다. 그것을 누리면 그 다음 국회의원 그만 두고 나면 못 견디는 금단현상이 올 수밖에 없거든요. 저는 국회에 있을 때 그걸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나 행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왜 자기를 낮출 줄 모르느냐. 그 자리는 높은 자리가 결코 아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니까 머슴이다! 라고요
머슴 노릇을 하면 결코 금단현상이 생길 수 없고, 남의 돈을 억지로 먹거나 예를 들 어 대통령 선거 때 차떼기로 돈 갖다 쓸 필요도 없고, 고통스러울 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면 자기가 운전하고 다닐 줄도 알아야 되거든요. 그리고 왜 문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요? 손이 어디 갔습니까? 그런 것까지를 생각해서 좀 겸손하고 자기를 가장 낮게 놓으면 그런 증상은 없습니다.
그때 결심한 것이 공항 갈 때 공적인 일 말고는 귀빈실을 이용하지 말고 일반 통로로 다니자. 기차, 그 당시에 국회의원은 무료로 탔거든요. 그거 이용하지 말고 돈 내고 타자. 국회 갈 때 청바지에 운동화에 모자 쓰고 갑니다. 당시 이회창 총재께서 “청바지 입고 국회 오는 사람이 어딨어!” 하셨는데 그런 버릇들이니까 국회의원 그만둬도 버스를 타고 다니든, 공항에서 일반 통로로 다니든 불편할 게 없습니다.
20. 문학 단체가 나뉘어져 있는 점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문학이란 다양한 관점에서 삶을 조명할 수 있는 것
답- 문학, 종교, 사상....... 그런 것들은 한 개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옳고 그른 게 아니고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서로 존중한다면 더욱 발전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의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문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문학관을 지닌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시각으로 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문학이란 다양한 관점에서 삶을 조명할 수 있는 것이며, 훌륭한 문학작품일수록 다양한 세계를 이상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21.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은 어떤지?
붓다에 대해 쓰고 싶어요. 그래서 인도에 2번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의정 활동을 바탕으 로한 정치 드라마와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22. 가슴시린 사랑이야기...?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장시간을 진솔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신 김홍신 작가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선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또 대문 밖까지 나오신다.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모습에서는 ‘인간시장’ 작가의 강한 카리스마는 티끌도 보이지 않았다. 자상한 오라버니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대담 글. 편집주간 한창옥
대문 앞 배웅하는 김홍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