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11. 08:59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 이성과 힘  》

 

 

p. 9 <작가의 말 >

... 자세히 보면 지금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만,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 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선택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뫼비우스의 띠> 中

 마지막 시간에 교사가 물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한 학생이 대답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교사가 말했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이 놀람의 소리를 냈다.

 "한번만 더 묻겠다" 교사가 말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생각하는가?" 똑같은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기다렸다. 교사가 말했다.

 "그 답은 틀렸다"

 "왜 그렇습니까?"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이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교사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 쓰고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에 대해 설명했다.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는 없는지,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에 대해 생생해보자.

우주는 무한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제군도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게 내 수업의 마지막 말이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中

 P. 80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어머니·영호·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P. 143-144

그런데―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다친 벌레처럼 모로 누워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가슴을 쳤다. 헐린 집 앞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키가 작았따.

어머니가 다친 아버지를 업고 골목을 돌아 들어왔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내가 큰 소리로

오빠들을 불렀다. 오빠들이 뛰어나왔다. 우리들은 마당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을 가르며 날아갔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여보였다. 어머니가 조각마루

끝에 밥상을 올려놓았따. 의사가 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나의 손을 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 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래. 죽여버릴께."

 "꼭 죽여."

 "그래. 꼭."

 "꼭."

 

 

<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 中

p. 199-120

 "아버지도 쉬셔야지!"

 어머니가 말했다.

 "그 동안 힘든 일을 너무 많이 하셨어. 이제는 편히 쉬실 수 있을게다."

 "쉬셔야 할 분은 어머니예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반 줌의 재를 쌌던 흰 종이를 물 위에 띄웠다. 우리는 물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없어졌다. 바람이 불었다. 햇볕이 따뜻했다. 몇 마리의 새가

어머니 옆에서 날았다. 나는 사태로 내려앉은 언덕을 보았다. 영호와 나는 거의 동시에 울음을 그쳤다.

아버지의 죽음이 우리 생명 활동의 양식에 변화를 주었다. 은강으로 온 우리는 호흡까지 조심스럽게 했다.

처음에 우리는 바싹 마른 콩알처럼 아주 약한 호흡을 했다.

 

 

 

< 클라인씨의 병 > 中

p, 236-237

...그날 주거 지역 쇼회의 학생들이 노인을 찾아왔다. 한 아이가 "앞으로의 할아버지의 생활은

어때지실 거라고 믿으세요?" 라고 물었다. 다른 아이가 하나만 짚으라면서 여섯개의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아주 좋아질 것이다.

 ˚비교적 좋아질 것이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약간 나빠질 것이다.

 ˚아주 나빠질 것이다.

 ˚대답할 수 없다.

 노인은 간단히 말했다.

 "아주 좋아질 거야. 거기다 동그라미를 쳐줘."

 학생들은 나무껍질 문 앞에 서 있었다. 뜻밖의 대답이라는 표정을 그 아이들이 지었다.

 "난 곧 죽을 거야."

 애꾸눈 노인이 말했다. 어머니는 그 노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죽은 다음에야 평올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 中

p. 302-303

 그 아이가 눈물이 핑 돌아 내려가자 나는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경제사를 읽을 참이었다. 한 경제학자가 장차 책임 범위는 넓어질 것이라고 쓴 것을 그 책의 저자는

인용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깨기 직전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물을 쳤다. 나는 물안경을 쓰고

물 속으로 들어가 내 그물로 오는 살찐 고기들이 그물코에 걸리는 것을 보려고했다. 한 떼의 고기들이

내 그물을 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살찐 고기들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지만 단

큰가시고기들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큰가시고기들이 뼈와 가시 소리를 내며 와 내 그물에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밖으로 나와 그물을 걷어올렸다. 큰가시고기들이 수없이 걸려 올라왔다. 그것들이 그물코에서

뺘져나와 수천 수만 줄기의 인광을 뿜어내며 나에게 뛰어올랐다. 가시가 몸에 닿을 때마다 나의 살갗은 찢어졌다.

그렇게 가리가리 찢기는 아픔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다 깼다. 서족 유리창에 황적색 저녁놀이 와 닿았다.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져 창가로 가 내다보았다. 대기 속 물질의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빛을 운반해오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흰 벽이 저녁놀빛을 숲쪽으로 받아 던졌다. 돌아간 할아버지의 늙은 개가 그 숲에서 기어나왔다.

달아오른 몸으로 나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여자아이가 늙은 개를 불렀다. 개 밥그릇을 개집 앞에 놓아준 여자아이가

늙은 개를 불렀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끌려나갈 때 난장이의 부인이 그런 몸짓을 했었다. 공원들은 밖으로 나가 울었다.

지섭은 올라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때 수위가 철문을 밀어붙이는 것이 보였다.

이팝나무숲을 끼고 돌아온 아버지의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섰다. 내일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보자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 에필로그 > 中

p. 317-318

 질문이 있습니다.

 맨 뒷줄의 학생이었다.

 뭔가?

 우주인이나 비행접시의 목격 현상은 사회적인 스트레스의 순간에 나타나는 자기 방어의 결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저희가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서쪽 하늘이 환해지며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면 내가 우주인과 함께 혹성으로 떠난 것으로 믿어달라.

긴 설명을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떠나는 순간에 무엇을 대하게 될까 하는 것뿐이다.

무엇일까? 공동묘지와 같음 침묵일까? 아닐까? 외치는 것은 언제나 죽은 사람들뿐인가? 시간이 다 되었다.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 모두들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빈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차렷!

 반장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경례!

 교사는 상체를 굽혀 답례하고 교단에서 내려왔다. 그는 교실에서 나갔다. 나가는 그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외계인의 걸음걸이가 바로 저럴 것이라고 학생들은 생각했다.

 겨울 해는 이미 기울어 교실 안이 어두워왔다.

 

 

 

 

 

 

 

 

 

 

 

 

 

 

 

 

 

 

 

 

 

 

 

가능하다면, 나를 '매혹' 시키는 부분을 옮겨적기 위해서는

이 책 전체를 옮겨 적었어야 하지 않았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 고슴도치 컴플렉스
글쓴이 : 그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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