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묵은 신문철을 뒤적이다가 눈이 번쩍 띄었다. 작년 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200쇄를 돌파했다는 기사다. 1978년 초판(연작의 첫 작품, 〈칼날〉은 1975년 작)이 나온 후 근 30년 가까운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니 이 정도면 가히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한 작품이 이렇게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작가의 내공이 절정 고수의 수준임을 말해준다. 번역소설이 출판계를 평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자랑이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필자는 전혀 즐겁지 않다. ‘난쏘공’이라는 약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소설은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어두운 면, 노동자, 철거민 등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한 대목을 보자
“엄마 몰래 또 고기 냄새 맡으러 갔었대. 나는 안 갔어.” 난장이 가족의 큰아들 영수는 엄마와 함께 개천 건너편 주택가(여기에는 부자들이 산다.) 골목길에서 고기 굽는 냄새를 맡는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영수는 엄마 몰래 주택가에 가서 고기 굽는 냄새를 맡는다.
“천국에 사는 사람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지기만 했다.” 다섯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 난장이는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벽돌 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사람이 갖는 기쁨·평화·공평·행복에 대한 욕망들을 갖기를 바랐”던 큰아들 영수는 회사에서 서클을 결성하는 등 노동운동에 뛰어들지만 결국은 사용자를 살해하고 사형을 당한다. 그들은 이렇게 전쟁에서 진다.
《난쏘공》 200쇄 돌파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는 작가의 다음 말이 소개되어 있다. “얼마 전 중2학생이 ‘난쏘공’을 읽고 이랬답니다. ‘이 책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이 어두운 소설이 근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건강하지 않다는 반증이 아닌가. 200쇄 달성이라는 성과를 결코 기뻐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의심 때문이다.
최근 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 문제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순제작비만 최소 20억∼25억이라는 거액이 투입될 예정이란다. 삼겹살 한 근 먹을 수 없었던 빈민들의 이야기가 자본가의 손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흔한 말로 따뜻한 가슴을 가진 자본인가, 아니면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자본의 속성을 그야말로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인가. 이 신문은 또 다른 면에서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빈민층 산모는 저체중아를 낳을 확률이 대졸자의 1.8배’라는 기사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었다. 가난한 집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않을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소식이다. 이성과 힘,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