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올드보이> Review
#..1
박찬욱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참으로 독특한 존재입니다.
지독히도 B급스러운 데뷔작을 거쳐
보통과는 약간 벗어나 있는 코미디물을 차기작으로 제작한 후
한국 영화계에 몇 안되는 웰메이드 영화를 만듭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전폭적인 대중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제작한 영화는.. 경악스럽게도 극단적인 하드코어물이었습니다
전작의 유머러스한 요소와 반전있는 스토리를 기대하던 대중들은
감독의 일탈에 그의 전작만 믿고 갔던 믿음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며
차갑게 외면합니다..
평단의 열광적인 반응과 극소수의 매니아들만을 남긴 채..
그렇게.. <복수는 나의 것> 은 소위 말하는 '엽기영화' 로 분류되며
대중들에게 차디차게 고립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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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대박' 작품을 경험한 감독들의 차기작은..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을 추구하느냐 와 소위 돈 될 만한걸 만드느냐
이 두가지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감독들은 현실과의 타협.. 후자를 선택합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대박을 터뜨린 후 그가 선택한 작품은
그가 제작한, 혹은 각본을 맏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더더욱 극단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대중적인 코드는 배우들의 네임밸류만 제외한다면 한치도 찾아볼 수 없을만치 말이죠..
그는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복수는 나의 것> 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제 보통 이 때쯤이면 다시한번 대중들에게 '먹히는' 소위 돈 되는 영화 한 편 찍어서 만회해야 합니다
대중들의 지지기반도 얻고, 손실도 메꿔야하고, 근본적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이 시점에서 그가 내놓은 영화는 <올드보이> 였습니다
#..2
2004년 제 57회 칸 영화제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 이 황금 종려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파격적이고 스타일리쉬한 극동아시아의 한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라고 꼽히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주인공은 <올드보이> 였고, 이 믿기힘든 사실의 중심에는 박찬욱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의 스타일만을 고집해서
대중성을 염두에 두지 못할 만큼 둔한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공동경비구역 JSA> 에서 그가 캐치한 대중적인 코드는 충분히 그가
마음만 먹으면 대중들에게 먹힐 만한 영화를 할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줍니다)
차기작 <올드보이> 는 전작과 연관되는 어떤 감독의 스타일이 이어진다는 점이
감독만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대중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이..
그의 감독적 재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분명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면 <올드보이> 는 매우 대중친화적입니다
전작에 비해 확연이 뚜렷해진 스토리라인과 검증된 흥미로운 소재등
충분히 먹힐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올드보이> 를 주목해야 할 점은
앞서 말했듯이 박찬욱 감독만의 스타일이 상업성에 가려지지 않고
매우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는 사실입니다
#..3
15년간의 감금.. 5일의 추적
오대수는 비오는 공중전화 부스 밖에서 갑작스레 사라지고
눈 떠보니 사방이 벽으로 막힌 감금방입니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얼마나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어떠한 사실도 모른채
매일 끼니마다 넣어주는 군만두를 먹고, 최면가스에 의해 억지로 잠이듭니다
이곳에서 영화의 재미는 시작 됩니다
영화는 초반 철저히 오대수의 중심으로..
소설에서의 1인칭시점으로 전개가 됩니다
따라서 영화 초반 감금방 시퀀스는 오대수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과 함께
초반부터 보는 이의 모든 시선을 감금방속의 오대수에 집중시키며
그가 느끼는 감정을 함께 느끼며 앞으로 일어날 오대수의 복수에 일종의 동기부여를 제공합니다
작은 가방에 담겨져 오대수는 비로소 15년만에 감금방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때부터 영화의 눈부신 스타일은 시작됩니다
또한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을 몰입시키며
<복수는 나의 것> 과 차별되는 <올드보이> 만의 재미도 함께 시작됩니다
#..4
국내영화는 소비시장의 규모가 해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한정되 있어서
대중들이 명확히 "재미" 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같은 기호를 맞추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비교적 손쉬운 방법은 '스토리의 부각' 이었죠
따라서 시나리오 보다 소위말하는 "때깔좋은" , 시각적인 스타일에 중점을 둔 영화들은
아쉽게도 소수의 매니아층들에게만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작품의 수 역시 적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올드보이> 는 국내 영화계에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반전을 최대한 활용한 작품 스토리 라인의 완성도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중들의 주목을 끄는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이와 더불어.. 영화적 테크닉이 부각된 작품의 비쥬얼은
대중들이 느끼는 흥미로운 스토리 안에서 관객들의 눈마저 즐겁게 현혹시킵니다
<올드보이> 의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잉되지 않은 눈부신 스타일 안에서 매니아층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조차
열띤 반응과 지지를 캐치해 내는데 성공한 몇 안되는 한국 영화라는 점
#..5
<올드보이> 는 스타일이 살아있는 영화입니다
이런 스타일을 대중들이 가장 명백히 느낄 수 있는 건 영화의 시각적인 부분입니다
오대수의 파마머리 헤어스타일..
쭈뼛쭈뼛 정돈되지 않은 어지러운 헤어스타일은
영화의 전체적인 방향을 보여주는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본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극의 초반에 보여지는
오대수의 헤어스타일은 앞으로 일어날..
그의 머리 모양새 만큼이나 어지럽고 거친..
그러면서도 헤어스타일에서 오는 독특한 스타일은 영화적인 스타일리쉬함을
암시하며 극이 펼쳐지는 앞으로의 모든 성격을 보여줍니다
유니크한 벽지들과 그 모든 모양..
오대수가 비내리는 밤 공중전화 부스에서 사라질 때,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를 향하며 나오는 한남자의 우산의 모양은 거미줄 모양입니다
이는 우진의 우산이며.. 거미줄처럼 꼬여있는 우진의 심리상태와
우진의 거미줄에 걸려든 듯 그의 타겟 안에 있는 오대수의 위치까지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 거미줄 패턴은 후에 극 중 오대수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우진과 수아의 애정행각을 목격하는 구멍난 유리창의 모양이라던가
앨범이 들어있는 선물상자에서도 드러나며,
극 후반 미도의 감금방 벽지에서 또 한번 거미줄 패턴의 벽지가 등장하는데..
이 역시 우진이 자신이 그 감금방 통채를 샀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드러나듯
우진의 심리상태를 묘사 해주고 있습니다
오대수의 감금방의 반복되는 격자무늬 패턴은 말 그대로
한치도 다르지 않은 날마다 반복되는 오대수의 감금방에서의 반복적인 삶을
가장 일차원적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우진이 처음 등장하는 미도 맞은 편 아파트.. 일명 수대오의 집에서의
우중충한 벌집 무늬의 벽지 는 영화가 본격적인 국면에 다다르기에 앞서,
가구하나없는 텅빈 공간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일종의 불길한 위험감을 암시 해줍니다
극중 가장 화려한 세트, 우진의 팬트하우스 는
우진의 내면의 차가운 모습을 금속성, 메탈 느낌의 분위기로 다른 세트와
너무나도 이절적으로 꾸며진 이 곳은 캐릭터의 고립성과 그의 차가운 성격을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이처럼 강렬한 이미지의 실내패턴들이 자칫 캐릭터의 스타일을 잠식할 수도 있는
문제점은 실내 세트에서 보여주는 캐릭터 의상들의 단순한 비쥬얼로 대안 합니다
세트의 화려함에 반해 캐릭터들이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인 부분을 극소화
시키면서 극과극으로 대비되는 비쥬얼을 통해 그 어느하나 놓치지 않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되는 문양들은 단순히 벽지와 국한되는게 아니라
극 중 가장 스타일리쉬함을 표현하기에 수월한 미도의 의상 을 통해
미도의 의상 역시 반복되는 패턴의 연장선상으로 끌고 가며
세트 내 뿐만 아니라 세트 밖에서도 어떤 영화적 일관성을 관객에게 전달해줍니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감금방에 있는 앵소르 그림 액자와
미도의 감금방에 있는 "오늘도 무사히"
전자의 액자가
영화의 주제를 암시한다면
후자의 액자는
시종일관 암울한 영화에서 유일하게 밝은 미도의 희망을 암시하며
액자 라는 소품을 통해 극과 극의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아직까지도 인구에 화자되는 "장도리 씬"
약 5분 남짓한 이 액션 씬은 <올드보이> 를 대표하는 이미지임과 더불어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영화적인 재미를 흠뻑 느끼게 하는 시퀀스입니다
원테이크로 촬영된 이 액션씬은 마치 액션게임을 보는듯한 카메라 앵글로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해주며, 현실성과는 동떨어진 일대 다수 '맞짱'
으로 괴물과도 같은 오대수의 모습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구어체의 대사 스타일..
극중 오대수의 거의 모든 대사들은 구어체로 이루어집니다
일상 생활의 대화에서는 이 구어체의 단어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올드보이> 에서는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구어체의 대사에서 오는 어떤 비현실적인 어투는..
괴물, 몬스터 오대수의 비현실성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주는 한 부분 이면서
나아가서 영화만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자그마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영화의 스타일은 그 어떤 영화들보다 풍부하고 효과적으로 쓰인
영화 내 BGM과 만나며 그야말로 훌륭한 한편의 작품으로 탄생합니다
#..6
<올드보이> 가 보여준 위대한 업적은
작가주의적 영화가 아닌 대중들에게도 먹히는 영화로
해외에서 열렬한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작의 상업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끝까지 관철하면서 결국엔 흥행과 비평, 명성 모두를
얻어낸 배짱 두둑한 박찬욱 감독
괴물은 오대수가 아니라 박찬욱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