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실화의 배경, `죽령` 【죽령- 22 】
6.25 한국전쟁 시기의 죽령에는 ‘단양전투’가 있었다.
당시 북한군이 제천을 거쳐 죽령 지역에 내려온 것은 7월 5일로 전쟁 발발 10일 후였다. 단양의 남한강과 소백산맥 죽령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 8사단(1만2000여명)의 공격작전과 국군 8사단(5600여명)의 지연작전이 맞붙으면서 7월 8일~12일까지 5일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에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북한군이 승리한다. 이로 인해 소백산맥 방어선이 무너지고 국군은 남쪽으로 후퇴한다. 이를 ‘단양전투’라고 부른다.
당시의 중앙선 죽령터널은 마지막(8일오후)으로 피난민을 만재하고 단양을 떠난 열차가 과도한 하중으로 인하여 죽령터널에서 고장을 일으켜 선로가 막혀 버렸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진출할 수 없게 되자 자연 죽령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무대로 북한군과의 교전은 더욱 치열해졌고 민간인의 피해도 더 커졌다.
이 죽령전투에는 극적인 형제 상봉의 스토리 하나가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분단 이후 헤어져 살다가 한국전쟁 때 각각 국군 장교인 형(박규철)과 인민군 병사인 동생(박용철)이 죽령전투에서 극적으로 만난 실제 이야기다.
이들 형제의 실화는 박소위의 전우로서 그 당시 형제의 만남을 직접 목격했던 예비역 특무상사 안만옥씨가 전쟁기념사업회가 현상 공모한 6·25 참전수기 공모에 입선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그 이후 이들 형제의 기막힌 사연은 ‘형제’라는 책자로 출판됐고, 군사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친 후 전쟁기념관 광장 한쪽에 6·25를 상징하는 조형물 '형제의 상'으로 설치되었다.
이는 또 2004년에는 강제규 감독에 의해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장동건(진태역), 원빈(진석역), 두 배우의 열연으로 천만 명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또 개봉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으기 시작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전쟁영화사상 최고의 관객몰이를 한 영화였다.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 무렵, 이곳 죽령을 찾아와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나는 실전의 현장인 이곳 죽령에 전투기념관을 마련하여 ‘형제의 상’도 세우고 영화의 극적인 장면의 영상을 전시한다면 인기 있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