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오세암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12. 09:33
 

◀ 백담사

백담사 극락보전(중앙). 좌측이 화엄당인데 전두환씨가 생활하던 곳이다. 만해 선생도 이곳에 기거했다고 한다. <유방맥세/流芳百世>와 <유취만년/遺臭萬年>의 교훈을 동시에 일깨워 주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극락보전 옆으로 만해 기념비가 서 있다. 바로 곁의 시비에는 <나룻배와 행인>이 새겨져 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며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 갑니다. (이하 생략)

 

◀ 영시암과 오세암가는 길

장희빈의 왕세자 책봉을 둘러 싼 <기사사화>. 당시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 김창흡이 설악산 수렴동 계곡으로 들어와 암자를 짓고 은둔하였는데, 세상과 영원히 인연을 끊겠다는 의미로 암자의 이름을 "영시암(永矢庵)"이라 했다고 한다.



 

영시암에서 오세암으로 향하는 숲길이 마음에 든다. 백담사에서 오세암으로 오가던 만해가 걸었을 이 길. 그 길을 한참 걷노라니 문득 ‘님의 침묵’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길가에 드리워진 연록빛이 정말 곱다. 나무 그늘조차도 푸른빛이다.



◀ 오세암

오세암은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병풍삼아 앉아있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이 곳에서 출가한 곳으로 유명하며, 만해가 이곳에서 <불교유신론> <님의 침묵>을 썼다. 원래는 관음암(觀音庵)이었는데, 스님이 데려온 다섯 살 난 아이가 이곳에서 득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오세암(五歲庵)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웅전 돌계단에 걸터앉았다. 우뚝 솟은 만경대가 묵묵히 오세암을 내려다보고 있다. 예언에 따르면 이 암자에서 세 명이 성불한다는데----. 이미 한명은 다섯 살 난 동자였으니 남은 둘은 누구일꼬? 고매한 매월당이나 만해도 그 반열에 들지 못하고 잠시 머물기만 하였던 거처였으니, 부처님의 무량한 속내를 어찌 짐작이나 하랴.

‘누구는 나이 다섯 살에 득도했다는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마음의 작은 티끌마저도 떨어내지 못하는 구나’ 하는 자책조차도 부질없는 것 같아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인터넷 검색하다가 발견한 에니메이션 영화 포스터 <오세암>. 오세암의 전설을 모티브한 동화같은 영화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보지는 못했다.

 

셔틀버스 시간이 조금 남아 백담사 경내를 빙 돌아 나오는데, 전통 찻집 모퉁이에 매월당의 시 한편이 대리석에 새겨져 있다. 서산에 해가 걸렸고, 산 그림자는 벌써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薄暮 (저물 무렵) / 김시습


萬壑千峰外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 너머로

孤雲獨鳥還   외로운 한 조각의 구름과 새가 돌아오네

此年居是寺   올해는 이절에서 지낸다지만

來歲向何處   다음 해는 어느 곳으로 떠나갈꼬.

風息松窓靜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고요하고

香鎖禪室閑   향은 스러져 스님 방도 한가한데

此生吾己斷   진작 이세상에 뜻을 두지 아니하니

樓迹水雲間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속에만 남아 있네.


 


출처 : 강원교단
글쓴이 : 조주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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