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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도연 "솔직히 상에 대한 욕심은 없다"[인터뷰①]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14. 06:32

전도연 "솔직히 상에 대한 욕심은 없다"[인터뷰①]

이 시대 최고의 배우 전도연, 그녀가 돌아왔다. 당대 사회적 모순과 풍경을 김기영 감독 특유의 기이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1960년작 ‘하녀’를 리메이크한 영화에서 전도연은 지나치게 순수해 본능과 욕망마저 숨기지 못하는 하녀 ‘은이’로 분해 또 한 번의 도전을 감행했다. 전형적인 팜므파탈이었던 원작과 달리 순수함과 도발의 극단을 넘나드는 불가해함으로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닫는 드라마의 중심에 선 은이는 전도연에게도 어려운 과제였다. “하나의 캐릭터 속에서 하녀로, 여자로, 엄마로, 인간으로 네 명의 인물을 살아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고 말하는 전도연. 하지만 “어느 순간 이미 ‘은이’가 된 나를 발견했다”는 그녀의 말처럼 전도연 스스로의 믿음과 확신은 ‘하녀’ 속 그녀의 변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김기영 감독님의 원작 ‘하녀’를 본 적이 있나?

●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엔 원작을 보지 못 했다. ‘하녀’가 리메이크작라는 것 외에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다. 후에 ‘하녀’ 촬영을 하며 잠시 묶었던 제주도 리조트에서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DVD가 있어 보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객관적인 시선에서 영화를 봤는데 되게 센세이셔널하더라. 그 당시 이런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임상수 감독님께 ‘하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본 느낌은 어땠나?

● 일단 ‘하녀’는 단비 같은 시나리오였다. 요즘처럼 여배우로서 욕심나는 시나리오가 별로 없던 상황에서 말이다. 근데 솔직히 시나리오만 보면 기대만큼은 아니었다.(웃음) 내 기대가 너무 컸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작보고회에서 임상수 감독님도 “우리 영화는 ‘명품 막장 드라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런 멘트는 또 어떻게 생각해 내셨는지 모르겠는데 ‘하녀’의 경우 줄거리만 봤을 때 명품까진 모르겠고 막장 같은 스토리이긴 했다.(웃음) 뭔가 좀 뻔 하기도 하고 신파적이기도 한. 또 워낙 센 이야기라 시나리오만 읽고 느낌이 확 와 닿진 않았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을 선택했던 이유, 사실 ‘하녀’ 보단 감독 ‘임상수’에 대한 매력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임상수 감독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던 건가?

● 나는 지금껏 우연이라도 어떤 감독님과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근데 임상수 감독님과는 막연하게라도 함께 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주변에서 세고 스타일리쉬한 감독님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실제 임 감독님 영화를 봤을 때 제가 느꼈던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임 감독님 영화는 ‘오래된 정원’을 제외하고 거의 다 봤는데 내가 관심을 두는 소재가 아니었던 ‘그 때 그 사람들’을 빼고 다 좋았던 것 같다. 특히 아름답게 포장돼 있는 것들을 한 꺼풀 벗겨내 지극히 객관적이며 냉소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끌어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임상수 감독님이라면 ‘하녀’ 같은 뻔 한 스토리를 시나리오대로만 찍지 않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주변에서도 ‘하녀’를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과연 누가’ 하다가도 ‘임상수 감독님’이라고 하면 다들 ‘임상수라면야..’라는 긍정과 기대의 반응이 나왔으니까.(웃음)

-임상수 감독님과 자주 만나는 멤버로 알려진 지진희씨는 임상수 감독님을 굉장히 섹시한 사람이라고 평하더라.(웃음) 특히 사상이나 마인드면에서.

● 솔직히 섹시는 잘 모르겠고 매력 있는 사람이긴 하다.(웃음) 보기에 무척 세고 쿨하고 불같은 사람일거라 느껴지지만 가까이서 겪어 보니 그건 스스로를 좀 과대 포장한 거였다. 표현을 그렇게 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되게 여리고 섬세하고 따듯한 사람이다.

-2010년 판 ‘하녀’는 기본 설정을 제외하면 당대의 사회적 모순과 풍경을 김기영 감독 특유의 기이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원작과 전혀 다른 톤의 영화로 완성됐다.

● 원작은 시작부터 끝까지 스릴러였다. 하녀 캐릭터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이었고. 하지만 2010년판 ‘하녀’는 원작과 전혀 다른 작품이다. 에로틱, 서스펜스, 블랙 코미디 등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고. 임 감독님도 리메이크를 결정하며 원작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때문에 배우들에게도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를 챙겨 보라고 권하지 않으셨다.

-은이는 영화 ‘하녀’ 중 유일하게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이다. 은이가 지닌 그 모호함과 예측 불가능함이 영화 속 흥미로운 긴장관계들을 형성하기도 했고. 근데 배우 입장에선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쉽지 않은 측면이 있었을 듯하다.

● 그렇다. 원작도 그렇지만 2010년판 ‘하녀’를 봐도 인물들이 굉장히 전형적이지 않나? 그 중 은이만 유일하게 전형적이지 않다. 은이는 매 순간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며 어느 위치에 있든 당당한 인물이다. 그 절대적 순수함으로 인해 어떨 땐 멍청이 같기도 하다가 순간 과감하게 유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관객들은 매 신마다 ‘애는 왜 이래. 이런 애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같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은이의 일관성 없는 모습, 이해 불가능한 부분들이 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 됐던 것 같다.

-그런 은이 캐릭터에 대해 임상수 감독과 처음부터 생각이 일치하진 않았다고 들었다.

● 촬영에 들어가기 전 도대체 은이가 어떤 앤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 저는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는 현실적인 하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으로 감독님과 대화를 나눌 때면 번번이 좌절당했다. 내가 생각한 하녀와 이 영화의 하녀는 애초부터 다른 성격의 인물이었던 거지. 실루엣이 살아있는 하녀 복에 하이힐을 신고 일을 하는 은이는 일종의 판타지로서의 하녀다. 때문에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나오고 전세를 놓은 자기 집도 있는 은이가 고시원 쪽방에서 생활하다 하녀 일은 왜” 같은 현실적인 질문들은 감독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

-메이킹 필름에서 ‘이놈의 하녀는 쉴 날이 없다’고 귀여운 투정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매 신마다 그냥 가는 신이 별로 없더라.(웃음)

● 맞다. 하녀 역이라 그런지 정말 편한 신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웃음)

-처음 ‘하녀’는 제작 소식을 듣고 윤여정, 전도연, 서우 연기파 신구 여배우의 삼각 트라이앵글 캐스팅이 굉장히 흥미롭게 여겨졌었다.

● “그 캐스팅에 임상수 감독님 조합이라니 대체 어떤 영화가 나오려고 하는 거야” 하면서 다들 궁금해 하시긴 하더라. 근데 살짝 걱정은 있었다. 서우, 윤여정 선생님, 그리고 이정재씨까지. 과연 감독님이 이 배우들을 잘 어우르실 수 있을까 싶었는데 ‘뱀처럼’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잘 어우르시더라.(웃음) 무엇보다 ‘하녀’는 배우들의 기존 모습, 관객들에게 익숙한 모습보다 윤여정스럽지 않은, 이정재스럽지 않은, 전도연스럽지 않은 영화로 나왔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건 역시 임상수 감독의 힘?(웃음)

● 아마도.(웃음) 옆에서 지켜보면 임 감독님만의 독특함이 있다. 말투나 행동도 그렇고. 그게 많이는 아니고 각 캐릭터에 조금씩 반영이 됐는데 그것이 일종의 임상수 식 유머, 임상수 식 블랙 코미디로 완성된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부분들이 연기하면서도 흥미로웠고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지. 우리끼리도 찍으면서 그랬다. “이게 무슨 스릴러야, 코미디지. 이건 코미디 하녀”라고.(웃음)

-임상수 감독님의 경우, 요구하시는 디렉션이 굉장히 구체적인 편이지 않나. 임상수 감독님의 디렉션을 받고 당황한 적은 없었나?

● 감독님은 매 신마다 요구하는 포인트가 분명하게 있다. 또 나라면 그렇게 안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뜬금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디렉션들을 주신다. 의외로 그걸 따라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다만 우리 영화가 순서대로 찍지 않아서 이 신들이 하나로 뭉쳐졌을 때 과연 어떤 영화가 나올지 촬영하면서도 다들 궁금해 했었던 것 같다.

-홍보 포인트가 에로틱 서스펜스에 맞춰져 있고 예고편 역시 파격적인 느낌으로 편집돼 기대치를 올려놓은 덕분인지 도연씨 노출 연기에 대한 사전 관심이 적지 않았다. 근데 수위는 예상보다 쎄지 않더라.

● 솔직히 노출에 대한 관심들이 이렇게 많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영화의 노출 수위가 그리 센 편은 아니다. ‘해피엔드’에 비해서도 시각적인 면으로는 약한 편이고. ‘하녀’는 긴장감에 포커스를 두고 찍은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알겠지”란 생각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그런 관심보다 연기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노출에 대해 불편함을 좀 느꼈던 것 같다. 영화의 흐름상 은이의 노출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말이다. 영화가 끝난 지금도 그 부분은 여전히 숙제다. 역시 배우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버려야 하는 직업인 것 같다.

-제작보고회에서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베드신 재촬영 요구에 정말 흔쾌히 오케이들을 했었나?(웃음)

● 솔직히 흔쾌히는 아니었다.(웃음) 감독님이 “정재씨에게도 물어 볼겁니다” 하시면서 저에게 먼저 의향을 물으시기에 전 “모르겠어요” 했는데 너무 깜찍하게 그냥 “고맙습니다”하고 가시더라.(웃음)

-이정재씨가 농담반 진담반, 촬영 전 배우들과 첫 만남 자리에서부터 세 여배우의 기에 눌려 체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정말 그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나?

● 근데 정재씨가 좀 웃긴 말로 풀어서 그렇지 그날은 되게 의연했다. 다음날 얹혔는지 확인된 바는 없으나.(웃음) 물론 정재씨가 배우들 사이에서 느끼는 기운들이 실제 그렇게 셌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런 기를 되게 의연하게 받아내는 걸 보고 그것이 배우 이정재의 내공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정재씨가 현장에서 감독님만 졸졸 따라다녔다고도 했는데 그건 결국 감독님과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많이 했다는 의미지 않나? 실제로도 ‘하녀’에 출연한 배우들 중에서 정재씨가 감독님과 가장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한 연기자다. 근데 그건 배우로서 욕심이 크기 때문일 거다. 훈이란 인물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고스란히 다 받아내고 싶은 배우로서의 이글거리는 욕망 말이다.(웃음)
-윤여정 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지만 실제 함께 작업한 스텝들이나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연씨는 배우들의 연기나 감독의 디렉션 등 현장의 모든 상황을 드러나지 않게 스폰지처럼 흡수해 버리는 무서운(?) 배우라는 평들이 많더라.

● 근데 모르겠다. 솔직히 관객들에겐 배우가 연기를 잘 하고 못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배우의 연기를 뽐내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물론 뭘 하나 해도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시절이 있었다.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연기 잘 하는 배우 전도연이 아닌데 나 스스로 나르시즘에 빠져 있었던 거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욕심을 많이 버렸다. 잘 하고 싶은 내 욕심보단 감독님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최근 들어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나를 자꾸 깎아내서, 내가 가진 걸 자꾸 버리면서 점점 감독의 색깔에 묻혀가고 싶다는. 그렇게 다른 사람의 색을 나에게 입히고 싶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가? 이런 변화를 가져온.

●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준 변화인 것 같다. 다만 ‘밀양’ 때 이창동 감독님이 촬영 들어가기 전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다. “전도연은 참 연기를 잘 하는 배우” 라고. 처음엔 칭찬인 줄 알았다. 물론 그게 욕은 아니지만 굉장히 뼈가 있는 말씀이었다. 감독님이 구체적으로 얘기하신 것은 아니지만 “전도연은 연기 잘 한다는 소리가 나오게끔 연기하는 배우”라는 의미도 담겨있었을 거다. 무엇보다 감독님께선 이창동과 전도연이 만났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근데 촬영 당시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영화를 다 찍고 난 이후에야 알게 됐다. 어떻게 보면 ‘밀양’ 때문에 배운 게 되게 많다.

-도연씨가 평소에도 과잉되고 드라마틱한 연기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창동 감독님 자체가 현실에 발을 디딘, 지극히 일상적인 톤의 연기를 원하시는 스타일이라 ‘밀양’ 때 느낌은 또 남달랐던 것 같다.

● ‘밀양’ 때는 배우 뿐 아니라 일반인들과 연기하는 신도 많았다. 감독님께서 그 분들에게 연기 지도하시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었는데 배우들에게 하는 것처럼 하시더라. 계속 디렉션을 주신다기 보다 “이 신은 이런 거니까 이런 마음만 가지고 계세요”라고 강조하면서 배우 연기보다 그분들 연기에 더 집중하고 계셨다. 처음엔 “일반 분들이 그걸 알아 낼 수 있을 까? 표현해 낼 수 있을 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감독님만이 느끼는 뭔가가 있으셨던 것 같다. 마음을 가지고 하는 말과 마음 없이 하는 말. 감독님은 그런 진정성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배우들은 그걸 가지고 자꾸 무언가를 만들고 표현하려 하는데 그럴수록 진정성은 깎일 수 있는 거니까. 저도 아직 무언가를 자꾸 표현하려는 습성이 남아있는데 버릴 게 많다.

-그런 이창동 감독님의 ‘시’와 나란히 칸 경쟁부문에 올랐다. 느낌이 남다를 듯하다.

● 사실 ‘밀양’ 때는 이창동 감독님 힘으로 칸에 간 거다. 상을 탈 수 있었던 것도 이창동 감독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님 작품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을 거니까. 때문에 이창동 감독님께서 ‘하녀’로 제가 칸에 가게 됐을 때 저를 좀 기특하게 생각하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은 했다.(웃음) 무엇보다 칸에서 기다리고 있던 감독님의 영화 ‘시’와 ‘하녀’가 나란히 경쟁부문에 올라 의미가 더 커졌고. 최근 ‘시’ 시사회에 다녀왔는데 어려웠지만 가슴이 뜨거워지는 영화더라. 영화가 완성되기 전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었는데 감독님에 대한 경외심이 들만큼 너무 좋았다. ‘밀양’도 ‘시’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시’의 윤정희 선생님이 기자들과 인터뷰 중 도연씨에 대한 칭찬을 정말 많이 하셨다. 알고 있나?(웃음)

● 윤정희 선생님은 시상식이나 공식 석상에서 두 어 번 뵌 적이 있다. 이번에 ‘시’ 현장도 놀러갔었는데 그 때 윤정희 선생님께서 ‘너 나한테 밥 한 번 사야해. 내가 너 칭찬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하시더라.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웃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 번 타는 영광을 얻게 될까?

● 모르겠다. 솔직히 상에 욕심이 없다. ‘꼭 받아야지’ 그렇게 연연하는 편도 아니고. 그런 건 마음을 비우고 어느 정도 초월한 부분이 있다.

-여배우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이룬 것 같다.

● 거의 다라고 하기에는 좀..(웃음) 저는 아직 젊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칸 영화제 같은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이 배우 인생의 정상을 찍었다고 보지 않는다. 상 보단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맞다. 아직 젊고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이제 배우 전도연 넘어야 할 산은 결국 전도연 자신 뿐 이다.

●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나만 독하게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동의는 한다.(웃음) 무엇보다 배우로서 저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는 게 늘 감사하다. 관객들이나 주변 관계자들이 ‘전도연 잘 했겠지. 안 봐도 뻔해’라며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음 생각만 해도 굉장히 절망적이고 좌절감 들 것 같다.(웃음)

-여전히 일에 대한 욕심이나 열정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 아직 일이 너무 좋다. 일하는 게 너무 즐겁다. 결혼하고 나니까 일에 대해 더 절실해진 것 같다. 그전에는 언제든 내가 마음먹으면 일할 수 있을 거란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역설적으로 이 일이 내게 얼마만큼 소중한지, 이 일 안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절실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이번 선택에 남편분도 적극적인 지지와 확신을 주셨다고 들었는데 역시 도연씨와 결혼을 하며 여자 전도연 뿐 아니라 배우 전도연도 존중하겠다는 베이스를 깔고 계셨던 것 같다.

● 결혼하기 전 부모님이 지지해주던 믿음을 지금은 남편이 해준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 이번에 ‘하녀’를 선택하며 혼자 갈등하고 있을 때 남편이 ‘너 없이도 모든 게 잘 돌아간다. 슈퍼우먼 같은 생각은 버리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확신을 주는 걸 보고 여자 전도연하고만 결혼한 게 아니라 배우 전도연도 존중하겠다는 각오를 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함께 연기했던 남자 배우들,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많았다.

● 다 좋은 배우들이다. 상대 배우 복이 있는 것 같다.

-그 분들 역시 도연씨에 대해 동일한 말을 할 것 같다.(웃음) 여튼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배우 한 명을 꼽아 달라.

● 역시 송강호씨다. 한 마디로 괴물 같다. 존경심,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배우다. 머리도 뛰어나고 감각도 뛰어나고 작품 속에서 자신이 나설 때와 아닐 때를 너무 명확히 안다. 뭐 하나 흠을 잡을 래야 흠 잡을 수 없는 배우다. 인간적인 면에서 조차.

-근데 송강호씨, 은근 도연씨를 무서워하시는 것 같더라.(웃음) 예전에 칸에서 기자들에게 ‘박쥐’에 함께 출연했던 김옥빈을 ‘주목하라’는 말을 하시다 ‘이런 말 한 거 도연씨가 알면 안 되는데’하며 살짝 걱정하시는 모습이....

● 오빠가 나를 받아 주시는 걸 거다.(웃음) 그래도 그렇게 받아 주시는 여배우는 저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참 예전에 ‘박쥐’ 촬영 현장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살이 많이 쪄 있던 ‘밀양’ 때와 달리 청년의 모습이 돼 있는 강호 오빠의 모습에 정말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젊은 여배우와 함께 촬영해 그러냐고 놀리긴 했었다.(웃음)

-이현승 감독님과 함께 하는 차기작에선 김옥빈씨 보다 더 어린 여배우를 파트너로 맞을 것 같더라. (웃음)

● 저도 그 얘기 들었다. 강호오빠가 옥빈이보다 더 어린 여배우와 연기하게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

-아까 인터뷰 전 아기랑 화상 통화를 하시던데 외모만 보면 여전히 아이 엄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관리를 따로 하는 편인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되어 가는 거다. 그리고 특별히 관리하는 건 없다. 다만 저는 원래 운동 홀릭이다. 산도 다니고 헬스도 하고 일단 땀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임신을 하면서 오히려 운동을 잘 못 했는데 출산 후 관리는 따로 안 했지만 그 전에 해 왔던 기본 베이스들이 있어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이가 누굴 닮았나?

● 나 보단 아빠를 많이 닮았다. 웃을 때 코에 주름지는 것만 빼면.(웃음)

-아기가 엄마가 옆에 없는 시간을 잘 견디는 편인가?

● 아기가 이제 15개월 다 돼 간다. 엄마 하면 저를 가리키니까 제가 엄마인 줄은 아는데 사람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할까? 엄마만 고집하진 않는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엄마랑 잘 지내고 아줌마가 있으면 아줌마랑 잘 지낸다. 내가 촬영이 있어 나갈 때면 아주 쿨하게 아줌마랑 배꼽 인사도 잘 한다. 그게 때론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그렇다. 엄마 마음은 그런 것 같다.(웃음)

-어떤 엄마가 돼 주고 싶나?

● 아이를 낳고 보니 더 모르겠다. 예전엔 내가 아이를 되게 좋아해서 훌륭한 엄마가 될 거란 생각을 은연 중 해 왔던 것 같은데 막상 닥치니 실생활은 또 다른 것 같다. 그냥 일단은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며 친구 같고, 자상한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은영 기자 helloey@mk.co.kr/사진=강영국]

출처 : 계속이 힘이다.
글쓴이 : nysc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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