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슬라브족은 살아 있다~~
슬라브족은 살아 있다.
-동유럽 4개국을 다녀와서
슬라브족.
고교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단어입니다.
앵글로 색슨족, 게르만족, 슬라브족 등과 함께
어렴풋이 슬라브족이라고 하면 단순히 러시아를 생각했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슬라브족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그런 편견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슬라브족은 러시아 뿐 만아니라 이번에 여행한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독일 쪽인 게르만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슬라브족 여인들은 신이 내린 몸매를 가졌다고 합니다.
농촌 들녘에 감자 캐는 여인도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몸매을 가졌고 그 옆에서 감자 거두는 아가씨도 영화배우 ‘맥라이언’일 정도로 미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란 눈을 가진 그들은 신이 내린 몸매를 가진 반면에 하얀 얼굴 피부는 부드럽지가 않고 두꺼워 ‘신이 내린 최악의 벌’이라고 하더군요.
그것만 봐도 세상은 참 공평한 것 같습니다
. 멋지다고, 아름답다고 마냥 부러워할 것은 아닌 가 봅니다.
이번 여행은 그런 슬라브족의 삶을 보고, 듣고 느낀 여행이었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종종 국외여행을 했지만
이번 여행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아직도 그들의 문화와 과거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동유럽의 선진 노동조합을 체험하고 그들과 협약체결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 목적 이외의 부수적인 것이 더욱 매력적인 여행이었습니다.
프라하의 야경을 즐기다
프라하.
그 한 단어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가슴 설레는,
다른 어떤 도시 보다 있어 보이는,
설레게 하는 곳.
국내에서 ‘프라하의 여인’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접했고 프라하를 다녀온 지인들을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숱하게 전해들은 도시입니다.
인천공항에서 프라하 행 비행기표를 들고 얼마나 설레이고 흥분해서~
상상 속의 프라하를 그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11시간의 비행 끝에 맞은 아~프라하.
지구가 자전하는 방향으로 따라 갔기 때문에 더욱 먼 11시간이라는 비행시간이 하나도 지루하기 않았습니다. 기대가 있었고 상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프라하 공항 문이 활짝 열리고 이마 끝에 가득 와 닿는 그 차가운 기운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합니다. 아 상쾌했던 그 기분.
주황색의 알 수 없는 알파벳 글짜로 쓰여진 이국의 간판.
체코어인지 독어인지 모르겠지만 떠들어 되던 프라하 사람들.
첫 눈에 확 들어오던 그 이국의 풍경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속으로 인사를 합니다. 프라하여! 내가 왔노라~그렇게 동유럽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일행은 모두 남자였고 11명이었습니다.
2년 동안 대구공무원노동조합에서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무임금으로 일한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보상 차원에서 대구시가 선심을 쓴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짐을 챙기고 인천 공항을 통해서 동유럽으로 날아갔습니다.
프라하 공항에도착한 것이 현지 시간으로 오후 6시쯤. 동유럽은 우리와 시차가 8시간이 나기 때문에 국내에서 오후 2시에 출발했지만 11시간을 비행하고도 오후 6시쯤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곧 바로 버스에 옮겨 타고 체코 제2의 도시 브루노로 떠났습니다. 공업도시 브루노에서 1박을 하게 된 것은 폴란드까지 버스로 하루에 가긴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가기 위해서입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를 얘기하기 전에 폴란드를 우선 얘기해야겠군요.
폴란드의 폴은 들판을, 란드는 땅을 뜻한다고 하는데
이는 폴란드 땅의 90%가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국토의 90%가 광활한 들판인 셈이죠.
우리나라 보다 4배나 넓은 땅에 인구가 3800만정도이니까
인구 밀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좋아 넓은 편이죠.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고속도로 변에서 보이는 폴란드의 농촌 풍경은 그야말로 한산하기 그지없습니다.
드넓은 대지에 드문드문 들어 선 대부분의 주택은 단층이나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모양이 너무 예뻤습니다.
마치 그림엽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유럽 풍경처럼 말입니다.
얘기가 약간 옆길로 샜는데
아우슈비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들러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곳입니다.
유대인은 물론 자국의 장애인까지 데려와서 약 400만명을 처형했고 생체 실험까지 한 곳이지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 현장을 봤습니다.
모두 3개의 수용소가 있는데
2~3차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패전을 앞두고 모두 불태워서 현재는 1수용소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수용소는 박물관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벗어 놓은 신발, 그들의 가방. 안경. 세면도구, 머리카락 등의 실물을 봤습니다.
낡은 시멘트 계단은 얼마나 많은 수감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그 모양이 변형되어
지금도 움푹 파여 있었습니다.
그런 현장을 보면서
또 예전에 본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장면을 중첩시키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에 의해 수탈당했고
아우슈비츠와 같은 중국의 731일부대의 만행을 있었기에 그 감동은 더욱 짙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아~인간이란 이렇게 사악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견학하는 내내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우울한 느낌들을 떨쳐 버릴 수 있는 행사가 그 다음날 크라코프에서 열렸습니다.
폴란드 민주화의 원동력인 ‘폴란드 노동조합 동맹’과의 협약이었습니다.
이날 협약 자리에서는 폴란드 노동조합 동맹인 ‘솔리다노시’ 관계자가 직접 나와 우리 일행과 협약을 맺었고 서로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들었습니다.
‘솔리다노시’는 폴란드 내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 연맹으로 조합원들의 요구나 의견을 사측인 정부나 기업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합법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사측에 전달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른 게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조합원들의 근무여건이나 복지에 초첨을 맞추고 이를 실천하는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습니다.
솔리다노시와의 협약이 끝난 후 두 번째 관광을 한 곳이
비엘리치카에 있는 바로 소금광산이었습니다.
고대 알프산 산맥은 바다 속이었고 이것이 융기하면서 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 산속에 당연히 소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발전하여 소금광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총 길이 150여킬로. 이 소금광산에서 소금을 발견한 중세인들은 금보다 소중했던 소금을 캐기 위해서 광업을 발전시켰고 번성했을 때에는
총 1800여명의 광부들이 소금을 캤다고 합니다.
그 소금광산 중 총 2킬로를 견학했습니다.
깊이 60미터, 90미터, 140미터 지하터널을 구경하고
그 당시 광부들의 생활상과 현장을 둘러 봤습니다.
지하 광산 안에서 큰 노동력이 필요했을 때에는 새끼 말을 지하로 데려 내려가 그 안에서 키웠고 말의 노동력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현대 과학이 풀 수 없을 정도도 대규모의 광산 시설을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했을 광부들을 저절로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지하 광산 안에 성당이 있고 그들의 숙소가 있고 마굿간이 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가 될 충분한 자격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깔끔한 나라 슬로바키아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국경도시이며
폴란드 사람들의 휴양지인 자코파네를 거쳐 슬로바키아로 들어가는 길은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했습니다. 어린 적 동화책에서 본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산모퉁이를 돌면 눈 덮인 침엽수림들과 강,
산등성이들이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그냥 그대로의 그림 동화책이었습니다.
깔끔하다고 해야 할까? 정갈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풍경이 슬로바키아의 매력이었습니다.
사실 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를 가기 위한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그 나라에 특별한 볼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거쳐 가는 나라였습니다. 우리의 숙소가 거기에 있었기에 갔던 것입니다.
눈도 내리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던 우리 숙소는
이국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이번 동유럽에 와서 느낀 것은 고속도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로는 울퉁불퉁해 우리가 탄 버스의 승차감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 11명을 태운 버스의 운전수인 체코인인 ‘안드레이’는 늘 정속운행을 했고 쉴 때마다 차량을 점검하고 성실하게 차를 청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무뚝뚝하고 성실하기만 한 그의 별명을 한국 이름으로 ‘김성실’로 불렀습니다.
동유럽의 차량은 모두 100킬로 이상을 달리지 못하도록 ‘락’을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또 운전수는 하루 반드시 11시간이상을 쉬어야 하는 규정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김성실은 늘 정속운행을 했고 숙소에 닿을 때마다 친절하게 짐을 꺼내어 주었습니다. 족히 190센티의 키에 비쩍 마른 김성실은 나이가 33살이며 체코 중소도시에 자신의 가족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9일동안 우리와 함께 한 그는 아침마다 우리와 인사를 했는데
간단하게 ‘하이’나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 밖에 그와의 의사소통은 손짓과 몸짓이었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동유럽의 4개 나라는
모두들 고유어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고 슬라브족 3개 나라는 고교 교육을 받을 때 제2 외국어를 러시아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바디 랭귀지’가 통하는 나라였습니다.
우리 일행 중 한분이 나름 영어 공부 좀 했다고 으시되며
영어를 하다가 가이드 선생께 한국말로 하라는 초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동유럽은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비엔나의 밤을 위하여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쉔브룬 궁전은 한국의 경북궁쯤 되는 곳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를 650년동안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라고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맞은 상점들이 궁전 내 광장에 즐비했습니다.
우리 일행들도 그들과 즐기고 관광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사람 사는 세계는 다 똑 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술 취한 사람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은 우리와 똑같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떠들면서 이리저리 몰려 다녔습니다~~~~
비엔나의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케튼트너 거리를 걸어 봅니다.
한국 명동, 대구의 동성로와 별반 차이는 없었습니다. 다만 건물들이 모두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여기를 보나 저기를 보나 모두들 문화재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며 관광객의 역할을 즐겼습니다.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는 되지도 않는 의사소통을 위해여 손짓 발짓 몸짓을 해 봅니다. 그들도 우리가 신기한 지 그 파란 눈으로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그
렇게 우리는 비엔나 커피, 비엔나 소세지의 도시 비엔나의 밤을 즐겼습니다.
비엔나에서 하루를 지낸 우리는 짤쯔부르그로 향했습니다. 모차르트의 고향 짤쯔부르그~
가이드가 말합니다.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 때문에 먹고 산다고.
기념품 가게에는 모두 모차르트 관련 기념품들 뿐입니다.
초코렛도 모차르트, 커피잔의 문양도 모차르트~어디를 가나 모차르트였습니다.
오스트리아가 모차르트를 관광 상품을 한 것을 보면서 역시 잘 사는 나라는 다르다. 모차르트를 이용해서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아는 나라라는 걸 느꼈습니다.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준이나 화가 이인성으로 대구 관광 상품을 만들면 어떨까?
그런 엉뚱한 생각도 해 봤습니다.
음악의 도시 짤쯔부르크
빙하가 녹아 아름다운 옥빛호수가 있는 짤쯔캄마굿의 호수지역을 거쳐 짤쯔부르그에 도착했을 때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미라벨 정원과 궁전을 둘러보고 호헨짤쯔부르크 성을 감상합니다.
요새이기도 했던 호헨성은 그야말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요새 내에 광장이 있고 성당이 있고~
요새의 인근 지역은 구시가지로 관광하면서 낭만적인 중세의 모습들을 눈에 담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다음날 짤쯔부르크 시청을 찾아 두 번째 협약식을 가졌습니다.
짤쯔부르크 시청 노동조합과 대구시청 노동조합과의 환담에서는
두 시청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프라하의 겨울
짤쯔부르크에서 프라하로 돌아오는 길에
그림동화나 엽서와 똑같은 동네인 체코의 체스키크롬프를 만났습니다.
체스키크롬프는 중세의 건물을 그대로 간직한 동네입니다.
작은 성안에 중세의 건물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것은 이 도시가 2차 세계대전을 빗겨 갔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를 침공하던 히틀러는 이 도시를 그냥 지나쳐 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 도시가 저항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아름다워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림동화 같은 체스키크롬프에서 눈을 맞으니 더욱 동화같은 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눈까지 오는 추운 날씨에 점심 먹는 것까지 잊을 정도로 우리 일행은 체스키크롬프에 취했습니다.
체스키크롬프는 대부분의 동유럽 여행객이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체스키크롬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있는 동안 버스는 프라하에 도착했고
우리는 2박3일은 동유럽 관광의 백미 즐겼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프라하 성의 야경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의 토목 기술자들이 동원되어 만들었다는 카를교(1406년 완공), 영화 ‘미션인파스벌’과 비틀즈의 존 레넌 추모비가 있는 캄파섬.
영화 ‘007’의 배경이 된 온천도시 카를로 바리.
그리고 프라하 구시가지 등지는 2박3일의 프라하 체류 기간이 짧을 정도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파란 눈의 슬라브족들이 관광객인 우리들을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그들은 우리를 즐겼고 우리도 그들을 즐겼습니다.
아직도 프라하성에서 신발끈을 매던 배우 김주혁이 아름다운 프라하의 여인 전도연을 만났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왠지 모르게 아름다운 프라하의 여인이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도시. 프라하. 그 프라하를 떠날 때에는 마치 프라하의 여인을 남겨 두고 돌아 선 것처럼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