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김기영감독 `하녀`원작을 보니,반세기를 초월한 재매는 여전했다.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14. 18:42
김기영 감독의 악녀시리즈 중 하나인 '하녀' 원작 1960년판을 보았습니다. '하녀'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주도한 세계영화재단의 후원으로 디지털복원했다고 하는데, 며칠 뒤에 개봉할 임상수 감독 전도연 주연의 '하녀' 원작이기도 합니다. 원작 '하녀'와 이번에 개봉할 '하녀'는 많이 다르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올라오네요. 원작은 50년 전 작품입니다. 인물들이 쓰는 대사들도 오늘날과는 다르고, 그 내용 중에 몇몇 부분은 시대적인 특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본 감상을 한 마디로만 한다면, 뒤로 갈수록 숨가쁘게 재밌었습니다. 60년도에 나온 영화를 보고 '숨가쁘게 재밌다!'는 표현을 하는 건 과장이 아니냐고 한다면, 과장 아니고 정말로 지금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 재미가 크게 반감되지 않습니다.
단적인 이유를 두 개만 들어보겠습니다. 원작 '하녀'는 러닝타임이 2시간에 육박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TV드라마의 이야기 전개 속도감보다 배 이상 빠릅니다. 초반 30분 정도만 여유있게 보면 그 다음부터는 지루한 감 없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최근 우리나라에선 막장드라마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하녀'의 이야기는 막장의 본좌급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60년도의 김기영 감독이 그 사고방식 그대로 지금 시대에 온다고 해도 절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분이 아닙니다. 요즘 tv의 막장소재보다 더 세면서도, 그런 자극적인 소재로 충분히 한 편의 뛰어난 영화로 나온 것이 '하녀'입니다. 이 영화는 그 시대에도 19금이고, 오늘날 방영한다고 해도 19금입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그 욕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그려낸 영화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원작 '하녀'의 줄거리가 결말까지 모두 나옵니다.
위 스틸사진은 일부러 올립니다. 김기영오리지날시나리오란 말이 나오는데 김기영 감독이 직접 원작을 썼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녀란 제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나옵니다. 그리고 김기영푸로덕슌 제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푸로덕슌'이란 말이 재밌네요. 요즘은 최첨단 산업이 발달했지만, 그 시절 우리나라에선 싼 임금으로 방직공장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장면은 큰 통유리로 된 문 밖에서 들여다보이는 한 가정의 모습이 나옵니다. 도시의 핵가족입니다. 조부모 안나오고, 남편은 피아노음악강사, 부인은 재봉틀을 합니다. 남매가 있는데, 장녀는 다리를 다쳐서 목발에 의지해서 걸어야하고, 어린 아들은 일반 가정집에서 보이는 평범한 말썽꾸러기입니다. 어린아들 역이 바로 50년 전의 영화배우 안성기 씨라고 하네요. 남편 역은 한국의 클라크 케이블이라 할 수 있는 김진규 씨, 부인은 주증녀, 팜므파탈 하녀 역은 이은심이고, 하녀의 친구로 엄앵란 씨가 나옵니다. 2010년 임상수 감독 '하녀'에는 김진규 씨의 딸 영화배우 김진아 씨가 의사 역으로 나오는 것으로 되어있네요. 특별출연 형식이라고 봐야겠지요.
'하녀'는 섬뜩한 가정파탄을 다루고 있습니다. 비둘기가 가정의 화목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하녀'에선 피아노선율로 나옵니다. 화음이 제대로 된 듣기 좋은 피아노 소리는 화목한 가정을 의미하고, 쿵쾅따당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듯한 불협화음은 가정이 파탄나는 효과음으로 나옵니다. 다른 작품들 중에서는 집에 금이 가고 쩍쩍 갈라지는 듯한 소리로 가정이 깨지는 것을 표현한 것도 봤었는데, '하녀'의 피아노 소리도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영화 마지막까지 몰입하는데 지장없었습니다.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이 가정의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주인공인 하녀가 피아노를 쾅쾅 두들기는 장면입니다.
이제 본 줄거리를 간략하게 보겠습니다. 김선생(김진규 분)은 피아노음악선생입니다. 방직공장 여공들을 대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고, 개인교습도 합니다.
위 사진은 피아노를 배우는 여공들입니다. 마치 부잣집 여대생들처럼 꾸미고 당시로는 패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또한 방직공장에는 기숙사가 있고 여공들을 위해 레크리에이션으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피아노교육입니다. 다분히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만, 1960년은 우리나라에 4·19 혁명이 있고 나서 이승만 전대통령 하야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의원내각제 정부가 들어섰던 해입니다. 당시 헌법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다고도 합니다. 그 다음해에 516쿠데타 일어나고 군사독재가 시작됩니다. 어쨌든 1960년 그 해는 사회분위기가 그 전후와는 많이 달랐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영화 '하녀'는 그 설정에서 몇 가지 한국현실을 배제시키고 가정을 지닌 남자와 여자들의 욕망, 타락, 파멸과 죽음까지 치닫는 이야기에 집중해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영화는 지금 봐도 대단하지만, 당시의 시대현실을 피해가지 않고 담아냈다면 더욱 불후의 명작이 됐을 것이란 평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잘생기고 젠틀한 음악선생을 짝사랑하는 여공들이 나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두 여성인데, 왼쪽이 극중 이름 곽선영이고 오른쪽이 경희(엄앵란 분)입니다. 곽선영이 러브레터를 보냈는데, 김선생은 풍기문란이라 하여 기숙사 사감선생에게 편지를 제출하고, 곽선영은 3일 정직처분을 받습니다. 곽선영은 유부남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것이 소문나는 바람에 창피하다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경희는 김선생 집으로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으러 갑니다. 곽선영은 그냥 유부남을 짝사랑하는 순박한 여공으로 나오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경희란 캐릭터가 정말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이 보면, 영화는 당시 시대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마치 김선생과 곽선영 간의 신파적인 사랑을 다룰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전개로 넘어갑니다. 그 시절 관객들은 정말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경희입니다.
김선생의 집은 부인의 재봉틀 일로 부수입이 있고 두 사람이 돈을 모아 새집을 짓게 됩니다. 그런데 집에 쥐가 들어옵니다. 부인은 쥐를 끔찍히 무서워하고 재봉틀 일로 가정일에 힘이 부쳐서 남편과 함께 집에 하녀를 들이고자 합니다. 저 쥐 장면은 원작 '하녀'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2010년 '하녀'에는 시대가 다르다보니 안나올 것 같네요. 무엇보다 원작의 김선생 가정은 부인이 재봉틀 일을 한 수입으로 약간의 여유가 있을 뿐 중산층 가정인데, 2010년 '하녀'는 수백억 대 집에서 사는 억만장자 남편이 나옵니다. 이 설정의 차이로 인해 이야기 전개가 대단히 큰 차이를 나타낼 것으로 보입니다.
김선생은 경희에게 하녀로 일할 사람을 부탁하고, 경희는 기숙사에서 담배피우는 불량한 여공(이은심 분)에게 그 일을 제안합니다. 이 과정이 너무도 매끄럽게 전개되기 때문에 여기까지 보는 동안에도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조금도 예측이 안됩니다.
창 밖의 여자 하녀의 욕망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러던 어느날 곽선영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급박하게 전개되기 시작하고, 보는 사람을 단 한순간도 한눈팔지 못하게 합니다. 너무도 재밌는 부분이기 때문에 혹시 보실 분을 위해 세세한 내용까지 다 쓸 수는 없지만, 김기영 감독을 천재감독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단지 사람들이 예우상 하는 것이라쳐도, 위의 장면들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보이는 행동, 심리, 극적 전개는 소름끼칠 만큼 깊이있고 5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지녔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김선생은 하녀의 유혹에 넘어가고야 맙니다. 우리나라에 영화 '자유부인' 나와서 당시 한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게 56년이라고 하는데, 그 4년 뒤에 '하녀'가 나온 것입니다.
하녀는 다분히 팜므파탈적인 인물입니다. 첫등장부터 옷장에 숨어 담배를 태우면서 나오고, 집안에 돌아다니는 쥐를 아무렇지도 않게 맨손으로 잡아들고 흔들어댑니다. 세상의 규칙들쯤은 한 귀로 흘리버리고, 반항적이면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입니다. 아래 사진 왼쪽 첫 번째 찬장에 보이는 것이 쥐약입니다. 나중에 이 집안을 공포로 몰아넣을 독약입니다. 하녀는 김선생과 치명적인 하룻밤을 보내고 덜컥 임신을 해버립니다. 김선생은 심한 고민을 하다 부인에게 고백을 하고, 부인은 하녀에게 부탁하여 태아를 지우도록 합니다.
그리고 하녀의 광기가 서서히 독을 뿜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태아를 죽이게 했으니 김선생의 아이들도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실제로 일을 벌이는데, 우발적인 사고이면서도 그 전개에서 나오는 물 한 잔이 주는 섬뜩한 공포가 강렬합니다. 하녀로 인해 어린 아들이 죽습니다. 그러고도 하녀는 바깥 사회에 김선생과 자신의 간통사실과 뱃속의 태아까지 죽였다는 것을 알려서 김선생을 매장하겠다고 협박하며 집요하게 옭아맵니다.
급기야 하녀는 김선생을 자신의 방에서 지내게 하고, 김선생 부인에게 하녀처럼 시중을 들게 시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막장드라마라 비난받는 드라마들의 소재들을 한 마디로 바꾸면 가정파탄입니다. 가족드라마란 외피를 둘렀을 뿐, 불륜 삼각관계 고부갈등 사생아 등 가정파탄적 요소들을 자극적으로 이용하여 극의 재미를 끌어내는 선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막장소재라 하더라도 인간의 욕망을 밑바닥까지 드러내고 꾸밈없이 직시하게 한다면 그건 단순한 막장이 아니고 예술이 됩니다. 김기영 감독 '하녀'는 오늘날 많이 쓰이는 말로 한다면 막장소재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과 깊이에서 예술이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위 장면은 하녀의 광기가 극에 이르고, 정신이 황폐화된 김선생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동반자살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도 김기영 감독의 자유로우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진실하게 바라보는 사고는 빛을 발합니다. 억지로 자극이든 감동이든 꾸며낸다거나 하는 게 없습니다. 이 하녀란 인물을 단지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태어난 그대로의 냄새를 지닌 채 마지막을 사르는 독화였습니다.
마지막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부분인데,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도 강렬한 장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당시의 한국정서를 생각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1960년도에 이렇게 파격적인 설정의 이야기를 결말 그대로 내보내기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아래 김진규 씨가 씨익 웃으며 '영화는 그냥 영화'라는 의미의 한 마디를 하고 있습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 대단히 재밌었습니다. 며칠 뒤 개봉할 2010년도판 '하녀'도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아래 추천도 꾹 눌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시간되세요.
그러나 영화를 본 감상을 한 마디로만 한다면, 뒤로 갈수록 숨가쁘게 재밌었습니다. 60년도에 나온 영화를 보고 '숨가쁘게 재밌다!'는 표현을 하는 건 과장이 아니냐고 한다면, 과장 아니고 정말로 지금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 재미가 크게 반감되지 않습니다.
단적인 이유를 두 개만 들어보겠습니다. 원작 '하녀'는 러닝타임이 2시간에 육박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TV드라마의 이야기 전개 속도감보다 배 이상 빠릅니다. 초반 30분 정도만 여유있게 보면 그 다음부터는 지루한 감 없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최근 우리나라에선 막장드라마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하녀'의 이야기는 막장의 본좌급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60년도의 김기영 감독이 그 사고방식 그대로 지금 시대에 온다고 해도 절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분이 아닙니다. 요즘 tv의 막장소재보다 더 세면서도, 그런 자극적인 소재로 충분히 한 편의 뛰어난 영화로 나온 것이 '하녀'입니다. 이 영화는 그 시대에도 19금이고, 오늘날 방영한다고 해도 19금입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그 욕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그려낸 영화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원작 '하녀'의 줄거리가 결말까지 모두 나옵니다.
'하녀'는 섬뜩한 가정파탄을 다루고 있습니다. 비둘기가 가정의 화목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하녀'에선 피아노선율로 나옵니다. 화음이 제대로 된 듣기 좋은 피아노 소리는 화목한 가정을 의미하고, 쿵쾅따당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듯한 불협화음은 가정이 파탄나는 효과음으로 나옵니다. 다른 작품들 중에서는 집에 금이 가고 쩍쩍 갈라지는 듯한 소리로 가정이 깨지는 것을 표현한 것도 봤었는데, '하녀'의 피아노 소리도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영화 마지막까지 몰입하는데 지장없었습니다.
이제 본 줄거리를 간략하게 보겠습니다. 김선생(김진규 분)은 피아노음악선생입니다. 방직공장 여공들을 대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고, 개인교습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잘생기고 젠틀한 음악선생을 짝사랑하는 여공들이 나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두 여성인데, 왼쪽이 극중 이름 곽선영이고 오른쪽이 경희(엄앵란 분)입니다. 곽선영이 러브레터를 보냈는데, 김선생은 풍기문란이라 하여 기숙사 사감선생에게 편지를 제출하고, 곽선영은 3일 정직처분을 받습니다. 곽선영은 유부남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것이 소문나는 바람에 창피하다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경희는 김선생 집으로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으러 갑니다. 곽선영은 그냥 유부남을 짝사랑하는 순박한 여공으로 나오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경희란 캐릭터가 정말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이 보면, 영화는 당시 시대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마치 김선생과 곽선영 간의 신파적인 사랑을 다룰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전개로 넘어갑니다. 그 시절 관객들은 정말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경희입니다.
김선생은 경희에게 하녀로 일할 사람을 부탁하고, 경희는 기숙사에서 담배피우는 불량한 여공(이은심 분)에게 그 일을 제안합니다. 이 과정이 너무도 매끄럽게 전개되기 때문에 여기까지 보는 동안에도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조금도 예측이 안됩니다.
급기야 하녀는 김선생을 자신의 방에서 지내게 하고, 김선생 부인에게 하녀처럼 시중을 들게 시킵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당시의 한국정서를 생각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1960년도에 이렇게 파격적인 설정의 이야기를 결말 그대로 내보내기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아래 김진규 씨가 씨익 웃으며 '영화는 그냥 영화'라는 의미의 한 마디를 하고 있습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 대단히 재밌었습니다. 며칠 뒤 개봉할 2010년도판 '하녀'도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아래 추천도 꾹 눌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시간되세요.
출처 : 최영재
글쓴이 : 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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