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섬마을 선생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22. 07:31

 

 




 

    섬마을 선생 (1967년 개봉) 감독 김기덕 제작 주동진 기획 김우현 각본 서윤성 촬영 변인집 주연: 오영일(명식), 문희(영주), 안인숙(수연), 이낙훈(중갑) 월남전 참전경험이 있는 의대생 명식(오영일)은 남해 섬마을(낙도)의 작은 분교로 내려가 학생들을 가르친다.
    명식은 부하 권상병이 전사한 것에 깊은 자책감을 갖고 그의 유언대로 섬마을 사람들을 계몽하고 진료해주려
    노력한다. 그러나 문명과 단절된 섬의 주민들은 명식의 의도를 오해하고 그를 섬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죽은 권상병의 여동생인 영주(문희)만이 명식의 뜻을 헤아려 진료소 일을 돕는다.
    영주에게는 성실한 약혼자 중갑(이낙훈)이 있고 명식이게도 서울에 두고 온 약혼녀(안인숙)가 있다.
    그런데 마을 청년들은 둘의 사이에도 오해를 하며 명식을 구타하고 진료소의 약품을 쓸어버린다.
    가르치고 치료하는 일보다 먼저 편견과 무지, 오해의 벽을 넘어서는 게 명식의 과제가 되었다.
    섬마을 선생 명식은 부하의 유언을 차마 잊을 수 없어서 그 모든 시련을 꿋꿋이 참고 어려운 일들을 하나씩
    헤쳐 나간다. 서울의 약혼녀 수연(안인숙분)의 반대에도 낙도에 내려가 가난과 무지에 빠진 사람들을 구호하던 명식과 그를
    돕는 영주 사이에도 자연스러운 애정관계가 발전하는 듯싶은 순간에 찾아오는 수연의 모습...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명식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면서 스스로 자활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명식은
    섬마을을 떠나게 되는데 영주는 명식이 떠나는 순간까지 항구에서 나무에 몸을 기대고 그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떠날 줄을 모른다. 이 영화의 탄생은 전국을 휩쓸었던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의 폭발적 인기 덕분이다.
    당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이 노래 덕택에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름다운 낙도의 섬을 배경으로 한 주연배우 오영일의 조각 같은 얼굴과 문희의 청초한 아름다움이 어울려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영화가 탄생한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섬마을을 남해의 낙도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실제 촬영장소는 인천 근해의 섬인 '대이작도'였다고
      한다.

        배우 문희

        문희 文姬 (1947년 7월 16일 ~)
        데뷔 1965년 영화 '흑맥'
        출생지 서울
        본명 이순임(李順任)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3인의 한사람

        서라벌예대 재학시절 친구를 따라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카메라 테스트를 참관한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65년 이만희 감독의 <흑맥>으로 데뷔했다.
        『현대문학』지에 연재된 이문희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그는 불량 청소년 무리들 사이에서 주인공(신성일 분)을 교화시키는 청초하고 순진한 여인 역을 맡았는데, 이후 <8240 K.L.O>(66, 정진우) <초우>(66, 정진우) <잘 있거라 일본땅>(66, 김수용) <무명초>(66, 장일호) 등에서 비슷한 역을 잇달아 맡으면서 연약하고 청초해 보이는 그만의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초우>에서 대사관 저택의 식모. 그러면서 사랑과 꿈을 쫓는 청춘 … 연기력 미달 때문에 그 좋은 역을 소화하지 못해서 아쉽다. 신선하다는 것만이 연기자의 재산은 아니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막차로 온 손님들>(67, 유현목) <섬마을 선생>(67, 김기덕) <이조잔영>(67, 신상옥) <한>(67, 유현목) 등에서 보여준 과장되지 않은 연기는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유현목 감독은 그를 “작은 몸매에 때묻지 않은 청순가련한 이미지, 세속적 경륜이 없는 순결의 이미지 그리고 포토제닉한 내적 이미지를 가진 배우”라고 회고하는데 <막차로 온 손님들> <한> <카인의 후예>(68, 유현목) 등에서 이러한 그의 이미지는 감독의 깊은 신뢰 때문인지 그 어떤 작품보다도 한껏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이후 그는 남정임, 윤정희와 함께 1세대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그에게 화려한 명성을 안겨준 68년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은 당시 사회적인 화제를 일으키면서 고무신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는데, 유부남(신영균)을 사랑하다 아들을 낳지만 끝내 그 아들을 남자의 집으로 보내고 뒤돌아서야 하는 비련의 여인 혜영 역은 그였기에 더 애잔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청순가련한 여인의 이미지는 연이어 제작된 <속 미워도 다시 한번>(69, 정소영) <미워도 다시 한번 3>(70, 정소영) <미워도 다시 한번 대완결편>(71, 정소영) 등에서 계속된다. 또한 <미워도 다시 한번 > 연작 뿐만 아니라 <한> <벽 속의 여자>(69, 박종호) <꼬마신랑>(70, 이규웅) 등 그가 출연한 작품은 속편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그의 높은 인기도를 반영하는 것 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양 제일의 미모를 가진 스타’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는 돌연 71년 한국일보 부사장이었던 장강재와 결혼한 후 은퇴를 선언했으며 73년 개봉된 김기덕 감독의 <씻김불>을 마지막으로 연기생활을 접었다. “결혼 전 300여 편에서 주연, 한국영화의 주인공적 임무를 완수해 모범이 된 여우(女優)로서 사회에 규범을 제시”했던 그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평범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결혼생활 22년만인 93년 남편과 사별한 그는 98년 한국종합미디어의 회장직을 역임했다.(안재석-여성영화인사전)

        출처 : 두견화
        글쓴이 : 등잔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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