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최무룡 / 단둘이 가보았으면 (연도미상) ... (배우 최무룡, 강효실 이야기)
최무룡 / 단둘이 가보았으면 (연도미상)
1. 흰구름이 피어오른 수평선 저 너머로
그대와 단둘이서 가보았으면
하얀 돛단배 타고 물새들 앞세우고
아무도 살지않는 작은 섬을 찾아서
아담하게 집을 지어 그대와 단둘이
행복의 보금자리 마련했으면
2. 저녁노을 곱게 물든 수평선 저 너머로
그대와 단둘이서 가보았으면
갈매기 사공삼아 별빛을 등대삼아
늘푸른 나무들이 무성한 섬 찾아서
꽃을 심고 새도 길러 맑은 샘 파놓고
그대와 단둘이서 살아봤으면
작사: 한산도 작사: 백영호
배우 최 무 룡 최무룡(崔戊龍, 본명 최한련(崔漢連) 1928 ~ 1999)
경기도 문산에서 4남매중 외아들로 태어나 개성공립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 하였다.
가수로도 활동을 하여 인기를 누렸던 그는 '꿈은 사라지고', '동철의 노래', '외나무다리', '오발탄, '5인의 해병',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등 총 500여 편에 출연했다.
영화배우 강효실과 김지미 와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였으며 1999년 11월11일
▶극단 공연(公演)극장에서 신극(新劇)을 하고있던 최무룡은 백조악극단을 이끌고 있던 '눈물의 여왕' 전옥(全玉)으로부터귀여움을 받았다. 그리고 전옥의 딸 강효실(姜孝實)과 뜨거운 사이로 발전 1954년 12월31일 결혼식을 갖게 되었다. 영화 연극인으로는 변기종, 이진순, 정민, 한재수등만 참석했다. 그무렴 결혼식에는 축사라는 순서가 끼기마련이었다.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이었다. 최무룡의 고향친구라는 이가 나와 축사를 시작했는데 30분이 넘고 40분이 지나도록 끝날줄을 몰랏다, 마침 몸이 불편했던 강효실은 함정이 좌우로 요동치는 바람에
▶최무룡과 김지미, 그들은 유부남(부인 강효실)과 유부녀( 남편홍성기(洪性麒)감독)였다. 1962년 10월31일 최씨의 부인 강효실로부터 간통죄로 피소 함께 수감되었다가 하지만 이후 최무룡은 제3지대, 속 제3지대등 15편의 영화를 제작했으나 줄곧 흥행에 실패 3천여만원의 부채를 안게 되자 부채로 김지미의 재산까지 몰수될 위기에 처하자 969년 6월11일 아침 |
배우 강 효 실 강효실(姜孝實,1932 ~ 1996)
평양태생으로 16세인 1948년 연극인인 아버지 강홍식(姜弘植)밑에서 평양국립극단배우로 첫 경력을 쌓아 50년부터는 신협(新協)배우로 62년부터는 산하(山河)창단멤버로 무대를 지켜 왔다.
'세일즈맨의 죽음', '상아의 집', '열대어'등, 연간 두 어편씩 80년대 까지 76년 원로 연극인 네 분의 회갑을 기념해 공연하려던 ''유리동물원(테네시윌리암즈작)'의 96년 11월2일 향년64세에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장녀 현숙, 차녀 예숙, 3녀 연숙과 아들 민수가 있다.
강효실은 부산 피난 시절인 1952년 봄. 최무룡과 무대에서 연기 생활을 통해 맺어진 깊은 애정으로 이어져 함상(艦上) 결혼을 하였다.
"경기 없던 무대 생활에서 비록 살림은 구차했을 망정 알뜰한 가정을 꾸며 왔었다.
특히 김지미양과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은 61년 '아세아영화제'가 열렸을 때였다. 그의 어머니 또한 왕년의 '눈물의 여왕'으로 알려진 전옥(全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