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배자가 된 기황후(奇皇后)
이번 회에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고려출신의 여걸 기황후의 이야기를 올려 보았습니다. 기황후의 역활은 조선왕조를 역사의 장으로 끌어 내는 결과를 초래했던것이 아닌가..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여기서 제목을 "세계의 지배자가 된 기황후(奇皇后)라 달게 된것은 당시의 시대에 원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이였었고 징기스칸의 맥을 이어온 거대한 국가 였기에 제호를 그렇게 선정 하였습니다 꼬북이도~~ 고려사를 다룬 책을 낸적이 있지요
훗날 세계 제국의 지배자로 군림한 기황후의 출발은 절망뿐이었다. 고려인 기자오(奇子敖)의 막내딸이 원나라에 바쳐지는 공녀(貢女)로 결정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비참한 인생길을 동정했다. 목은 이색이 “공녀로 선발되면 우물에 빠져 죽는 사람도 있고, 목을 매어 죽는 사람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비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씨 소녀는 달랐다. 비록 자원한 공녀길은 아니지만 이왕 뽑힌 이상, 이를 새로운 인생의 계기 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원나라이니 만큼 더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원 황실에 포진한 고려 출신 환관들의 대표였던 고용보는 기씨 소녀같은 인물이 꼭 필요했다. 기씨 소녀라 면 황제 순제(1320~1370)를 주무를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고 그녀를 순제의 다과를 시봉하는 궁녀로 만들었다.
‘원사(元史) 후비열전’이 “순제를 모시면서 비(妃:기씨)의 천성이 총명해 갈수록 총애를 받았다”고 기록한 것처럼 그녀는 곧 순제를 사로잡았다. 여기에는 고려에 대한 순제의 남다른 추억도 작용했다. 명종의 장자로서 황태자였던 토곤 테무르(순제)는 1330년 7월 원 황실 내부의 싸움에 패배해 인천 서쪽 대청도에 유배된 적이 있었다. 1년 5개월을 대청도에서 보낸 그는 원나라로 돌아가 2년 후에 황제에 즉위한다.
동아시아에서 동유럽에 이르는 세계제국의 후계자에서 고려의 작은 섬에 유배되었던 기억은 어려운 시절에 대한 향수와 어우러져 기씨에 대한 호감으로 작용했다. 기씨는 순제를 통해 자기 뜻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기씨는 곧 큰 시련에 부딪쳤다. 다름 아닌 황후 타나시리의 질투 때문이었다. 타나시리는 채찍으로 기씨를 매질할 정도로 질투가 심했으나, 기씨 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순제를 내세워 타나시리와 싸웠다.
타나시리의 친정에 불만을 갖고 있던 순제는 기씨의 의도대로 1335년 승상 빠앤과 손잡고 타나시리의 친정을 황제역모사건에 연루시켜 제거했다. 그리고 타나시리에게 사약을 내렸다. 타나시리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기씨는 순제를 대주주로 한 원제국의 CEO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순제 도 그녀가 황후가 되는 것을 지지했으나 원 제국의 또 다른 대주주였던 빠앤이 적극 반대했다.
관직 이름만 246자에 달했던 빠앤은 사실상 순제를 능가하는 실력자였다. 고려의 공녀 출신이 황후가 되겠다는 구상은 원나라의 지배구조상 무리였다. 몽골족은 태조 징기스칸 이래 옹기라트 가문에서 황후를 맞이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에 따라 순제 5년(1337) 황실 전통에 따라 옹기라트 가문의 빠앤후두가 황후가 되었으나 기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빠앤까지 축출하기로 결심했다. 기씨는 1339년 순제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낳아 입지가 더욱 확고해졌다. 기씨의 조종을 받은 순제는 스승 샤라빤과 손잡고 빠앤을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드디어 세계를 지배하는 원제국의 제2황후가 되었다. 기씨의 성공에는 고려 출신들을 주축으로 철저하게 현지화 전략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원사(元史)’는 그녀가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먼저 징기스칸을 모신 태묘(太廟)에 바친 후에야 자신이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현지화 전략으로 명분을 축적하면서 원황실을 장악했던 것이다.
제1황후가 있었지만 자기 능력으로 황후가 된 기씨의 위세는 제1황후를 능가했다. 그녀는 흥성궁(興聖宮:현 베이징 중남해 자리)에 거주하면서 황후부속기관인 휘정원을 자정원(資政院)으로 개편해 심복인 고용보를 초대 자정원사(資政院使)로 삼았다. 자정원은 기황후를 추종하는 고려 출신 환관들은 물론 몽골 출신 고위관리들도 가담해 ‘자정원당’이라는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했다.
기황후는 1353년 14세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황태자로 책봉하는데 성공, 안정적인 경영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그녀는 고려 출신 환관 박불화를 군사 통솔의 최고책임자인 추밀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만들어 군사권까지 장악했다.
기씨는 이렇게 장악한 권력을 누구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공녀였던 그녀는 힘없는 백성들의 고초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원사 후비열전’은 1358년 북경에 큰 기근이 들자 기황후가 관청에 명해 죽을 쑤어주고, 자정원에서는 금은 포백·곡식 등을 내어 십여 만 명에 달하는 아사자의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은 원제국의 위기였다.
기씨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원 황실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원사’는 순제가 “정사에 태만했다”고 기록한다. 기황후는 이런 무능한 대주주를 젊고 유능한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황후는 순제를 양위시키고 황태자를 즉위시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칼리 피오리나 HP회장이 “디지털 경제시대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업의 과감한 체질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적극적 경영마인드를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 논리였다.
피오리나의 남편 프랭크는 회사를 그만두고 피오리나가 CEO가 될 수 있게 도왔지만 순제는 달랐다. 기황후의 지시를 받은 자정원사 박불화(朴不花)가 양위를 추진하자 순제는 거칠게 반발했다. 순제는 무능·태만해도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대신 황태자에게 중서령추밀사(中書令樞密使)의 직책과 함께 군사권을 주는 것으로 타협했다. 이것이 기황후의 실수였다. 당시 과감한 구조조정은 원나라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순제라는 무능한 최고경영자를 둔 원나라는 급속히 약화됐다. 1366년 원제국은 주원장에게 대도 연경을 빼앗기고 북쪽 몽고초원으로 쫓겨가야 했다. 공녀 출신으로 황후까지 된 기씨 소녀의 ‘몽골리안 드림(Mongolian dream)’도 몽골 초원에 묻혀져 잊혀졌다.
기황후의 친인척 기황후가 우리 민족의 뇌리에 부정적으로 각인된 이유는 오빠 기철(奇轍) 등 친인척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기철은 「고려사」반역조에 올라있을 정도로 평판이 나빴다. 기철은 동생 덕에 원나라로부터 정동행성 참지정사에 임명되고 고려로부터도 덕성부원군에 임명되면서 고려 임금을 우습게 알았다. 공민왕 2년(1353) 기황후의 모친 이씨를 위한 연회에서 공민왕이 조카인 태자에게 무릎꿇고 잔을 올리고 태자가 왕에 앞서 이씨에게 잔을 권하는 것을 본 기철은 기고만장했다.
그는 공민왕과 말을 나란히 하며 걸어가려다가 호위군사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하고, 공민왕에게 시를 보내면서 신하라는 말을 쓰지 않기도 했다. 여기에 조카 기삼만 등 친족들이 백성들의 전토를 함부로 빼앗는 전횡을 저지르면서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기철은 1356년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로 공민왕에게 주살 당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기황후는 태자에게 “이만큼 장성했는데 어찌 어미의 원수를 갚아주지 않느냐”고 원망했다. 1364년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한 후 충선왕의 3자 덕흥군(德興君)을 왕에 책봉하고 최유에게 1만 여 군사를 주어 압록강을 건너게 했다.
하지만 최영과 이성계의 군사에게 전멸 당하면서 친정 복권계획은 무위로 끝났다. 기황후는 충렬왕 이후 80여년간 계속되던 원나라에 의한 고려에 대한 공녀 징발을 금지하였고, 환관의 징발을 축소하였을 뿐 아니라, 고려를 원에 속한 하나의 성으로 만들자는 입성론 논의를 폐지하기도 하였다. 만약 기황후가 없었다면, 현재 우리는 이 땅에 한국어 대신 중국어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경기도에 있는 기황후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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