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법정법륜

[스크랩] 재가자의 수행이란 열심히 살아가는 것

오늘행복스마일 2017. 6. 9. 22:18

불교로라면 첫번째도 공부 두번째도 공부 마지막에도 공부수행에 소홀히하면 안된다. 물론 공부에는 법공부와 마음공부가 있을 것이다. 


법공부이든 마음공부이든 불교 공부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실천하고 바르게 믿을 수 있기에 진리 법을 공부하는 것이다. 불교의 교조인 붓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그분의 삶의 족적을 경배하고 칭송하며 기본적인 교리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 안하고 모르는 상태에서 믿기만 하면 맹신으로 흐리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산 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데 그 산 속을 무사히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간간이 있는 이정표도 읽어볼 줄 알아야 하고 지도책이 있다면 그것을 볼줄도 알아야 한다. 이정표와 지도책이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독하거나 볼줄 모른다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되고 결국은 곤경에 처하고 빠져나오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차를 가지고 있어도 운전할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물론 일반인들은 자동차 경주에 나가기 위하여 고도의 훈련기술을 연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혼잡한 도심에서 사고없이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멋진 차를 가진 보람을 느낄 것이다.


경전을 독송하고 외우고 그리고 밤새도록 기도하더라도 제대로 붓다의 가르침을 새기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구구셈을 알아야 산수를 하고 공식을 알아야 인수분해 풀 수 있는 것이다. 엉터리 공식 외우고 있으면 백년이 가도 인수분해 문제 못 푼다. 정답이라고 내놓아봤자 전부다 빵점일 뿐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정체성의 혼란이나 침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온갖 해괴한 설법들과 자기 멋대로의 교리해설들이 판을 친다. 모두다 올바른 정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흔히들 실천행을 이야기한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철학적 교리적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코너에 몰리면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라고 하면서 은근쓸쩍 빠져 나갈려고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서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아는 것과 헛된 지식을 뽐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재가자의 수행이란 열심히 사는 것 그게 수행이다'라고 말해준다. 세간사를 살아가는 우리 일반재가자들은 수행이라고 하면 그저 머리깎고 출가한 수행승들만의 전유물인냥 착각을 한다. 잘못 출가한 수행승들이 어리석은 재가자들에게 군림하기 위하여 이런말을 거침없이 써왔던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재가자들에게 있어서 수행이란 세간사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가 바로 수행이고 불교공부이다. 바른 직업을 가지고 거짓말하지 않고 주지 않는것을 훔치지 않고 처자식 먹여 살리고 때로는 막노동판에 몸을 굴려 가면서 땀을 흘리는 삶 자체가 바로 수행이다. 


굳이 어려운 이웃에 보시하고 고아원이나 양로원등에 가서 자원봉사하는 것만이 붓다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行 의 전부는 아니다. 꼭 남을 도와야 하고 보시를 해야만 실천 行 이라는 기준을 모든 재가자들에게 들이대어야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남을 돕기도 해야 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안주는 삶 자체를 살기만 해도 엄청난 실천행인 것이다.

 

하루를 먹기 살기 힘들고 취직도 못하여 직장도 없고 온갖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를 기대하거나 자원봉사를 기대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또한 온갖 세간사의 苦 속에 헤매고 있는 중생들에게 윤리적으로 청정한 삶만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붓다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살아가야 하는 세간사의 재가자들이 짊어 지고 가야하는 무거운 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붓다는 절대로 출가 수행승들에게 기대했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와 불도의 길을 똑같이 재가자들에게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재가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인 의무인 오계만은 적어도 준수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 했으며, 그리고 또한 올바른 수단, 올바른 행위 그리고 올바른 직업으로 생계를 꾸려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살생과 도둑질, 사기, 정직하지 못한 속임수등등을 통해 부정하고 부당한 수단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을 경계 했다.

 

붓다는 절대로 재가자들에게 완벽한 도덕적 정신적 수준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재가자들의 나약함과 결점을 오히려 연민의 정으로 바라 봤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중생들이 좀더 행복하고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수 있게 할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 했다. 항상 중생들이 붓다의 충고와 설법을 듣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불행이 줄어 들기를 바랐고, 그리고

중생들이 큰 불행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자식 두어명 낳아서 기르고 부모 공경하며 60평생 살아 오신 분들의 삶의 깊이는 솔직히 어지간한 수행승 못지 않다고 생각 한다.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 자식 남편 아내 부모 등 서로 갈등하며 참고 배우고 내맘대로 안하고 자제하며 살아 온 그 수행력이 얼마나 높은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세간사를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 지는가? 화를 낼 일, 감각적인 퀘락에 빠질일, 훔칠 일, 거짓말 할 일, 목숨을 죽일 일등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게 살아 온 세월을 아무나 하는게 아닐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주변을 한번 살펴 보기 바란다. 퀘락적인 감각에 빠져서 자신을 스스로 망치거나 또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수두룩 히다.

 

우리들은 죽어라고 돈 벌어야 하고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합니다. 직장도 구해야 하고 승진도 해야하고 보너스도 듬뿍 받아야 한다. 오계에 저촉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 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수행 일 뿐이다.

 

居塵離塵(거진이진) 이라는 말이 있다. 세간사의 먼지속에 살면서도 먼지를 떠나 있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세간사를 떠나 살 수가 없다. 세간사를 살다보면 너나 없이 얽히고 설킨 인연으로 때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중생계이다.

 

내가 사는 도시나 농촌을 떠나 산속에 홀로 살면서 세속의 먼지를 벗어나 사는 일은 어찌보면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세간의 먼지속에 살면서 그 먼지를 벗어나 사는 일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산속에 숨어 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세간속에 살면서 때 묻지 않고 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니다. 우리들은 어차피 세속을 떠날 수도 없고 먼지를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러기에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佛道(불도) 인 것이다.


오계를 가능하면 지키면서 "짐승보다 못한 놈, 저 사기꾼..." 이런 소리 안 들으면서 남의 가슴에 못을 박지 않고 살아 가는 수행만 할 수 있다면 몸이 부서져 죽고나면 다음생에는 분명코 하등한 윤회계에 떨어지지 않고 지금보다는 나은 윤회의 삶을 받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처 : 원불사(源佛寺)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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