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흐는다

[스크랩] 뽕나무 속에 숨겨진 에로티시즘

오늘행복스마일 2017. 7. 22. 06:22
 뽕나무 속에 숨겨진 에로티시즘 

 

율도의 뽕나무밭 살인사건

뽕나무과에 속하는 작은 키나무인 뽕나무는 오디라는 열매가 열려 오디나무라고도 부른다. 뽕나무 상(桑) 자는 3개의 가지가 뻗은 뽕나무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을 철칙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젊은 남녀가 몰래 만날 만한 장소가 없었다. 따라서 뽕잎을 따던 뽕나무 밭은 이와 같은 남녀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특히 뽕나무 꽃이 피는 4~6월은 젊은 남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계절로서, 키 작은 가지에 뽕잎이 무수하게 달리면 밖에서 잘 보이지 않아 밀회 장소로서는 그만이었다.  뽕나무를 밀회 장소로 이용한 것은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시경’의 ‘용풍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된 연애시가 실려 있다.
‘누구를 그리워하나(云誰之思) / 아름다운 강씨네 맏딸(美孟姜矣) / 만나자고 한 곳은 상중이고요(期我乎桑中)’
여기서 상중은 바로 뽕나무 밭이다. 따라서 상중은 남녀의 밀회 장소를 의미하고, 남녀 간의 밀회 또는 음행의 즐거움을 ‘상중지희(桑中之喜)’라고 했다. 남녀 간의 만나자는 약속을 일컬어 ‘상중지약’이라 한 것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서 비극적 사랑의 대명사인 ‘로미오와 줄리엣’도 뽕나무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 비극의 소재가 된 것은 바로 바빌로니아의 설화인 ‘피라모스와 티스베’이야기다.
바빌론의 한 마을에 살던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서로 첫 눈에 반해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지만, 양가 부모들은 둘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둘의 관계를 눈치 챈 아버지에 의해 티스베는 방에 갇혔고, 이웃한 두 집의 벽에 나 있는 틈으로 두 사람은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다 두 사람은 몰래 도망가기로 약속하고, 니노스 왕릉의 뽕나무 아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티스베는 갑자기 나타난 사자 때문에 몸을 숨겼고, 한 발 늦게 온 피라모스는 피투성이가 된 채 떨어져 있는 티스베의 베일을 발견하고 그녀가 사자에게 죽음을 당한 줄 안다.

절망한 피라모스는 뽕나무 밑에서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찔러 자살한다. 잠시 후 숲 속에서 나온 티스베는 자신 때문에 자살한 피라모스를 발견하고는 그의 뒤를 따라 자결한다. 이 둘의 피가 흘러서 흰 뽕나무 열매가 진홍색으로 물들었고, 오늘날까지 뽕나무는 새빨간 오디를 맺는다는 이야기다.

뽕잎에는 단백질이 많아

뽕나무와 에로티시즘과의 연관은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다. 누에는 뽕잎만을 먹고 단백질 덩어리인 비단을 토해낸다. 이는 뽕잎이 콩 다음으로 단백질이 많은 식품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 지난 2001년에는 누에의 수나방과 번데기를 원료로 하여 성호르몬과 정자 수, 지구력을 현저히 증가시키는 한국형 발기부전 치료제가 개발되기도 했다. 또 중앙아시아에서는 양고기를 구울 때 뽕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면 보양 효과가 증진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야기를 다시 살인사건이 벌어진 조선의 밤섬으로 되돌려 보자. 당시 밤섬은 오늘날처럼 무인도가 아니라 꽤 많은 가구가 거주하고 있던 유인도였다. 한글학회가 편찬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밤섬은 고려 말기 때 죄인을 귀양 보내는 곳이었다. 그 후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배 만드는 기술자들이 밤섬에 정착했다. 이들의 배 만드는 기술은 상당히 뛰어나 한강 상류로는 단양과 영월까지, 한강 하류로는 강화도와 서해에서까지 배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였다. 동국여지비고라는 옛 문헌에 의하면 당시 율도는 길이가 무려 7리나 되는 큰 섬이었다. 또 섬의 복판에는 암수 두 그루의 큰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 말의 충신 김주가 심었다고 해서 충신목으로 받들여졌는데, 밤섬의 상징목이기도 했다. 배를 만들거나 물고기를 잡고 채소를 키우는 등 밤섬 주민들의 생활은 비교적 풍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 도둑이 없는 마을로도 유명했다. 다만 한 가지 근심이 있었다면 물난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밤섬은 큰 홍수가 나면 섬이 물속에 거의 잠겨 버린다. 그래서 밤섬주민들은 궁리끝에 부군신당에 모여 함께 무사 안녕을 비는 제를 올렸다. 때문에 밤섬 주민 간의 유대는 어느 마을보다도 깊었다.

그런데 이런 섬 마을에서 처참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아마 섬 전체가 발칵 뒤집혔을 만했다.

굉음과 함께 사라진 밤섬

근대에 들어서 밤섬은 두 차례나 큰 위기를 겪었다. 1925년 일어난 사상 최대의 을축년대홍수로 인해 주민들은 거의 모든 재산을 잃었다. 6?25전쟁 때는 폭격으로 밤섬의 집들이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밤섬이 지금처럼 무인도로 변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밤섬에는 1968년까지만 해도 62가구 443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밤섬 주민들은 호롱불을 켜고 한강물을 그대로 떠다 밥을 지어 먹고 식수로 마셨지만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은 않았다.

하지만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밤섬은 굉음과 함께 폭파되었다. 그 후 하루 687명씩 연 7만 명의 인부와 수많은 중장비가 투입되어 트럭 4만대 분의 돌과 그보다 더 많은 흙을 밤섬에서 걷어냈다. 그 결과 그해 5월 말 밤섬은 강물 높이인 표고 4미터까지 깎여져 완전히 물속에 잠겨버렸다. 밤섬에서 나온 흙과 돌은 그대로 바로 옆의 여의도로 옮겨갔다. 밤섬이 사라진 것은 바로 여의도 때문이었다. 여의도의 윤중제를 쌓아올리고, 한강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하구 쪽을 넓히기 위해 밤섬을 폭파 해체한 것이다.

밤섬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밤섬이 잘 내려다보이는 마포 창전동 와우산 기슭의 연립주택으로 이주했다. 그 후 1986년 무렵부터 밤섬에 새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강관리사업소가 생겨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면서부터였다. 결국 서울시는 1999년 밤섬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밤섬에는 조류 41종 이상, 식물 189종 이상, 곤충 15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다. 청둥오리와 해오라기, 개개비, 쇠물닭, 도요새, 비오리 등의 새가 밤섬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 또 원래는 겨울철새였으나 아예 밤섬에 정착해 텃새가 되어버린 흰빰검둥오리도 흔히 볼 수 있다. 생태계의 맨 위자리를 차지하는 사냥꾼 황조롱이도 밤섬에서 먹이사냥을 할 정도이다.

도심 한복판의 철새도래지 장관

1999년 밤섬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 밤섬에서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나무는 버드나무이다. 버드나무는 홍수에 강해서 뿌리가 뽑혀도 물이 빠지면 곧바로 땅에 뿌리를 내려 다른 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1차적 환경을 만들어준다. 때문에 밤섬에는 버드나무를 비롯해 느릅나무, 억새, 갈풀, 환삼덩굴 등이 정글처럼 우거져 있다.

또 밤섬은 잉어나 붕어, 누치, 쏘가리, 메기, 뱀장어 등의 산란장소로서도 매우 적합하다. 이런 환경적 요소가 수많은 새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셈이다.

특히 겨울에는 시베리아나 몽골 등의 북방 지역에서 수천 마리의 겨울철새들이 모여들은 밤섬은 장관을 이룬다. 덕분에 서울은 전 세계적으로 도심 한복판에 철새도래지가 있는 유일한 수도가 되었다.

그럼 폭파 해체되어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밤섬이 어떻게 이처럼 많은 생명을 불러 모으는 생태계 보전지역이 될 수 있었을까?

폭파 전 총 5만2천여 평(주민 거주지는 약 1만7천여 평)이었던 밤섬은 폭파 뒤 약 4만7천여 평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주민 거주지 중 많은 면적이 날아가 버려 강물이 불어나면 섬 전체가 거의 물에 잠겨버리는 쓸모없는 땅이 되었다.

그러나 밤섬은 1985년 5만3천여 평, 1991년 6만여 평, 1996년 7만여 평, 2002년 7만5천여 평으로 차츰 늘어났다. 특히 폭파 전 마포 쪽의 윗밤섬은 1천여 평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4만여 평으로 늘어나 아랫밤섬보다 오히려 더 커졌다.

밤섬이 이렇게 커진 이유는 밑바닥이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1968년의 폭파에도 불구하고 섬의 기저를 이루는 암반은 그대로 남아서 상류로부터 떠내려 오는 흙과 모래들을 품안에 켜켜이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때 조선업과 뽕밭으로 번성했던 밤섬이 이제는 도심에서 보기 힘든
온갖 생명들이 번성하는 생태보전지역으로 변했으니 이 또한 상전벽해((桑田碧海):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라는 뜻으로, 세상(世上)이 몰라 볼 정도(程度)로 바뀐 것. 세상(世上)의 모든 일이 엄청나게 변해버린 것)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이야기 실록중에서 -

출처 : 바람에 띄운 그리움
글쓴이 : 수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