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安城) 죽주산성(竹州山城)
죽주산성(竹州山城)
태평미륵이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매산리 비봉산에 죽주산성(竹州山城)이 있다.
죽주(竹州)는 죽산(竹山)의 옛 이름이다.
죽주산성은 신라 때 내성을 쌓고, 고려 때 외성을 쌓았다.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본성은 1.7㎞이고, 외성 1.5㎞, 내성 270m로
세 겹의 석성(石城)이 지금도 남아 있고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네 곳의 문터와 장대터(將臺址)도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신라 말기에는 기훤이 본거지로 삼아 9년을 버티었고,
고려 말 몽골군의 침입 때는
산성방호별감(山城防護別監)을 맡고 있던 송문주 장군이
주민들과 함께 파죽지세로 공격해오던
몽골군을 물리치고 전공을 세웠다.
그 뒤 임진왜란 때도 격전지가 된다.
왜군에게 내주고 말았던 죽주산성을
조방장(助防將) 황진 장군이 기습작전으로 탈환에
성공하자 왜군은 더 이상 용인과 이천을 넘보지 못했다.
죽주산성의 중요성은 교통의 요지요,
군사전략적인 요새였기 때문이다.
『선조실록』에 사간(司諫) 이덕형은 상소를 올려
"죽산 취봉(鷲峰)은 형세가 매우 든든하여 단 한 명의
군사로도 길을 막을 수 있는 험한 곳"이라 알리고 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안성벌은 물론이고 이천·장호원이 한눈에 잡히며,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남과 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였으니 이곳을 아군의 기지로 삼으려는
시도는 나라마다, 전시마다 치열하였다
2 0 1 4. 7. 1 8. 하 얀 머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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