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거룩한삶

[스크랩] 삶은 다양한 색깔로

오늘행복스마일 2018. 3. 28. 08:28
차 한잔의 사색


*◐  삶은 다양한 색깔로  ◑* 

삶은 날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삶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굳이 
체계적인 이론을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감각을 열기만 하면 된다. 
삶을 향해 눈을 열고 주변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사물들이 다가오도록 놓아두면 된다. 
시인 셀마 메르바움 아이힝거
(Selma Meerbaum Eihinger)는 
다음 구절로 시를 시작한다. 
보라, 삶은 다양한 색깔로 이토록 화려하다. 
이 시를 읽으면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삶의 다른 부분이 다가온다. 
시의 구절과 표상, 인상을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서 삶에 대한 즐거움이 자란다. 
어느덧 삶이 가볍고 밝아짐을 감지한다. 
이런 시를 주의 깊게 읽는 사람, 시가 자신  
안에서 작용하도록 받아들이는 사람은  
시에서 무엇인가가 작동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보라, 삶은 다양한 색깔로 이토록 화려하다. 
이 안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공이 있다. 
많은 입술들이 기다리고, 웃고, 작열하며 
친구들을 소개한다. 
길이 뻗어나가는 모습 하나만이라도 보라. 
저다지도 넓고 밝다.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새로운 하루하루가 이와같은 초대이다. 
새로운 아침마다 삶은 나를 기다린다. 
밝고 화려하게. 

/ 안셀름 그린 著「사는 것이 즐겁다」에서  

 

 시를 읽는 이유 



"시를 꼭 읽어야하는 이유가 뭘까요?"
...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어제 구입한 시집을 펼쳤다.
김현 시인의 <입술을 열면>이었다.
'강령회'
"영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몸이 느껴질 뿐입니다."
...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움직이는 것은 몸이지만, 그 안에서 법석이며 
몸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영혼이다.
...시를 읽을 때, 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나는 이런 단어에 끌리는구나, 
이런 소재에 반응하는구나, 
이런 문장에 마음을 내어주는구나...
심신을 두드리는 시를 읽고 나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깨달음이 나를 향한 찬찬한 응시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저 단어가 있었다.
저 단어가 내 인생에 단단한 매듭을 만들어 주었다.
시를 읽음으로써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배양되기도 한다.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가 있다.
나는 이 시를 수능때 처음 접했다.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난생처음 외로움을 직면하는 시다.
모르는 작품이 나오면 으레 당황하게 되는데, 
저 시는 읽는 순간 내 몸을 파고들었다.
파고든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시적 상황에 깊이 스며든다는 것이다.
시적 화자의 입장이 되어 움직인다는 것이다.
시를 읽는 일은 시적 화자가 되어봄으로써 
누군가를, 누군가의 인생을 헤아려보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일상의 새로운 면, 언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2002년에 김혜순 시인의 시집 <불쌍한 사랑 기계>를 읽었다.
'코끼리 부인의 답장'이라는 시를 읽을 때였다.
"다시 또 얼마나 숨 막고 기다려야
앙다문 입술 밖으로 불현듯
불멸의 상아가 치솟게 되는지
라는 구절이 가슴에 빗금을 긋고 지나갔다.
시집을 덥고 나서도 한동안 '불현듯'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맴돌았다.
불현듯의 어원이 
'불 켠 듯'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릎을 탁 쳤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저 단어가 있었다.
무수한 '불현듯'들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여기 올 수 있었다.
'다르게 보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내가 시를 읽는 이유다.
진은영의 '가족'을 읽었을 때는 
둔중한 것에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가족을 응시하지 않았다면, 
똑같은 광경을 다르게 보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힘쓰지 않았다면 
저런 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시는 이처럼 편견을 뒤흔든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도 
자세히 살펴보면 어제와 달라져 있다.
어제까지는 없었던 벽보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매일같이 듣던 새소리에서 새로운 기척을 느끼기도 한다.
발견하려는 태도와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은 
일상에 생기를 가져다준다.
익숙함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낯섦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외연뿐만 아니라 
삶을 감싸는 사고의 외연도 넓혀준다.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발견, 타인의 발견, 일상과 언어의 발견, 
그리고 다르게 보기의 발견은 단숨에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은 가깝게는 취향에서 멀게는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나를 구성하는 또 다른 자극이 된다.
질문을 던지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답을 구하며, 
나는 진짜 나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런 시를 만나면 
그것을 알게 된다.
불. 현. 듯.


/ 오은

  시에 관한 시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그전에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이
꼭 새벽으로 전화했다
너무 아파서
시인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한두 해 지나자 전화가 끊겼다
늘 죽고 싶다던
그 사람 죽었을까 
털고 일어났을까
몇 년째 감옥에 있는 사람이
꽤 오래 동안 시를 써 보내왔다
시가 늘 부끄럽다고 했는데
마음의 알몸 같은 거
눈물 같은 거였다
사람이 살다가 
누구에겐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몇 사람이라도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
시라면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

/ (이상국·시인, 1946-) 
    
내가 시를 쓰는 건

내가 시를 쓰는 건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나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하나를 쓰고 그만큼
둘을 쓰고 그만큼
셋을 쓰고 그만큼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에게 편질 쓰는 건
언젠가 돌아올 너와 나의 이별
그것을 위해서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너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아무렇게나 버리기엔 너무나 공허한 세상
소리 없이 떠나기엔 너무나 쓸쓸한 우리
그냥 작별하기엔 너무나 깊은 인연
내가 시를 쓰는 건
하나 하나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잊기 위해서다
그와 같이
내가 네게 편질 쓰는 건
머지않아 다가올 너와 나의 마지막
그 이별
그걸 위하여
하나 하나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잊기 위해서다.

/ (조병화·시인, 1921-2003) 

출처 : 바람에 띄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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