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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고의 행복은 살아있다는 자체다.

오늘행복스마일 2018. 8. 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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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행복은 살아있다는 자체다.

 

전국을 돌며 유랑생활을 양구 펀치볼과 투타연 계곡을 경유하면서 접었다. 폭염 탓이다. 숲속에 모기도 지쳐 날기를 포기했다. 공원 도로위에는 삶을 포기한 수많은 지렁이시체가 널렸다. 하물며 인간이란 동물도 별 수 없잖은가. 더구나 인생환승기다. 장년에서 노년으로 세월을 바꿔 타는 연식이다 보니 기력이 폭염을 이기지 못했다. 오만방자하게 열기를 과시하는 폭염도 곧 가을의 저승사자가 데려가겠지만 한여름 이기간이 숨쉬기가 힘겹다. 생의교차로 한가운데서 바른길을 벗어나 달려온 세월, 내가 마음의 눈을 떳을 때는 사방이 칠흙같이 어두운 숲속에 홀로 남겨져 있음을 알았다. 세월에 바라고 풍우에 지쳐 언덕에 기울려 솔방울만 다닥다닥 키우고 있는 노송이 같은 처지임을 알고 그늘을 내어준다. 바람도 지쳐 쉬고 있다. 오직 흐르는 물만이 한 가닥 희망을 안겨준다.

 

 

무성한 이파리가 뙤약볕에 고단한 현실을 감내하고 있다. 세상도 중후장대(重厚長大)한 트랜드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변해가는 일대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옥조로 살아왔다면 현시대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선호한다. 대화의 단절도 경험한다. 영혼과 품격의 아우라가 남아 있던 그 때 시절은 세월 속에 묻혀갔다. 누군가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뇌까렸지만 미사여구다. 과거의 청춘들은 교양에서 시작했지만 현실의 젊은이들은 부분적으로 이념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개울 바닥에서 그늘가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면서 옆의 젊은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교양 있는 단어는 없다. 역사가 발전한다면 삶의 트랜드도 발전하고 인간도 발전된 모습으로 비춰야하거늘 어쩌면 50년 전 우리와 판박이인지 문명이 발전하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 발전하는 것이다. 이 젊은이들도 생의교차로에서 벗어나 내 나이에 눈을 떳을 때는 나와 같이 칠 흙 같은 어둠속에 홀로 남겨지리라.

 

 

법전이 두꺼워야 법률가가 힘을 쓰고 환자가 많아야 의사가 재미나고 범법자가 많아야 변호사가 살맛난다. 국민이 모두 건강하면 의사가 소용없고 범법자가 없으면 변호사가 필요 없다. 한결같이 사회는 이들을 선호하고 동경한다. 이들은 현 시대에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다. 이들이 행복해 보인다. 누군가 현실은 수단이 목적을 앞지른다고 한다. 내가 왜 사는지 뒤돌아보면 살기위한 수단은 무수히 존재했다. 그러나 삶의 목적은 불투명했다. 인생의 가치를 저버리면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행복이 물질과 치환되면 眞如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둘레 길을 걷고 부채 길을 걷고 1000고지를 올라도 그 목적이 이뤄졌을 때는 행복감을 느낀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열심히 걷는다. 피로하고 힘들다. 지친다. 물론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이지만 근본원인은 끊임없는 목적을 향한 집념이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집념이 과하면 과욕이 되고 우리가 정상에 올라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이 집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쉬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수단을 정당화하며 시련과 실패 혼란과 갈등 모함과 질투 증오와 분노 같은 일상의 모습을 경험했다. 끊임없이 집념에 사로잡혔다. 누군가 인생이 외로운 것은 평생을 두고 읽을 고전한권이 없기 때문이라는 명언도 말한다. 그러나 세월을 환승하는 이 나이에 탐탁한 고전은 없다. 오직 뇌리에는 집념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은 죽어야 사라진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한다. 목적은 행복이고 수단은 돈이다. 돈이 행복을 정당화하는 세태에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반면 아무나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텐트치고 유랑생활에서 느끼는 것은 아파트생활보다 더 쏠쏠함을 느낄 때가 있다. 밥맛도 더 좋고 자연과 더불어 노래도 부르고 글도 써본다. 신기함과 신비함도 경험한다. 나만의 세상에 버려져 홀로 내 세상에 마음껏 산다는 해방감이 독립만세를 부른다. 절박한 삶을 살아야하는 우리는 늘 각박했다. 불철주야 애를 쓰고 일구월심으로 고민하고 자린고비(玼吝考妣)로 생활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오탁악세(五濁惡世)가운데에서도 청풍명월(靑風明月)을 잊지말아야한다는 우리네 선조님들의 여유를 익히지 못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여유로운 시간은 돌아온다. 우리는 자신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명제도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라는 촌철살인의 명귀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그래서 유학도 날 위함이요 모든 종교도 날 위함이며 모든 학문도 날 위함인데 인생을 노년에 이른 자가 어찌 석가와 노자의 영역을 구별하고 산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는가. 라고 말하지만 구별하고 구분해야 한다.

 

 

만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며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하지만 즉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 라는 명귀는 맞는 말이고 중요한 성찰이다. 그러니 독선은 피해야한다. 아울러 역사는 흥망성쇠이고 개인은 길흉회린(吉兇悔吝) 또는 길흉화복 이지 않은가. 세상이 마음먹기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푸른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야하고 역사에는 영웅호걸이 있어야한다. 주나라에는 강태공이 있었고, 제나라환공에게는 관중이 있었으며, 월나라구천의 와신상담에는 범려가 있었다. 한나라 유방에는 장량이 있었고, 모택동에게는 주은래가 있었고, 시진핑에게는 왕후닝과 유허가 있다. 홀로는 독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모두가 어울려 같이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그래서 지식보다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은 입을 열지만 지혜는 귀를 연다고 한다. 어차피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물질의 결핍이 있어도 비교대상이 주위에 없으면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상대적이며 또한 절대적이다.

 

 

이제 우리는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에서 존재를 중시하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해야한다. 우리는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것이 목숨이기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자다. 그러므로 우리지금 한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최고의 행복은 살아있다는 자체다.

그동안 텐트유랑생활에서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현실이 최고 행복한 순감임을 알게 했다.

 

2018730일 월요일 오후 730

 

율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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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겨울 바다와 파도
글쓴이 : 이 율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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