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 10. 03 11:0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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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운영자 |
제목 | 김해김씨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은미님의 글입니다. : 저희 할아버지때 경주에서 제가 지금사는곳으로 이사를해서 친척들이 다 지금 이쪽에살고.. : 저는 부호군공파 70대손으로 알고잇는데요.. 부호군공파란게 실제로 있는지.. : 할아버지 성함은 김 자 영 자 근 자 이시고. 아버지 형제분들에 성함엔 "상"자가 제 사촌들과 남동생 이름에는 "동"자 돌림인데요.. : 부호군공파란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저희 선조분들이 어떤 사람이였는지도 궁금하구요. : 얼핏 김유신 장군이 저희 조상이란거 들은 기억이있는데.. : 답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은미님! 홈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해김씨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라 하면 조선시대 때 오위(五衛)에 속해 있던 종4품의 무관직인 부호군(副護軍)을 지내신 조상의 자손들을 말합니다. 김해김씨 선조중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내신 분은 많을 수 있겠으나 보첩(譜牒)에 부호군(副護軍)을 중조(中祖)로 하여 세계(世系)가 기록되고 있는 파(派)는 휘거공파(諱巨公派), 휘천익파(天翼派派), 휘우류파(諱宇榴派) 등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부호군공( 副護軍公) 휘거공파(諱巨公派)는 시조(始祖)는 가락국 수로왕(駕洛國 首露王)으로서, 조선조 초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行龍양衛) 부호군(副護軍)을 지내시고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증직(贈職)되신 휘 거공(巨公)공을 중조(中祖)로 모시며, 세거지(世居地)는 경주(月城陽北斗山)이며, 항렬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副護軍公諱巨公派(부호군공휘거공파) 16세○洛(낙)泳(영) 17세相(상)柄(병)○ 18세○烈(열)燮(섭) 19세在(재)圭(규)○ 20세○鉉(현)錫(석) 21세泰(태)源(원)○ 22세○植(식)榮(영) 23세顯(현)炯(형)○ 24세○培(배)採(채)自副護軍公十六世로 起洛字 부호군공( 副護軍公) 휘천익파(諱天翼派)는, 시조(始祖)는 가락국 수로왕(駕洛國 首露王)이고, 중조(中祖)는 1500년도 초에 절충장군(折衝將軍) 행(行) 용양위(龍 衛) 부호군(副護軍)을 지내신 휘 천익(天翼)공 이시고, 세거지는 경주(月城外東上活)이며, 항렬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2) 副護軍公 諱天翼派 (부호군공휘천익파) 12세○賢(현) 13세榮(영)載(재)○ 14세圭(규)○ 15세○銖(수) 16세泓(홍)○ 17세○柱(주)林(림) 18세煥(환)炳(병)○ 19세○採(채)基(기) 20세鍊(연)錫(석)○ 21세○淳(순)河(하) 22세東(동)相(상)○ 23세○燮(섭)熙(희) 24세均(균)在(재)○ 25세○鎭(진)鎔(용) 26세浩(호)泰(태)○ 27세○模(모)根(근) 28세永(영)灝(호)○ 29세○培(배)坤(곤) 30세鎬(호)鉉(현)○ 31세○洙(수)洛(낙) 自副護軍公十二世로 起賢字 부호군공( 副護軍公) 휘우류파(諱宇榴派)는, 시조(始祖)는 가락국 수로왕(駕洛國 首露王)이고, 중조(中祖)는 조선 현종계묘생(1663년)으로 용양위 부호군(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行龍양衛副護軍)을 지내신 휘 우류(宇榴)공 이시고, 세거지는 포천(抱川內村奄峴)이며, 항렬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3) 副護軍公諱宇榴派 (부호군공휘우류파) 6세○植(식) 7세顯(현)○ 8세○培(배) 9세鍾(종)○ 10세○泰(태) 11세榮(영)○ 12세○謙(겸) 13세在(재)○ 14세○鎭(진) 15세浩(호)○ 16세○根(근) 17세炳(병)○自副護軍公六世로 起植字 님께서 제시한 자료로는 위 어느 부호군공파에 해당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으니 집안에 보첩이 있으면 살펴보거나 어른들에게 물어서 중조(中祖)가 어느 분인지 알아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조(中祖)가 거공(諱巨公)으로 확인되고 아버지의 항렬자가 상(相)자라면 님의 항렬자는 열(烈)자가 되는 것으로서 부호군공( 副護軍公) 휘거공파(諱巨公派) 18세이며 중조 거공할아버지의 17대손(17세손)이 되시는 것이나 추정으로 전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다시 한번 더 확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김유신 장군은 김해김씨 전체의 공통조상입니다.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歷代人物(역대인물) 김무력(金武力); 가락국 제10대 구형왕(仇衡王)의 셋쩨왕자이다. 나라가 신라에 병합되여 553(眞興王14)산라국.아찬(阿찬)으로 신주군주(新州軍主)가 되었고 이듬해 백제의 관산성(管山城) 싸움에서 백제군사 삼만여명을 도륙(屠戮)하고 백제,성왕(百濟,聖王)을 사료 잡았다. 위와같은 전공으로 신라국(新羅國) 최고의 벼슬인 각간(角干) 까지 승차하였다. 김서현(金舒玄); 김무력의 아들이다. 대량주,총관(大良州,總管)으로서 백제와 여러번 싸워 소판(蘇判) 대량주,도독(大良州,都督)등을 역임하고 629(眞平王51)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함락(陷落)시키고 각간(角干)에 올랐으며 그의딸 문희(文姬)는 신라왕족 김춘추(金春秋)에게 출가한후 김공께서 신라,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에 등극함으로서 김문희는 문명왕후가(文明王后) 되었다. 김유신(金庾信); 595(진평왕17)-673(문무왕13)때의 인물이다. 아버지 김서현(金舒玄)과 신라왕족 만명부인(萬明夫人;갈문왕의 손녀이고 肅歇宗의딸)의 장남으로 태어나 609(眞平王31) 15세에 화랑이되고 따르는 무리인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花郞精神)으로 심신(心身)을 단련하였다. 629(진평왕51)년 중당(中幢)의 당주로서 낭비성(娘臂城) 전투에 출전하여 고구려군을 크게 물리치고 압량주,군주(押梁州,軍主)가 되었으며 644(善德女王 1)반역을 꾀하는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을 제거하고 무산성(茂山城),감물성(甘勿城)에 친입한 백제군(百濟軍)을 격퇴하였다. 648(眞德女王 2) 백제의 대량주(大良州)를 쳐부수고 12성(城)을 함락시킨 공으로 이찬(伊찬)이 되고 상주,행군,대총관(尙州行軍大總管)에 올랐으며, 다음해인 649년에 다시 친입하는 백제군을 도살성에서 쳐부수었다. 654(진덕여왕 8)년 왕이 후사없이 죽자 김춘추(金春秋)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660년(武烈王 7)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당나라,소정방(唐나라,蘇定方)과 연합하여 백제국을 멸망시키고 신라국이 삼국통일(三國統一)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663(文武王 3)년 백제의 부흥군을 토벌하고 665(문무왕 5)년 당나라에서 봉상정경,평양군,개국공(奉常正卿,平壤郡,開國公)에 봉해졌다. 668(문무왕 8) 대총관(김유신)이 고구려 정벌에 나설떼 문무왕께서는 "공은 나라의 보배인데 적진으로 갔다가 예측하지 못한일이 발생하면 이나라의 장래를 누구와 의론하겠소 공은 성내에 머물러 나라를 지키게 하시오 은연중 장성(長城)과 같아 근심이 없을 것이오" 말씀 하시므로 직접 출전하지 못하섰다. 고구려를 정벌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 그때의 신라최상 관직이 角干 뿐이였는데 김유신을 위하여 大角干직과, 太大角干직을 설관 하였다)에 승차하고 삼국을 통일한후 당나라 지원군을 돌려보내고 고구려를 완전히 평정하엿다 673(문무왕13)에 죽으니 유해는 금산원(金山原)에 장사 지냈고 835(흥덕왕10)에 흥무왕(興武王)으로 추봉(追封)되었으며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주백으로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받을고 있을뿐만 아니라 국내곳곳에 12개 사우를새위 지방마다 유림에서 춘추제향을 받들고 있다. 김흠순(金欽純) 혹은 흠춘(欽春)으로 전하는 김유신공의 동생이다. 진평왕때 화랑이 되고 660(무열왕7)년에 백제를 정벌할 때 헝인 김유신공을 도와 전공을 세웠으며 662(문무왕2)년에는 내사지성(內斯只城)에 있는 백제군사를 격파하였다 또한 663년(문무왕3)에는 백제의 거열성(居烈城)과 거물성(居勿城) 및 사평성(沙平城)을 공락하여 항복을 받았고 668년에는 당나라 군사와 함께 고구려를 정별할 때 대당총관(大幢總管)이 되어 크게 공을세위 각간(角干)이 되었다. 문무왕이 흠순각간을 제상으로 삼으니 나라가 편안하여 현상(賢相)으로 명성(名聲)을 뗄쳤다. 김삼광(金三光) 김유신의 큰아들.당(唐)나라에 살면서 좌무,위익부,중랑장(左武衛翊府,中郞將)이 되어 당나라 장군 유인궤(劉仁軌)와 함께 고구려를 정벌하였다. 김원술(金元述) 일찍이 화랑이 되었다. 법민왕이 고구려의 백성을 받아 들이고 백제의 옛지역을 차지하니 당나라 고종이 크게노하여 장수들에게 신라군사를 토벌하라고 명하였다. 이떼 왕은 장군 의복(義福)등을 출전시켜 대방(帶方)들판에서 방어 하였으나 패하였다 원술은 이싸움에서 죽음을 각오하였으나 담릉(淡凌)의 만류로 패잔병의 대열에 끼어 도라오니 그의 부친 김유신은 "원술은 왕명을 욕되게 하였을뿐 아니라 가훈 도한 저버렸으니 참(斬)하는 것이가하다."하였다 그려나 왕이 용사(容赦)하였으나 원술은 부끄럽고 후회되어 아버지의 면전에 머물지 못하고 전야(田野)에 숨어살다가 부친상을 당하여 어머니께 뵈옵기를 청하자 어머니의 말씀인즉 "부인은 삼종(三從)의 의(義)가있으니 자식의 뜻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나 원술은 이미 그 애비에게 자식이 되지 못하였으니 내가 어찌 그의 어머니가 될 수 있으라"하시고 뵈옵기를 거절하였다 전갈을 받은 원술은 탄식하면서 "담릉(淡凌) 때문에 죽을 기회를 놏쳤도다" 하고 태백산으로 입산하였다 그후 당나라 군사가 매소천성(買蘇川城)을 공격하므로 원술은 전날의 부끄러움을 씻고자 힘것싸워 전공을 세웠으나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부담 스럽게 여겨서 벼슬길에 복귀하지 않고 일생을 맟쳤는데 그에 자손들은 진주김씨(晉州金氏)로 관행을정했다. 김반굴(金盤屈) 김흠순의 아들 660(武烈王7)년 황산벌 싸움에서 백제의 계백장군이 거느리는 결사대에 의해 전세가 불리하자 흠순장군께서 아들인 반굴에게 "신하가 되어 임금님게 충성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며 위험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것이 충효인 것이다."하시자 반굴은 홀로 적진속에 뛰어들어 전사하였다. 그려자 신라군의 사기가 충천하여 백제군을 섬멸하자 太宗武烈王은 金盤屈을 급찬(級찬)에 추서(追敍)하였다. 김윤중(金允中) 김유신의존자; 신라 성덕왕때의 장군이다 대아찬(大阿찬)으로 왕의 총애를 받자 왕족들이 질투하였다. 733년(성덕왕32)에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 발해를 공격할것을 요청하였다. 그때김윤중을 장수로 지명되고 그에아우 김윤문(金允文)등 3명의 장수와 함께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발해를쳤다. 김영윤(金令胤);김반굴의 아들이다. 공은 세가(世家)에 성장하여 명예로서 자부하였다 684년(신문왕4) 고구려의 잔당 실복(悉伏)이보덕성(報德城)을 의거하여 배반하니 왕은 토벌하라 명령하고 공을 황금서당,보기감(黃衿誓幢步騎監)으로 삼았다. 전선으로 떠날 때 남긴 유언에는 "내가 이번출전으로 종족이나 민족에게 굳은 소리를 남기지 않겠다"하였다. 가잠성(가岑城)에 도착한바 적군은 완벽한 진을치고 싸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우리군의 장수들은 적의 동태를 파악한후 텀을보아 싸우자하고 하고 감망할 때 김영윤 장군은 싸움에는 전진만이 있을뿐이라 호통치며 적진에 뛰어들어 격열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를 보고받은 왕은 목매어 말씀하시기를 "부자(父子)의 의열(義烈)이 가상하다" 하시고 관작을 추서하고 유족에게 상을 후이 내렸다. 김 암(金 巖); 김윤중의 손자 암(巖)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젊어서 이찬(伊찬)이 되어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가 되었다. 혜공왕때 귀국하여 사천대박사(四天大博士)가 되고 양주,강주,한주(良州,康州,漢州)3주의 태수를 역임하고 집사시랑(執事侍郞) 패강,진두상(浿江鎭頭上)이 되어 가는곳 마다 백성들을 가족처름 보살폈다. 778년(혜공왕14)에 왕명으로 일본국을 방문한즉 일왕이 어질음을 알고 억류하려 하였는데 당나라 사신 고학림(高鶴林)이 김암을 보고 매우 방가워하니 왜인들의 생각에 김암은 당나라 까지 알려저 있는 인물로 짐작하여 감히 만류의 뜻을접고 본국으로 정중히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왔다 김심희(金審希); 854(문성왕16)-923(경명왕7) 9세에 혜목산(慧目山)의 원감대사(圓鑒大師)로부터 도(道)를 배우고 888(진성여왕2)년 송계(松溪)에서 포교하였다.진례성(進禮城:김해)에 봉림사(鳳林寺)를 세우고 도를 말하니 그때 효공왕이 사신을 보내어 법력을 빌어 기원하였다. 918년(경명왕 2) 경명왕의 청으로 왕궁에 들어가 국사에 추존하고 법응대사(法膺大師)의 호를 받았다. 923년(경명왕 7) 봉림사에서 70세로 죽으니 경명왕은 진경대사(眞鏡大師)라 중시(贈諡)하고 탑호(塔號)를 보월능공(寶月凌空)이라 하였다. 근세까지 탑비가 봉림사에 전해 있었는데 왜구들이 서울에 옴겨둔 것을 현재는 국립박물관에 이전되었다. |
출처 : 김해김씨족보
글쓴이 : kimheaki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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