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에 자리한 그 옛날 역사의 뒤안길을 서성였네~
몇십년만의 찜통더위로 떠들썩하던 여름도 소리없이 물러나고, 조석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돌게 되니,근 20여일을 몸살감기로 고통스럽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듯하여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서는데,하늘이 저만큼 높아져 있어 가을이 문턱에 와 있음을 알았네~
1.서울 둘레길 탐방 일시;2016년 8월27일(4토)10~
2.관악산코스1(사당역 4번출구에서 낙성대역 끼지)
3.함께하신분;이재호님,임승대님,최기봉님,황규순님,그리고 송춘섭(5명)
관악산코스1 시작점에서 임승대님,이재호님,송춘섭,황규순님,최기봉님
관음사 일주문을 들어서며~
머리위의 일주문 편액 그 누가 쓰셨는지? 참으로 명필임을 볼때마다 느끼네~
관악산 관음사 일주문
관음사 일주문은 불기 2551년(2007) 봄, 종하(鍾夏)스님에 의해 건립되었음.
일주문은 해당 사찰의 대문이며. 일주문에는 소속 산명과 사명을 밝힌 편액
이 걸려 있음. 관악산 관음사(冠岳山 冠音寺).
이 문은 기둥이 '한 일자(一字)' 모양이므로 일주문(一柱門)이라 함.
일(一)이란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고, 진(眞)과 속(俗)이 하나이며, 만법이 일심(一心)의
소현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문임.
관악산 관음사(冠岳山 觀音寺)
『관음사(觀音寺)는 관악산 줄기의 북쪽 사면인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519-3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로서, 신라 말엽인 895년 (진성여왕 9년)에 도선국사(道詵
國師)가 창건한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관음기도도량
(觀音祈禱道場)임.
1977년 극락전 해체시에 발견된 상량문(上梁文)을 보면 조선조 숙종 42년인 1716년
4월 21일(康熙55년)에 극락전을 개축하였고, 영ㆍ정조 시대에 쓰여진 《범우고》와
《가람고》및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관음사에 대한 대강의 기록과 함께 사
찰 근처에 승방벌(僧房坪)이라는 마을과 승방교(僧房橋)라는 다리가 있었던 사실을 기
술한 것으로 보아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던 것을 알 수 있음.
또한 《봉은말사지》에 의하면, 1924년에 전석주(田石洲) 스님이 요사채 1동을 신축하
였고, 그후 정태선(鄭泰善) 스님이 삼성각과 극락전을 다시 개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서는 창건 역사와 유래에 걸맞는 발전을 하지 못하고 당우의 황
폐화와 사세의 위축으로 그 명맥만 유지할 뿐임.
그러던 중 1973년 진산당(晉山堂) 박종하(朴鍾夏)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사찰중흥을
위한 장기불사계획을 수립하고, 1977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형 대웅전을
다시 짓는 것을 시작으로 1980년부터1989년 사이에 범종각 신축 및 범종 조성,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형 삼성각 증ㆍ개축, 정ㆍ측면 각 1칸의 용왕각 증ㆍ개축 및
(ㄱ)자형의 요사채(7칸)를 신축하였음.
그리고 1992년에는 대웅전 마당 지하에 대 강당을 신축하고 강당 내에 3천불을 조성하
였으며, 1997년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형 명부전과 동측 요사채 1동(3칸)을
추가 신축하였고 재단법인불교방송이 발원한 불교방송개국기념대탑(9층석탑)을
경내에 유치 조성하였음.
뒤이어 2001년과 2002년에는 요사채와 공양간을 크게 신축하고 저수조와
미타전을 조성하였음.
또한 2005년에는 대웅전 좌측에 석조 관세음보살입상을 조성하여 가람의
격을 더 한층 높였으며, 2007년 봄에는 관악산 산문 초입에 일주문을 건립함으로서
30여년에 걸친 장기대작불사를 마무리 짓고 현재에 이르렀음.』
《전통사찰총서》에 의하면, 조선시대 후기인 철종 때까지는 절의 역사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조선초기에 쓰여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인문종합지리지에 변계량(卞
季良)이 관음사의 절경을 읊은 시가 있어 관음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함.
철종 14년(1863) 8월에 행념스님이 당시 철종의 장인으로 안동 김씨의 세도가인 영은
부원군 김문근(金汶根)의 시주를 받아 사세를 일신시켰다고하며. 또한 고종 20년인
1883년에 봉은사 스님들이 다시 고쳐 지었다는 설도 있다 하나 확실치는 않음.
철종 때 관음사를 중창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던 김문근(金汶根 1801~1863)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노부(魯夫)임. 인순(鱗淳)의 아들로 이순
(李淳)에게 입양되었고, 이조판서 수근(洙根)의 아우임. 김문근은 당시 철종의 장
인으로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책봉되었으며 제2차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주요인물
이었음. 금위대장, 총유사, 훈련대장 등 군사요직을 거쳤으며,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순(忠順)임.
관음사의 길잡이자 수호신인 관음대장군과 관음여장군이 환한웃음으로 반겨주시네~
예전엔 여기에 목장승이 세워져 있었는데 석장승으로 바뀌었음. (천하대장군 지하여
장군과 같은 뜻임)
관음사 9층석탑 (불교방송개국기념대탑)
이 탑은 1997년 불교방송국 기념대탑으로 세운 것으
로 높이는 거의 20m에 달함
범종각 옆으로는 비석이 몇기가 있는데 태수화상비와 불교방송 기념 건립비,
그리고 공덕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네~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大慈大悲 救苦救難 觀世音菩薩 )
왼손엔 감로수(甘露水)가 든 보병(寶甁)을 들고 오른손은 중지를 동그랗게 말아 쥔 설법
인(說法印)을 하고 계심.
관세음보살은 범어 아왈로끼떼슈와라 보디쌋뜨와(Aavalokiteśvarā bodhisattva)를
한역한 말인데, 구마라집(鳩滅什)은 광세음(光世音)ㆍ관세음(觀世音)ㆍ관음(觀音)
으로 한역하였고, 현장법사는 관세자재(觀世自在)ㆍ관자재(觀自在)로 번역하였음.
관자재보살이나 관세음보살은 같은 명호지만 지혜를 강조할 때는 관자재보살이라 하
고, 자비를 강조할 때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함. 우리는 관세음보살이 친숙함.
나무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南無 大慈大悲 救苦救難 觀世音菩薩)
관음사(觀音寺) - 변계량(卞季良) -
冠岳之南淸溪陰 관악지남청계음 관악산 남쪽 청계산 그늘에
梵宮突兀壓長林 범궁돌올압장림 우뚝 솟은 절집이 긴 숲을 압도하네.
夜雨咆哮吼飢虎 야우포효후기호 밤비에 주린 호랑이 으르렁 울어 대고
旭日啁哳鳴幽禽 욱일주찰명유금 해 뜨니 새들은 재잘재잘 노래하네.
泉生窓底薛蘿合 천생창저설라합 창 밑에 나는 샘에 여라 덩굴 뒤덮였고
路轉石稜松檜深 로전석릉송회심 돌비탈 감돈 길에 소나무, 회나무 우거졌네.
遙念惠師應好在 요념혜사응호재 멀리서 생각건대 혜사(惠師)는 응당 잘 계시는지
山中夜夜夢相尋 산중야야몽상심 산 중에서 밤마다 꿈 속에서 서로 찾네.
변계량(卞季良 1369~1430) 선생은 어떤 분인가?
선생은 고려 말, 조선 전기의 학자로,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임.
고려말 이색(李穡)의 제자로서 전교(典校), 주부(注簿) 등의 벼슬을 지냈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 권근(權近)의 뒤를 이어 20여 년간 대제학(大提學)을
맡으면서 조선 전기 관인문학의 규범을 마련한 인물임.
저서에 《춘정집(春亭集)》이 있음.
오늘 걸을 서울 둘레길 안내도
서울의 도심을 배경으로~
푸른하늘을 수놓은 작은 구름의 흔적~
서울의 도심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길래~
무당골 안내표지판
아직도 무속신앙의 행사를 치른 흔적이그대로 있네~
맑은 물 흐르는 곳 자리잡고 둘러앉아 잠시 쉼표를 찍으며 정담을 나누다보니
시간가는줄 몰랐네~
서울의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 조망데에서~
강감찬 장군의 생가터(낙성대)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의 사당.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강감찬의 출생지로서, 그가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으로 전하여오고 있음.
[내용]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강감찬의 출생지로서, 그가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으로 전하여오고 있음.
강감찬의 애국충정을 기리고자 서울시에서는 1973년에서 1974년까지 2년간에 걸쳐서 이곳을 정화하면서 사괴석(四塊石)으로 409m의 담장을 쌓고 사당 안국사(安國祠)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낙성대임. 안국사는 외삼문인 맞배지붕의 안국문(安國門)을 거쳐 내삼문 안에 건축되었는데, 사당 안에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음.
한편, 1974년 6월 10일 안국사가 완공되자 서울시에서는 그 날짜로 공원으로 지정하여 유료공원으로 관리하고 있음. 공원의 총면적은 3만 1350㎡이나 성역화된 곳은 1만 1550㎡이며, 안국사의 면적은 237.6㎡임. 공원 경내에 5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공원 입구에 큰 연못을 파서 구름다리를 놓았으며 성역화 경내에도 낙성교가 있음.
이곳에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삼층석탑이 있으며, 탑에는 ‘姜邯贊落星垈(강감찬낙성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음. 이 탑은 원래 강감찬이 태어난 봉천동 218번지 집터에 있던 것을 1973∼1974년 정화사업에 따라 현위치로 옮겨왔으며, 그 터에는 따로 유허비를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하였음.
탑의 양식은 단층기단 위의 삼층탑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음. 기단석은 각 면에 한 장의 면석이 둘러 면마다 우주(隅柱: 모서리기둥)가 새겨져 있음. 한 장의 돌로 된 갑석 한가운데에 옥신받침이 있음. 탑신의 옥신석에는 각기 우주가 모각되었고, 옥개석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며, 층급(層級)은 2단으로 매우 간결함.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석탑의 대석을 비틀어 어기고 탑의 위층을 빼어 한 층을 낮추어 정기를 줄이고 탑 안에 있던 보물을 훔쳐갔다는 일화가 전함. 그들은 탑만이 아니라 탑 주위에 있던 병풍바위와 선돌바위도 모두 부수고, 탑의 동쪽 구릉을 파내어 땅의 혈맥을 끊기도 하였다고 전하여옴.
낙성대 공원 안내도 옆에서 임승대님과 이재호님~
안국문
고려시대에 건립한 낙성대 3층석탑 (머리부분이 훼손되어 안타까움을 전해주네~)
고구려 강감찬장군 사적비
옥잠화가 화시하게 피어 있길래~
(꽃말:조용한사랑)
함초롬한 아침 이슬방울 사이로
가느다란 목 추켜세우고
난 그만 그대에게 반했답니다...
뜨락가득이 그윽한 향기 풍기우며
푸르른 달빛사이로 드러나는
그대의 백옥같은 천상 아름다움에
난 그만 그대에게 고백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식물로 널리 재배되고 있음.
옥비녀꽃, 백학석이라고도 함. 중국 원산이며 관상용으로 심음. 굵은 뿌리줄기에서 잎이 많이 총생함. 잎은 자루가 길고 달걀 모양의 원형이며 심장저로서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이고 8∼9쌍의 맥이 있음. 꽃은 8∼9월에 피고 흰색이며 향기가 있고 총상으로 달림. 6개의 꽃잎 밑부분은 서로 붙어 통 모양이 됨.
꽃줄기는 높이 40∼56cm이고 1∼2개의 포가 달리며 밑의 것은 길이 3∼8cm정도임. 화관은 깔때기처럼 끝이 퍼지고 길이 11 cm 내외이며 수술은 화피의 길이와 비슷함. 열매는 삭과(蒴果)로 세모진 원뿔 모양이고 종자에 날개가 있음. 꽃말은 ‘추억’. 잎이 보다길고 드문드문 달리며 꽃의 통이 좁은 것을 긴옥잠화(var. japonica)라고 하며 열매를 맺지 못함.
뿌리줄기는 굵고. 둥근형의 잎은 잎자루가 길며 길이 15~22㎝, 너비 10~17㎝ 정도로 끝은 뾰족하고 기부는 오목한 심장형임. 잎맥은 가장자리와 평행한 나란히맥임. 꽃줄기는 뿌리에서 높이 올라오는데 길이가 60㎝에 이르고 흰색의 긴 깔때기 모양의 꽃은 총상(總狀)꽃차례를 이룸. 열매는 삭과(蒴果)로, 삼각형 모양의 원주형태이며 길이가 6.5㎝ 정도이며, 밀원식물로 잎과 꽃이 아름다워 원예용으로 재배되며, 잎은 식용으로 쓰임.
옥잠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는데. 옛날 중국에 피리 부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살았다고함. 어느 달 밝은 밤에 몰아지경의 상태로 피리 한 곡조를 읊고 있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선녀가 나타나더니. 옥황상제의 따님이 방금 곡을 다시 듣고 싶어 하시니 한 번 더 불어 달라고 말했음. 피리의 명수는 선녀의 부탁대로 하늘의 공주님을 위해서 아름다운 연주를 해 주었고 선녀는 고맙다고 하며 하늘로 올라가면서 자신이 꽂고 있던 옥비녀를 그에게 던져주었는데, 옥비녀는 피리의 명수 손을 스치며 땅에 떨어져서 그만 깨져 버리고 말았음.
후에 그 자리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봉오리의 모습이 선녀가 던져주었던 옥비녀와 비슷하여 사람들이 이 꽃을 옥잠화, 즉 '옥비녀 꽃'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함.
안국사 계단을 오르며~
강감찬장군의 영정~
파아란 하늘과 3층석탑, 그리고 화사한 옥잠화~
뒤돌아 나오는 뒷모습~
정원수의 풋풋함이 발길을 뭠추게 하길래 한컷 사진속에 담아왔네~
낙성대 공원을 감상하는 시간을 마치고 나오면서 ~
이렇게 오늘도 서울둘레길을 걸으며,지나간 역사의 뒤안길을 서셩이다
근처 조용한 곳 자리잡고 둘러앉아 막걸리잔에 우정을 담아마시며
정담을 나누다보니, 어느덧 3시가 넘어가네~
(서울둘레길 탐방을 마무리 하면서 송춘섭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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