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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적(史蹟) 제361호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永徽園과 崇仁園)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2. 10:12

사적(史蹟) 제361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永徽園과 崇仁園)   

 

지정일 : 1991. 10.  25.                소재지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204-2외          

시   대  : 조선 시대                      관리자  : 의릉관리소

 
 
영휘원은 조선 26대 고종(재위 1863∼1907)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1854∼1911)의 무덤으로 위패는 조선 역대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이의 생모인 7명의 후궁을 모신 칠궁(七宮)에 모셨다. 엄귀비는 신교육에 관심이 많아 양정의숙·진명여학교를 설립했고, 숙명여학교 설립시 많은 돈을 기부하는 등 근대 사립학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영휘원 안에는 영친왕의 아들 이진(李晋, 1921∼1923)의 무덤인 숭인원이 있다. 원래 이곳은 명성왕후를 모셨던 홍릉이 있었으나, 1919년 경기도 미금시 고종황제의 릉과 합장하기 위해 옮겼다.

영휘원과 숭인원 주변에는 많은 석물과 정자각·비각 등이 있다.
 
전문 설명
조선(朝鮮)제(第)26대(代) 고종황제(高宗皇帝)의 계비(繼妃)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嚴氏)(1854∼1911)의 묘소(墓所)이다.

엄귀비(嚴貴妃)는 철종(哲宗) 5년(年) 증찬정(贈贊政) 엄진삼(嚴鎭三)의 장녀(長女)로 태어나 8세에 경복궁(景福宮)에 입궐(入闕)하여 민비(閔妃)의 시위상궁(侍衛尙宮)이 되었다. 민비(閔妃)가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시해(弑害)된 후 아관파천(俄館播遷)때 고종(高宗)을 모시고 후궁(後宮)이 되어 영친왕(英親王)(이은(李垠))을 출산하였다. 1911년 7월 20일 58세로 별세(別世)하였으며 위패(位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칠궁(七宮)에 봉안되어 있다.

엄귀비(嚴貴妃)는 신교육(新敎育)에 관심을 갖고 양정의숙(養正義塾)(1905 광무(光武)9년(年))과 진명여학교(進明女學校)(1906년(年))를 설립(設立)하였으며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현숙명여학교(現淑明女學校))의 설립에도 거액을 기부하는 등 근대교육발전(近代敎育發展)에 크게 공헌하였다.

영휘원(英徽園) 경내에는 손자(孫子) 이진(李晋)(영친왕(英親王)의 자(子))의 묘(墓)가 있으며 원래 이곳은 이왕가(李王家)의 가족묘지(家族墓地)로 정해 놓았던 곳이며 명성황후(明成皇后) 민비(閔妃)의 릉(陵)인 홍릉(洪陵)이 있어 이 일대를 홍릉(洪陵)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이 릉(陵)은 1919년(年) 3월(月)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에 고종황제(高宗皇帝)와 합장하기 위해 천장하였다.

묘(墓)의 시설로는 봉분(封墳)(병풍석무(屛風石無)) 곡장(曲墻) 혼유석(魂遊石) 문인석(文人石) 망주석(望柱石) 장명등(長明燈) 석양(石羊) 석호(石虎) 사초지(莎草地)가 조성(造成)되어 있고 묘(墓)앞에 정자각(丁字閣) 비각(碑閣) 홍살문(紅箭門)이 있으며 영휘원과 숭인원을 수호 관리하는 재실(齋室)이 있다.

기록으로는 정자각(丁字閣) 남(南)쪽의 비명(碑名)에 「순헌엄비영휘원(純獻嚴妃永徽園)」이라 각자(刻字)되어 있고 후면(後面)의 비문(碑文)은 「순헌귀비엄씨철종오년갑인십일월초오일생 기미선입궁광무원년탄왕세자봉귀인사년봉순빈사궁호경선오년진봉비칠년책황비○○칠월이십일졸서수오십팔세추호순헌팔월이일장우양주천수산인좌원원호영휘○○(純獻貴妃嚴氏哲宗五年甲寅十一月初五日生 己未選入宮光武元年誕王世子封貴人四年封諄嬪賜宮號慶善五年進封妃七年冊皇妃○○七月二十日卒逝壽五十八歲追號純獻八月二日葬于楊州天秀山寅坐原園號永徽○○)」하고 기록되어 있다.
 
 
영휘원(숭인원포함)
 
 
영휘원
 
 
 
좌.우측 곡장과 석물- 석마 문인석, 망주석, 곡장,석양,석호,
 
 
숭인원
 
 
 
 
 
석호
 
 
 
좌. 우측 망주석 세호
 
 
귀면이 새겨진 혼유석 고석
 
 
 
영휘원 문인석
 
 
 
영휘원 석마 인원
 
 
출처 : 솔바람소리
글쓴이 : 구름에 달가듯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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