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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계대원군묘 와 신도비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3. 14:02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1785~1841년" 은 조선후기에 왕족이며 .철종에 사친이다.

장조의서자 은언군의 서자였다.

이복형 상계군과  아버지 은언군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추방되어 빈농으로 생애를 마쳤으며 .은언군의 서자라 작위가 내려지지않았다.

1849년 샛째서자 원범이 순조의 양자 자격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전계군(全溪君)의 작호가 내려졌다가,다시 대원군으로 추봉되어  전계대원군이 되었다

경기도 강화군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 휘는 광(壙), 자는 창강(昌康), 초명은 해동(海東)이다.

 

 

 

 

 

 

 

 

 

 

조선후기에 왕족으로 "장조"의서손자이며 정조의조카이고  철종의 사친이다.

은언군의 5남이자 서자(庶子)로1785년 [정조9]3월 21일날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장조의 서장남 은언군 (恩彦君)이며,어머니는 전주인(全州人) 이덕희(李德喜)의 딸로  전산군부인 이씨 (全山郡夫人 李氏)이다

아버지 은언군이 상인들에게 진 부채가 증조부 "영조"에게알려 1771년 [영조47]직산에 유배되고 .다시 제주도 대정현에 안치되었다가

1774년에 풀려났다.

이광은 왕족이었으나 아버지 은언군이 상계군사건과 계속된 탄핵으로 유배당한데다가, 이광은 다시 은언군의 서자였으므로 작위가 내려지지 않았다

 

  

 

묘는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은언군의 묘 아래인 해좌원에 예장하였다가 후에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선단리(현 포천시 선단동) 산11번지에 이장하였다.

 현재 묘역과 신도비는 1986년포천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1849년 헌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그의 셋째아들 원범이 철종으로 등극하자 먼저 전계군(全溪君)에 피봉되었다가,

축호와 사식을 송나라 복황(濮皇)과 수왕(秀王)및 본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정원대원군 (定遠大院君)의 전례에 따라 다시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으로 추봉하고,

묘(墓)도 다시 정비하고, 묘 앞에 신도비를 세우게 하고. 가묘 (家廟, 전계궁)를 중건하여 신주는 불천지위로 정하고 영평군과 그 후손으로 봉사하게하였다.

 

출처 : 여행하며 세상의이야기를 담는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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