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흐는다

[스크랩] 전계대원군 묘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3. 14:00


2016년 6월 14일 (화)


    의정부역에서 138번 버스를 타고 선단4통(지영사) 에서 내렸다. 포천대진대학교 전역인데         

예까지 오는데 거의 1시간 가량이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 길게 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주위 담장등에 벽화를 그려 놓은 선단3통을 지나는 길이다.                                               

10여분여 걸으면 선단 2통이 되는데 이 곳서 또 10여분 더 걸어야 선단 5통이 되고, 이 곳에

전계대원군의 사당이 있다. 오늘 우리가 찾은 곳은 전계대원군의 묘소다. 신도비각이 보이는

재실 앞마당 느티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펴고 간식을 즐기며 휴식부터 했다.

휴식하며 족보를 검색 했다                                                                                             

   1) 전계대원군은 장조(사도세자)의 서손자로 정조의 조카이자 철종의 아버지다.                         

2) 전계대원군의 아버지는 은언군이며 어머니는 전산군부인 이씨이다.                                  

 3)은언군은 장조(사도세자) 의  서장남으로 동생 은신군과 함께 순빈 임씨에게서 태어났다.        

  4)사도세자(1735~1762)는 3명의 부인과 아들 5, 딸 3명을 두었다.(27세에 뒤주에서 죽음)         

            아들 5명 (혜빈홍씨 : 의소세자(요절), 정조.  순빈임씨: 은언군, 은신군.   경빈박씨 : 은진군)                

    은언군의 집안은 큰아들 상계군 때문에 풍비박산의 위기에 몰렸였으나  전계군의 아들 원범이            

 왕이 되어 집안이 다시 섰다. 상계군(1770~1786)은 모반죄에 연루되어 17세에 자결했고              

        이로 인해 은언군은  강화도로 이주 했다. 1797년 강화도에서 탈출하려다 체포되어 배소에 안치됐으며   

 1801년 (순조1) 신유사옥때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명나라 주문모에게 영세 받은 천주교인으로

 순교할 때 강화도 배소에서 사사됐다 (48세때)                                                                        

그러나 1849년 (헌종15) 손자 원범이 즉위한 뒤 신원이 복작 되었다.                                         

전계대원군의 장남 회평군 명은 18세에 요절 했음, 차남 영풍군 경도 후사없이 사망해 청안군 재순을

양자로 들였는데 청안군도 후손이 없어 풍선군 한용(소현세자 후손 재철의 자)으로 대를 이었음       

전계대원군의 재실과 사당


사당

신도비각

사당

사당에서 본 전계대원군의 묘소

전계대원군 묘 옆에 있는 철종의 생모 묘. 원래는 서울 홍은동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이장했다.

 철종의 생모인 염씨는 전계대원군의 첩이였으나 철종이 왕이 되어 부대부인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사도세자의 서자가 은언군이고 은언군의 서자가 전계대원군이며 전계대원군의 서자가 철종이다.  

  조선에서 서자로만 대를 이은 가문에서 임금이 나왔으니 세상사 참으로 모를 일이다.                    

부대부인 묘 앞의 문인석 입술 모양이 특이하다.

입술을 쭉 내민 모습이

뽀뽀를 해주고 싶을만큼 귀엽다고 하네 ㅋㅋㅋ

정말 특이한 문인석이다.




    모란과 난초를 새긴 장명등, 불교의 색채를 많이 빼긴 했어도 옥개석 위의 보주는 건재하다.             

석등은 불교에서 온 기물로  무명을 밝히는 빛 즉, 진리의 등불로 법신이라고도 표현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옥개석 위에 있는 원 모양의 보주는 깨달음의 상징이다.                                  

사방에 동그란 창을 내었다.


묘비,유명조선국용성부대부인염씨지묘.


문인석 크기 비교.


철종의 생모 부대부인 염씨의 묘 후경

전계대원군 묘의 후경, 분홍색의 패랭이 꽃들이 피어있다.


지금 한창인 패랭이꽃과 함께 할미꽃 그리고 수선화가 있는 꽃밭 같았던  묘의 뒤 풍경

전계대원군의 묘엔 무인석이 있다.

크기 비교





정교하게 조각한 갑 옷


전계대원군과 부인 전주 최씨 합장묘. 보통은 부인이 부左 인데 여긴 부右로 합장했다.

묘비에 어필이라고 새겨 있으니 철종의 글씨일것이다.  신도비에도 어필이라고 새겨 있다.

잡초 제거


전계대원군 묘에서 본 철종 생모의 묘





묘를 지키고 있는 무인석

장명등

옥개석 위의 보주엔 이끼가 끼지 않았다.

 

이끼가 돌 꽃이 되어 무늬를 만들어 놓은 망주석 (크릭하면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음)



사당에서 본 묘역




사당에는 좌측에 둘 우측에 세개의 비가 있는데 우측에 있는 두개의 비를 살펴 봤다.

 뒷쪽의 비는 전계대원군의 양자 영평군 경응(1828~1901)"의 묘비이고                           

앞쪽은 영평군 경응"의 양자 청안군 재순"의 묘비이다. 재순은 1868년 (고종5) 문과에 급제

             판서와 궁내부대신을 했고 외교에 공이 있어 훈1등(勲一等)에 책록 청안군에 봉해졌다.                  

             비'에는 완산이씨로 표기되어 있는데 완산이씨나 전주이씨는 다름이 없다. 같다는 말이다.              



석등

오른쪽에 있는 비 중, 하나의 옥개석 부분. 머리에 대한제국의 국장인 오얏꽃 문양이 있다.

문인석과 석양



재실로 들어 가는 문

재실





재실 앞 큰 길로 나오면 바로 양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출처 : 바위솔
글쓴이 : 바위솔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