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나를 뭐라하든... 나는 나! 장승업이오.

1850년대, 청계천 거지 소굴 근처에서 거지패들에게 죽도록 맞고있던 어린 승업(최종성 분)을 김병문(안성기 분)이 구해주고 승업은 맞은 내력을 설명하며 김선비에게 그림을 그려보인다. 세도정치에 편승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김선비. 거칠지만 비범한 승업의 실력을 눈여겨보고... 5년만에 재회한 승업(정태우 분)을 엘리트이자 역관 이응헌(한명구 분)에게 소개하는데... 승업에게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를 추구할 것을 독려하고 선대의 명화가들처럼 훌륭한 화가가 되라는 뜻에서 오원이라는 호를 지어준 김선비는 승업(최민식 분)의 피드백 역할을 해주는 평생의 조언자였고 그런 승업은 행운아였다. 이응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그림의 안목을 키워가는 중 이응헌의 여동생 소운(손예진 분)에게 한눈에 반해버리지만 가슴 설레는 첫사랑은 소운의 결혼으로 끝나고... 화가로 자리잡기 시작할 무렵 병을 앓던 소운이 죽어가며 자신의 그림을 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가는데.
화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할 즈음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몰락한 양반집안의 딸인 기생 매향(유호정 분)의 생황 연주에 매료된 승업. 매향은 승업이 그려준 그림에 제발을 써넣으며 아스라한 인연을 맺어나간다. 계속되는 천주교 박해로 두 번의 이별과 재회를 하고. 켜켜히 쌓인 정과 연민, 승업의 세계를 공감하고 유일한 여인이자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고매한 사랑. 아무도 그를 곁에 붙잡아둘 수 없었다. 임금의 어명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오로지 술에 취해야 흥이 나고 그 흥에 취해서야 신명나게 붓을 놀리는 신기. 술병을 들고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표정의 원숭이를 그리고 자신의 필력을 확인하지만... 화명이 높아갈 수록 변환점을 찾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 괴로워하고 한계를 넘으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날, 온몸의 기가 붓을 타고 흐르는 경험을 한다. 외부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자신의 붓소리를 듣게 되고.
매향과의 마지막 재회, 세상과의 마직막 재회. 매향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찌그덩한 그릇을 보고 승업은 그 안에서 자신이 그토록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를 보게 되고 조선의 운명인 듯, 또한 스러져가는 자신의 운명인 듯 그는 홀연히 세상을 등지고 사라져간다. 과연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세상은 어디에 있던 것일까??? |

한 사내가 파초 위에 웅크려 앉아 생황을 불고 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정강이를 다 드러낸 파탈한 옷매무새에서 취기가 물씬 묻어난다. 앞에 놓여 있는 두 개의 두루마리 족자와 먹이 걸쳐진 벼루 하나, 그리고 방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두 자루의 붓으로 보아 이 사내는 필시 화가인 듯하다.
깊은 달밤 문득 화흥(畵興)이 일어 먹을 갈다, 방안 가득히 쏟아지는 달빛의 애잔함을 이기지 못하고 붓 대신 술잔을 든 모양이다. 한 동이의 술을 어느덧 다 비운 사내는 술잔을 놓고 생황을 잡아 불어본다. 취기를 타고 복받쳐 오르는 심회를 풀어내고자 함이다. 그러나 구슬픈 생황 소리에 달밤의 처연함은 더해만 가니, 도도한 취기가 묻어나는 필치로 휘둘러낸 제시(題詩)는 이 사내의 심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월당의 생황소리 용울음보다 처절하네(月堂凄切勝龍吟).”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有聲之畵), 그림은 소리 없는 시(無聲之詩)”라는 옛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제시와 그림이 기막히게 어울린다." 시문(詩文)과 음률(音律)에 두루 능해 이를 넘나들었던 단원이었기에 가능한 그림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2~1791)은 단원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꽃피고 달 밝은 밤이면 때때로 한 두 곡조를 희롱하며 즐겼다. 음률에 두루 밝았고 거문고, 젓대며 시와 문장도 그 묘를 다했고 풍류가 호탕하였다. 매번 칼을 치며 슬피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복받쳐서 몇 줄기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단원의 마음은 스스로 아는 이만 알 것이다.”
이처럼 단원은 직업적인 화원화가였지만 화기(畵技)뿐만 아니라 여느 시인보다도 감수성이 풍부하였고, 여느 문인에게도 뒤지지 않는 교양과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문인의 의식을 품고 문인의 삶을 지향하며 살아갔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중인출신의 화원화가라는 숙명적인 한계는 더욱 커져만 갔다. 재위기간 내내 각별한 사랑을 쏟았던 문예군주 정조(正祖·1776~1800 재위)의 지극한 총애와 후원도 그의 근원적인 허망함을 달랠 수 없었고, 일세를 울리던 화명(畵名)도 위안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단원은 ‘용울음보다 더 처절한 생황소리’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애달프고 쓰라린 맛을 온몸으로 느끼고 곱씹으며 살아갔을 것이다. ‘월하취생’에는 이러한 단원의 절실한 자의식과 자기 체험에서 우러나온 회한과 감상이 온전히 녹아 있다. 단원 내면의 자화상과 같은 그림인 것이다. 소폭의 단출한 그림이지만 단원의 어떤 작품보다도 울림과 여운이 크고 깊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백인산|간송미술관 연구위원〉
하늘의 소리를 복원하는 생황연주가 - 손범주
이 그림 속의 남자가 부는 생황(笙簧)은 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역사가 오래된 악기이지만 긴 세월을 거치며 점차 사장(死藏)의 길을 걸어왔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김홍도의 월하취생도,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신윤복의 연당의 여인과 수많은 민화들의 소재로 자주 등장할 만큼 일상에서 많이 연주된 악기였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통일신라 시대에 주조된 '에밀레종'이나 상원사 동종에도 생황이 등장할 만큼 그 역사가 장구함에도 불구하고….
생황은 우리 역사를 통틀어 두 번 부흥되고 있다. 그 한번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박연을 통해서 악기를 새로 복원 작업하여 생황을 많이 부흥시켰으며, 또 한번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악공도 없어지고 악기도 사라져 해마다 중국으로 가는 연행(燕行) 길에 악공들도 함께 유학을 보내 악기 제조법이나 연주기법 등을 배워오게 하였는데 모두 실패하고 수룡음이라는 생소병주곡(笙簫竝奏曲)이 겨우 한 작품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 오늘날 이 시점, 생황 소리를 활발한 음악 활동과 함께 복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손범주 씨이다.
얼마 전, 그가 동·서양의 악기를 가지고 화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월드음악 실내악단 '오리엔탈리카' 공연에 갈 기회가 있었다. 우연찮게 읽어내려간 신문에서 한번도 그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생황'이라는 단어를 보고 기회를 일부러 만들었다. 그것은 옛그림 속의 생황처럼 그림으로만 정지되어 있던 것을 '살아 호흡하는 소리'로 들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만난 작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공연 당일,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국립국악원으로 향했다. 국악원에 도착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으나, 다른 악기 소리에 파묻혀 도대체 어느 소리가 생황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순간….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외국 작곡가의 '5개의 타악기를 위한 음악'을 승가의 전통적인 법구인 목탁으로 표현한 음악, 그리고 손범주 씨가 작·편곡한 음악들 곳곳에 불교적인 내음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며칠 후, 신문에 난 기사를 의지삼아 사라져가는 생황 소리를 복원 작업하고 있는 '손범주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손범주 씨는 그의 피리 은사이신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재국 교수님께 처음 생황으로 수룡음을 배웠다. 그후 중국으로 유학, 본격적으로 생황을 전공하였다. 그가 생황에 특별히 매력을 느낀 것은 천상의 악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란다. "비천상(飛天像)에도 나타나 있는데, 항상 천녀들이 안고 부는 악기라고 해서 하늘의 소리라고 많이들 표현해요. 믿거나 말거나 봉황의 울음소리라고도 비유를 하고…."
악기가 서역에서 중국을 통해 건너와 중국에서 많이 활성화되었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역사가 깊은 악기이기 때문에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악기라 더욱 매력을 느낀단다.
그는 실생활에서 본인이 겪은 것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많은 곳을 여행하며 메모를 하여 나름대로 생각을 담아 창작을 한다고 한다. 원래 불자 집안으로, 한때 타종교에도 나갔었지만 지금은 불교가 더 편안하다는 그. 예전에도 불교 음악을 만들려고 많이 뛰어다녔으며, 계속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인다.
모든 전통악기들은 악보가 있지만 생황은 현재 그 악보가 전해지는 것이 단소와 함께 연주되는 수룡음 하나 뿐이다. 때문에 그는 모든 작업에 있어 악보도 직접 만들어야 한다. 현재 3년 이상 전통음악에 관계된 곡부터 악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직 가곡이나 종묘제례악 부분은 너무 광범위해서 손도 못 대었단다.
우선 일차적으로 영산회상과 많이 쓰이는 음악들의 악보집을 내고, 생황의 종류, 역사 부분을 자세하게 서술하여 작곡가나 초보자도 그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양의 악보 형식과 전통악보 두 가지 모두 싣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나름대로의 많은 작품활동을 해 오고 있었다. 그 첫번째 작품이 비천(飛天)이었다. 이 음반은 인도악기 시타르(sitar)와 항아리, 특수악기, 서양악기와 함께 생황 소리를 녹음하였다.
현재 그는 두번째 작품으로 천음(天音)을 준비하고 있다. 왜 천(天)이라는 글자를 음반마다 타이틀로 사용하느냐고 묻자 '천'이라는 글자 만큼 생황의 소리를 잘 표현하는 글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화답하는 손범주 씨. 빠르면 올해 나오고, 늦으면 내년 봄쯤 나온다는 그의 다음 작품을 이른봄 돋아나는 파릇한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급하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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