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어머니·영호·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 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아버지도 쉬셔야지!" 어머니가 말했다. "그 동안 힘든 일을 너무 많이 하셨어. 이제는 편히 쉬실 수 있을게다." "쉬셔야 할 분은 어머니예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반 줌의 재를 쌌던 흰 종이를 물 위에 띄웠다. 우리는 물가에 앉아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없어졌다. 바람이 불었다. 햇볕이 따뜻 했다. 몇 마리의 새가어머니 옆에서 날았다. 나는 사태로 내려앉은 언덕을 보았다. 영호와 나 는 거의 동시에 울음을 그쳤다. 아버지의 죽음이 우리 생명 활동의 양식에 변화를 주었다. 은강으로 온 우리는 호흡까지 조심 스럽게 했다. 처음에 우리는 바싹 마른 콩알처럼 아주 약한 호흡을 했다.
...그날 주거 지역 쇼회의 학생들이 노인을 찾아왔다. 한 아이가 "앞으로의 할아버지의 생활은 어때지실 거라고 믿으세요?" 라고 물었다. 다른 아이가 하나만 짚으라면서 여섯개의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아주 좋아질 것이다. ˚비교적 좋아질 것이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약간 나빠질 것이다. ˚아주 나빠질 것이다. ˚대답할 수 없다. 노인은 간단히 말했다. "아주 좋아질 거야. 거기다 동그라미를 쳐줘." 학생들은 나무껍질 문 앞에 서 있었다. 뜻밖의 대답이라는 표정을 그 아이들이 지었다. "난 곧 죽을 거야." 애꾸눈 노인이 말했다. 어머니는 그 노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죽은 다음에야 평온을 얻 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시간에 교사가 물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 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 라 생각하는가?" 한 학생이 대답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교사가 말했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이 놀람의 소리를 냈다. "한번만 더 묻겠다" 교사가 말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또 한 아이는 그을음 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생 각하는가?" 똑같은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기다렸다. 교사가 말했다. "그 답은 틀렸다" "왜 그렇습니까?"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이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교사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 쓰고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 에 대해 설명했다.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는 없는지,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에 대해 생생해 보자.우주는 무한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제군도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 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게 내 수업의 마지막 말이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작가의 말 > 中... 자세히 보면 지금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만,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 이 내놓고 '선' 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선택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
“지난해는 ‘난쏘공’이 이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되는 해였는데, ‘ 용산 참사’는 30년전 소설 속의 모습과 똑같다.” “21세기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소설에서만 끝내야 되는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막상 실현되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진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조세희 작가..-
|
'종합예술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0) | 2019.01.11 |
---|---|
[스크랩]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0) | 2019.01.11 |
[스크랩]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0) | 2019.01.11 |
[스크랩]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0) | 2019.01.11 |
[스크랩]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0) | 2019.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