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Impromptu No.1 in A-flat major, Op.29 - 03:45 Impromptu No.2 in F-sharp major, Op.36 - 08:42 Impromptu No.3 in G-flat major, Op.51 - 13:07 Fantaisie-Impromptu in C-sharp minor, Op.66
음악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즉흥적 선율
최근에는 재즈에서 더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 즉흥의 기원은 악기의 연주 방식인 즉흥연주에서 비롯한 것이며 악곡 형식으로 정착한 것이 바로 즉흥곡(impromptu)이다. 작곡가나 연주가의 즉흥적인 악상이나 영감을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드러낸 이 즉흥곡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얀 바츨라프 보리셰크. 그는 1817년에 이 단어를 사용했고 1822년에는 6개의 즉흥곡 Op.7을 출판하기도 했다. 1820년대 이후 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빈의 피아니스트-작곡가들은 즉흥곡을 앞 다투어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슈베르트가 1827년에 작곡한 8곡의 즉흥곡을 필두로 슈만의 즉흥곡 Op.5, 리스트의 왈츠-즉흥곡 등을 비롯하여 스크랴빈, 시벨리우스, 포레 등 많은 작곡가들이 즉흥곡을 작곡했다.
녹턴과 더불어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으로서 새로운 세기인 20세기에 접어들며 그 운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즉흥곡과 가장 친연성이 높은 작곡가를 꼽으라면 단연 쇼팽을 들 수 있다. 그는 이 매력적인 제목을 사용하여 1837년, 1839년, 1842년에 세 개의 즉흥곡을 작곡, 제각기 독립된 작품으로 출판했다. 다만 그의 즉흥곡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1834년 작 <환상 즉흥곡>(Fantaisie-Impromptu)만큼은 쇼팽의 사후에까지 출판되지 않았다.
1번 A플랫장조 Op.29
1837년에 작곡하여 로보 백작부인에게 헌정한 쇼팽의 첫 번째 즉흥곡으로, 밝고 경쾌한 주제 멜로디와 가벼운 듯 비상하는 듯한 셋잇단음표의 진행이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차분하다기보다는 조금 떠들썩한 느낌이 드는 이 즉흥곡은 세도막 형식으로, 가운데 트리오 부분에는 애상의 느낌을 머금은 서정적 주제가 격정적으로 변화한다. 맑고 깨끗한 느낌과 음표의 쉼 없는 진행이라는 면에서 슈베르트의 영향 또한 감지할 수 있다.
2번 F샤프장조 Op.36
1839년에 작곡한 쇼팽의 두 번째 즉흥곡은 그의 즉흥곡 가운데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까지를 띠고 있다. 녹턴 주제가 제시된 후 5개의 부분과 코다로 이루어진 이 2번 전주곡은 쇼팽이 친구인 쥘 폰타나에게 보낸 편지에 “어쩌면 그다지 가치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신선한 형식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3번 G플랫장조 Op.51
1842년에 작곡된 Op.51은 에스테르하지 백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이 해는 노앙 별장에서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 지내면서 창작의 원숙기를 맞았던 때로 쇼팽에게는 삶의 절정기였다. 그만큼 다채로운 표현력과 다양한 기법, 즉흥곡이라고 하기에 다소 복잡한 전개가 적용되어 있다. 이 역시 서주와 보다를 가진 세도막 형식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오른손과 왼손 2성부의 대화와 잔잔한 선율의 아름다움이 발군인 트리오 부분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자주 연주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쇼팽의 창작열과 원숙함이 압축되어 있는 명곡으로, 화사하면서도 부드러운 서정 가운데에서도 우울함과 공허함과 같은 이질적인 감성들이 나지막한 어조로 그 존재감을 살포시 드러내고 있다.
1834년 24세 쇼팽이 파리에서 작곡한 곡으로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친구인 쥘 폰타나에게 헌정했다. 작곡가는 생전에 이 작품을 애지중지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전에 출판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작곡가 사후 유작으로 출판되었고, 특유의 몽환적인 비애감과 격정적인 고양감으로 인해 이내 쇼팽의 작품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세도막 형식으로 구성된 이 ‘환상 즉흥곡’은 기교가 넘치는 오른손의 16분음표의 향연과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왼손의 8분음표의 굽이침은 서로 다른 리듬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다이내믹을 증폭시키고, 여기에 우수에 찬 c샤프단조 특유의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더해져 열정의 수렴과 발산을 조울증적으로 반복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그리고 몽상적인 아름다움과 서정적인 유려함이 발군인 가운데 트리오 부분이 앞과 뒤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연속성을 부여하는 모습 또한 현실과 꿈을 오가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음표와 감정의 숨 막히는 질주를 뒤로 한 채 마지막 코다는 순결하면서도 신비로운 뉘앙스를 주며 조용히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