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이 영화를 봤습니다.
원래 이영애의 광팬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한국남자배우로는 안성기씨 다음으로 유지태를
뽑는데다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라면 <8월의 크리스마스>를 뽑을 만큼,
허진호감독의 첫영화를 너무 좋게 본 탓에,
그의 두번째 영화 <봄날은 간다>를 3월달부터 기다려 왔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미루고 미뤘는지
모르지만,
오늘 이제 이 영화의 상영관이 찾기 어렵게 된 요즘에야 보게 되었습니다.
혼자서요.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보지
못했지만, 이제 끝나게 되는 때에 보게 됐다는 것에,
왠지모를 소박한 뿌듯함을 걸어놓습니다.
이 영화를
떠올리니,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너무 귀엽고 예쁘게 연기하는 이영애씨와
여전히 어설프고 멍청한 듯하지만,
매력적인 유지태와
대나무숲, 산사, 개울가, 파도소리, 보리밭.
또, 할머니의 사탕, 눈길위의 자전거, 수북히 쌓여진 밥,
강릉, 라면, 복슬복슬한 마이크,
이영애의 흥얼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리고 햇살.
이 영화 어찌보면 상투적인 남녀의
사랑얘기인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사랑을 믿는 젊은 남자와 사랑도 변한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연상 여자"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제게 그런 상투적인 다른 멜로영화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지독히도 일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화면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일상에다가, 사랑에다가 약간의 햇볕을 비춰주어서 빛바랜 사진처럼 만들었다고 할까요?
현재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시간은 영화의 시간과 함께이지만,
그러면서도 마치 오랜된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곱씹어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이라든가,
상우의 가족들이 사는 집.
처음에 나오는 대나무 숲.
또 상우의 녹음실 앞의 낡아보이는
커피자판기,
졸졸 소리를 내는 개울가.
은수의 방송국 앞의 구멍가게,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의 은수와 보리밭에서의 상우의
모습.
그 속에서 지극한 일상에서의 사랑이라는,
인간이 서로 의지하고 살게 되면서부터 수많은 정의를 가지게 되었던
것은,
상우의 한마디로 표현됩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허진호
감독은 참 이상한 사람인가 봅니다.
영화속에서 은수와 상우는 단 한번도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나누는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로 설명하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잠깐 잠깐, 순간 순간에 보여지는,
배우들의
얼굴과 표정과 행동속에 그들의 마음을 담습니다.
어쩌면, 내가 전에 알고 있었던 표정일지도,
또는 읽지 못했던 혹은,
놓쳐버렸던 표정일지도,
지금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타나는 내 자신의 표정일지도,
또는 다른 누군가의 표정일지도
모르는,
언젠가 본듯한 그런 표정들로 그들을 감정을 관객에게만 보여줍니다.
상우는, 은수는, 또 나는 그 표정들을 읽지
못해서 변했나 봅니다.
나는 사랑을 모릅니다.
하지만 변한다는 것은 알게
되었습니다.
"뭐, 간절히 바래도 다 잊고 그러더라."
그렇게 변해가는
은수와 상우를 봤습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이렇게 외로운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노희경"의 두 번째 이야기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 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 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일이라 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 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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