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시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째깍째깍 일정하게 울려대는 그 소리는 안타깝게도 우리를 위해 멈춰주지 않는다. 베터리가 다 되어 멈춰버린 시계 바늘은 움직이지 않을 지언정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한 번은 이 놈의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가 신경이 거슬려 자다 말고 베터리를 다 빼버린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새벽 한 시 이십분쯤이었다. 나는 오전이 되어 밖이 환해짐에 따라 몸을 일으켰다. 열심히 밖을 뛰어다니고, 저녁이 되어 밖이 어두워지면 몸을 뉘었다. 그 때도 내 시계는 여전히 한 시 이십분쯤이었다. 그러나 시계가 멈췄던들 나는 매일 두 번의 한 시 이십분쯤을 만났다.
시간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유일한 감옥이다. 안쓰럽기까지 한 끊임없는 도전 끝에 감옥에서 탈출한 빠삐용도 그 오랜 세월에 주름진 얼굴, 백발이 된 머리카락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빨리 감기를 할 수도 없고, 뒤로 되돌릴 수도 없으며 나의 1초가 다른 사람의 1분이 될 수도 없다. 이렇게 누구나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이 우리를 배신한다면, 어쩌면 누군가는 미래를 볼 수 있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멋진 일이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미래를 보게 된다면 그것이 정해진 운명이겠거니 순응하고, 노력하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대개 그런 경우에, 주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계속적으로 죽을 힘을 다하는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들은 실패할 때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반복적인 시간을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의 영화는 안타깝게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나 배경이 주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영화 '동감'이다.
동감(Ditto), 2000
감독: 김정권
출연: 김하늘, 유지태, 박용우, 하지원
1979년의 여자 소은.
2000년의 남자 인.
무선기 사용법을 소은에게 알려주기 위해 학교 시계탑 앞에서 만나기로 한 두 사람.
두 사람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를 기다리지만 결코 만날 수 없다.
"먼지 날리는 공사 현장 앞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비를 쫄딱 맞으며 기다린 인은 그녀의 말을 납득할 수 없다.
"먼지요? 그러니까 비 오는 날에 먼지 날리게 기다리셨다?"
말도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서로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미래와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푸는 즐거움도 잠시, 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선배 동희(박용우)와 친한 친구 선미(이승민)의 아들임을 알게 된 소은. 시간은 과거를 엿본 인보다 미래를 넘본 소은에게 훨씬 큰 벌을 내린다.
무언가 해답을 찾기 위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소은이 원하는 미래가 아니다. 또, 소은이 처음부터 미래를 보고자 의도했던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동희와 마음을 주고 받으며 연인의 모습으로 발전해가는 중이었고, 그런 둘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은 그녀의 친구 선미도, 그들의 아들 인도 아닌, 소은의 삶에 갑자기 끼어든 미래의 시간이다.
그녀가 인과 무선기를 통해 만나지 못한 채, 그대로 자신의 사랑을 이어나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고 해서 미래에 버젓이 살고 있는 인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질까?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운명이 아니라는 말을 가져다쓰며 어떻게 해서든 소은과 동희는 헤어지고, 그녀의 친구 선미와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감정과 억지로 끊어내는 감정의 정리는 엄청난 고통의 차이가 있다. 끝까지 가볼까 갈등에 휩싸인 그녀는 인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차마 자신의 감정을 가져가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도덕성. 그것은 사람을 참 힘들게 한다. 소은이 먼저 사랑했지만, 인의 존재로 하여금 어쩐지 자신이 오히려 남의 사랑을 빼앗는 것처럼 죄책감을 가지게 만드는.
한 번 쯤은 다른 사람의 연인을 마음에 두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나 생각하며 과감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그래도 임자있는 사람을 어떻게 넘보냐며 다른 사람에게 차마 나쁜짓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욕망에 도덕성이 승리를 거뒀으니 이것이 진정 옳은 결정일까?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이 되어버린, 2000년의 영화적 감성과 이야기의 구조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동감을 좋아하는 것은 참신한 소재와 풋풋함 때문이다. 것마저 없었다면 이 바보처럼 순수하고 도덕적인 소은을, 운명이 어쨌느니 미래가 이랬다느니 하는, 그저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것을 어떻게 곱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나는 운명을 믿지만, 그렇게 착하지는 않은 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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