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애호가' 신성일과 베토벤
▷ 폐암으로 투병하다 4일 별세한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81)에게 독일의 악성 베토벤(1770~1827)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곡가다./;1 본, 'Netizen Photo News' 는 가입 필요없이 손님께서도 연결에 넣어두고 날마다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 있음) '한국 네티즌본부'

◇ <△ 사진:> 영화배우 신성일과 윤정희. 영화 99편을 함께 찍었다. 윤정희의 남편은 피아니스트 백건우
○···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년에 이례적으로 파마머리를 했다. 이로 인해 '베토벤' 같다는 인상 비평을 자주 들었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 영화계 걸작으로 통하는 '맨발의 청춘'(1964)에서도 베토벤이 등장한다. 신성일은 이 영화에서 깡패 '두수'를 맡았다. 밀수품을 파는 건달 두목의 심부름 등을 하면서 먹고 사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평소 자신과 거리가 말런 오케스트라 콘서트장에 가고, 베토벤의 '운명'을 듣는다.
○···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년에 이례적으로 파마머리를 했다. 이로 인해 '베토벤' 같다는 인상 비평을 자주 들었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 영화계 걸작으로 통하는 '맨발의 청춘'(1964)에서도 베토벤이 등장한다. 신성일은 이 영화에서 깡패 '두수'를 맡았다. 밀수품을 파는 건달 두목의 심부름 등을 하면서 먹고 사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평소 자신과 거리가 말런 오케스트라 콘서트장에 가고, 베토벤의 '운명'을 듣는다.

◇ 배우 신성일(81)이 4일 폐암으로 타계하면서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방송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 사진:>TV조선 '인생다큐 - 마이웨이' 한 장면
○··· 자신이 사랑하는 부잣집 딸 '요안나'(엄앵란)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신성일이 실제 베토벤을 닮은 머리를 하게 된 까닭도 베토벤 때문이다. 의원 시절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2년간 수감 생활을 할 당시 그와 막역한 피아니스트 백건우(72)·배우 윤정희(74) 부부가 면회 와서 선물해준 '베토벤의 삶과 음악 세계'가 계기가 됐다.
○··· 자신이 사랑하는 부잣집 딸 '요안나'(엄앵란)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신성일이 실제 베토벤을 닮은 머리를 하게 된 까닭도 베토벤 때문이다. 의원 시절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2년간 수감 생활을 할 당시 그와 막역한 피아니스트 백건우(72)·배우 윤정희(74) 부부가 면회 와서 선물해준 '베토벤의 삶과 음악 세계'가 계기가 됐다.

○···신성일은 2009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베토벤의 비장한 삶이 내 고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면서 "그의 삶도 삶이지만, 자유분방한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어 베토벤 스타일로 파마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 신성일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기도 했다. 고향 대구에 있는 음악 감상실에서 베토벤은 물론 오페라 등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딸 수화씨는 올해 초 신성일의 암 투병기를 전한 MBC TV '사람이 좋다'에서 "아버지 방에는 클래식 음반과 책이 빼곡했다"고 전했다. realpaper7@newsis.com
◆ 신성일, 뮤지컬 마니아···영화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큰별
▷ 폐암으로 투병하다 4일 별세한 '영화계 큰 별' 신성일(81)은 생전 뮤지컬에도 관심을 쏟았다. 공연계에서는 이 장르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힘쓴 인물로 평가한다. 특히 2008∼2013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을 맡았다. 이사장 재직 당시 페스티벌 소개 기자회견 때마다 전면에 나서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 뮤지컬 작품에 제대로 출연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천상 영화인인 그가 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을 맡은 것을 일부에서는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연계에서 신성일은 자타공인 뮤지컬 마니아였다. 주목받는 뮤지컬은 대부분 빼놓지 않고 관람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1973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코러스 라인'을 통해 뮤지컬을 처음 접한 뒤 '뮤지컬 마니아'가 됐다. 브로드웨이,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등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뮤지컬을 봤다고 한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알리기에 힘쓴 것은 자신의 고향인 대구에서 열리는 축제여서이기도 했지만, 뮤지컬 장르에 대해 애정도 큰 것도 이유였다.

◇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려면 인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2003년에는 미국에서 뮤지컬을 공부하는 젊은 학생을 한국에 연결해주는 '뉴욕 액팅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도 했다. <△ 사진:> 신성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2017
○··· 2010년에는 비록 대학 캠퍼스 내 공연작이었으나 대경대 뮤지컬과가 신성일 일대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 '신성일, 맨발의 청춘'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으로서 신성일을 만났던 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은 "페스티벌 이사장으로 재직하셨을 당시 1년에 한 번씩 뵀는데 뮤지컬에도 애정이 크시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탄생부터 축제가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응원해주셨다"고 기억했다.
○··· 2010년에는 비록 대학 캠퍼스 내 공연작이었으나 대경대 뮤지컬과가 신성일 일대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 '신성일, 맨발의 청춘'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으로서 신성일을 만났던 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은 "페스티벌 이사장으로 재직하셨을 당시 1년에 한 번씩 뵀는데 뮤지컬에도 애정이 크시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탄생부터 축제가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응원해주셨다"고 기억했다.

△ 사진: 4일 새벽 81세를 일기로 별세한 영화배우 신성일의 부인 엄앵란(82)이 4일 오전 10시25분 송파구 올림픽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으로 왔다. 지팡이에 의지한 엄 여사는 황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역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으로 신성일과 종종 마주한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많은 대중이 영상 속 신성일을 기억하겠지만, 뮤지컬과 공연 애호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셨다"고 했다. 신성일은 원 교수가 쓴 '올 댓 뮤지컬(All That Musical)'을 탐독할 정도로 뮤지컬을 공부하는 데도 힘 썼다. 원 교수는 "공연을 굉장히 좋아하셨고,후학 양성기관을 생각하실 정도로 공연계에 애정이 많으셨다"면서 "그렇게 본다면 영화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체의 큰 별로 봐도 된다"고 했다
○··· 역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으로 신성일과 종종 마주한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많은 대중이 영상 속 신성일을 기억하겠지만, 뮤지컬과 공연 애호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셨다"고 했다. 신성일은 원 교수가 쓴 '올 댓 뮤지컬(All That Musical)'을 탐독할 정도로 뮤지컬을 공부하는 데도 힘 썼다. 원 교수는 "공연을 굉장히 좋아하셨고,후학 양성기관을 생각하실 정도로 공연계에 애정이 많으셨다"면서 "그렇게 본다면 영화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체의 큰 별로 봐도 된다"고 했다

◇ 배우 김수미(69)는 1일 오후 10시 방송한 TV조선 '인생다큐 - 마이웨이'에 신성일과 같이 출연해 신인 시절 톱스타였던 그에게 도움을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 사진:> TV조선 '인생다큐 - 마이웨이' 한 장면
○··· 그녀는 "신인 시절 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예정에 없던 노출을 요구했다"며 "당시 막 결혼한 나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영화감독 말이 법이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당시 최고 스타이자 상대 배우였던 신성일이 나서줬다"며 밝혔다.
이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장 고마운 일이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신성일은 "문희도 그랬고, 그때 신인 배우들한테 내가 항상 그랬다. 내가 보호 안 하면 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 realpaper7@newsis.com
◆ 영화배우 고 신성일
○··· 그녀는 "신인 시절 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예정에 없던 노출을 요구했다"며 "당시 막 결혼한 나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영화감독 말이 법이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당시 최고 스타이자 상대 배우였던 신성일이 나서줬다"며 밝혔다.
이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장 고마운 일이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신성일은 "문희도 그랬고, 그때 신인 배우들한테 내가 항상 그랬다. 내가 보호 안 하면 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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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영화배우 고 신성일의 생존시 모습들. (사진=뉴시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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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수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본, 'Netizen Photo News' 는 가입 필요없이 손님께서도 연결에 넣어두고 날마다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 있음) '한국 네티즌본부' ![]() ◇ 4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배우 신성일씨를 항상 따라 다니는 이름이 있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영화 동지였던 배우 엄앵란(82)씨다. 신씨는 숨지기 직전 동료로 58년, 부부로 54년 인연을 이어온 엄씨에게 짧지만 강렬한 작별 인사를 남겼다. <△ 사진:> 배우 엄앵란이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성일 씨의 빈소에서 취재진에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두 사람의 ‘바늘과 실’ 관계는 1960년 시작됐다. 고인의 데뷔작 ‘로맨스 빠빠’에서 호흡을 맞추면서부터다. 엄씨는 고인의 여동생 역할을 연기했지만, 고인보다 한 살 많았고 연기 선배였다. 1956년 ‘단종애사’로 데뷔한 엄씨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다. 고인은 엄씨가 연기 경험이 없는 자신과 함께 연기할 때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여러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던 두 사람은 1963년 ‘배신’을 촬영하며 가까워졌다. 1964년 둘의 결혼식은 장안의 화제 중 화제였다. 서울 광진구 워커힐에서 열린 결혼식은 신랑신부의 인기 때문에 난장판 속에 치러졌다. 고인의 생전 회고에 따르면 당시 결혼식 홀 안은 양가 부모를 제외하면 모두가 모르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동료 영화인들이 축의금을 낼 수 조차 없었다. 당시 거금 200만원을 들인 결혼식에 답지된 축의금은 2만2,500원. 전국 소매치기들이 다 몰린 것 같았다고 고인은 회고했다. ![]() ◇ 스타 커플의 화려한 탄생이었지만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고인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결혼 생활”이라 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1975년부터 사실상 별거를 시작했고 신씨는 훗날 자서전에서 외도 사실을 고백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 사진: 신성일씨가 2000년 4월 대구 동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부인 엄앵란씨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럼에도 두 사람은 평생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신씨는 아내 엄씨가 유방암으로 투병할 때 곁에서 간호했다. 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만난 엄씨는 엄씨는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편은 아파서 까무러치는 순간에도 영화 얘기를 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남편이 이렇게나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사람이 있어서 오늘날 한국영화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고 말했다. 엄씨가 신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별세 사흘 전. 엄씨는 “그 남자(신성일)는 일밖에 몰랐다. 그런 사람이라서 내가 존경했고 54년을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 ◇ 故 신성일 빈소, 문성근·이창동 감독·정지영 감독 ‘슬픔 속 조문’ ○··· 엄씨는 “남편은 대문 밖의 남자였지 집안의 남자가 아니었다”면서 “일에 미쳐서 집안 일은 나에게만 맡겼다. 그렇기에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연기할 수 있었고, 어려운 시절에 히트작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씨는 “남편은 욕심이 너무 많았다. 영화 제작도 하고, 극장을 인수했다가 날리기도 했다. 밖으로 (돈을) 가져가지만 했지 집으로 가져오지를 않았다”고도 했다.엄씨는 “밖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동지다. 영화하는 동지다. 끝까지 전진해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며 동지애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늘그막에 재미있게 살려고 했더니 (그렇게 떠났다)”라고 끝내 말끝을 흐렸다.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 원본글: 한국일보| Click ○←닷컴가기. |
악극단 출신 장동휘와도 불화 ▷ 김대중 캠프 합류 제의받기도/본, 'Netizen Photo News' 는 가입 필요없이 손님께서도 연결에 넣어두고 날마다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 있음) '한국 네티즌본부' ![]() ◇ 4일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신성일씨는 스크린 밖 삶도 영화 같았다. 여러 배우와 교유하고 반목하며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정계에도 지인이 많아 한국 현대사의 주요 대목에서 조연 역할을 했다. <△ 사진:>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한 신성일씨가 선거연설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고인은 신상옥 감독의 발탁으로 배우가 됐지만, 신 감독 쪽으로부터 한때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신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름 전속배우로 3년 동안 월급을 받았지만, 고인은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하면서 신 감독의 품을 떠났다. 고인은 스타가 됐고, 이후 신 감독과 오해를 풀고 막역한 사이가 됐다.인기 액션배우 박노식씨와 장동휘씨와는 악연이었다. 신인시절 경남 통영에서 ‘김약국의 딸들’(1962)을 찍을 때 숙소에서 술에 취한 박씨에게 구타를 당한 후 두 사람은 반목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자리를 놓고 일합을 겨룬 장씨와는 평생을 불화했다. 고인은 악극단 출신 장씨를 선배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 ◇ 엄앵란 “남편 신성일, 죽는 순간까지 영화만 사랑” <△ 사진:> 배우 엄앵란씨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성일씨의 빈소에서 조문객과 인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워낙 높다 보니 정계 입문 제의도 일찌감치 받았다. 1970년 9월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김상현 의원과 함께 한밤중에 고인 자택을 찾아 대선 캠프 합류를 부탁했다. 고인은 당시 김 후보의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과 조예에 반해 지원을 약속했다. 김 의원은 1967년 고인이 영화 ‘강명화’ 야간 촬영을 할 때 포장마차와 주인을 통째로 빌려 촬영장을 찾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다. ![]() ◇ 1960년 신 감독의 ‘로맨스 빠빠’로 은막에 데뷔했다. 대가족 속의 고등학생 막내아들 역할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조각도로 다듬은 듯한 얼굴이 단번에 영화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 사진:> 신성일씨의 데뷔작 '로맨스 빠빠'(1960) ○···하지만 남편이 정치에 휘말려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걸 우려한 고인의 부인 엄앵란씨가 몰래 지인을 통해 만류하면서 고인의 김 후보 지원은 없던 일이 됐다. ‘철의 사나이’ 박태준 포항제철 전 회장과도 인연이 깊었다. 한국전쟁 당시 박 전 회장은 대구 육군대학에서 수학할 때 고인의 인교동 집에서 하숙을 했다. 박 전 회장이 교육을 마치고 부상으로 받은 ‘파카’ 만년필을 고인에게 선물로 줬다. ![]() ◇ 1964년 고인이 주연한 영화는 ‘맨발의 청춘’을 포함해 35편. 그나마 이는 적은 편이다. 고인은 전성기 때 1년에 40~50편씩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65년부터 한동안 연예인ㆍ예술인 납세 1위 자리를 지켰다. 통금이 있던 당시 내무부장관이 밤 촬영이 가능한 전국 야간통행증을 배우로서는 유일하게 고인에게 발행했다. 세수 증대에 기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 사진:> 영화 '겨울여자'(1977)에서 신성일씨는 배우 장미희와 호흡을 맞췄다. ○··· 두 사람의 인연은 박 전 회장이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고인은 김종필 전 총리와도 바둑을 종종 두는 사이였다.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으나 1980년대 절연했다. 주 전 장관이 1980년 초 식사를 하며 “(다음 대통령은) 전두환이가 된데이”라고 하자 고인은 “전두환이 되면 나라 망합니다”라고 대꾸했다가 어색한 사이가 됐다.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 원본글: 한국일보| Click ○←닷컴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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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신성일, "여보 잘 가요~"
▷ 안 보낼 수 없는 가족들의 묵념


◇ 7일 경북 영천시 괴연동 성일가에서 열린 배우 고(故) 신성일 추도식에서 부인 엄앵란 씨가 헌화하며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 7일 경북 영천시 괴연동 성일가에서 열린 배우 고(故) 신성일 추도식에서 부인 엄앵란씨를 비롯한 유가족이 묵념하고 있다. 영천/연합뉴스
● 떠난''국민배우'' 신성일'
○··· 7일 경북 영천시 괴연동 성일가에서 열린 배우 고(故) 신성일 추도식에서 부인 엄앵란씨를 비롯한 유가족이 묵념하고 있다. 영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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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밝게 빛난 '별'이 안식에 들었다. '국민배우'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 30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81세. 사진은 2007년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열린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신성일-엄앵란. 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민배우''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 30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81세. 사진은 1970년 ''제7회 청룡영화상'' 남자인기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신영균, 신성일, 남궁원. 연합뉴스
○··· ''국민배우''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 30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81세. 사진은 1970년 ''제7회 청룡영화상'' 남자인기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신영균, 신성일, 남궁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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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태복과 행복나누기
글쓴이 : 참전연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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