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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삼국지 2부 - 이릉대전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29. 16:38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삼국지 2부 : 이릉대전

 

 

서기 184년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결의로 형제애를 맺고 삼고초려 끝에 세기의 지략가 제갈량을 얻어 천하통일의 단계를 밟아 갑니다. 적벽에서 오나라 손권 세력과 연합해 위나라 조조의 남하를 막아내며 중원의 노른자위 땅 형주를 차지해 비로소 근거지를 마련하게 되고 유비는 북쪽의 조조와 동쪽의 손권 세력에 맞서기 위해 관우를 형주성 태수로 임명합니다. 이를 발판으로 촉, 지금의 사천 땅에 첫발을 내딛고 풍요로운 모습에 찬탄을 합니다.

 

바야흐로 214년, 사천의 중심 익주를 공략해 드디어 촉한을 세우고 천하가 위․촉․오로 나뉘는 삼국시대에 접어들게 됩니다. 촉한의 세력을 넓히던 절정의 순간, 홀로 형주성을 지켜오던 관우가 219년에 오나라 손권에게 목숨을 잃으며 적벽대전부터 맺어온 동맹관계는 깨지고 맙니다. 형제의 죽음에 복수를 다짐하는 유비와 장비. 이에 수군 훈련을 강화하는 손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장강에서 유비와 손권의 대결. 이릉대전이 시작됩니다.

 

 

같은 날 죽기로 맹세했던 의리의 삼형제. 관우의 죽음은 촉한의 운명을 바꿔놓습니다.

 

정원기 / 중문학 박사

"관우(關羽)가 죽고 나자 유비(劉備)가 복수심 때문에 전 국력을 동원해서 오(吳)나라를 치려고 하죠. 그래서 장비(張飛)와 의논합니다. 다른 신하들은 전부 반대를 하죠. 특히 조자룡(趙子龍)은 극렬히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장비는 결의형제를 맺었던 형이 죽었으니까 눈이 뒤집히는 거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낭중고성(閬中古城), 랑중구청) 이곳은 장비가 7년 간 다스렸던 낭중고성입니다. 촉에서 중원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장비는 위나라 조조를 막기 위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관우와 더불어 만 명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 장수로 꼽혔는데요. 술과 싸움엔 천하무적, 호탕한 성격인 장비, 그런 장비가 관우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얼마나 원통해 했을까요? 급기야 221년. 유비가 오나라 정벌을 선포하자, 장비도 함께 출정을 준비합니다.

 

"장비는 날마다 술을 마셨겠죠. 분한 마음에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마음에 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어요. “사흘 안에 모든 갑옷을 다 만들어라. 새롭게 만들어라. 형이 죽었으니 흰 갑옷을 입고 적을 치도록 하자” (범강과 장달에게) 흰 갑옷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흘 안에 만들 수가 없죠. 결국 궁지에 몰리게 된 범강(範强)과 장달(張達)이 술에 만취되어 자고 있는 장비의 침실에 들어와서 장비를 찔러 죽입니다."

 

 

 

* 한환후사(漢桓候祠, 한환허우츠)

장비묘가 있는 사당, ‘환후(桓候)’는 장비의 시호.

 

낭중고성 안에 있는 장비의 묘, 장한후사. 장비는 끝내 형 관우의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그해 전쟁 준비를 하던 중 비명횡사하게 됩니다.

 

 

당시 장비의 나이 55세. 부하에게 머리가 잘려 몸은 이곳에 머리는 장강 변에 묻혔다는데요. 천하를 호령하던 맹장의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한편 유비는 두 동생을 잃고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장강 3협으로 향하는데요. (봉절현) 이곳은 장강 3협으로 이어지는 촉한의 땅, 중경의 천갱(天坑)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이 곳곳에 펼쳐지는데요. 중국 최대의 웅덩이라는 이 엄청난 규모의 구멍은 하늘의 구멍 즉 ‘천갱’이라 불리는데 이 지역의 험난함이 느껴집니다.

 

"관세음보살상이네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관세음보살상 앞에 관운장(관우)이 모셔져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민간 신앙 깊숙이 관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눈길 돌리는 곳마다 촉한 땅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 수 있습니다.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내는 절경. 위대한 자연의 걸작품. 하늘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아찔한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오니 또 다른 거대한 구멍이 눈에 들어옵니다. 협곡 아래쪽으로 오니 절벽이 온통 이끼로 뒤덮여 있는데요. 햇빛도 잘 안 들어올 만큼 깊은 구덩이 속은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기분입니다.

 

"조금 흐린 날이 되면 운무가 가득 이 안에 찬대요. 지금 서서히 운무가 끼네요. 이렇게 운무가 낍니다. 여기가 장강삼협의 삼협과 연결되는 지역입니다. 바로 여기가 봉절현 천갱입니다. 하늘에서 밑으로 내려 보면 완전히 땅속에 큰 구멍이 난 그런 상태고 여기서 하늘을 보면 하늘로 난 구멍이 느껴져요. 마치 속세를 완전히 떠나서 별천지 어떤 동굴 속에 들어온 그런 느낌입니다."

 

싸움을 치르기엔 너무도 힘든 험준한 땅. 유비는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요? 바로 오나라로 가는 최선의 길은 장강이었습니다. 무산(巫山, 우샨) 특히 장강에서도 촉한지역인 중경과 오나라 지역인 호북성이 연결되는 장강삼협이 주(主)무대가 됩니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수도인 성도를 맡기고 직접 10대군을 이끌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곳에서 촉과 오의 전투인 이릉대전이 벌어집니다.

 

정원기 / 중문학 박사

"유비가 이릉대전 때, 무산(巫山)과 무협(巫峽)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릉(夷陵)까지 장장 700리(약 280km)나 산마다 영채(營寨)를 세웠다고 해요. 그래서 밤이 돼서 횃불을 켜면 700리 까지 횃불이 이어져 오나라 군사들의 간담이 서늘했다고 합니다. 이 장강은 유비가 촉(蜀)으로 들어올 때의 길이기도 하고 또 오나라와의 이릉대전을 위해 내려간 길이기도 합니다. 들어오고 내려간 그런 길이죠. 역류했다가 다시 순류를 타고 내려간 겁니다."

 

 

장강삼협은 구당협(瞿塘峽), 무협, 서릉협, 세 개의 협곡을 말하는데 장장 193km에 달합니다. 육도든 강으로의 이동이든 쉽지 않은 길. 잔도를 만들어 험준한 산악지대를 넘고 역류와 순류를 이용해 거센 물살을 헤쳐 나갔습니다.

 

기묘한 봉우리 우산 12봉이 펼쳐지는 무협부터는 강폭이 넓어지며 배로 수월하게 이동했다고 하는데요. 221년. 두 동생들의 원수를 갚고자 오나라 정벌을 시작한 유비. 무협에서 가장 긴 서릉협(西陵峽)까지 가는 동안 승승장구했는데요. 222년 정월. 유비는 먼저 수군을 이릉, 지금의 의창(宜昌, 이창)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손권 측이 이를 상대하는 동안 유비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육로로 진군할 계획이었죠.

 

 

의창은 형주의 자물쇠라 불리는 군사요충지입니다. 그해 봄, 유비는 본격적인 공세를 펼치고 유비군의 승리가 눈앞에 온 것 같은데요. 이곳만 손에 넣는다면 손권에게 빼앗긴 형주를 되찾고 오나라 땅으로 진격할 수 있기 때문이죠. (효정고전장猇亭古戰場) 그 옛날 격전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곳이 이릉대전 중 가장 격렬했던 전투장인 효정고전장이네요."

 

장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효정전투장은 유비와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유비는) 211년에 이 길을 통해서 촉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꼭 10년 후인 221년에 이릉대전을 치르기 위해서 여기로 오게 되죠. 다시 이쪽으로 촉에서 나오게 됩니다."

 

10년 전 적벽대전의 승리로 형주를 얻으며 이 길로 들어가 촉까지 진격한 것입니다. 이곳에 도착한 유비군은 군영을 설치하고 총력전을 준비했는데요.

 

"촉나라 군은 여기 있었죠. 여기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거죠. 전진 배치된 10만 명 중에 최전방의 4만 명 정도가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나라에서 총공격을 감행하자 전쟁이 (벌어진) 장소라는 거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라는 겁니다. 여기가……."

 

한편 유비에게 밀려 후방에 진을 치고 버티기 작전에 돌입했던 오나라 군. 222년 음력 6월. 무더위에 지친 유비 군이 숲으로 진영을 옮긴 틈을 타 수군을 적진으로 급파해 기습공격을 합니다. 또한 육상에서도 전군을 동원해 동시다발적으로 맹공을 펼치며 촉군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립니다. 육상의 수십여 진영이 순식간에 함락 당하자 유비는 본진을 포기하고 혼란에 빠졌고 수군 역시 퇴로가 끊기며 항복하고 맙니다. 쓸쓸한 위령탑이 당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주는데요.

 

"(유비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탄을 받았습니다. 중신들, 제갈량(諸葛亮)부터 시작해서 조자룡, 진복(진밀, 秦密) 이런 대신들이 극구 반대했습니다. 유비가 (그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아우를 잃고 강산을 다 얻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런 면에서 유비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죠.) 어떤 면에서 상당히 무모하다고 볼 수 있지만 무모함도 넘어서는 의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관우, 장비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국력을 총동원해 직접 출병했던 유비. 신하들의 만류에도 감행했던 복수는 실패로 돌아가고 호아산 잔도로 간신히 퇴각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패잔병을 수습해 오나라 군사에 대항해 보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었는데요. 참담한 패배를 않고 가던 길, 유비의 심정은 어땠을 까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서시에서 이 장강(에 관한) 읊은 시가 있습니다."

 

세차게 굽이치며 동으로 흐르는 장강 물결

하얀 물보라 일으켜 옛 영웅호걸 다 쓸어 가버렸네

시비도 성패도 고개 한 번 돌리니 헛것이니

푸른 산은 예처럼 그 자리에 있는데

저녁놀은 몇 번이나 또 붉었다 사라졌던고

 

 

촉한은 이릉전투에서 크게 패하며 형주를 되찾을 길을 잃게 됐습니다. (구당협, 취탕샤) 나라의 운명과 바꿀 만큼 소중했던 형제들과의 의리를 지키려다가 싸움의 출발점이던 백제성까지 후퇴하게 된 유비. (백제성白帝城, 바이디칭) 멸망을 재촉한 군주임에도 배신과 모략이 판치는 난세에 의리를 지켰기에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받는 것 아닐까요.

 

(백제성, 백제묘) 백제성 안에 백제묘에서 이들의 의리를 다시 한 번 느껴봅니다.

 

"'한대명량(漢代明良)'이라 '명군(明君)과 양신(良臣)'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비는 밝은 군주이고, 제갈량, 장비, 관우는 훌륭한 신하들이라는 거죠. 죽고 난 뒤에까지 서로 의리를 지키고 확실한 군신관계를 이룬 것이 이 사람들 이상 되는 사람들이 없다는 거죠."

 

 

하지만 유비는 의형제들의 죽음과 패전으로 인한 자책감에 괴로워하다가 끝내 화병을 얻게 되는데요. (탁고당托孤堂)

 

정원기 / 중문학 박사

"죽으면서 남아 있는 자기 자식을 부탁한다는 의미죠. '탁고(托孤)'라는 말은 제갈량에게 (유비가) 부탁을 하죠. “내가 죽고 난 뒤에 내 자식을 잘 봐 달라. 만약에 내 자식이 나라를 경영할만한 인물이 못되거든 당신이 이 성도의 주인이 되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두 아들을 불러다 제갈량에게 절을 하도록 합니다. “아버지처럼 모셔라. 승상이 무슨 말을 하든 너희는 따라라.” 그리고 조칙(詔勅)을 내립니다. 무엇이라고 썼느냐면, 자기 맏아들 유선에게 “네가 임금이 되더라도 반드시 제갈량에게 모든 일에 관해 물어보고 아버지처럼 모시면서 그렇게 나라를 경영하도록 하라.” 그리고 난 뒤에 (유비는) 죽게 되죠."

 

유비가 촉으로 들어가게 되는 성공의 발판이자, 멸망의 길이기도 했던 장강삼협. 수도인 성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이듬해인 223년 백제성에서 한 맺힌 생을 마감합니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처음 만나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자며 도원결의를 한 지 39년 만에 세 영웅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무후사武候祠, 우허우츠)이들이 이루지 못한 삼국통일의 대업은 승상 제갈량이 이어받는데요. 삼고초려 이후 26년 간 동고동락하면서 쌓아온 신의와 충절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군주에 대한 충성심과 의리로는 천하제일이라 해도 무색한데요. 제갈량은 백제성에서 남긴 유비의 유지를 받들어 촉한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전략을 짜게 됩니다.

 

"(제갈량은) 전쟁을 했던 오나라와 화친을 맺습니다.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니까요. 우선 화친을 맺고 또 남방정벌을 시작합니다. 유비가 죽은 2년 후에 (제갈량이) 남방정벌을 왜 했냐면 남방에서 반란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고 그 소요를 잠재우는 동시에 남방을 정벌함으로써 군수물자를 확보할 수 있는 거죠. 군수물자와 군사들을 확보할 수 있고 전쟁에 동원될 수 있는 장정들을 확보할 수 있는 겁니다."

 

 

(운남성雲南省, 윈난성) 때는 225년 이른 봄. 제갈량은 사천 만큼이나 험하다는 남만, 지금의 운남성으로 정벌을 떠납니다. 남만의 왕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 일곱 번 풀어주는 칠종칠금으로 맹획은 감복하고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게 되죠. 그해 겨울 죽은 군사들에 원혼을 달래기 위해 사람 머리 모양의 만두를 빚어 바치고 노수, 지금의 금사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남만을 평정한 이후 먼 변방에서 조공을 바쳐왔는데 그 수가 무려 200곳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위와 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물자를 조달하고 기울어진 국력을 다시 회복하는 신의 한수였죠.

 

 

유비의 유언대로 후주 유선을 보필하며 삼국통일을 위한 마지막 카드, 북벌을 준비합니다. 당시 삼국 중 위나라의 세력이 가장 강성했는데요. 충심이 가득 담긴 명문장 출사표를 남기고 명월협(明月峽)에 천리 잔도를 지나 위나라 한중으로 수차례에 걸쳐 전쟁 길을 떠납니다. 과연 제갈량은 유비의 한을 풀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전쟁에서 어떤 전략으로 촉의 운명을 바꾸게 될까요?

 

 

내일 이야기

1. 북벌이 시작된길 ‘명월협(明月峽)과 검문관(檢問關)

2. 삼국지, 대서사의 막을 내리다.

 

참고로 저작권은 EBS <세계견문록 아틀라스>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상업적 용도로는 금합니다. 또한 이미지는 여러 블로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미지 다운 작업을 하면서 두서 없이 받는 바람에 이미지 사이트 주소를 옮기지 못했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행복을 벗 삼아
글쓴이 : 문화재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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