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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삼국지 1부 - 삼국정립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29. 16:39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삼국지 1부 삼국정립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삼국지(三國志)」. 후한제국이 쇠퇴의 길을 걸으며 위·촉·오 삼국이 천하를 통일하고자 맹렬한 기 싸움을 펼치던 시기다. 중국 서진(西晉) 시대의 역사가 진수가 역사서로 정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집필한 것이 아시아 전역에서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만화,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의 아이템이 되고 있으며, 유비, 장비, 관우, 제갈량, 조조 등의 위대한 영웅들을 탄생시킨 삼국지(三國志)! 그 역사 속의 흔적을 찾아 함께 떠나본다!

 

진정한 삼국지의 시작, 유비, 제갈량을 만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한다.”라는 뜻으로, 유비가 은거하던 제갈량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의 오두막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한다. 제갈량은 삼국지 최고의 책략가로, 그의 흔적을 마주하려 찾은 곳은 바로 호북성(湖北省, 후베이성) 양양(襄陽, 썅양)의 고융중(古隆中, 구롱종)! 이곳에서 제갈량은 17세 때부터 유비가 그를 찾은 27세 때까지 10년을 살았다. 삼국지 최고의 두뇌를 자랑하는 제갈량이 10년을 머물렀던 그 곳은 과연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적벽대전으로 이룬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

낮잠 자느라 반나절이나 유비를 집 밖에 세워둔 제갈량이 유비를 보자마자 한 일은 지도 펼치기다. 이미 기반을 갖춘 조조와 손권에 유비가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천하를 삼등분하여 삼각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제갈량의 조언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바로 적벽대전이 일어난 것! 유비·손권·조조, 셋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힘을 가졌던 조조는 벌써 북방 통일을 이루고 남방을 차지함으로써 천하 통일을 이루고자 했다. 이에 맞서 유비와 손권은 연맹을 맺고 제갈량의 화공(火功)책을 통해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때부터 천하는 조조-유비-손권 삼각구도, 즉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관우의 숨결이 흐르는 곳, 형주(荊州, 징저우)

‘중원의 배꼽’이라고도 하는 호북성(湖北省, 후베이성)의 형주(荊州)는 위·촉·오 세 나라에 있어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지역이었다. 이는 형주가 다른 나라를 견제하는데 있어 상당히 유리한 위치(*아래 지도 참조)에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구조와 경제가 안정되어 있어, 군사적 요충지로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세 나라가 서로 형주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 것은 당연한 사실! 적벽대전 이후 손권과 유비는 형주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게 되는데 제갈량의 유창한 언변으로 유비, 정확히는 관우가 10년 간 형주를 다스리게 된다. 관우는 그 기간 동안 형주에 굉장한 애정을 쏟았다. 당시 백성들도 관우를 많이 따랐으며, 형주 사람들의 관우 숭배는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형주성(荊州城) 또한 관우가 흙으로 쌓은 것을 청나라 때 재건한 것이다. 그러나 10년이란 세월이 관우를 안일함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관우가 잠깐 방심한 사이 오(吳)나라의 손권이 그의 목을 베고 만 것! 형주에 흐르는 관우의 숨결을 찾아 함께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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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전 천하통일의 야망을 품은 위·촉·오. 삼국 영웅호걸들의 이야기, 삼국지.

 

첸보쭌 / 중국 삼국지연의 연구학회 부회장

"중국의 문학사에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첫 번째로 집필된 장편소설입니다. 삼국지연의는 전해 내려 온 지 600여 년이 되었죠. 중국인들의 민족성향과 사회 심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삼국의 역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유명하고 다들 잘 아는 이유는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의 넓은 보급에 있습니다. 삼국지연의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서기 184년부터 280년까지 약 100년의 중국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한 왕조의 후손인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만나 복숭아나무 아래서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한 해, 한 달, 한 날에 같이 죽자는 도원결의를 통해 맺은 이들의 의리는 삼국지가 오랜 세월동안 동양 최고의 고전으로 사랑 받아온 이유입니다.

 

유비가 촉, 지금의 사천 땅을 차지하며 천하제패를 꿈꾸기까지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았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고융중, 구롱종)때는 서기 207년. 유비는 한의 정통을 이어 천하통일을 하기 위해 세기의 지략가인 제갈량을 삼고초려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 삼고로네요. 유비가 세 번이나 제갈량의 초가를 찾기 위해서 이 길로 올라갔다고 되어있네요."

 

제갈량이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은 유비는 20살이나 어린 제갈량에 대한 존중으로 말에서 내려 이 길을 걸어갔습니다. 제갈량을 얻고자 하는 유비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원기 / 중문학 박사

"장비와 관우는 (이 집의) 문밖에 서 있었습니다. 유비가 여기 들어오니까 제갈량은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낮잠을 자고 있어서 동자가 깨우려고 하니까 (유비가) '깨우지 마라. 기다리겠다.' (그런데) 반나절이나 기다렸는데 안 일어나요. 몸을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기만 했죠.) 장비가 바깥에서 '이 집에 불을 질러버리자, 왜 안 일어나느냐. 저 귀한 손님이 왔는데.' 관운장이 '참아라, 참아라. 형님이 저렇게 중시하는 분인데 우리가 참아야지.' 그래서 불을 지르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이리저리 뒤척이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제갈량이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손님을 맞아들이고 (유비 앞에) 펼쳐 놓은 것이 지도입니다."

 

제갈량은 지도를 보며 천하를 삼분해 북쪽 중원의 조조, 동쪽 강남의 손권과 힘의 균형을 맞춰 통일을 도모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8년 천하를 셋으로 나눌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됩니다. 바로 삼국지 전투 중 가장 유명한 적벽대전입니다.

 

정원기 / 중문학 박사

"(후한 말) 영토의 2/3를 차지한 조조가 완전히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북방 통일을 완수한 이후 남진하는 정책이죠. (조조가) 남으로 내려와 완전히 오(吳)나라 까지 집어삼키고 쳐부숴 천하를 통일하려 전쟁을 (벌였습니다.) (조조가) 남진했을 때 유비와 손권이 연합하여 조조 (군대를) 막아낸 전쟁이죠."

 

 

당시 30만대대군을 이끌고 적벽의 건너편에 진을 치고 있던 조조. 제갈량의 설득으로 오나라 손권은 유비군과 연합해 총 5만의 군사를 맞서며 적벽일대는 전운에 휩싸입니다.

 

"적벽대전 당시처럼 엄청난 물이 흘러가고 있죠. 저 건너편이 오림(烏林)입니다. 그러니까 저 건너편이 장강(長江, 창장)의 북쪽 언덕이고 이곳이 남쪽 언덕이죠. 조조 군사가 저 건너편 오림에 수군 영채를 설치하고 육군 영채를 거기에 연결해 오림 쪽으로 가득히 주둔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동남풍이 여기서 오림 쪽으로 분 거죠. (동남풍이 불기 시작함과) 동시에 화공(火攻)을 실시한 겁니다. (배에) 불을 붙이니까 (조조군의 영채가) 타들어 간 거죠. 배도 타고 숲 속에 있는 조조의 육군들도 다 타고 완전히 불바다가 된 거죠. 그래서 적벽(赤壁)입니다. 바위가 붉진 않잖아요. 그런데 그때의 화공으로 엄청나게 붉은 빛이 절벽에 비쳐서 붉게 물들었다고 하여(적벽이라고 부릅니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는 통일 목전에서 좌절당해 더 이상 남하하지 못했고 손권은 강남 즉 장강 남쪽 지배를 확장했으며 떠돌이 신세였던 유비는 삼고초려 당시 제갈량이 제시한 계책대로 비로소 형주에 입성하면서 천하를 삼분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정원기 교수 / 중문학 박사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전에는 늘 쫓겨 다니며 전투에서 이편에 붙었다가 저편에 붙었다 했지만 독자적인 걸음을 걸은 것은 제갈량을 얻고부터죠. 바로 적벽대전을 계기로 땅 한 평 없었던 유비가 당장 형주(荊州, 징저우)를 차지하게 되고 강남사군(江南使君, 무릉․장사․계양․영릉)을 차지하게 되죠.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삼국이 삼국 구도로 서로 대치하게 되었죠.

 

장강 중류에 위치한 형주는 너른 평야와 물자와 인재가 풍부해 위, 촉, 오 모두가 탐냈던 땅입니다. 중원에 배꼽이라 불리며 북쪽 중원지역에 위나라와 동쪽 강남의 오나라를 견제하기에 유리한 위치라 유비에게는 천하 통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형주는) 사방이 트여 있으면서 여러 가지 물자가 많으니까 군사를 부리는 데 있어 반드시 선수를 쳐서 빼앗아야만 되는 곳이라고 이름나 있는 땅입니다. 바로 이 땅이 그만큼 중요한 땅이죠. 이 형주 땅을 얻고, (이 곳을)기반으로 해서 유비가 촉으로 들어가게 되죠. 그 (계획을) 누가 제시했느냐, 바로 제갈량이 제시했습니다. 제갈량의 계획대로 돼 가는 거죠. (제갈량이 세운 계획들을 유비가) 하나씩 하나씩, 착착 진행해 간 겁니다. 첫 번째 포석이 바로 여기 형주였는데 그 정석을 놓은 거죠."

 

 

유비는 관우에게 형주를 다스리게 하는데요. 곳곳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관우하면 긴수염과 함께 적토마청룡언월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엄청무겁네요. 겨우 들겠네요. 관우는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를 다 습득했기 때문에 이 칼을 들고 춤을 추면서 (칼을) 얼마나 빨리 돌리는지 바깥에서 화살을 쏘아도 몸에 화살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해요 …… 주창(周倉, 관우의 부관)은 말을 안탑니다. 그 사람은 도보로 달려요. 달려서 82근(당시 약 18kg)짜리 청룡도(靑龍刀)를 들고 따라옵니다. 적이 나타났을 때 먼저 와서 (관우에게) 청룡도를 건네줘요. 그러니까 주창이 천리마인 적토마보다 더 빠르다는 거죠. 왜냐면 주창의 발에는 '비모(飛毛)'라는 털이 나 있었대요. 그래서 항상 적토마보다 한, 두 발 먼저 달려서 앞선대요. 그러므로 관우가 필요할 때 손만 내밀면 (주창이 와서) 청룡도를 손에 (넘겨) 주는 거죠."

 

적토마를 타고 82근. 요즘 무게로 18kg에 달하는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용맹을 떨쳤던 관우. 요즘으로 치며 2미터 넘는 9척 장신으로 귀골이 장대했다니 삼국지 최고의 명장답죠. 관우는 10년간 형주성을 다스리면서 세상의 명성을 날렸습니다.

 

"현판에 '위진화하(威震華夏)'라고 아주 큼직하게 적혀 있습니다. '위엄이 화하(華夏, 화샤)를 진동시킨다.' 이런 의미인데 화하는 '중원(中原)'이죠. 관우가 북쪽으로 진격해서 양양(襄陽, 샹양)을 탈취하고 그 다음에 번성(樊城, 판청)을 공격해 우금(于禁, 위나라 무장)을 사로잡고 방덕(龐德, 위나라 무장)의 목을 베었죠. 그러고 나니까 조조가 겁이 나서 수도를 옮길 생각마저 했습니다. 그때 관우의 명성은 최고조에 달했죠. 그래서 전 중국을 벌벌 떨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진화하(威震華夏)'라는 것이죠."

 

만인지적, 혼자서 만 명의 적을 대적할 수 있는 장수라 평가받는 관우. 충절과 의리에 상징으로 대표되며 중국인들은 그를 무신으로 신격화했습니다. 형주성의 관우 사당에는 관우신에게 소원을 비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삼국지 인물 중 도교의 신이 된 유일한 영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기 211년. 유비는 천하삼분의 계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익주, 지금의 성도 공략에 나섭니다. 그리고 촉, 바로 사천지역에 첫 발을 내딛는 곳이 면양의 부락산(富樂山, 푸러샨)입니다. 촉한의 다섯 장수 관우, 장비, 조자룡, 마초, 황충의 기마상이 당시의 포부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얻어 적벽대전에서의 승전으로 형주 땅을 차지하고 익주 땅을 눈앞에 둔 유비에게 이곳은 성공으로 가는 관문인 샘입니다.

 

"촉한이시(蜀漢伊始)라, 이 '촉한이시'라는 것은 '촉한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익주목이 유장은 유비 일행을 환대했는데요. ‘촉한 건립의 시작점을 마련하느냐, 신의를 지킬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했을 유비.

 

"유비가 이 부성(涪城, 푸청)으로 오자 유장(劉璋)이 성도(成都, 청두)에 있다가 여기까지 와서 유비를 위한 잔치를 벌입니다. 무려 100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고 해요. 그래서 여기서 두 사람이 서로 술잔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 위연(魏延)이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칼을 쥐고 있지요? 등 뒤에서 칼을 빼고 있습니다."

 

 

잔치 중에 위연이 유장을 치려는 일촉즉발 상황. 그러나 유비는 호된 질책을 하며 막았다고 합니다. 예부터 촉 지역은 험한 산세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안쪽은 드넓고 기름진 땅이 펼쳐져 하늘이 내린 땅이라 불렀는데 유비는 부락각에 올라 촉한을 세우고 더 나아가 천하제패에 그날을 꿈꾸었을 겁니다.

 

 

(소화고성, 자오화구청) 한편 유비는 북쪽 한중에 장로를 막아 달라는 유장의 부탁대로 소화고성, 옛 가맹관으로 가서 주둔합니다. 장로를 막아 낸 뒤 유비는 이곳을 촉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아 백성들의 인심을 얻어 군사 훈련을 시키고 식량을 준비했습니다. 때문에 훗날 촉한의 도읍인 성도에 이어 두 번째 수도라 불릴 만큼 유비에게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촉의 땅으로 가는 길은 촉도라 불리는 험한 산길만이 유일했는데요. 유장 측에서 점점 세력을 확장하는 유비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면서 유비군은 촉도를 따라 익주 곧 성도로 진격해 유장을 몰아내고 익주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 때가 서기 214년입니다. 지금의 성도(成都)인데요. 곳곳에 삼국지 영웅의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군사의 숫자는 유비(군이) 유장(군)보다 적었습니다. 그렇지만 유장이라는 사람항상 이 촉(蜀)나라 안에서 갇혀 있었고, 단 한 번도 전투해 보지 않았지요. 그런데 유비는 동서 사방을 다녀 전투에 아주 익숙했던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 중원을 떠돌던 유비. 드디어 천하삼분 계책을 달성하며 익주를 포함한 촉을 점령하면서 북쪽 조조의 위, 동쪽 손권의 오, 서쪽 유비의 촉, 삼국이 세워집니다.

 

이제는 유비에게 삼국 통일의 대업이 남았습니다. 유비군의 최고의 무장으로서 적벽대전에서의 맹활약은 물론 조조에게 사로잡혀 회유를 받았을 때도 끝까지 충절을 지키고 유비 곁으로 돌아올 만큼 의리를 지켰는데요. 형주성을 지키면서 조조의 군사들을 막아내던 관우의 위용. 천하를 호령하며 조조를 벌벌 떨게 할 만큼 잇따른 승리를 맛보며 자만심에 빠졌던 걸까요? 촉한이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역시 최고의 전성기였던 관우에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닥치게 됩니다.

 

정원기 / 중문학 박사

"그렇게 관우의 명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오나라의 여몽(呂夢, 오나라의 무장)이 그 기회를 타서 관우의 허를 찌릅니다. 형주성을 빼앗아 버린 거죠. 관우가 없는 사이에 몰래 형주성을 함락시켜 버립니다. 이렇게 되자 관우는 당황하죠. 앞, 뒤로 적을 맞기 시작합니다. 오나라의 군사들이 쳐올라오고 조조의 군사들은 쳐내려옵니다. 관우는 오도 가도 할 수가 없는 거죠. (관우는) 맥성(麥城, 마이청)으로 달아나다 오나라의 군사들에게 포위돼서 결국 사로잡히게 됩니다. 손권에게 끌려가서 참수 당하게 됩니다."

 

 

(관릉, 관우의 묘) 이곳은 관제묘인데요. 때는 219년. 위나라와 오나라의 협공에 관우가 죽으면서 촉한의 성공가도에도 제동이 걸립니다. 관우의 죽음에 의형제 유비와 장비가 가만히 있을 리 없죠. 복수심에 불타 오나라 손권의 지역을 준비하면서 장강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동정호洞廷湖, 둥팅호) 삼국지, 삼대 대첩 중 하나인 이릉대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악양루岳陽樓, 위에양로우) 오나라 손권은 수군을 정비하고 전쟁에 대비하게 되는데요. 동정호가 내려다보이는 악양루는 군사훈련을 지켜보던 오나라의 망루입니다.

 

"오나라의 대도독(大都督) 주유(周瑜)가 죽고 난 다음 그 자리를 대신한 사람이 바로 노숙(魯肅)입니다. 노숙은 바로 이 자리, 동정호(洞廷湖)에서 오나라의 수군을 조련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노숙은 지휘하고 저 앞의 동정호에는 수많은 오나라의 수군들이 훈련했겠지요. 수많은 배가 왔다 갔다 하고 아주 대단했을 겁니다. 북소리, 징소리(가 울려 퍼지고) 깃발(을 세차게 흔들었겠죠.)"

 

장강을 끼고 있던 오나라는 수군이 강세인데요. 당시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하통일 대업을 위해 오나라와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고 극구 반대하지만 유비는 10만 대군을 일으켜 전쟁에 돌입합니다.

 

 

두 나라가 유지해온 동맹관계를 깨며 관우를 죽인 오나라의 손권. 실리보다는 손권에 대한 복수심에 전쟁을 준비하는 유비. 일 여녀간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사천성 봉절현부터 고북성 의창까지 약 193km의 장강을 따라 유비의 군영이 칠백리나 늘어서며 손권과 유비의 격전이 벌여지는데요. 장강 3협을 무대로 펼쳐지는 삼국지 3대 전투 중 마지막 전투인 이릉대전. 과연 이 전쟁의 승리는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그리고 천하 통일에 패권은 삼국 중 어디에게 주어질까요?

 

참고로 저작권은 EBS <세계견문록 아틀라스>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상업적 용도로는 금합니다. 또한 이미지는 여러 블로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미지 다운 작업을 하면서 두서 없이 받는 바람에 이미지 사이트 주소를 옮기지 못했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행복을 벗 삼아
글쓴이 : 문화재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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