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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감사의 두 손을 모으게 하소서

오늘행복스마일 2017. 12. 26. 06:26





 감사의 두 손을 모으게 하소서 

날마다 기도의 촛불로
정화된 맑은 영혼으로
당신을 만나게 하소서
홀로임에
힘겨워 주저 앉을무렵
기도로써 일으켜 주시고
쓰레기로 가득 채워진 교만과
마음으로 굳게 닫혀진 가슴을 비우고 
열어서 당신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스처가는 바람 소리에도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하시고
당신의 손길인
자연 그 하나 하나에서
당신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하소서
하루가 다 끝난 저녁
온 종일 당신께서 동행해 주심으로
부르심에 뒤 돌아봄 없는
값진 하루였음에
감사의 두 손을 모으게 하소서

 / 최홍석


 위 안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 수 있는데 
불행히도 하루 종일 비가 올 때가 있다고 합니다.
상처는 친밀함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친하고 가까운 사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아내는 남편한테, 남편은 아내한테, 어머니는 아들한테 
아들은 어머니한테 가장 깊고 아픈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를 부여안고 어떻게 할 것인가 
괴로워하다가 마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생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용서밖에 다른 길이 없으며 
용서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의지의 행위이며 용서한다고 
일단 의지를 세우고 결단을 내리라고 말한다.
용서를 했는데도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인간으로써 당연한 것,
그것은 신의 몫으로 맡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남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고통을 받지 않는 사람은 거지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고통과 불행 속에서 한 생을 살기 마련이다.
만일 고통이 없는 삶을 바라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인간이기를 바라지 말아야한다.
고통이 찾아왔을 때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고통은 나를 거쳐갈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고통의 방법이다.
고통이란 말을 탈 때 발돋음용으로 쓰이는 노둣돌이 아닐까?
내게 고통이라는 노둣돌이 있음으로써 보다 쉽고 안전하게 
말에 올라타 인생이라는 들판을 힘차게 달릴 수 있다.
따라서 살아가는 일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자. 피하지 않으면 두렵지 않다.
자연 상태의 금붕어와 어항 속 금붕어를 서로 비교해보면 
자연 상태의 금붕어가 1만여 개의 알을 낳는데 비해
어항 속 금붕어는 
3천 내지 4천여 개의 알 밖에 낳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런 위험도 없이 적당한 온도와 먹이를 
자연 상태와 똑같이 공급받는데도 그렇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어항이 고통이라는 
자연법칙의 진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
진통제를 사용해 무통분만을 통해 태어난 아기와 
정상분만을 통해 태어난 아기는 
엄마젖을 빠는 데 걸리는 시간이 서로 다르단다.
스웨덴 칼론린스카 연구소 과학자들이 스물여덟 명의 
신생아들을 씻긴 뒤 바로 산모의 가슴에 올려놓자 
진통제에 노출되지 않았던 열 명은 태어난 지 한 시간 만에 
엄마 젖을 빨기 시작했으나 산모가 진통제를 맞은 나머지 
열여덟 신생아들은 더듬거리는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절반은 두 시간 반이 지나서야 젖을 물었다고 한다.

  

만일 홍수가 없다면 인간이 얼마나 오만해질 것인가
지금쯤 허물어버릴 수 있는 산이란 다 허물어버리고 
베어버릴 수 있는 나무란 다 베어버렸을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이 자기가 지고 가는 십자가가 너무나 무겁고 
다른 사람이 지고 가는 십자가보다 
더 큰 것 같아 하느님께 불만을 터트렸다.
하느님은 
‘그래, 그렇다면 네 십자가를 바꾸어 주마 
마음에 드는 다른 십자가를 하나 골라 보아라‘
그 사람은 수많은 십자가가 쌓여 있는 창고에 가서 
가장 가볍고 편해 보이는 십자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처럼 자신이 원하는 십자가를 찾을 수 없었다.
좀 가벼워 보여 들어보면 무겁고 좀 작다 싶어 
들어보면 그것 역시 불편하고 무거웠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하루 종일 되풀이하다가 결국 하나를 선택했다.
‘하느님, 드디어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랐습니다’
‘그래 마음에 드느냐’
‘예 흡족합니다. 
가벼운 십자가로 바꿀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히 보아라, 그 십자가는 네가 본시 지녔던 십자가다.’



누구나 한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하나씩 있다.
그 십자가는 내동댕이치면 칠수록 더 큰 무게로 내 어깨에 
다시 놓인다. 십자가란 늘 존재하고 만다.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만의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하나씩 지고 태어나야 
진정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가 무겁고 힘들 때 
누구나 일생에 몇 번 신을 원망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원망할 대상으로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만일 원망해야 할 대상조차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막막했을 것인가.
송봉모 신부는 십자가는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안거나 품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면 
그것은 고통이나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가면 
그것은 포옹이자 기쁨이라고 말한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고통의 방법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의 십자가라면 
이제 엄마가 아기를 껴안듯이 껴안고 가자.

/ 정호승


출처 : 바람에 띄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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