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리생명빛

[스크랩] 공세리 성당의 찬란한 가을 풍경...

오늘행복스마일 2018. 2. 20. 10:05

 

 

 

 

아름다운 공세리 성당이 있기에, 나도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내 영혼까지 아름다워지길 바라기에,

바라만 봐도 마음 따뜻해지는 공세리 성당의 가을을 만나러 달려갔다.

 

나는 부산에서 오래 살다가 이곳 천안으로 이사를 와서 가장 많이 다녀왔던 곳이

이곳 공세리 성당과 안성목장이 아닌가 싶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지나다 보면 꼭 들려보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계절 모두 수시로 드나들게 되는데 갈 때마다 마음 가득 위안을 받게 되는 곳이기도 하여,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들려보게 되는데.... 올가을도 어김없이 다녀가고 싶었다

아니, 내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내속을 들여다보고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면서 반성도 하게 되는 날이었다.

그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공세리 성당의 가을 풍경을 소개한다.

 

 

 

 

 

여러 번 이곳 공세리 성당에 대해 포스팅을 했지만

새로이 제 여행기를 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소개하자면,

 

원래 이곳 공세리는 세곡을 운반하던 조창이 있던 곳이었다.

삽교천을 통해 바다로 빠져나가 서울로 가는 길이 오백리였으며, 해상교통의 요충지였기에

각지에서 모인 세곡을 보관하는 조창이 있어 마을 이름도 공세리가 된 것이란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전국 9개 조창중의 하나로 나라의 세곡을 담당한 중요한 지역이었다.

공세리가 담당했던 천안과 청주 인근 지역과 충청도 대부분의 세곡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전라도 다음가는 충청의 세곡을 총괄하는 조창으로 그 규모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다 조창제도가 폐지되어 창고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자 가톨릭의 드비즈 신부가

이곳을 매입하여 지금의 공세리 성당을 이루게 된것이다

말하자면 육신을 채웠던 곡식 창고가 정신을 채워주는 신앙의 창고가 된셈이다.

 

한편 창고를 헐고 새로 한옥풍 성당을 지었다가 늘어나는 신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지금의 자리에 고딕풍의 현 성당을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불러 1922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충남에서는 최초이고 전국에서도 9번째의 근대 건축 성당이다

공세리 성당은 합덕성당에서 갈라져 나온 성당인데 건립 시기는 오히려 앞선다고 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단아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성당은 100여 년의 시간을 보내온 역사의 장소라 하겠다.

 

 

 

 

특히 공세리 성당은 나무가 울창하여 어느 계절이나 모두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가을 풍경은 또 다른 빛깔로 뒤덮여 있었다.

 

 

 

 

가을 풍경을 보러 온 여행객도 많았고, 가톨릭 신도가 무척 많이 찾아와 아름다운 공세리 성당의

가을 풍경에 취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공세리 성당하면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이곳 공세리 성당이 이명래 고약의 발상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이명래 고약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을것이고 이명래 고약을 직접 사용도 해보았을 것이다.

 

70년대 TV광고에도 나왔던 '이명래 고약'이 이곳 신부님이셨던 드비즈 신부님이 만든것이다.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의 한국명을 따서 '성일론 고약'이라 불렸는데

효과가 좋아 인기가 많아짐으로써 이 고약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명동성당의 가톨릭 신자였던

이명래 요한에게 전수하였고 이후 이명래 고약으로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란다.

 

내가 어렸을 적엔 왜 그리 종기가 많이 났었는지 집집마다 이명래 고약은 필수상비약이었다.

기름종이에 고약 덩어리를 얹고 성냥불로 지져 녹게 만든 다음 환부에 붙이고 하루 이틀 지나

떼어내고 종기의 가운데 고름을 짜내면 영락없이 종기가 치료되고 아프지 않았던 경험을 추억하게 된다.

그 고마웠던 고약의 발상지가 이곳 공세리 성당이다.

 

고마운 고약처럼 공세리의 가을 풍경은 많은 사람에게 상처 치유가 아닌

마음의 치유를 해주고 있지 않나 싶었다.

 

 

 

정말 예쁜 가을이었다.

 

 

여기저기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다.

가을을 가슴으로 안아보고 낙엽을 밟아보는 사람들...

 

 

 

 

나의 간절함은 무엇이었을까?

열정으로 사랑하고

열정으로 살다 가게 해달라는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공세리 성당을 꼽고 있다.

고딕풍의 근대 성당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해진 데는 수많은 영화, 드라마에 등장한 것이 일조를 더했을 것이다.

성당도 아름답지만, 이곳은 주변 풍광이 더욱 아름답고 운치 있다.

 

 

 

성당 앞에 떨어져 나부끼는 낙엽들이

가을 햇살에 뒹굴고..

 

 

 

어느 풍경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을빛 모두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어지럼증이 일 것 같았다.

하도 고와서... 

 

 

 

천주교인들에게 공세리 성당은 각별하다. 이곳이 순교성지이기 때문이다.

천주교가 공인되기 전인 조선 말기에 이 성당 출신 신자 28명이 순교했다고 한다

 당시 충남 내포 지방(아산·서산·예산·홍성 등)은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으며

 천주교도 다른 지방에 비해 먼저 전래했다. 이는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에 의한 순교자 수에도 잘 나타난다.

당시 4대 박해 동안 1만여 명이 희생됐는데, 이 중 60∼70%가 내포와 충청권이었다.

지금도 충청도를 여행하다 보면 천주교 박해의 현장을 자주 만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세리 성당에는 가을이 가득했다.

어느 것 하나 가을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저 고운 빛...어떤 물감으로도 저 색감이 나오지 않을 듯하고...

 

 

 

 

이제 가을을 떠나갈 채비를 하는 과실들도 붉게 눈시울을 적시는 듯 매달려 있었다.

 

 

 

 

 

 

 

 

성당 앞에는 거대한 고목이 있는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고

이곳 성당 은행나무 아래서 '가을 은행나무 아래서' 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안치환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을 은행나무 아래서/ 안치환 노래

 

떠나온 길 돌아보지 마 아쉬워 하지 마
내 안에 나 내 안에 사랑 모두 그대로 인걸

바람불어 흔들리는 건 잎샌줄만 알았는데
나도 몰래 흐르는 눈물 미처 알지 못했네

난 알고 싶어 워워~난 보고 싶어
무엇을 더 채우려는지 무엇을 더 찾으려는지

가을 은행나무 아래서 지치도록 노래부르다
발아래 수북이 쌓여만 가는 노란 잎들을 보았네
성모 마리아의 미소여 어디로 난 가야 하는지
한참을 바라보다 난 그만 눈 감아 버렸네

난 알고 싶어 워워~난 보고 싶어
무엇을 더 채우려는지 무엇을 더 찾으려는지

가을 은행나무 아래서 지치도록 노래 부르다
발아래 수북이 쌓여만 가는 노란 잎들을 보았네
성모 마리아의 미소여 어디로 난 가야 하는지
한참을 바라보다 난 그만 눈 감아 버렸네
잠들어 버렸네

 

 

 

 

가을빛 나무들 사이로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어디서고 눈을 돌리면 보이는 풍경이 아닌가 싶었다.

이곳은 이른 아침도 아름답고, 특히 서산에 지는 해도,

성당에서 만날 수 있는 황홀한 노을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어디선가 낙엽이 툭~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붉고 찬란한 단풍이 들었다가

마지막 돌아서는 느낌처럼 툭~ 하고 떨어진다...

 

 

 

 

 

 

 

 

가을이 찬란하게 흐르는 공세리 성당을 거닐어 보았다.

어느 곳 하나 빼놓지 않고 가을이 물들어 있는 풍경은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나 주는 선물이었다.

 

 

 

 

출처 : 내 영혼이 아름다운 날에...
글쓴이 : 초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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