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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초기교회 이단 - 영지주의 신관

오늘행복스마일 2018. 12. 25. 21:50

 

초기교회 이단 - 영지주의 신관

 

 

  

. 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이비이단들의 발호와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의 신비주의적 범신론의 물결로 인하여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오는 새 천년은 더욱 더 신비주의의 물결로 인하여 기독교 복음이 왜곡되어지고 신앙의 공동체들은 영적인 공황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적 흐름은 초기교회의 거대한 이단이었던 영지주의(Gnosticism)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영지주의와 뉴에이지 운동과의 관계를 살피려면, Peter Jones, The Gnostic Empire Strikes Back: An Old Heresy for the New Age(Phillipsburg: P&R Publishing, 1992)를 보라.

 

   영지주의란 그리스어 지식(gnosis)에서 유래되었고, 시기적으로 A.D. 80-150년 사이에 기독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변질시켜 초기교회로부터 분리해 나간 분파들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어휘이다. 영지주의 사상의 기본적인 틀은 극단적인 이원론과 신지학적인 방법론이다.      Albert H. Newman, A Manual of Church History, vol. 1(Valley Forge: Judson Press, 1933), 183-84.

 

본 논문은 영지주의가 이원론의 세계관을 가지고 어떻게 신론을 형성했는지 그 과정을 살피고 이들의 잘못된 신관을 상세히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논자는 이를 위해 여러 영지주의 분파들에 대한 필립 샤프                                               (Philip Schaff)의 분류를 따랐다.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2(Grand Rapids: Wm. B. Eerdmans, 1992), 460. 필립 샤프는 영지주의를 이교영지주의, 유대영지주의 기독교영지주의로 분류하였다. 이교영지주의자는, Simon- ians, Nicolaitans, Ophites, Carpocratians, Prodicians, Antitactes, and Manichaeans, 유대영지주의자는, Cerintus, Basilides, and Valentine, 그리고 기독교영지주의자는, Saturninus, Marcion, and Tatian 등이라 했다.

 

 일찌기 사도들은 영지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초기교회는 오히려 이들과의 논쟁을 통해 올바른 신학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따라서 영지주의 연구는 현존하는 이단들의 신학적 전거에 대한 비판적 기능과 영적 신비주의 운동에 대한 감시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영지주의의 하나님의 존재 이해

 

1. 하나님의 존재 위치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존재위치에 대하여 한결같이 초월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마리아에서 베드로와 충돌했던 최초의 영지주의자 시몬 마구스(Sinon Magus)는 자신을 최고의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했다.     4 시몬 마구스가 최초의 영지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들은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 교부 이레니우스(Ireneaus), 교회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포슘(Jarl E. Fossum), 휴그스(Philip E. Hughes), 한스 요나스(Hans Jonas) 등이다. 근광현, “영지주의 기독론이 초기교회 기독론에 미친 영향”(박사학위논문, 침례신학대학교, 1996), 30.

 시몬은 헬렌이라는 여성의 짝을 통해 천사들과 물질세계를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바로 영지주의적 모티브를 통해 자신을 신격화 시킨 것이다.      Robert M. Grant, Gnosticism: An Anthology(London:Collins Clear-Type Press, 1961), 24-5.

 

 시몬의 이러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존재 위치를 본체론적 초월로 전제한 것이다. 그의 제자였던 메난더(Menander)도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초의 능력”은 모든 존재들에 의해 알려질 수 없고, 메난더 자신으로부터 만 알려질 수 있으며, 오직 자신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비밀리에 파송된 구원자라고 했다.      Magaret Barker, The Great Angel: A Study of Israel's Second God(Louisville: John Knox Press, 1992), 170.

 이밖에 시몬을 따랐던 사투르닐루스(Saturnilus) 역시 천사들과 대천사 그리고 능력들을 만든 자는 모든 존재들에게 결코 알려질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Ibid., 사투르닐루스는 메난더의 제자였다. Justo L. Gonzalez, A History of Chritian Thought, vol. 1(Nashville: Abingdon Press, 1970), 135.

 이와같이 시몬 마구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결코 인식할 수 없다는 시실과 이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 초월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케린투스(Cerintus)는 최초로 기독교복음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했던 영지주의자였다.      lrenaeus, Against Heresies, Ⅰ. 26, 1. in The Ante-Nicene Fathers, vol. 1. eds, Alexander Robert and James Donaldson 2d rev. ed.(Grand Rapids: Wm. B. Eerdmans, 1985), 이후부터는 Irenaeus, A. H.로 표기한다.

 그는 영지주의의 기본적 틀인 이원론을 모방하여 하나님을 최고의 신과 제 2의 신으로 구분 지었다. 그에 의하면, 창조주는 제 2의 하나님이며, 최고의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분이다.      Barker, The Great Angel, 170.

 케린투스의 이와 같은 하나님 이해는 알렉산드리아 필로(Philo)에게서 배운 것이다. 이런 점때문에 여러 학자들은 그를 유대교와 영지주의 사이에 위치한 자로 간주하였다. 학자들의 이러한 평가는 그가 수정된 마태복음을 제외한 다른 복음서를 거부하고 모세의 율법과 천년왕국을 가르쳤던 점에서도 잘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465.

 

 보다 발전된 영지주의 신관은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파 그리고 말시온의 신학체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바실리데스(Basilides)는      바실리데스는 메난더의 제자로서, 그는 안디옥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영지주의 사상을 가지고 온 자이다. Walter Bauer, Ortho- doxy and Heresy in the Early Christianity (Philadelphia:Fortress Press, 1971), 66.

 자신의 가르침은 비밀전통을 통해서 베드로와 마태에게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에 대한 강조였다. 그는 하나님을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의 사유 범주를 초월해 있는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분은 실존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너무 지나친 언표라고 했다. 바실리데스에 있어서 하나님은 결코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니다.      Joseph W. Trigg, Origen: The Bible and Philosophy in the Third-century Church(London: SCM Press LTD, 1985), 39.

 

 그래서 그는 태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무”(the pure, ineffable Nothing)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본래적인 무와 동일시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Gerhard May, Creatio Ex Nihilo: The Doctrine of 'Creation out of Nothing' in Early Christian Thought, trans. A. S. Worrall(Edinburgh: T&T Clark LTD, 1994), 67.

 또 다른 자료제공자 힢폴리투스(Hippolytus)의 보고에 의하면, 바실리데스는 하나님을 “비존재 신”(the non-being God)으로 묘사했다. 그의 이러한 신 개념은 바로 플로티누스가 그러했듯이 부정신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다.      Ibid.

 

발렌티누스(Vallentinus)는 이레니우스에 의해 가장 강력하게 비판을 받았을 정도로 영지주의의 일반적 신학체계를 세웠던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의 제자인 테오다스(Theodas)로부터 배웠다고 주장했다. 그의 정교한 신학체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르쳤던 교훈에 대한 자료 불충분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가능하다.      Hans Jonas, The Gnostic Religion: The Message of the Alien God and the Beginnings of Christianity(London: Routledge 1992), 178; May, Creatio Ex Nihilo, 85; 발렌티누스학파는 동방학파와 서방 또는 이태리학파로 구성되어 있다. 서방학파는 프톨레미우스와 헤라클레온(Heracleon)이 있고, 동방학파는 테오도투스(Theodot- us)와 마르쿠스(Marcus)가 있다. 동방학파는 마리아 위에 성령과 최고의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에 예수의 몸을 영적이고 천상적인 몸이라고 주장한 반면, 서방학파는 예수가 침례 받을 때에 성령이 그 위에 임하였기 때문에 예수의 몸은 혼적인 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학파 중 서방학파가 널리 알려져 있다.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479.

 

 영지주의 구원체계의 근본적인 전제는 신적인 실체와 우주와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교리였다. 발렌티누스파 프톨레미우스는 이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선재한 완전한 에온들을 긍정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에온들은 비가시적이며,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높은 곳에 존재했다. 그들은 이러한 존재들을 일컬어 “조상”(forefather), “깊음”(depth) 그리고 “태고”(prebeginning)라 했다. 이 조상과 깊음은 무한한 에온들을 위하여 고요하고 아주 깊은 고독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사유”(Thought)가 영원 전부터 존재했었다. 이 사유는 ”은혜“(grace) 또는 "침묵"(silence)이라고 불리웠고, 이 에온들은 신적인 실체로부터 방사에 의해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발렌티누스파는 하나님을 명백한 존재로서 이해하기보다는 “깊음”(depth)이라는 신화적이고 막연한 존재로 파악했다.      Jaroslav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 vol. 1(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1), 85.

 

 발렌티누스파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막연한 존재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을 극단적으로 초월해 있는 존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스 요나스는 발렌티니안들의 초월적 신관을 가리켜 “그만 하나님과 실재 세게와의 연결점을 찾지 못함으로써 ‘플레로마의 위기’를 가져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Jonas, The Gnostic Religion, 179.

 

말시온(Marcion)은 초기 기독교회의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는 성서해석의 오류로 말미암아 로마교회로부터 추방당했다. 그러자 그는 말시온 교회를 개척하여 정통교회에 가장 위험한 경쟁자가 되었다. 말시온의 신학은 영지주의 이원론적 체계를 모방했다. 그에 의하면, 물질세계에서는 율법과 정의가 통치하며, 이와는 달리 사랑의 하나님의 복음은 어떠한 사악한 죄인이라도 용서해 주는 분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하나님은 “타자”(Other) 또는 “낯선 하나님”(Foregin God)으로 밖에 묘사할 수 없으며, 이는 이 세계를 통치하는 하나님과는 전적으로 다른 분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결코 알려질 수 없는 하나님과 이 물질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 두 신으로 구분하였다.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40-41.

 그러나 그는 이 낯선 하나님이야말로 비가시적인 세계창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 시키기 위하여 바울이 말한 삼층천의 구조를 활용하여 결코 알려 질 수 없는 하나님은 “구원자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May, Creatio Ex Nihilo, 58-9.

 이와 같이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삼층천에 거하는 초월적인 존재로 정위시킴으로써 이는 한낱 이원론적 구원관을 전개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결국 그가 가르친 구원자 하나님은 계시 능력 및 자연에 대한 지속적인 섭리사역과는 전혀 거리가 먼 초월의 신이었다.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묘사는 1945년 이집트 나그 하마디(Nag Hammadi) 지방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문서들 가운데서도 발견되고 있다. 여러 문서들 가운데 「요한외경」(The Apocryphon of John)은 최초의 원리인 하나님을 극단적인 초월자로 묘사했다.      Jonas, The Gnostic Religion, 199.

 「요한외경」은 하나님을 “단자”(Monad)로 호칭했다. 이 모나드는 최고의 통치자로써, 그는 현존하는 모든 것들의 아버지이다. 이 모든 것들 위에 뛰어나 있는 하나님은 철저히 비가시적 이다. 왜냐하면 그는 눈으로 바라 볼 수 없는 순수한 빛 가운데에 존재해 있고, 또 그는 하나의 신(a god)이나 그와 유사한 어떤 것으로도 그에 대해서 묘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외경」은 하나님을 일컬어 그는 총체적 완전이기때문에 그 어떤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이며, 또 사람들이 그를 탐구할 수도 없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절대적 초월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The Apocryphon of John, Ⅱ. 30, Ⅳ. 5-20.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Leiden: E. J. Brill, 1988), 106. 이후부터는 Apo. J.라 표기한다.

 

 「발렌티니안 해설」(A Valentinian Exposition)도 모든 만물의 근원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버지는 모나드 가운데 홀로 침묵 속에서 거하는 하나님이라고 묘사했다.     22 A Valentinian Exposition, Ⅺ. 25.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Leiden: E. J. Brill, 1988), 482. 이후부터 Val.이라 표기한다.

 이밖에도 영지주의 문서 Allogenes는 최고의 하나님을 모든 존재 위에 초월해 있는 분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 문서는 하나님을 “숨겨져 있는 실존,” “비실제적 물질,” 그리고 “비실체 및 비존재적 실존”으로 정의하였다.      Allogenes, Ⅺ. 65-9.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 (Leiden: E. J. Brill, 1988), 499-500. 이후부터 All.로 표기한다.

 

 결국 이렇게 정의된 하나님은 역사 내에 실존해 있는 분이 아니라 우주와는 전혀 낯선 곳에 절대적으로 초월해 있는 죽은 하나님 묘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교부 이레니우스의 비판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의 초월 신관을 가리켜 이는 하나님의 절대성과 전지성 그리고 전능성을 훼손한 신관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발렌티니안들이 전개한 초월 신에 의한 방사과정은 나름대로 에온들에 대한 인격적인 변환을 주기 위한 시도였으나 결국 그들은 그 점에 대한 그 어떤 토대나 정확한 설명도 해 주지 못했다.      Irenaeus, A. H. Ⅱ. 14, 1-6, Ⅱ. 17, 9.

 기독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은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자연계시와 예수 그리스도 및 계시된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존재와 속성을 알려 주시는 역사의 하나님이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존재를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초월적인 존재로만 간주한다면 한스 요나스가 지적했듯이 모든 인간들로하여금 허무주의와 도덕 폐기론적인 삶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이를 조장하게 될 것이다.      Jonas, The Gnostic Religion, 332.

 

 

2. 하나님의 존재 양태로서의 양성 신(androgyny)

   영지주의는 하나님묘사에 있어서 성별을 나타내는 상징을 사용했다. 영지주의의 이러한 경향은 이교도 전승의 영향일 수도 있으나 대다수는 유태교의 유산과 관계가 있는 독특한 기독교의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님을 남성적 일원론(monastic)이 아니라 남-여성적인 한쌍의 하나님(God as a dyad)으로 표현했다.      Elaine Pagels, Versuchung durch Erkenntnis: Die gnostischen Evangelien(Frankfurt: Insel Verlag, 1979), 95.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져스틴에 의하면, 시몬 마구스는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최초의 하나님”으로 숭배 받았다. 그는 헬렌(Helen)을 자신의 여성의 짝인 “최고의 사유”라 칭했다. 그리고 그는 헬렌으로부터 천사들과 낮은 세계의 능력들이 나왔으며, 이 천사들이 세계를 형성했다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많은 사마리아인들은 시몬 마구스와 헬렌을 신성의 남성-여성의 원리로서 예배하였다.      Justin Martyr, Apology, Ⅰ. 26, 56. Albert H. Newman, A Manual of Church History, vol. 1(Valley Forge: Judson Press, 1933), 185에서 재인용.

 

 펠리칸은 “시몬 마구스가 이와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성적인 묘사를 한 것은 하나님의 인격적 지혜에 관한 유대교의 사색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라고 했다.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23-4.

 

   바실리데스는 구약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여 신화를 체계화시켰다. 그는 자신이 세운 신화를 세 가지 옛 계통(αρχαι αγεννητοι)으로 나누었다. 그 가운데 첫 계통에는 선함(αγαθοs)라 불리우는 최고의 하나님이 빛 가운데서 살고 있으며, 그곳에는 한 쌍, 즉 엘로힘(ελωειμ) 또는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남성적 원리와 에덴(εδεμ)이라 불리우는 여성적 원리가 있다고 했다.      C. H. Dodd, 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3), 104.

 

   발렌티니안들은 “깊음”(Bythos)이라는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은 그의 여성의 짝인 “침묵”(sige)과 함께 초월적 존재로 남아 있었다는 점을 신화의 주요한 전제로 삼았다. 그런데 이 “비토스”라는 헬라어는 문법상 남성을 의미했고, “시게”라는 단어는 여성을 의미했다. 발렌티니안의 체계에서 이 깊음과 침묵은 영원한 본래적 에온이었다. 그래서 이 에온들은 언제나 총합(syzygy), 즉 남-여성의 총합적 한 쌍(a masculine-feminine pair of syzygis)으로 존재했다.      Trigg, Origen, 41.

 일부 영지주의자 가운데서는 창세기 1장 26-27절을 양성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이 있었다. 발렌티니안 동방학파에 속했던 마르쿠스(Marcus)는 하나님은 양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모습대로 만들어진 인간 역시 남-여성적인 존재로 만들어 졌다고 주장했다. 같은 학파에 속했던 테오도투스(Theodotus) 역시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되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는 말은 바로 “지혜인 어머니가 가장 잘 만든 구성 요소인 남성과 여성의 두 요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Pagel, Versuchung durch Erkenntnis, 102-3.

 이와같은 해석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어휘를 문자적으로 해석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요한외경」은 자웅동체적 양성신관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처음 “영적 아버지”(Spirit-Father)는 그의 빛 가운데 있는 물에 의해서 둘러 싸여 있었다. 이 신성이 최초로 무의식 속에 배가를 위한 생각을 하였다. 그러자 그의 사유, 즉 최초의 Ennoia의 실체화가 야기되었다. 이것은 최초의 남자로서 본래적인 영이며, 그는 바로 남성-여성의 양성적 자웅동체인 바벨로였다. 이 사실로부터 플레로마의 탄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Apo. J. Ⅱ. 6, 4-20.

  

   「유그노스토스」(Ugnostos the Blessed)는 만물을 존재케 한 조상을 가리켜 “자기배태자”(Self-Begetter)라 했다. 이 자기 구성적인 아버지는 찬란한 빛 가운데 있었다. 즉시 그 빛의 원리가 영원한 자웅동체적 남자로서 출현하게 되었다. 그의 남성적 이름은 “출생” (Begotten)이었고, 그 여성적 이름은 “모든 지혜을 낳게한 소피아”였다고 한다.「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The Sophia of Jesus Christ) 역시 「유그노토스」와 동일한 양성적 자웅동체의 신관을 묘사하고 있다.      Eugnostos The Blessed, Ⅲ. 3, 75-77. & The Sophia of Jesus Christ, Ⅲ. 3, 101.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Leiden: E. J. Brill, 1988), 228. 이후부터는 Ugno. 그리고 Soph.로 표기한다.

 

   이밖에 「세계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the World)는 자웅동체의 신관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피스티스 소피아가 사물을 만들 생각을 갖게 된다. 그녀는 먼저 물질계를 통치할 능력을 만들었다. 이 능력은 사자 모양으로 생긴 거대한 힘을 가진 자웅동체적 존재였다. 그것은 바로 얄다 바오트(Yalda baoth)였다. 이 얄다 바오트는 신들과 천사들 그리고 인류를 만들었다. 이 통치자는 이러한 존재들을 만들 때에 그의 본성과 일치하도록 이 모든 존재들을 다 자웅동체적으로 만들었다.      On the Origin of the World, Ⅱ. 5. 100-1.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s. James M. Robinson(Leiden: E. J. Brill, 1988), 173. 이후부터 Origin.으로 표기한다.

 

 

   3) 교부 이레니우스의 비판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자 특히 말시온이 섹슈얼한 양성 신관을 교회 제도에 활용하여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성직에 참여시켰던 것에 대하여 비판하기를 “그 당시 교회에서는 금했던 여성들의 예언문제와 성만찬 집례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 행위는 악마적인 유혹이었다.”고 했다.      Pagel, Versuchung durch Erkenntnis, 105.

 

터툴리안 역시 그가 주도적으로 비판했던 말시온이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사제나 성직에 임명했던 것들에 대하여 혹독하게 비판을 했다. 그는 당시의 교회 혼란상을 가리켜 “영지주의 교도들에 유혹된 여성들은 교회 내에서 정숙하지도 않고 논쟁에 끼어 들며 악귀 추방 의식을 행하고 저주하는 행태를 벌이고 있다고 꾸짖고, 여성들의 이러한 무례한 행동은 교회 안에서 허용된 행위가 아니다.”고 말했다.      Ibid., 106.

 

. 영지주의 하나님의 본성 이해

 

1. 비인격적 무감각한 신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행동하는 하나님과 생동감 넘치는 하나님 그리고 창조자로서의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사건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만나주며 인간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었다. 영지주의자들의 비인격적인 신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제시한 우주창조의 동기 분석을 해야 한다.

 

   바실리데스의 하나님 묘사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어떠한 것으로도 언표할 수 없는 절대적 초월자였다. 그는 이런 하나님을 “순수 무” 또는 “비존재 신”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어떠한 변화도 시도하는 일이 없는 순수한 비존재로서의 하나님이었다. 하지만 다른 자료 제공자 힢폴리투스에 의하면 바실리데스는 방사이론을 거부했고, 그는 전 우주란 하나님의 의지와 본래의 계획에 따라 “무로부터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May, Creatio Ex Nihilo, 70.

 하지만 바실리데스가 하나님을 “순수 무”라 하고, 우주창조는 이 “무로부터의 창조”였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그가 명확하게 유출설을 벗어난 신관을 소유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발렌티니안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의 독특한 존재로 표현하기 보다는 오히려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를 선호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서가 말하는 창조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우주 창조란 하나님의 의지적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맨 마지막 에온인 소피아의 결함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방사에 의해 형성된 플레로마의 개개의 에온들은 독립적으로 실존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을 철저히 우주에서 소외시킴으로써 무감각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David R. Ruppe, "God, spirit, and human being: The reconfiguration of Pneuma's semantic field in the exchange between Irenaeus of Lyons and the Valentinian Gnosis"(Ph.D. diss, Columbia University, 1988), 77-83.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이레니우스에 의해 발렌티니안의 작품으로 입증되었던 「진리복음」(The Gospel of Truth)은 하나님의 비인격적인 속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열정의 시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나온 “유일하게 출생된 이성”(Only Begotten Mind)에게서 비롯되었다. 다른 모든 에온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이성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다른 에온들에게 전달해 주고자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여성적 동반자인 “침묵”은, 하나님은 모든 에온들이 그들의 조상인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또 그를 찾고자 하는 욕망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이성의 이와 같은 바램을 저지했다. 그래서 에온들은 오직 그들의 종자를 낳게 하는 자를 은밀하게 주시하고 시작이 없는 근원에 대해서 탐색하고자 갈망했다. 참으로 모든 에온들은 그분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가운데 맨 마지막에 속하는 에온인 소피아가 그녀의 반려자의 승인도 없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열정에 빠져 그만 도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그녀는 “제한”(Limit, horos)으로 말미암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함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에 의해 소피아는 자신의 열망을 멈추고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아버지는 결코 알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The Gospel of Truth, 17. 4-9, 18. 1-3.; Jonas, The Gnostic Religion, 181-82.에서 재인용. 이후부터 G. T.로 표기한다.

 

   다른 영지주의 문서 가운데 「요한외경」은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 바 있다.      Apo. J. Ⅱ. 13, 10.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영원한 빛,” “불가해한 존재,” “무한한 존재” 등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는 어떤 욕망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존재로 파악했다. 예컨대, 영지주의 문서 Allogens는 “하나님은 결코 그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이나 그 어떤 욕망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그는 자기자신으로부터나 다른 존재들로부터 결코 축소되지 아니한다”고 묘사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어떤 에온이나 시간에도 참여하지 아니한다. 이에 따라 월리스 같은 이는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한 속성과 비속성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변증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R. T. Wallis, Neoplatonism and Gnosticism(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2), 178-79.

 

   발렌티니안의 작품으로서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삼부로 된 소책자」(The Tripartite Tractate)에는 에온의 연속적인 계열과 그것의 복사 또는 모상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이 소논문에 의하면, 에온들은 아버지의 모상으로서 아버지의 계시에 따라 잠재적 존재로부터 현실적 존재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서 표현된 형상에 의한 존재의 연속적인 여러 레벨들은 이레니우스가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존재의 무의미한 영원회귀성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인격적인 하나님을 철저히 무감각한 비인격의 하나님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Ruppe, "God, spirit, and human being," 78-83.

 

    

   3) 교부 이레니우스의 비판

   이레니우스는「이단논박」에서 발렌티누스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이미지, 즉 창조자, 심판자 그리고 주 등의 이미지가 나타내려고 하는 것과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이해되는 하나님 사이를 구별했다고 비판했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그들은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단순한 이미지에 불과한 것들을 가지고 마치 그것을 실재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성서에서 하나님이 때때로 보복하는 심판자로, 하늘에서 다스리는 왕으로, 심지어는 질투하는 주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들은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가르침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Pagel, Versuchung durch Erkenntnis, 74. 

 그리하여 이레니우스는 발렌티니안의 이러한 잘못된 주장을 비판하면서 성서의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모든 것들을 유지시키는 인격적인 분이라고 말했다.      Irenaeus, A. H. Ⅱ. 1. 1.

 

 뿐만 아니라 이레니우스는 발렌티니안들이 플레로마 형상론에 따라 에온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생존할 수 있는 존재라고 묘사했던 점에 대하여 비판하기를 “이렇게 되면 플레로마에 있는 에온들에게 권리이양이 배제됨으로써 하나님과 에온 모두가 무감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발렌티니안들이 하나님을 플레로마에만 국한시켜 놓았으나, 진실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물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플레로마에만 머물러 서 있을 수가 없는 분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감각한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Ruppe, "God, spirit, and human being," 82-6.

 

2. 다신교적인 신

영지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복수적 신관을 가지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신을 최고 신과 이에 비해 열등한 제신들로 구분하였다.      Jonas, The Gnostic Religion, 326;  Robert M. Grant, Gnosticism and Early Church(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59), 26; 맥기퍼트(Athur C. McGiffert) 같은 이는 영지주의자들이 영속적인 에온들의 방사과정을 신화적인 용어를 빌어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그들이 희랍의 다신교와 같은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소치라 했다. Athur C. McGiffert,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1(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32), 50.

 

 예컨대, 그들이 묘사한 제신들은, “위대한 하나님,” “이스라엘의 보호자이고 천사장이며 창조자인 대천사,” “대천사의 복수적 본성,” “대천사의 여성적 측면” 등 이었다. 이들은 천사론을 통해 복수 신관을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영지주의는 이러한 신을 제 2신(the second God)이라 칭했다. 이 제 2신은 창조자 유대교의 하나님으로서 그는 여성의 짝인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제 2신성의 개념을 유대철학자 필로에게서 배웠다.      Barker, The Great Angel, 165-67; R. M. Wilson, Nag Hammadi and Gnosis(Leiden: E. J. Brill, 1978), 26.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위 클레멘트 저술(the pseudo-Clementine writings)에 의하면, 시몬 마구스는 시몬 베드로와의 신앙 토론에서 유대교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베드로와는 달리, 그는 구약의 야웨 하나님(Yahweh)은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라고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른 신들의 통치자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은 야웨로서 알려진 엘룐(Elyon)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사투르닐루스도 제 2신은 유대교의 하나님으로서, 그는 알 수 없는 아버지에 의해 창조된 천사들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바실리데스도 지상을 나눈 마지막 하늘의 천사들은 유대교의 하나님을 그들의 장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다시 말해 이 물질적인 땅은 유대교의 하나님이 창조한 천사들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Irenaeus, A. H.Ⅰ. 24. 2-3.

 이밖에도 케린투스는 이 세계란 최초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분리해 나온 하나의 능력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가르쳤다.      Ibid., Ⅰ. 26. 1.

 

   발렌티누스파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 잘 구분이 되지 않으리 만큼 교묘한 방법으로 다신관을 가르치고 있다. 「발렌티누스파의 해설」(Valentinian Exposition)은 하나님은 단자이시며 그분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아니 했다고 썼다. 그리고 「지식의 해석」(Interpretation of Knowledge)에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한 분이시다”고 묘사했다. 이 표현만으로 보면 기독교의 신앙고백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레니우스는 말시온파를 신경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던 경우와는 달리 발렌티누스파에게는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큰 어려움이 있다고 실토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개적으로는 한 분 하나님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그들만의 집회에서는 근원이 되는 하나님과 일반적인 하나님, 즉 창조자 하나님 사이를 구분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Pagels, Versuchung durch Erkenntnis, 73-4.

 그리고 발렌티니안들은 플라톤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물주”(demiurgos)라는 어휘를 사용하였다. 이들은 물질창조자 조물주는 보다 높은 능력의 도구로 일하는 낮은 신적 존재로서,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세상통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조물주가 왕이나 군주로서 통치하는 것이지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이 통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발렌티니안들은 은연중에 하나님을 제 1신과 제 2신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본다.      Ibid., 79.

 실제로 발렌티니안 동방학파인 데오도투스(Theodotus)는 아버지와 데미우르게 사이를 구분하고 “오른편의 통치자는 아버지이며 왼편의 통치자는 데미우르게이다”고 주장했다.      Barker, The Great Angel, 168.

 

말시온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문제를 취급하면서 두 신 교리를 주장했다. 그의 신학적 주제는 어떻게 무한히 선하고 전능한 하나님이 고통과 질병 등을 포함하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는가의 문제였다. 이에 그는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가 선포한 사랑의 하나님은 서로 다른 하나님 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누가복음 6장 43절의 “못된 나무와 좋은 나무의 비유”를 들어 정당화 시키려 했다. 즉 좋은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악으로 가득찬 물질세계는 선한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신이 창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Tertullian, Against Marcion, Ⅰ. 2, 1-19. in The Ante-Nicene Fathers, vol. 3. eds. Alexander Robert and James Donaldson 2d. rev. ed.(Grand Rapids: Wm. B. Eerdmans, 1986), 272. 이후부터는 Tertullian, A. M.으로 표기한다.

 

 말시온의 두 신 교리는 그가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서로 대립되는 구절들을 발췌하여 만든 「대립명제」(Antithesis)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묘사한 한 신은 알려질 수 없고 지각할 수 없으며 서술할 수 없는 “고독한 자”(the alien), “타자”(the other)로써, 이는 “숨겨진 하나님”(the hidden God)이었다. 반면, 다른 한 신은 알 수 있고 서술할 수 있는 창조의 하나님, 에온들의 통치자, 그리고 조물주라는 것이다. 말시온에 따르면, 복음의 선한 하나님은 창조에 절대적으로 참여하지 아니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그에 관하여 전혀 가르쳐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이 선한 하나님은 마냥 고독 속에 홀로 거하는 존재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고독한 선의 하나님을 인간의 구원 측면에 연결시켰다. 즉 선한 하나님은 유일하게 이 세계와 존재론적으로서가 아니라 구원론적으로 관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Jonas, The Gnostic Religion, 141-43; May, Creatio Ex Nihilo, 54.

 결국 말시온의 두 신 교리는 “구원의 신과 세계창조의 신” 사이의 이원론적 구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말시온의 선한 신과 유대교의 창조신 사이의 이원론적인 구분은 선한 신과 악한 신 사이를 극단적으로 구분했던 페르시아 종교의 그것과는 구별된 것이었다. 그의 이원론은 단순히 한 선한 하나님과 한 악한 신의 본체론적인 구분이 아니라, 그의 율법을 요구하는 정의의 신 조물주와 사랑의 행동과 계시로서 용서하시는 그런 하나님 사이의 해석학적 구분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영지주의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요구했다. 밀시온의 이러한 점은 몇몇 학자들로 하여금 그는 영지주의자가 아니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하기도 했다.      McGiffert,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61; Davies, The Early Christian Church(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0), 75; 말시온과 영지주의와의 차이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42-43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시온이 선호했던 사랑의 하나님에 의한 구원적 측면 강조는 창조신에 대한 본래적인 의미의 왜곡내지는 배제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유그노스토스」와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는 다음과 같이 신들의 탄생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태초에 충만한 빛 가운데 거했던 자기 구성적인 아버지가 자신의 모양을 닮은 위대한 능력을 만들기로 결심하자 그 즉시로 빛의 원리는 "영원한 양성적 사람"(Immortal Androgynous Man)으로 출현했다. 그리고 이 영원한 양성적 사람의 남성 이름은 완전한 이성으로 불리워졌고, 그의 여성적 이름은 모든 지혜, 탄생된 소피아로 불리워졌다. 이 불멸의 사람을 통해서 최초의 칭호, 즉 아버지의 신성과 나라가 나타나게 되었다. “자기 스스로 아버지인 사람”(Self-Father Man)으로 불리워지는 그는 자신의 위엄을 위하여 위대한 한 에온을 창조했다. 그는 그에게 위대한 권위를 주었다. 그는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했고, 또한 그는 많은 신들과 대천사들 그리고 무수한 천사들을 창조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는 이 위대한 한 에온을 가리켜 오그도드(Ogdoad)라고 물렀다.      Eugno., Ⅲ. 3, 77.; Soph., Ⅲ. 4, 102.

 

 

   「요한외경」은 이브( Eve)가 그의 두 아들, 즉 선한 야웨와 악한 엘로힘을 탄생케했다고 묘사했다.      Apo. J., Ⅱ. 1, 24.

 이처럼 영지주의 문서에서 묘사된 제 2신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복수 신관에 대한 표현의 수단일뿐만 아니라,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으로써 물질세계를 창조한 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신적존재였다.

 

   3) 교부 이레니우스의 비판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 교인들이 말시온파처럼 창조주 하나님이외에 다른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 대하여 비판했다. 그의 비판에 따르면, 말시온파는 창조주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나, 발렌티누스파 교인들은 그들이 비록 말로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진작 마음 속으로는 이 신앙을 거부하고 있는 늑대들이라고 한다.      Irenaeus, A. H., Ⅲ. 16, 6.

 

 그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통치하는 하나님과 최고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이레니우스는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선포되고, 신약의 복음에 의해서 계시된 하나님은 동일한 한 하나님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뿐만 아니라 신약의 구원의 신과 구약의 창조의 신 역시 동일한 한 분이시다.      Ibid., Ⅲ. 5, 1.; Ⅲ. 9, 2.; Ⅲ. 11, 1.

 

 이레니우스와 같이 터툴리안도 말시온이 전개한 두 신개념에는 논리적으로 부적절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말시온이 두 신, 즉 한 신은 선하고 무한한 반면, 다른 한 신은 포악하고 세상 안에 제한되어 있는 존재로 묘사했는데 사실상 신성의 본질은 최고의 위대한 속성을 소유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열등한 존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당하다는 것이다. 터툴리안의 예리한 지적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한 때 말시온을 추종했던 그의 제자 아펠레(Apelles)가 그의 스승의 두 원천에 대한 이원론을 거부하고 엄격한 유일신론자가 된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아펠레는 “나는 동일하게 영원한 두 개의 원천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말시온으로부터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의 원천뿐인 하나님만을 알고 그렇게 설교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Tertullian, On the Flesh of Christ, 이형우 역주(경북:분도출판사, 1994), 60-3.

 

. 영지주의의 하나님의 사역 이해

 

1. 방사에 의한 천상세계 창조

   영지주의의 우주창조론은 모방적 이원론과 수비학적(numerologi- cal) 사색과의 연합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초월세계와 물질세계 사이에 있는 에온들의 복잡한 연속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31.

 그리고 영지주의는 하나님은 이 악한 물질세계를 창조하지 아니 했으며, 이 물질세계와 전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신학적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방사이론과 천사들을 통하여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 사이의 연결을 시도하였다.      McGiffert,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50-1.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시몬 마구스는 한 초월적인 힘에 의해 나온 “사유”(Ennoia), 즉 헬렌이 낮은 지역으로 내려와 천사들과 능력들을 방사했고, 이 천사들이 지상세계를 만들었다고 가르쳤다. 그에 의하면, 헬렌은 자신의 최초의 사유이자 만물의 어머니였다. 일찌기 그는 천사들과 대천사들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헬렌은 지상 세계에 내려와 천사들과 능력들을 방사함으로써 이 계획을 실현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시몬 마구스의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독특한 신학체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당대에 실존했던 영지주의의 이원론을 모방하여 자신을 신격화하는 도구로 활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Irenaeus, A. H. Ⅰ. 23, 2.

 

   바실리데스의 창조론 연구를 위한 자료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레니우스에 의해 알려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힢폴리투스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다. 이레니우스의 자료는 바실리데스 자신의 교훈들에 대한 단편적인 자료이며, 영지주의의 일반적인 개념들을 폭 넓게 취급하고 있다. 반면 힢폴리투스의 자료는 바실리데스 사후 그의 아들 이시도어(Isidor)를 포함한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우주창조론에 있어서 양자간에는 서로 다른 차이점들이 있었다. 이레니우스 자료에서는 순수한 방사체계를 다루고 있는 반면, 힢폴리투스 자료는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취급하고 있다.      May, Creatio Ex Nihilo, 66.

 이레니우스는 바실리데스의 유출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먼저 비탄생자 아버지로부터 “이성”(mind, nous) 혹은 “그리스도”(Christ, Christos)가 나왔다. 그로부터 “말씀”(word, logos)이 나왔고, 이 로고스로부터 "분별”(prudence, phronesis)이 나왔다. 이 “분별”로부터 “지혜”(wisdom, sophia)와 “능력”(power, dynamis)이 나왔다. 그리고 능력과 소피아로부터 원리가 지배하는 권품천사들(principalities)과 천사들을 유출해 내었다. 이것은 시초(first)라 불렀고, 이들에 의해 첫째 하늘이 만들어졌다. 그때 다른 능력들이 이것들로부터 방사에 의해 첫째 하늘과 유사한 다른 하늘을 창조했다. 그 후에는 다시 또 다른 능력들이 방사에 의해 그들 위에 존재하는 것들에 상응하는 존재들을 형성하였다. 이것은 또 다른 세째 하늘을 주조하였다. 그러자 이에 그치지 아니하고 아래로 향하는 질서 가운데 있는 이 세째 하늘로부터 연속적인 자손증식 과정이 지속되었다. 이와같은 연속적인 유출과정을 거쳐 한층 더 많은 권품천사들과 천사들이 형성되어 일년의 숫자에 해당하는 365개 하늘들을 이루었다.      Irenaeus, A. H. Ⅰ. 24, 3.

 

   반면, 힢폴리투스는 바실리데스의 “무로부터의 창조”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태초에 “순수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the pure, ineffable Nothing)가 있었다. “비존재 하나님”(the non-being God)은 그 자체 안에 전 세계(the whole world)와 우주의 씨 혼합(the seed-mixture of the cosmos)을 잠재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우주의 씨”를 창조했다. 그 세계 씨는 비록 순수함의 정도차이는 있으나 비존재신과 동질인 세 자권(three sonship)을 포함하고 있다. 첫 자권은 주요 성분이 순수한 층(λεπτομερηS)으로서 세계 씨가 창조되는 순간에 비존재신에게까지 솟아 올랐다. 제 2의 자권은 조잡한 층(παχυμερηS)으로서 홀로 솟아 오르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존재였다. 그래서 그것은 성령에 의해 위로 날아 운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과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역에 까지 들어갈 수는 없고 그 배후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자 그 영은 지상까지 스며 내려 오도록 제 2의 자권의 내품기를 계속 실행하였다. 그리하여 초우주 영역으로부터 우주를 분리하는 하나의 창공(σερεωμα)이 탄생되었다. 그러나 우주의 형성은, 아직 최고의 영역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창공까지 올라갈 수 있는 태고의 씨로부터 생겨난 대통치자가 자신에 의해 창조된 위대하고 현명한 아들과 함께 창조사역에 착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May, Creatio Ex Nihilo, 68.

 

   이와 같이 바실리데스는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성서적 개념을 사용하고는 있으나, 이 “무”를 하나님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완전하게 유출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바실리데스의 창조론은 플라톤의 우주관과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에 의한 혼합적 서술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발렌티누스의 에온의 천상계 기원과 구성에 관한 자료는 이레니우스의 자료와 힢폴리투스의 자료가 있다. 메이(Gerhard May)는 전자를 System A라 칭하고, 후자를 System B라고 칭했다. 이 두 자료간에는 약간의 차이점들이 있다. System A는 방사과정의 시작에 대한 명확한 배경 설명이 없이 간략하게 신의 침묵이 모든 것들을 존재하도록 허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을 스쳐 지나가듯이 언급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하나님이 어떻게 불완전한 에온들을 유출하도록 허용했는지 그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었다. 반면, System B는 아버지가 그 안에 소유하고 있었던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것을 존재케 하고자 결심하는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자료는 하나님의 신적 선함과 결단의 표현으로서 플레로마가 창조되었다고 묘사했다.      Ibid., 91-2.

 논자는 이레니우스의 자료가 더 반영지적 성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레니우스의 자료에 의하면, 발렌티누스는 남-여 양성적 방사에 따라 생겨나는 30개의 에온 형성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먼저 비가시적 세계에 비발생된 완전하고 선재한 에온인 “원천”(προαρχη), “조상”(προπατωρ), “성부”(Bythus)가 있었다. 성부는 자신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사유”(Ennoea)라고도 불렀던 “은혜”(Charis) 혹은 “침묵”(Sige)과 함께 셀 수 없는 영원한 세대 동안 고요함 속에 있었다. 마침내 성부는 스스로 모든 만물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그의 여성 동반자인 침묵으로 이를 생산해 내도록 하였다. 그러자 이 침묵은 씨앗이 자궁 안에서 낳아지듯이 그 씨를 받아 임신하여 “이성”(Nous)과 그의 여성적 짝 “진리”(Aletheia)를 낳았다. 이성은 “단성생식”(Monogenes), “아버지”(Father) 그리고 모든 만물의 시작이라 불리워졌다.

 

그런데 이성만이 그의 아버지의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이성은 그 목적을 스스로 지각하고 “말씀”(Logos)과 “생명”(Zoe)을 방사했다. 그리고 이 로고스와 생명의 결합에 의해 “사람”(Anthrophos)과 “교회”(Church)가 생겨났다. 이와같이 첫 탄생된 제 2세대 에온 세쌍을 포함한 8개 한 조의 에온인 Ogdoad는 모든 존재의 뿌리이며 실체였다. 그 다음 제 3세대의 스물두 개 에온들이 유출되어 나왔다. 그리고 말씀과 생명에서는 열 개의 에온들이 나왔고 사람과 교회에서는 열두 개의 에온들이 나왔다. 이렇게 영적 플레로마는 총 30개의 에온으로 구성되었다. 그 가운데 맨 마지막 에온은 “지혜”(Sophia)였고, 마침내 이 지혜의 타락으로부터 물질세계가 만들어 졌다.      Irenaeus, A. H. Ⅰ. 1-2. 로고스와 생명으로부터 유출된 10개의 에온들은 Bythius와 Mixis, Ageratos와 Henosis, Autophyes와 Hedone, Acinetos와 Syncrasis, Monogenes와 Macaria이다. 그리고 사람과 교회로부터 나온 12개의 에온들은 Paracletus와 Pistis, Patricos와 Elpis, Metricos와 Agape, Ainos와 Synesis, Ecclesias- ticus와 Macariotes, Theletos와 Sophia이다.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삼부로 된 소책자」는 약간의 신화적인 형태와 필로와 흡사한 스토아적 플라톤주의의 입장에서 천상계 형성에 관한 방사이론을 다음과 같이 전개하고 있다:

 

에온의 1단계에서 모든 에온은 영원히 깊은 심연 가운데 있는 아버지의 사유 안에 씨, 즉 종자적으로 존재해 있었다. 이유인즉 에온들은 그들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온 발생의 2단계에서는 아버지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지성을 부여해 주려고 생각에 잠겼던 사유의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에온들이 스스로 존재하고 그들이 무엇인가 인식하며 자신들을 위하여 존재 가운데 나아갈 수 있도록 지식의 씨와 같은 사유를 뿌려 주었다. 그런 후 에온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버지의 사유 안에서 자존하는 지성으로서 그들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 때 아버지는 마치 작은 어린이나 떨어지는 물방울과 덩굴에서 개화된 꽃, 그리고 새싹과도 같은 에온들을 유출하였다. 마침내 총합(syzygy) 이념이 이런 과정을 거쳐 출산과 탄생의 유사한 과정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방사의 유출은 자연적으로 탄생의 한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The Tripartite Tractate Ⅰ. 4, 60-2. in The Nag Hammadi Library, ed. James M. Robinson(Leiden: E, J. Brill, 1988), 64-5.; Wallis, Neoplatonism and Gnosticism, 102.

 

   창세기 1장 1-3절을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영지주의 문서 「세계의 기원에 대하여」는 태초로부터 존재하는 “무”로부터 “그림자”와 “혼돈” 그리고 “신앙”으로의 방사과정이 있었고 이 과정을 통하여 물질세계가 생겨나게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태초부터 실존했던 한 생산행위로부터 어둠이라 불리우는 그림자가 나왔다. 이 그림자는 혼돈을 낳았고, 이 혼돈이 설계했던 것으로부터 나온 첫 생산에 의해 물질이 나오게 되었다. 불멸적 존재의 자연적 구성이 있은 후에 그 때 신앙으로부터 방사된 닮은 모양의 무한한 존재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결단력으로 원시의 빛과 같은 창조행위를 하는 지혜였다.      Origin.,Ⅱ. 98-9.

 

   3) 교부 이레니우스의 비판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의 방사이론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창조세계와는 별개의 무관심한 하나님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에 의하면, 만일 에온들이 자신들을 유출한 아버지의 존재를 소유하고 있다면 모든 에온들은 최고의 하나님과 같이 열정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피아가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고 했던 열정때문에 타락이 생겨났고, 이것 때문에 물질이 생겨 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낫 그들의 무의미한 방사이론에서 초래한 오류일 뿐 그것은 논리적으로 올바른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이레니우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적인 결단으로 모든 만물을 무로부터 창조하고, 모든 존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은 자유의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영지주의자들의 방사교리에 나타난 신화적인 요소와 그림같은 에온 묘사를 비판했다. 메이는 이레니우스의 이러한 영지주의 비판을 대단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옹호했다.      Irenaeus, A. H. Ⅱ. 17, 1.; May, Creatio Ex Nihilo, 166.

 

2. 신적 존재에 의한 지상의 물질세계 창조

   영지주의는 물질세계란 최고의 하나님에 의한 선한 창조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물질계 창조수행자에 대하여 학파마다 약간의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소피아의 타락에 의해 물질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말했는가 하면, 다른 이는 최고의 하나님으로부터 방사되어 나온 다수의 다른 능력들이 물질세계를 만들었다고 주장을 했다.      Sidney Spfncer, Mysticism in World Religion (Harmon- sworth: Penguin Books, 1976), 149.

 그런데 이와같이 천사적 능력에 의하여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가르침은 주로 영지주의 초기단계의 것이었다. 그대신 후기에 들어와서는 물질세계 창조자로서의 천사의 데미우르게적 기능은 약해지고, 구약의 하나님과 최고의 하나님 사이를 구별함으로써 하나님-창조-물질세계의 구조를 체계화시켜보려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천사교리는 본래 유대개념에서 나온 것이긴 했으나 이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반동의 표현일 뿐이었다.      May, Creatio Ex Nihilo, 51.

 

   1) 영지주의자들의 견해

   앞서 언급했듯이 시몬 마구스는 천사들과 능력들이 물질세계를 만들었다고 가르쳤다.      Grant, Gnosticism: An Anthology, 24.

 그리고 그는 이 천사들이 야웨와 동일한 데미우르게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Mircea Eliade,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vol. 5(New York: Macmillan, 1987), 569.

 그의 제자 메난더도 이 세계는 천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가르쳤다. 사투르닐루스 역시 이 세계와 모든 존재는 일곱 천사의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했다. 이밖에 카르포크라테스도 이 세계는 비탄생자인 아버지보다 열등한 천사들이 창조했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한결같이 이들은 이 세계를 만든 창조자들을 가리켜 오만하고 무지한 존재로 묘사했다.      Irenaeus, A. H. Ⅰ. 23-5, 1; Barker, The Great Angel, 179; Jonas, The Gnostic Religion, 132.

 

바실리데스는 천상의 존재를 창조한 아버지와 물질세계를 창조한 구약의 야웨 하나님, 즉 제 2의 통치자 사이를 구분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하늘 실재의 근원은 365개의 하늘들을 방사하여 모든 질서를 확립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이 세계창조는 이 하늘들 가운데 둘째 자권 맨 마지막 하늘에 거주했던 제 2의 통치자인 천사들이 창조했다. 어느날 구약의 하나님은 한 사람을 선택하여 전 세계를 통치할 수 있도록 계획을 했었다. 하지만 다른 천사들이 야웨 하나님의 계획을 반대하자 이 제 2의 통치자는 한 아들을 낳아 그와 함께 세째 자권인 이 지구를 창조했다. 그러나 이 지구창조는 364개의 하늘들에 의해 분리되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창조는 극도로 불완전한 창조가 되었다. 비록 이 세계가 불완전한 세계창조일지라도 아직 그 안에는 인간의 몸 안에 갇혀 있는 신적인 영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그의 독생자를 이 세계에 보내게 되었고, 그 아들은 천상계에 대한 회상에 있어서 무지한 잠에 빠져 있는 영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36.

 

 바실리데스는 이 상황을 구원론적으로 활용하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이 세계의 존재 목적은 세째 자권에게 죄로부터 순수함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기 위한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계의 고통은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간주했고, 이 고통은 세 자권으로 하여금 상층부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감당케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바실리데스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창조하신 분은 한 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인간의 운명론을 내세우고 있음을 볼 때, 그는 불교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영혼의 윤회설을 믿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Trigg, Origen, 41.

 

   케린투스는 하나님이 이 세계를 직접적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매개자로서 봉사의 임무를 맡고 있는 천사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창조했다고 말했다. 이 천사들 가운데 하나가 율법을 제공해 준 유대교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Millard J. Erickson, The Word Became Flesh(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1), 43-4.

 

 물론 성경은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천사들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 어디에도 천사가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해 주는 곳은 없다.

 

발렌티누스는 물질세계 창조의 원인을 무지, 즉 소피아의 타락과 데미우르게의 무지에 두었다. 소피아의 타락이란 오직 이성 외에는 어느 에온도 하나님을 알 수 없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피아가 경솔하게 아버지를 알려고 시도한 것(System A)과 소피아 자신의 남성 파트너의 허락 없이 에온을 탄생케 하려고 시도한 것을 의미한다(System B). 타락한 소피아는 “사람과 교회”에 의해 낳게 된 마지막 에온의 여성의 짝이었다. 이 타락한 소피아는 스스로 영적인 씨를 탄생케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정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플레로마 밖의 세계에 형체가 없는 물질을 유산으로 낳았다. 그리고 소피아는 방사를 통해 모든 만물의 아버지이자 왕인 혼적인 데미우르게를 방사했다. 이 데미우르게는 일명 창조자 혹은 구약의 하나님으로 불리워졌다.      May, Creatio Ex Nihilo, 93-7.

 

 발렌티누스의 데미우르게에 의한 창조과정은 발렌티니안 서방파 프톨레미우스가 창세기 1장 1-4절을 소피아와 데미우르게의 창조 사역으로 해석한 곳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에 의하면, 소피아는 데미우르게를 통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최초로 데미우르게는 혼적인 물질, 혼적인 그리스도, 천사들 그리고 대천사들을 창조했다(창1:1). 그러나 아직 혼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과 함께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혼적인 것은 빛이기에 위에 있었고 물질적인 것은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무거운 물질은 비물질적인 차원에 있었다(창1:2). 이제 데미우르게는 무거운 물질로부터 순수한 혼적인 요소를 분리해 내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이었다(창1:4). 그리고 데미우르게는 처음부터 지상적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먼저 동물의 영혼과 같이 이성이 없는 한 영혼을 비물질적인 실체로부터 준비해 두었다가 인간에게 불어 넣었다는 것이다(창1:26). 이처럼 발렌티니안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도적인 우주창조 행위를 배격했다.      Ibid., 105-9.

 

말시온의 창조관은 선재한 악한 물질로부터의 세계 창조였다. 그가 이렇게 물질에 대한 선재를 주장했던 것은 최고의 하나님과 데미우르게 사이의 불연속성때문 이었다. 그에 의하면, 이 물질을 사용하는 하나님은 최고의 하나님이 아니다. 오직 이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제 2신인 데미우르게이다. 그런데 이 데미우르게는 물질이 없이는 창조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데미우르게에게는 반드시 선재한 물질이 있어야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창세기 1장 1-2절에 근거하여 형체가 없는 물질의 선재를 주장했다. 그가 이렇게 데미우르게는 선재하는 무형의 악한 물질을 가지고 이 세계를 형성했다고 가르친 것은 왜 이 세계에 결점과 악이 존재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Ibid., 57-8.

 

 그리고 말시온은 케린투스와 같이 천사를 세계창조의 간접적인 수행자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그는 누가복음 12장 8절과 15장 10절에 따라 천사를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창조자의 메신저로 간주했다.      Robert M. Grant, Heresy and Criticism: The Search for Authenticity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Louisville: John Knox Press, 1993), 37.

 

   2) 영지주의 문서 내용

영지주의 문서들도 물질세계 창조자를 최고의 하나님대신 천사적 존재인 데미우르게로 묘사했다. 「요한외경」은 낮은 세계창조자를 얄타바오트(Yaltabaoth)라 명했다. 이 얄타바오트는 타락한 소피아가 낳은 괴물같은 창조신으로 세계통치를 위하여 천사들을 창조하고 물 가운데 비추인 완전한 아버지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요한외경」의 이러한 내용은 창세기의 창조이야기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이 얄타보오트는 야웨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해석되었다.      Apo. J. Ⅱ. 10-11. 24. ; Spfncer, Mysticsm in World Religion, 151.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는 이 얄타보오트를 대천사라 불렀고 그는 혼돈을 통치하는 거대한 자라했다.      Soph. Ⅲ. 120-1; 만데이즘(Mandeism)은 데미우르게의 실제적 이름을 가브리엘 천사라했고, Malef라 부리우는 사마리아인 저술은 인간의 신체를 창조한 주의 천사라했다. Wilson, Nag Hammadi and Gnosis, 23, 27.

 이와는 달리「아르콘의 본질」(The Hypostasis of the Atchons)은 세계창조자 데미우르게는 소피아에게서가 아니라 “혼돈”(Chaos)에서 나와 창조를 위해 지상에 내려왔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궁극적인 내용의 차이라기보다는 후에 플라톤의 Timaeus의 영향에 따른 용어상의 차이였다. 그러나 「요한외경」은 이 세계창조를 전적으로 낮은 존재인 데미우르게에게 일임하지는 않았다. 즉 이 세계는 에온의 형상이고, 인간의 신체적 조직은 데미우르게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R. M. Wilson, Nag Hammadi and Gnosis(Leiden: E. J. Brill, 1978), 30.

 

   3) 교부 이레니우스의의 비판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 신학체계 가운데 특히 그들이 주장한 제 2의 신적존재에 의한 창조 속성에 대하여 아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의 영지주의 창조론 비판은 한 분 하나님은 그의 창조적인 행위에 의해서 정의된다는 교리에서 출발했다. 그는 영지주의자들이 내세운 제 2의 신적인 존재의 경우 절대성의 속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들의 신적인 방사와 구별된 신적 플레로마에 대한 전제는 신적인 존재를 합성된 유한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물질세계가 창조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피아의 타락과 데미우르게의 결함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주장하는 발렌티누스의 신학은 실질적인 창조론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Ruppe, "God, spirit, and human being," 77-81. 곤잘레즈는 창조란 소피아의 타락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이는 사탄의 타락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166.

 나아가 그는 발렌티니안들이 형상론에 입각하여 30개의 에온으로 이 세계 안에 있는 다양한 존재들을 충분히 발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그는 결코 동물을 가리켜 천상의 존재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왜냐하면 영적인 존재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서 흠이 있고 열등하며 부조화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특성의 구별을 전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성서적인 창조해석은 수동적이고 자기 관조적인 일자와 활동적인 데미우르게 사이의 이중적 형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지주의의 혼돈이론과 창세기 1장 2절에 대한 “형체없는 물질”의 선재 이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비록 이러한 해석이 순교자 져스틴에 의해 수용된적이 있었으나 이레니우스의 하나님과 그의 창조 사이에 그 어떠 원리라도 개입시키려는 것 자체를 거부한 것이었다.           Ibid., 81-5; May, Creatio Ex Nihilo, 168; C. W. Hedrick and Robert Hodgson, Nag Hammadi Gnosticism, & Early Christianity(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86), 230-36.

 

 

. 결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을 토대로 영지주의의 신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지주의는 하나님의 존재위치를 극단적인 초월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론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다. 둘째, 영지주의는 하나님을 자웅동체적 양성신으로 이해함으로써 유출설에 의한 창조론을 전개했다. 유출설은 하나님의 의지적인 행위를 철저히 배제했고 이로 인해 무로부터의 창조론에 엄청난 오류를 가져왔다. 세째, 영지주의는 다신교적 신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인정하지 아니했고, 그 결과 한 분 하나님에 의한 선한 창조개념을 크게 훼손시켰다. 결국 영지주의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생동적이고 인격적인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간세계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켜 절대 고독 속에 가두어 넣음으로써 신의 죽음으로 이끌었다.

 

영지주의의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그의 사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인간사회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로 체험할 수 없게 될 때 개인적 허무주의, 물질에 대한 죄악시, 윤리적 도덕폐기론, 신앙적 신비주의와 금욕주의, 학문의 신지학적 경향성, 사상적 혼합주의, 그리고 신학적인 오류, 즉 가현설적 기독론과 깨달음에 의한 구원론 등에 빠질 수밖에 없다.

 

초기교회와 교부들은 영지주의 이단들에 맞서 이를 대처하기 위한 두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성경은 하나의 전체로서 그 자체의 증언의 빛 가운데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올바른 성경해석은 믿음의 공동체에 의해서 받아들여 진 전통과 기독교 신앙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먼저 “정경화” 작업을 시도하여 외경과 위경을 제거한 다음, 이 성경에 근거하여 “신앙의 규범”과 “사도신조”를 만들고 “삼위일체론”을 정립하여 영지주의 이단에 대항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라 했고(창24:3), 창조주는 천사가 아니라 한 분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고 했다(창1:1-3; 요1:1-3; 골1:15-17).

 

   그러므로 오늘날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혼합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현혹하는 뉴에이지 운동과 탈세상적 신비주의 신앙을 강요하는 사이비종파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서 성경 읽기와 올바른 교리 공부가 철저히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 가운데 만연되어 있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지양하고 삶의 자리에서 올바른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관계론적인 사유체계를 지향해야 한다. 끝으로, 논자는 “하나님-인간-자연” 관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확고하게 하나님의 현존의식을 소유하고 그 분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기존의 신학이 물었던, 즉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라는 “존재론적인 물음”에서 이제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물음”으로 전환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향하여 “아담아‧‧‧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고 계시지 아니한가?(창3:9).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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