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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레인 페이절스 -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책 요약]

오늘행복스마일 2018. 12. 25. 21:57

일레인 페이절스의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영지주의 연구가인 일레인 페이절스가 지은 책 ‘영지주의 - 숨겨진 복음서-’는 기독교의 기원에 있어서 정치와 종교간 관계를 탐구한 책입니다. 아래에서는 위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영지주의를 설명하고, 위 책에서 다룬 몇 가지 주제를 통하여 영지주의와 정통파의 차이를 알아봅니다. 영지주의는 특히 원시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1. 영지주의 연구 경과

18세기부터 영지주의적 복음서가 발견되기 시작하였으나 양이 적어서 영지주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1769년 남부 이집트에서 발견된 예수와 제자(여성 포함)의 대화 필사본은 1892년에야 출간되었고, 1773년 런던 서점에서 예수와 제자들이 ‘비밀’에 관해 나눈 대화 기록도 발견되었으며, 1896년 카이로에서 필사본 3권(막달라마리아복음, 요한외경 등)이 발견되면서 조금씩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영지주의에 관하여 하르나크(1894년)는 그리스철학의 관점에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한 최초의 신학자들이지만 그리스도의 기르침을 왜곡하고 거짓을 뒤섞어 전파하였다고 말하고, 빌헬름 부제트(20세기초)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기독교 이전부터의 독자적인 운동이라고 하였으며, 한스 요나스(1934년)는 동로마제국에 동양 종교가 유입되어 염세적 세계관과 자아 초월 시도가 결합된 철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월터 바우어(1934년)는 영지주의는 이단이 아니며 기독교의 새로운 흐름이었다가 나중에 이단으로 규정되었다고 주장하였다.

1945년 이집트 남부 자발산 토기단지에서 양피지 책자 13권(나그함마디 문서)이 발견되면서 영지주의의 실체가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1970년대에 완간되어 도마, 빌립, 진리, 이집트 복음서 이외에 야고보외경, 바울묵시록, 베드로묵시록, 빌립에게 보내는 베드로의 서한 등 52개의 문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문서는 350-400년경 제작된 그리스어 원본(100-140년경)의 이집트 콥트어 번역본으로서, 자발산 인근 성 파코미우스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가 아타나시우스가 367년에 이단적 외경을 없애라고 명령하면서 땅속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2.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가. 나그함마디 문서 연구를 통하여 영지주의는 다양한 전통에 뿌리를 둔 광범위한 종교운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 이외에 신 같은 것을 알 수 없다는 철학자들을 불가지론자(agnostic)라고 하고, 그 반대의 입장을 영지주의(gnosis, ‘앎’)라고 한다. 그러나 그노시스는 단순한 지식(학문적, 반사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관찰이나 경험을 통하여 터득한 지식, 즉 ‘통찰력’을 뜻한다.

나. 영지주의자들은 기원후 80년에서 200년 사이에 번성하다가 400년경에 사라졌다. 그들은 예수의 비밀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영지주의 교사는 영지(靈知)를 얻으려는 자가 자격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구두로 가르쳐 비밀을 보존하여 왔다. 요한복음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공관복음에도 영지주의를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마태 13: 11 - 13)

영지주의는 힌두교나 불교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정통파는 예수와 제자들의 대중적 가르침에 의존하지만 영지주의자들은 ‘이에 더하여’ 극소수 제자만이 아는 ‘비밀’까지 전수한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 교사 발렌티누스(140년경)는 바울의 제자 테우다스로부터 비밀 가르침을 배우고 영지(靈知)의 원천인 환상을 체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지를 전수받고 입문의식을 통하여 하느님의 직접 영감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들은 제비뽑기로 사제, 주교, 예언자 역할을 돌아가며 맡았다. 정통파의 교회가 150년에서 200년 사이에 모습을 갖추어 가면서 급진적 영지주의자는 제도화된 종교가 스스로의 발전에 방해된다며 참여하지 않지만, 발렌티누스파는 교회를 자아발견의 도구로 인식하고 교회 제도에 동참한다.

다. 영지주의의 가르침이 정통파와 다름은 나그함마디 문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르침(실바누스); 너는 빛을 손에 넣을 수 있는데 왜 어둠을 찾느냐.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열정을 욕망하는 법이다. 그는 삶의 욕망 속에 헤엄치다 침몰한다. 무엇보다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

진리복음; 지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몫을 받아 스스로에게 끌어 모은다. 이렇게 지식을 얻는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다.

도마복음; 하느님나라가 하늘에 있다면 새들이 먼저 다다를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그대들 안에 있고 또 그대들 밖에 있다. 그대들이 스스로를 알게 되면 살아계신 아버지의 아들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예수 가라사대) 하느님 나라는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아버지의 나라는 온 세상에 펼쳐져 있는데 사람들이 이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구세주와의 대화; (마태가 순수한 빛을 보여달라고 하자 예수는) ‘스스로를 알게 된 너희 각자는 이미 보았다’고 대답하고, (마태가 거듭 질문하자 예수는) ‘나도 답을 알지 못하며 오직 네 입에서만 그 답을 들은 바 있다’고 말한다.

진리의 증언; 각자 마음이 진리의 아버지이며, 침묵의 명상 속에서 혼자 힘으로 학습하라.

빌립복음; 진리는 반드시 상징으로 쌓여 있다. 진리는 세상에 각가지 종류의 형태를 띠고 온다. 신성한 실재를 인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있는 것으로 변한다.…… 네가 영을 보았으니 너는 영이 되었다. 네가 그리스도를 보았으니 너는 그리스도가 되었다. 네가 네 자신을 보면 너는 네가 본 것이 될 것이다.

경쟁자 도마복음; 자신을 몰랐던 사람은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이지만 자신을 안 사람은 동시에 삼라만상의 심원에 대한 지식을 이미 얻은 것이다.

도마복음; 네가 네 안에 있는 것을 낳으면 그것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네가 네 안에 있는 것을 낳지 못하면 그것이 너를 파멸시킬 것이다(자아 통찰의 강조)

나그함마디 문서에는 영지를 얻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글도 있다. ‘조스트리아노스’란 책에는 먼저 금욕생활로 육체적 욕망을 제거하고, 명상으로 마음의 혼돈을 제거하고 나니 환상(완벽한 아이 =신의 존재)을 볼 수 있었고, 계속 영혼의 안식처 탐구하다가 사막에 들어가 환상을 보아 완전히 영지를 얻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그 경험을 말하는 영지주의 스승의 체험이 묘사되어 있다.

영지주의 교사 모노이무스는 ‘신이나 창조에 대한 연구를 그만 두고 네 안에서 신을 찾으라’고 하고, 실바누스는 ‘친구를 많이 두되 상담자는 두지 말라. 친구에게 너 자신을 맡기지 마라. 너 자신을 오직 하느님께만 아버지인 듯, 친구인 듯 맡기라’라고 가르쳤다.

라. 영지주의와 정통(orthodox) 기독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① 정통파는 신과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하는 반면, 영지주의는 자아에 대한 지식이 곧 신에 대한 지식이라고 설명한다.

② 정통파는 예수 가르침의 핵심을 죄와 그 회개 및 구원으로 보는데, 영지주의는 예수는 영적 지식에의 접근을 도와주는 스승이며, 사람은 죄가 아니라 무지로 고통 받는다고 한다.

③ 정통파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영지주의자는 ‘나를 알아본 자는 나와 같은 근원에서 생겨났다’(도마복음)고 하여 영지를 얻은 자는 예수와 쌍둥이라고 주장한다.

2세기 중엽, 정통 기독교가 정립되기 시작하면서 영지주의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정통파는 인류가 하느님에게 닿기 위해 인간의 능력밖에 있는 방법(즉 신의 방법)이 필요한데, 교회가 그 방법을 알려준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반대되는 기독교도를 ‘영지주의자’라며 배척했다. 리용 주교 이레네우스는 이단반박론(180년)에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으며, 오직 한 가지 교회가 만인의 교회(catholic)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레네우스가 ‘영지주의자’라고 배척한 사람들은 특정 교리를 믿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이며 성직자의 권위, 신약 정전에 반대한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2세기 말 주교, 사제, 부제의 3계급 체제가 완성되고 기본 교리(① 신약성경 정전화 ② 사도신경 인정 ③ 특정 교회제도 지지)가 정립되었다. 정통파 일각에서는 영지주의적 문헌인 요한복음의 정전 채택에 반대하였지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구절 등에서 교회를 통해서만 예수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석하여 제도 교회를 강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채택되었다.

기독교 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기독교 공인(313년, 밀라노칙령), 니케아 종교회의(325)를 거쳐 400년까지 정치적 단일체로 성장하였다. 교회가 정치적으로 조직되면서 ‘영지주의’ 의심의 여지가 있는 수도원 등도 기본적 교회제도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영지주의는 교육과정이 어렵고 혹독하며 오랜 시일이 걸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주제(자신 안에 내재된 신성의 발견)를 다루었지만 대중 종교로 부적합하고 극소수에게만 전수가 가능한 한계가 있었다. 관념 없이 종교가 성립될 수 없으나 관념만으로 종교가 강력해질 수 없다. 역사는 교리, 의식, 조직을 갖춘 종교제도만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3. 부활 논쟁

가. 예수가 떠난 현재에 그리스도의 권위를 누가 행사할 것인가? 부활논쟁은 기독교 운동을 제도적 종교로 자리 잡게 만드는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누가복음에서 ‘만져 보아라.’고 하는 장면과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눈이 가려져서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는 장면, 요한복음에서 마리아가 처음에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다가 나중에 깨달았다는 장면 등을 통하여 4복음서는 육신의 부활(정통파)과 환상 체험(영지주의)의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나. 다양한 형태의 원시 기독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육체 부활론은 베드로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교회 위에 군림하는 주교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였다. 예수는 부활 후 주로 11사도와 함께 하였으며, 베드로가 ‘우리와 함께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사람’인 마티아를 12번째 사도로 세웠다. 정통파는 육체 부활을 목격한 12사도로부터 전승된 교회만이 권위가 있으며,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려면 특정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권위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르툴리아누스(190년경) : 그리스도처럼 신자들도 육체적 부활을 기대해야 한다.

다. 영지주의자들은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존재를 오늘날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를 상징한다고 하며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내적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환상(공상이나 환각이 아님)을 통하여 영적 직관을 얻고 이를 통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부활한 그리스도는 제자들 앞에 환상(빛 속에서 말하거나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어 나타남)으로 나타나 신의 신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부여했다고 한다. 12사도보다 환상을 본 바울, 막달라마리아, 야고보 등을 더 중요시하고, 영지를 부여받은 자는 교회의 가르침과 계급적 권위를 초월하므로 살아계신 신과 직접 접촉한 사람(개인적 경험이 진리의 판단 기준 제공)이면 누구나 권위가 있다고 한다. 귄위란 제도화될 수 없는 자연발생적이고 개방적인 것이라고 하여 기독교계의 계급체제를 반대한다.

마리아복음; 마리아가 환상 속에 주를 보고 물었다. “환상을 보는 자는 어떻게 환상을 보는지요? 영혼 아니면 정신을 통해서인가요?” 예수는 환상을 보는 사람은 마음을 통해서 인지한다고 설명한다. 마리아는 애도하는 제자들에게 슬퍼 울거나 의심하지 말라며 “그의 은총이 온전히 그대들과 함께하고 지켜줄 것입니다”고 한다. 베드로가 환상 속에 주를 보았다는 마리아를 비웃자 마리아는 구세주를 두고 거짓말을 하겠냐고 힐난한다.

베드로묵시록; 무아경에 빠진 베드로의 앞에 그리스도가 나타나 “나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찬 지성적 영이다”라고 설명한다.

부활론(영지주의 교사의 편지); 부활은 환영이 아니라 실재이다. 오히려 이 세계가 환영이다. 평범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며, 부활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을 드러냄이요, 새로움으로의 이행이다. 이를 깨닫는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빌립복음; 죽고난 뒤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부활해야 한다.

 

4. 유일신

가. 원시 기독교에는 ‘하느님이 질병과 고통을 창조한 것이 아니며, 하느님은 둘이다’라고 주장하는 마르치온(140년경) 같은 이도 있었으나, 정통파는 유일신 주장을 통하여 교회 계급체제를 정비하였다.

클레멘트 주교(2세기초) : (고린도 교회의 일부 지도자 추방을 비판한 글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며, 주교, 사제, 부제에게 그 통치권한을 위임하였다.

이그나티우스 주교(3세기초) :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주교’, 주교, 사제, 부제의 3계급은 천상의 신성한 계급체제를 반영한다, 구원을 얻으려면 주교와 사제에게 자신을 맡겨라.

나. 영지주의자는 유일신을 인정하지만 더 근본에 속하는 ‘심원’을 말한다. 주교와 사제들의 공개적 가르침은 초보적 교리일 뿐이며, 높은 경지의 가르침은 영지주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영지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 주교가 조물주와 같이 합법적 권위를 행사하지만 영지(靈知)를 받은 사람에게 주교의 명령, 위협은 아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발렌티누스 : 하느님은 삼라만상의 근원이고 단일체로 계시며, 그 이전에는 아무도 없었다. 클레멘트의 하느님은 ‘조물주’로서 고귀한 존재의 도구에 불과하다. 모든 존재의 근원인 ‘심원’을 모르고 하느님의 형상을 실재로 착각하고 있다. 심원을 알아야 영지를 얻어 자기 자신을 알고, 영적 기원을 발견하게 된다. 영지를 얻으면 해방(구원)이라는 비밀성사를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나는 존재 이전부터 계시는 아버지로부터 왔고, 내가 나왔던 나만의 장소로 다시 돌아간다”

베드로묵시록; 마치 하느님의 권한을 부여 받기라도 했다는 듯 스스로를 주교, 부제라 부른다. 이러한 사람들은 물 없는 운하와 같다.

삼부소책자; 성부의 후예들은 평등하게 결합되어 서로 사랑하며 자발적으로 돕지만 조물주의 자손인 기독교인들은 야망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짓밟고 마음대로 휘두르고자 한다.

 

5.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

가. 예수는 여자들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집단으로 받아들여 유대교 관습을 버렸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성은 동등하다’고 말하면서도 남성적 신 개념에 기초하여 계급제도가 신으로부터 나왔으며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권위를 갖는다는 주장도 하였다. ‘남자는 하느님의 형상과 영광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다’

나. 영지주의는 예수의 비밀 가르침을 받은 막달라마리아, 도마, 마태 세 제자 중에서 마리아를 가장 뛰어난 ‘삼라만상을 아는 여자’로 칭송하고, 여인들도 공동체에서 예언자, 교사, 전도사, 치료사, 사제, 주교로 활동하였다. 그들은 조물주 스스로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어머니인 지혜가 그에게 에너지를 불어넣고 생각을 심어준 덕에 가능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발렌티누스는 ‘신을 양성(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심오한 이, 최초의 ‘아버지’와 은총, 침묵, 모태, 삼라만상의 ‘어머니’)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3부로 이루어진 최초의 사고; 나는 빛 속에 거하는 최초의 사고이다. 삼라만상 전에 존재하는 여성이다. …… 나는 남녀 양성이다. 나는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다.

요한외경;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 외에 다른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선언함으로써 천사들에게 다른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린 셈이었다. 다른 하느님이 없다면 누구를 질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머니는 곤혹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빌립복음; 그리스도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나머지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고 자주 입맞추곤 했다.

도마복음; 그대 남성들을 닮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되기 위해서는 마리아 역시 반드시 남성이 되어야만 한다. 자신을 남자로 만드는 여자는 누구나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다. 정통파는 2세기 중엽 남녀를 따로 앉히는 유대식 집회 관습을 채택하였다. 클레멘트 교부(180년)처럼 하느님을 양성으로 묘사하고, 남녀평등, 여성의 공동체 참여 주장하는 정통파도 있었지만 정통파는 2세기 말부터 여자가 지도자 역할을 하는 집단을 이단으로 낙인 찍었다. 정통파는 막달라 마리아를 내세워 여성의 교회활동을 허용하는 영지주의로 인하여 베드로의 후신인 자신들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200년경 정전 여과 작업이 완료되면서 바울을 사칭한 서신으로 의심되는 디모데서, 골로새서, 예베소서(모두 여성의 복종, 침묵을 강요하는 내용이 있음)를 바울 서신으로 인정하고, 하느님을 여성으로 묘사한 부분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레네우스(170년) : 여성들이 이단에 매료되어 있다. 마르쿠스에게 유혹 당한 희생자는 예언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사제로 참여하고 축복의 말을 낭송한다.

테르툴리아누스(3세기초) : 여자는 교회에서 입을 열수 없고, 가르치거나 세례를 주거나 성사를 하거나 (성직은 물론) 어떠한 남성의 직분도 맡을 수 없다.

 

6. 그리스도의 수난 및 기독교도 박해

가. 로마 제국은 2세기에 대대적인 기독교도 탄압을 자행하였다. 정통파는 예수가 영적 존재임을 부인하고 인간으로서 십자가 고난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순교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이단을 증오하였다. 정통파는 순교의 고난을 기독교계에 널리 알려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관계를 공고히 하는 틀로 활용하였다. 경기장 살육은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교세의 확장을 가져왔을 뿐이다.

나. 영지주의자들은 대체로 순교를 열망하지 않고, 내면의 신성한 영이 고통과 죽음을 초월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육체적 경험은 영적 실재에서 일탈한 허상일 뿐이라고 한다. 헤라클레온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려고 관리 앞에서 기독교인임을 시인하는 방법도 있지만 마태, 빌립, 도마처럼 전 생애에 걸쳐 신앙을 일상 생활에서 증거하는 것이 낫다. 죄인으로 몰려 재판관 앞에 설 경우에는 공개적인 말로 증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부활론; 예수가 인간이므로 고통받고 죽었다. 그러나 또한 하느님의 아들이므로 그 안에 존재하는 신성한 영혼이 결코 죽을 수 없었다. 그는 고난과 죽음을 초월했다.

야고보외경, 베드로묵시록 등 :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주장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기술

진리의 증언;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스스로를 무지와 죽음을 몰고가는 자들은 아무 힘도 없고 입으로만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면 살게된다고 믿는 오류에 빠져있다. 이런 착각에 빠진 사람은 껍데기뿐인 순교자다. 오직 자신들에 대해서만 증인이기 때문이다. ‘한시간에 달하는 고통으로 영생을 얻을까’ ‘하느님이 인간 제물을 요구할까’ ‘순교자는 스스로를 파괴할 뿐이며, 그리스도가 인간처럼 필멸의 본성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베드로묵시록; 고난을 통해 고통의 의미를 새로이 깨닫고 지혜가 완벽하게 거듭난다. 십자가에서 ‘육체적 요소’이자 ‘대체물’인 몸이 죽었을 뿐이며, 근본 요소인 지성적 영이 해방되어 ‘나의 성령과 함께 완전한 빛’에 결합한다.

진리복음; 나무에 못 박혀 그는 아버지의 영지의 열매가 되었다. 그러나 먹었다고 파괴되지 않으며 먹은 사람에게 발견의 기쁨을 느낄 이유를 제공해 주었다. 그에게는 영생이 있으나 자신을 죽음으로 끌어내린다. 필멸의 누더기를 벗어버리고 영원불멸을 몸에 걸쳤다.

유스티누스는 ‘호교론’에서 영지주의자들은 박해받고 처형된 순교자가 없다고 하고, 이레네우스는 순교를 회피하려는 영지주의자의 주장은 기독교 공동체의 결속을 해친다고 비판하고, 테르툴리아누스는 “영지주의자들이 순교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을 때외에는 지지받을 수 없다”고 하고 로마 검찰관에게 “우리를 베어 없앨수록 우리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뿐이다. 기독교인들의 피는 씨앗이다”라고 당당히 말하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온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영지주의자들은 껍데기 뿐인 순교를 비판한 것이지 순교 그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7. 진정한 교회

가. 영지주의자들은 세례가 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사도신경 고백이나 순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서 기독교인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오직 ‘소수만을’ 대표하며, 질적 판단 기준을 중요시하여 진정한 신자는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하고, 성직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교인들의 지식수준 및 서로 간에 형성된 관계의 질이 진정한 교회의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인간이 자신을 알고 진리위에 계신 하느님을 알 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베드로묵시록; 영지를 받도록 허락된 소수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들지 않고 주교나 부제에게 복종하지 않으며, 대신 교인들과 영적 우애를 나눈다.

위대한 세트의 대속론 2서; 이교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있다는 자들도 우리를 증오하고 박해했다. 그들은 금수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속이 텅 빈 자들로서 거짓을 찬양하는 허위의 교회, 모방된 교회다. 그들은 오만에 눈이 멀어 자신들만 정통성이 있다면서 신자들을 두려움과 노예근성에 젖어들게 하고, ‘텅 빈 영광’ 속에 조물주에 대한 복종만 강요한다. 그들은 ‘영지’를 통해 해방을 얻은 사람들을 ‘자유의 진리’에서 벗어나도록 박해를 가한다.

진리의 증언; 주교 제도를 따르는 기독교인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고, 발렌티누스의 추종자들도 아직 성숙하지 못한 형제들이다.

권위 있는 가르침; 정통파는 이교도보다 질나쁘고 무지한 ‘육신을 매매하는 장사꾼’

나. 정통파는 2세기말 신경 고백, 세례, 예배참여, 성직자에의 복종 등 교회 구성원의 객관적 기준을 세우고 교회 통일을 위하여 관리가 어려운 영적 성숙, 통찰력, 개인의 신성 등 질적 기준을 없애버렸다. 가톨릭은 교리, 의식, 교계제도 중 하나라도 의심하면 받아들이지 않았고, 세 가지 모두에 문제를 제기하는 영지주의자들을 엄중히 처단하였다.

이그나티우스 주교 : 주교 없이 교회와 관련된 어떤 일도 행해서는 안된다. 주교로부터 분리되면 교회뿐이 아니라 하느님 자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이레네우스 주교 : 진정한 영지는 사도들의 교리 및 세계 교회의 체계, 그리고 주교들에 의하여 전승되는 그리스도의 특징 등을 가리킨다.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 이러한 해석을 거부하는 자는 이교도보다 질이 나쁜 배교자이다.

출처 : 프라우스 연구소
글쓴이 : 하얀먼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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