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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 궁중비사] 1. 暴君 弓裔

오늘행복스마일 2018. 12. 27. 15:00

고려청자 일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고려(高麗) 오백년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표면에서 호령하던 군주나 권신들보다도 그 이면(裏面)에서 오히려 놀랄 만한 힘을 발휘하고, 군주나 권신들을 허수아비처럼 조종한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고 새나라 고려를 창건하기에 이르는 동안에도 그를 싸고도는 숱한 여성들이 때로는 찬란한 빛을 비치기도 하고 때로는 심한 그늘을 드리우기도 했던 것이다.
 
왕건은 원래 송악군(松嶽郡=지금의 開城) 사람인 왕융(王隆)의 맏아들로서 모친은 한씨(韓氏), 신라 헌강왕(憲康王) 삼년(AD:877) 정월에 남제(南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용모가 준수하고, 힘이 강하고, 도량이 넓고, 사려가 심원했다고 하니, 여사(麗史)에서 찬양하듯이 가히 <세상을 제도(濟度)할 자질>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왕건의 나이 스무살 되던 해인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십년(AD: 896) 그는 부친 왕융과 함께 궁예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 당시, 신라의 국운이 날로 기울어 가자 전국 각지에 군웅(群雄)이 할거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자는, 남주(南州=지금의 全州)에 웅거했던 견훤(甄萱)과 강원도 철원(鐵圓=鐵原) 일대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궁예(弓裔)였다.
 
왕건 부자가 궁예를 따르자 궁예는 대단히 반기고 후대하였다. 특히 왕융이 곧 세상을 떠나자(AD:897) 궁예의 신임은 젊은 왕건에게로 쏠리었다. 왕건이 군공을 세울 적마다 거침없이 벼슬을 높여 주었다. 정기 병감(精騎兵監), 아찬(阿粲), 알찬(閼粲), 한찬해군대장군(韓粲海軍大將軍), 파진찬겸시중(波珍粲兼侍中) 등 내외의 중요한 관직은 모두 역임하게 되었다. 왕건 등 고굉지신(股肱之臣)의 충성과 절호의 시운을 탄 궁예의 세력은 요원의 불길처럼 강성해 갔다.
 
이렇게 되니, 원래 인간적 바탕이 천박한 궁예는 차츰 교만하고 방자해 갔다. 차츰 궁예는 함부로 신하들과 백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추호라도 자기 뜻을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그 죄상 몇 배 이상으로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그 당시 궁예는 하찮은 죄를 트집 잡아 날마다 백여 명을 죽였고, 비록 장상(將相)이라 할지라도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참살했다>고 전한다.
 
궁예의 허세와 탄압은 그의 위세를 높이기는 고사하고 인심의 이탈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의 수하 장졸들과 치하(治下) 백성들간에는 원성이 날로 높아갔다.
 
"무슨 죄로 우리는 저렇듯 포악한 자를 임금으로 섬겨야 하느냐?"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빛이 비치겠느냐?"
 
제일인자가 인망을 잃었을 때 그 인망은 바로 제이인자에게로 쏠리기 마련이다. 왕건은 원래가 너그럽고, 부드러우면서도 의젓한 통솔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므로 은연중에 민심이 왕건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차라리 바꿔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왕시중 같은 분이 그 자리에 대신 앉는다면 모든 장졸은 지극한 충성을 바칠 게고, 백성들은 그야말로 격양가를 부르게 될 것이 아닌가."
 
몇몇 사람이 모이면 곧잘 이런 말이 오고 갔다. 이렇게 되니 간사한 무리들은 덮어놓고 폭군에게 아첨을 하게 되었고 뜻있는 사람은 보신을 위하여 입을 다물고 몸만 사리었다.
 
왕건 역시 되도록 조심하였다. 이미 관직이 백관의 으뜸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중망(衆望)이 한몸에 집중된 처지이므로 언제 간신의 혀 끝에 올라 참소를 당할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마침내 변경의 방어를 빙자하여, 자청해서 멀리 몸을 피하였다.
 
말하자면, 궁예의 신변에는 간사한 무리의 아첨이 있을 뿐, 진심으로 그를 아끼고,  그에게 바른 말을 하려는 충신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만셈이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어디까지나 궁예를 아끼고 그의 앞날을 염려하여 애를 태운 이는 왕비 강씨(康氏) 뿐이었다.
 
"대왕께 여쭐 말씀이 있사와요."
 
하루는 조용한 틈을 타서 강씨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요?  어서 말해 보오."
 
때마침 왕건으로부터 금성(錦城=羅州)도 정벌하였다는 첩보를 접한 터이므로 궁예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아녀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거침없이 말씀 드리겠사와요."
 
강씨의 얼굴에는 강한 결의가 나타나 있었다.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신하들이나 백성들을 그렇듯 가혹하게 다스리옵니까?"
 
"흥, 난 또 무슨 소리라구!"
 
궁예는 콧방귀를 뀌며 웃었다.
 
"아니, 국모의 몸으로 그런 것 하나 모른단 말이요?"
 
"모르겠사옵니다.  가르쳐 주시어요."
 
그러자 궁예는 자못 위세를 보이려는 듯 자리를 고쳐앉고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부인은 아녀자이므로 비근한 예를 들어 가르치겠소. 잘 들어보오. 비근한 예를 들자면 개를 길들일 때, 뭐니뭐니 해도 매가 제일이요. 호된 매를 들어야 꼬리를 말고 고분고분 복종한단 말이오."
 
"그래서요?"
 
강씨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었다.
 
"말하자면 임금에겐 백성들이란 개와 마찬가지로 호된 매를 들면 고분고분하지만 매를 잠간 늦추기만 하면 제 세상 만났다고 날뛴단 말이요.  그러니,  임금이 엄하고 무서울수록 백성들은 임금을 우러러 받드는 법이라오."
 
궁예의 말을 듣고 강씨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얼마 후, 다소곳이 얼굴을 들고 말했다.
 
"대왕,  백성들은 개가 아니옵니다.  사람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궁예는 그만 실소(失笑)를 터뜨렸다.
 
"개가 아니라고 누가 그걸 모른다오?  다만 개처럼 비천하다는 뜻이지."
 
"그러나 백성들은 결코 개처럼 비천하지도 않사옵니다. 개는 그 주인이 죽이려고 하면 고분고분 죽어가오나,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주인의 발등을 물기도 하옵니다."
 
"그렇지만 매를 들지 않으면 더욱 얕보고 기어오를 게 아닌가?"
 
"가혹한 힘만이 백성을 다스리는 길이 아니옵니다. 저 미륵보살을 보시어요. 항상 인자한 미소만 띠우실 뿐이오나 만인이 우러러 받들지 않사옵니까?"
 
"미륵보살이라?"
 
궁예의 눈에는 야릇한 광채가 번득 했다.
 
"과연 그래. 미륵보살은 창검도 휘두르지 않고, 노하는 일조차 없지만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것만은 사실야."
 
궁예는 벌떡 일어섰다.
 
"오냐,  미륵보살이다.  나는 이제부터 미륵보살이 되는거다!"
 
그로부터 궁예는 스스로 부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금책(金?)을 쓰고, 몸에는 방포(方袍)를 입고밖에 나갈 때는 비단으로 머리와 꼬리를 장식한 백마를 타고, 동남동녀(童男童女)로 하여금 번개향화(幡蓋香花)를 받들어 앞을 인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비구승 이백여명이 염불을 외우며 따랐다.
 
부처가 된 것처럼 날뛰는 궁예는 자기 혼자만 부처행세를 하는 게 아니었다. 부처의 자식도 응당 부처 대접을 받아야 옳을 것이라 생각하고, 맏아들은 청광보살(靑光菩薩), 작은 아들은 신광보살(神光菩薩)이라 칭하게 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 부처가 된 이상 스스로 지어낸 경서가 없을 수 없다." 하고, 경서 이십여권을 스스로 지어냈다. 
 
그리고는 때로는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정좌(正坐)하여 설교까지 하는 것이었으나 그 내용은 황당무계(荒唐無稽)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이미 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고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기에 여러 신하들은 '주상(主上)께서 부처가 되신 게 아니라 실성하신 게 아닐까?'하고 뒷공론을 하였지만, 감히 맞대놓고 간하는 자는 없었으나 오직 중 석총(釋聰)만은 정색을 하고 그 부당함을 간했다.
 
"대왕께 아뢰오."
 
"무슨 일인고?"
 
"대왕께서 지으셨다는 경서에 대해서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그 말에 궁예는 입이 딱 벌어진다.
 
"내가 지은 경서에 대해서라? 어떤가, 고금에 보기 드문 훌륭한 경서지?"
 
지극히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석총은 똑바로 궁예를 쏘아보더니 거침없이 내뱉었다.
 
"고금에 다시없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고금에 다시없는 고약한 것으로 아뢰오."
 
"뭣이라?"
 
궁예는 벌떡 일어섰다. 병적(病的)으로 혼탁한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그러나 석총은 이미 진정한 불도(佛道)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터였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내 소신을 밝혔다.
 
"대왕께서 경서라고 내세우시는 말들은 억설과 괴담일 뿐, 부처의 가르침의 거룩하심을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가 발을 구르며 노발대발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맨발로 뛰어 내려가더니 손수 쇠망치를 집어가지고 석총의 머리를 때려 죽였다.
 
이러한 망발과 폭행이 거듭되자 강씨는 더욱 애를 태우게 되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큰 뜻인 부처님까지 욕되게 하니 날로 높아가는 원성은 마침내 어떤 화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보다도 궁예를 아끼는 강씨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사태가 최악의 경우에 이르기 전에 수습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믿을 만한 신하들은 모두 몸을 사리어 발길을 멀리 하고 있으며, 가까이 도는 자라고는 아첨만 일삼는 간신배들뿐이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나설 사람은 자기 혼자뿐이라고 강씨는 생각했다. 
 
물론, 거의 실성하다시피 한 궁예에게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예로 보아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강씨는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날 강씨는 특히 몸을 단장하고 궁예의 거실을 찾아 들어갔다. 궁예에게는 여러 후궁들도 없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왕비 강씨를 사랑했다. 사랑했다기보다도 강씨에겐 모정(母情)에 가까운 다정다감함을 느꼈다고 보는 것이 옳을는지 모른다.
 
궁예는 어려서부터 한쪽 눈을 못 보는 애꾸눈이었다. 그가 애꾸가 된 연휴는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부친은 신라 제四十七대 헌안왕(憲安王)이라고 한다. 궁예는 바로 오월 오일날, 외가에서 출생했는데, 그때 지붕 위에는 서기가 무지개처럼 뻗치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자 일관(一官)은 왕에게 고하기를 "이 아기는 중오일(重午日)에 탄생하셨을 뿐아니라, 나면서부터 이가 돋아 있으며, 또한 이상한 빛이 나타났으니 장차 나라에 해롭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왕은 사람을 외가로 보내어 아기를 죽이도록 하였다.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은 아기를 유모의 품에서 빼앗아 높은 다락에 올라가 내려던졌다.  그러나 유모는 어디까지나 아기의 목숨을 구하고자 다락 밑에 숨어 있다가 떨어지는 아기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 순간 손가락이 아기의 한쪽 눈에 들어가서 애꾸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어려서부터 애꾸가 된 궁예는 그 애꾸라는 사실에 늘 비굴함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성을 대할 때면 한층 더 심했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른 후궁들을 대할 때, 궁예는 그 비굴감의 반동으로 강압적이거나 위악적(僞惡的)인 태도를 취했다 한다. 그러나 강씨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이성이라기보다도 모성을 대하듯 비교적 온건하고 인자하게 하였다. 그러기에 강씨의 충고에만은 가끔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마침 적적하던 참인데 부인, 잘 들어왔소."
 
궁예는 강씨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려 했다.
 
그러자 강씨는 그 손을 가볍게 물리치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대왕께 또 귀에 거슬리는 말씀을 드리러 왔사와요."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 부인의 말은 간혹 도움이 되는 수가 있으니 어서 말해 보오."
 
그때까지만 해도 궁예의 태도는 자못 부드러웠다.
 
"지난번에는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지 마십사고 사뢰었는데 그 말은 들은 척도 아니하시고 이제는 부처의 흉내까지 내시어 불도를 욕되게 하시니 이러다가는 백성의 원한과 멸시를 사서 장차 어떠한 화를 입을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사옵니다."

"백성들의 멸시를 산다?"
 
궁예의 눈꼬리는 이내 샐룩해졌다.
 
"오직 백성들의 멸시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처와 같이 높이 굴어야 하지 않겠소?"
"그것이 대왕께서 그릇 생각하시는 점이옵니다. 누누이 말씀드렸사오나 힘이나 허세만으로는 백성들은 심복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심복한다는 거요?"
 
"무엇보다도 덕으로 다스리시어야 하옵니다."
 
그 말을 듣자 궁예는 허리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덕이라고? 도대체 덕이라는 게 뭐요… 어떠한 자가 덕이 있는 자란 말이요?  예로부터 천하를 손아귀에 넣은 자들은 만백성을 꼼짝 못하게 하는 강한 자들이었소. 그리고 그런 강한 자의 발 밑에 짓밟히는 걸 백성들은 은근히 바랐고 그것이 바로 심복이라 여기었는데. "
 
"아니옵니다."
 
강씨는 야무지게 말을 막았다.
 
"먼 예를 들 것도 없이 가까운 곳에 있는 왕시중을 보시어요. 비록 대왕의 신하이오나 힘을 과시하는 일도 없고, 누구에게나 너그럽게 대하니 많은 사람들의 인망을 사고 있지 않사옵니까?"
 
"닥쳐라!"
 
왕건의 말이 나오자 궁예는 미친 사람처럼 악을 썼다.
 
"그놈이 누구라고 감히 나와 비기어 추켜세우다니…"
 
궁예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기에게서 이탈해 가는 민심이 날로 왕건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궁예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남달리 사납고 편협한 그는, 왕건을 시기하는 마음 치열하기도 했다. 트집만 잡으면 속시원히 처단할 생각까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중하게 몸을 사리는 왕건이 좀처럼 트집을 잡히지 않아 왔기에 오늘날까지 그에 대한 시기와 증오를 나타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던 터에 그를 찬양하는 강씨의 말을 듣자 눌러 오던 감정은 폭발되고 말았다.
 
"이년! 네 무슨 까닭에 왕건이 놈을 그렇듯 두둔하지?"
 
왕건에 대한 분노는 폭발의 계기를 만든 강씨에게로 쏠렸다.
 
"계집이 제 남편을 내려깎고 남의 남자를 추켜세우는 것은 어떠한 경우이지?"
 
궁예의 감정은 야릇한 방향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강씨는 당황했다. 어떻게 변명을 해야 좋을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이제 알았다. 네가 왕건과 밀통을 하였구나."
그러더니 궁예의 음성은 갑자기 낮아지고, 유들유들해졌다. 그가 가장 잔인한 행동을 취하려고 할 때는 이렇게 변하는 것이다.
 
"너 그놈하고 언제 밀통했지?"
 
강씨는 기가 막혔다. 뿐만 아니라 분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런 말씀을…?"
"왜 내 말이 틀렸는가?"
 
궁예는 히죽히죽 웃더니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부처처럼 결가부좌(結跏趺坐)한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지어내며 말한다.
 
"나는 곧 미륵보살이라. 내 이미 관심법(觀心法)을 터득하였은즉 나를 속이지는 못하리라.  네 마음을 들여다보니 다른 남자와 밀통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고 있단 말이야."

강씨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말을 한들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 그러니 바른대로 대면 용서하겠거니와 끝내 나를 속이려 한다면 혹독한 벌을 받을 줄 알라."
 
궁예의 성격으로 보아 그의 비위를 맞추자면 없는 죄도 있다고 맞장구를 치는 편이 오히려 살아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결백한 강씨로는 죽으면 죽었지 남의 남자와 밀통했다는 말까지 지어서 할 수는 없었다.
 
"네가 끝내 나를 속이려 드는구나. 오냐!  미륵보살이 얼마나 영험하신가를 보여 주리라."
 
궁예는 곧 사람을 불렀다.
 
"당장에 쇠방망이를 시뻘겋게 달궈 오너라."
 
시신(侍臣)은 까닭도 모르고 쇠방망이를 시뻘겋게 달구어 왔다. 궁예는 그것을 강씨의 코 끝에 갖다 대었다.
 
"자, 이래도 바른대로 대지 않겠느냐?"
 
강씨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있었다. 눈을 딱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걸로 지지겠단 말야! 그래도 똑바로 못 대겠느냐?"
역시 강씨의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궁예의 안색은 새빨갛게 상기하더니 나중에는 새파랗게 질렸다. 노기가 극도에 달한 증거였다.
 
"미륵보살같이 거룩한 남편을 배반하고 외간 남자와 밀통한 계집은 이렇게 형벌을 내리신다."
 
외치고는 석자나 되는 쇠방망이로 음부(陰部)를 찔러 강씨를 죽였다. 이것은 신라 신덕왕(神德王) 사년(AD 915)의 일이었다.
 
그러나 궁예가 강씨를 죽인 것은 강씨가 꼭 밀통했으리라고 믿은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은근히 질시하던 왕건을 추켜세우므로 병적인 노기가 극도에 달해서 그런 결과를 빚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시신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죄목으로 참살한 이상 그 명분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통한 계집의 자식은 누구의 씨냐?"
 
궁예는 좌우를 향해 물어보았다. 시신들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물을 것도 없이 간부의 씨에 틀림없으렷다. 그렇다면 간부의 씨를 애지중지 키우고 나중에 왕위까지 물려준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느냐?"
궁예는 허공을 향해 소리 없이 웃었다.
 
"청광보살과 신광보살을 당장에 모셔 오너라."
강씨의 몸에서 난 두 아들을 불러오게 했다.
 
"보살님네들, 극락세계로 모시겠사옵니다."
 
궁예는 두 아들 앞에서 합장예배하는 듯 허리를 굽히더니 아직도 발 아래 굴러 있던 쇠방망이를  집어 번개처럼 휘둘렀다. 
 
어린 두 아들은 머리가 쪼개지며 먼저 간 모친 강씨 곁에 숨져 쓰러졌다. 강씨와 두 아들의 참살은 궁예의 정신에 결정적인 광증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 광증은 궁예의 몰락을 급속히 초래하는 한편 왕건의 혁명을 크게 뒷받침하는 고비가 되었다.
 
궁예가 강씨를 죽인 것은 강씨가 미운 때문이 아니라, 왕건에 대한 질시가 변형되어 폭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제정신이 들자 궁예는 아내의 살해를 뼈져리게 뉘우쳤다. 깊은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래오래 호곡(號哭)하기도 했다. 아내의 죽음을 뉘우치고 괴로워지자 이미 제정신이 아닌 그의 눈에는 다른 여자들이 무사히 살아 있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후궁이건 궁녀이건 그밖의 어떤 여자이건 만나기만 하면 결가부좌하고 앞에 꿇어앉히고 말했다.
 
"내 관심법으로 그대의 마음 속을 샅샅이 살펴보리라."
 
그리고는 웅얼웅얼 염불을 외우다가 "이년! 너 외간 남자와 간통을 했겠다?"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때, 영리한 여자는 그 자리에 엎드려 벌벌 떠는 체하며 "대왕께서는 과연 미륵보살과 같으신 분입니다. 죽을 죄를 졌사오니 너그러운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렇게 빌면 간혹 목숨을 건지는 것이지만 끝까지 자기 결백을 주장할 것 같으면, "에이,  발칙한 계집!  내가 누구라고 감히 속이러 드느냐?" 호통을 치고는 석자나 되는 쇠방망이를 뻘겋게 달구어 그 여자의 음부를 찌른다. 불에 달군 쇠방망이에 내장은 지글지글 타고, 그로 말미암아 그 여자의 입과 코에서는 연기가 나오는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궁예는 미친 듯이 손뼉을 치며 "저걸 봐라! 저 연기야말로 내 관심법이 바로 맞았다는 걸 하늘이 밝혀 주는 것이로다." 하고 좋아했다고도 한다.
 
궁예의 소위 관심법은 병적인 점이 다분히 있기는 하지만, 궁예로서는 전혀 계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첫째로는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이다.
 
"나는 네 속을 다 들여다본다."
 
이렇게 내세우고 꼬치꼬치 캐물으면 마음속 깊이 숨겨 두었던 반감을 자기도 모르게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뚜렷한 죄상(罪狀)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버리고 싶은 자가 있을 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만든다는 점이다.
 
기를 젖혀놓고 날로 인망이 높아가는 그 무렵의 왕건은, 궁예로선 충성심을 시험해보고 싶기도 하고, 핑계만 있다면 아주 없애버리고 싶기도 한 존재였다. 그래서 궁예는 은근히 기회를 노리다가 하루는 왕건을 불러들였다.
 
왕건은 지난해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나주(羅州)에서 후백제군을 크게 격파한 일이 있으므로 수군의 유리함을 진언하려 상경해 있었던 참이었다. 그러므로 궁예의 부름을 받자, 수군에 관한 의논을 하려는 것으로만 알고 급히 입궐했다.
 
그러나 왕건이 들어가 꿇어앉으니 궁예는 결가부좌, 눈을 반쯤 내려 깔고 응시하다가, 벌떡 일어서며 다른 말 젖혀놓고 "경은 어제 저녁에 무슨 짓을 했지?" 하고 호통을 친다. 
 
왕건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벙벙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궁예는 다시 "경은 어젯밤에 무리들을 모아놓고 역적모의를 하지 않았는고?"한다.
 
왕건은 하도 어처구니없는 소리라 입가에 오히려 미소를 띠우면서 "어찌 그런한 일이 있었겠사옵니까?"한즉, 궁예는 오히려 노기가 등등해진다.
 
"경은 감히 나를 속이려 드는고?"
 
"어찌 대왕을 속이겠사옵니까? 신의 말은 진정이올시다."
 
"에이, 닥쳐라! 경이 끝내 나를 속이려 든다면 내 관심법으로 이를 밝히리라."
 
궁예는 곧 결가부좌하더니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입 속으로 무엇인지를 중얼거린다. 사태는 심히 위급하게 되었다. 이대로 버려둔다면 왕건은 임금을 속였다는 죄목으로 어떠한 화를 당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왕건을 아끼는 여러 신하들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때였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최응(崔凝)이란 젊은 신하가 일부러 손에 들었던 붓을 뜰 아래로 떨구더니 그것을 집으러 내려간다. 좌중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긴장된 공기에 싸여 있었던 만큼 여러 사람의 시선은 최응에게로 쏠리었다. 왕건도 심상치 않게 여기고 최응을 봐라보았다.  다만 눈을 감은 궁예만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입속으로 무엇인지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뜰 아래 내려가서 붓을 주운 최응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왕건의 곁으로 지날 때 재빠르게 속삭였다.
 
"덮어놓고 사과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헙합니다."
 
그 말을 듣자, 왕건은 많은 부녀자들이 결백함을 주장하다가 죽어간 일을 생각했다.
 
"대왕께 아뢰오!"
 
왕건은 소리쳤다. 궁예는 눈을 번쩍 떴다.
 
"이제 와서 또 무슨 변병을 하려는고?"
 
"변명이 아니오라, 사실을 아뢰오."
 
"사실을 고하겠다?"
 
"대왕께서 통찰하신바와 같이 신은 역모를 했사오니, 그 죄 죽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궁예는 이윽고 왕건을 내려다보았다. 왕건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양을 본 궁예는 갑자기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음하하하… 됐어! 됐어! 경은 과연 정직한 사람이로다. 한때 그릇 생각하고 역모를 했을지언정,  끝내 나를 속이지 않고 그렇듯 실토했으니 이번만은 특히 용서해 주리라."
이렇게 말하는 궁예의 얼굴에는 오히려 안도의 빛이 어리었다. 
 
애당초 궁예는 왕건이 복죄(服罪)하지 않으면 임금을 속이려 한다는 죄목을 씌워 처단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없는 죄를 고백하니 오히려 당황했다. 왕건의 말대로 역모했다는 죄를 추궁한다면 하는 수 없이 공모자를 자백시켜 처단해야 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어떤 불온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심중으로는 몹시 껄끄러웠으나 겉으로는 자못 너그러운 체 궁예는 왕건에게 금은으로 장식한 안장과 말을 내어주며 그가 진언한 대로 수군을 정비하여 후백제를 치도록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겨우 목숨을 건진 왕건은 기지(機智)로써 자기를 구해준 최응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다.
 
후에 왕건이 등극(登極)하자 그는 최응에게 광평랑중(廣評郞中)을 거쳐, 광평시랑(廣評侍郞)등 높은 벼슬을 주었으나, 그보다도 끝내 인간적인 대접을 극진히 하였다.

한 번은 최응이 병을 앓아눕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왕건은 즉시 동궁(東宮)으로 하여금 문병케 하였다. 그리고 최응의 병에는 무엇보다도 몸을 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름진 고기를 보내어 먹도록 권했다.
 
"저는 원해 살생을 않기로 맹세한 몸이므로 고기는 입에 댈 수가 없소이다."
 
그러나 동궁은 부왕의 분부도 있고 해서 "글쎄, 살생을 아니하겠다면 산 짐승을 죽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이미 남이 잡아 놓은 고기까지 먹지 않을 건 없지 않소?"하고 거듭 권했으나 끝내 사양하고 먹지를 않았다.
 
동궁이 돌아와서 전하는 말을 듣자 왕건은 이미 지존한 몸이면서도 몸소 최응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 야윈 손을 꼭 쥐어 주며 간곡히 권했다.
 
"경이 고기를 끝내 먹지 않는다면 두 가지 큰 죄를 저지르는 셈이요."
 
최응은 그 뜻을 얼핏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만일 몸을 보하지 않아서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그대의 모친을 끝내 봉양하지 못하는 것이니, 곧 불효가 되는 것이며, 짐에게는 좋은 보필지신을 잃게 하는 것이니 곧 불충이 되는 것이 아닌고?"
 
이 말에 최응은 크게 감격하여 곧 고기를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고 한다.


출처 : 느린나라
글쓴이 : 黑面書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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