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흐는다

[스크랩] ① 狂暴 彌勒 菩薩

오늘행복스마일 2018. 12. 27. 15:01


 狂暴 彌勒 菩薩 1 [광폭 애꾸 미륵 궁예]


고려(高麗) 오백년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표면에서 호령하던 군주나 권신들 보다도 그 이면에서 오히려 놀랄 만한 힘을 발휘하고, 군주나 권신들을 허수아비처럼 조종한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고 새나라 고려를 창건하기에 이르는 동안에도 그를 싸고 도는 숱한 여성들이 때로는 찬란한 빛을 비치기도 하고 때로는 심한 그늘을 드리우기도 했던 것이다.


왕건은 원래 송악군(松嶽郡=지금의 開城) 사람인 왕융(王隆)의 맏아들로서 모친은 한씨(韓氏), 신라 헌강왕(憲康王) 3년(AD 877) 정월에 남제(南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용모가 준수하고, 힘이 강하고, 도량이 넓고, 사려가 심원했다고 하니, 고려사(高麗史)에서 찬양하듯이 가히 '세상을 제도(濟度)할 자질'을 갖추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왕건의 나이 스무살 되던 해인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십년(AD 896) 그는 부친 왕융과 함께 궁예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 당시, 신라의 국운이 날로 기울어 가자 전국 각지에 군웅(群雄)이 할거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자는, 남주(南州=지금의 全州)에 웅거했던 견훤(甄萱)과 강원도 철원(鐵圓=鐵原) 일대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궁예였다.


왕건 부자가 궁예를 따르자 궁예는 대단히 반기고 후대하였다. 특히 왕융이 곧 세상을 떠나자(AD 897) 궁예의 신임은 젊은 왕건에게로 쏠리었다.


왕건이 공을 세울 적마다 거침없이 벼슬을 높여 주었다. 정기 병감(精騎兵監), 아찬(阿粲), 알찬(閼粲), 한찬해군대장군(韓粲海軍大將軍), 파진찬겸시중(波珍粲兼侍中) 등 내외의 중요한 관직은 모두 역임하게 되었다.


왕건 등 고굉지신(股肱之臣)의 충성과 절호의 시운을 탄 궁예의 세력은 요원의 불길처럼 강성해 갔다. 이렇게 되니, 원래 인간적 바탕이 천박한 궁예는 차츰 교만하고 방자해 갔다.


차츰 궁예는 함부로 신하들과 백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추호라도 자기 뜻을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그 죄상 몇 배 이상으로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그 당시 궁예는 하찮은 죄를 트집잡아 날마다 백여명을 죽였고, 비록 장상(將相)이라 할지라도 십중팔구는 참살했다> 고 전한다.


궁예의 허세와 탄압은 그의 위세를 높이기는 고사하고 인심의 이탈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의 수하 장졸들과 치하(治下) 백성들간에는 원성이 날로 높아갔다.


"무슨 죄로 우리는 저렇듯 포악한 자를 임금으로 섬겨야 하느냐?"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빛이 비치겠느냐?"


제1인자가 인망을 잃었을 때 그 인망은 바로 제2인자에게로 쏠리기 마련이다. 왕건은 원래가 너그럽고, 부드러우면서도 의젓한 통솔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므로 은연중에 민심이 왕건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차라리 바꿔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왕시중 같은 분이 그 자리에 대신 앉는다면 모든 장졸은 지극한 충성을 바칠 게고, 백성들은 그야말로 격양가를 부르게 될 것이 아닌가."


몇몇 사람이 모이면 곧잘 이런 말이 오고 갔다.


  이렇게 되니 간사한 무리들은 덮어놓고 폭군에게 아첨을 하게 되었고 뜻있는 사람은 보신을 위하여 입을 다물고 몸만 사리었다.


왕건 역시 되도록 조심하였다. 이미 관직이 백관의 으뜸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중망(衆望)이 한몸에 집중된 처지이므로 언제 간신의 혀 끝에 올라 참소를 당할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마침내 변경의 방어를 빙자하여, 자청해서 멀리 몸을 피하였다.


말하자면, 궁예의 신변에는 간사한 무리의 아첨이 있을 뿐, 진심으로 그를 아끼고, 그에게 바른 말을 하려는 충신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만 셈이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어디까지나 궁예를 아끼고 그의 앞날을 염려하여 애를 태운 이는 왕비 강씨(康氏) 뿐이었다.


"대왕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시요."


하루는 조용한 틈을 타서 강씨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오? 어서 말해 보시오."


때마침 왕건으로부터 금성(錦城=羅州)도 정벌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터에 몹시 기쁜 나머지 궁예는 아녀자의 의견도 받아줄 아량과 여유가 생겼던 것이었다.


"거침없이 말씀 드리겠시요."


강씨의 얼굴에는 강한 결의가 나타나 있었다.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신하들이나 백성들을 그렇듯 가혹하게 다스리는지요?"


"나참, 난 또 대단한 의견이라도 알았더니.."


궁예는 콧방귀를 뀌며 웃었다.


"아니, 국모의 몸으로 그런 것 하나 모른단 말이오?"


궁예는 자못 위세를 보이려는 듯 자리를 고쳐앉고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부인은 아녀자이므로 알아듣기 쉬운 예를 들어 가르치겠소. 개를 길들일 때, 뭐니뭐니 해도 매가 제일이요. 호된 매를 들어야 꼬리를 내리고 고분고분 복종한단 말이오. 알겠소?"


"그래서요?"

강씨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었다.


"말하자면 임금에겐 백성들이란 개와 마찬가지로 호된 매를 들면 고분고분하지만 매를 잠간 늦추기만 하면 제세상 만났다고 날뛴단 말이야. 그러니, 임금이 엄하고 무서울수록 백성들은 임금을 우러러 받드는 법이라오."


궁예의 말을 듣고 강씨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얼마 후, 다소곳이 얼굴을 들고


"대왕, 백성들은 개가 아니옵니다. 사람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궁예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실소(失笑)를 터뜨렸다.


"푸히히.. 개가 아니라고 누가 그걸 모르는가? 다만 개처럼 비천하고 무식하다는 뜻이지."


"백성들은 결코 개처럼 비천하지도 않습니다. 개는 그 주인이 죽이려고 하면 고분고분 죽어가오나,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주인의 발등을 물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매를 들지 않으면 더욱 얕보고 기어오를 게 아닌가?"


"가혹한 힘만이 백성을 다스리는 길이 아니옵니다. 저 미륵보살을 보시어요. 항상 인자한 미소만 띠우실 뿐이나 만인이 우러러 받들지 않습니까?"


"미륵보살이라?"


  궁예의 눈에서 야릇한 광채가 번득 했다.


"그래, 맞아.. 미륵보살은 창검도 휘두르지 않고, 노하는 일조차 없지만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것만은 사실이야."


궁예는 벌떡 일어섰다.


"오냐, 미륵보살이다. 나는 이제부터 미륵보살이 되는거다!"


그로부터 궁예는 스스로 부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금책을 쓰고, 몸에는 방포(方袍)를 입고 밖에 나갈 때는 비단으로 머리와 꼬리를 장식한 백마를 타고, 동남동녀(童男童女)로 하여금 번개향화(幡蓋香花)를 받들어 앞을 인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비구승 2백여명이 염불을 외우며 따랐다.


부처가 된 것처럼 날뛰는 궁예는 자기 혼자만 부처행세를 하는 게 아니었다. 부처의 자식도 응당 부처 대접을 받아야 옳을 것이라 생각하고, 맏아들은 청광보살(靑光菩薩), 작은 아들은 신광보살(神光菩薩)이라 칭하게 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 부처가 된 이상 스스로 지어낸 경서가 없을 수 없다."

하고, 경서 20여권을 스스로 지어냈다.


그리고는 때로는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정좌(正坐)하여 설교까지 하는 것이었으나 그 내용은 황당무계(荒唐無稽)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이미 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고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기에 여러 신하들은
'주상(主上)께서 부처가 되신 게 아니라 실성하신 게 아닐까?'
하고 뒷공론을 하였지만, 감히 맞대놓고 간하는 자는 없었으나 오직 중 석총(釋聰)만은 정색을 하고 그 부당함을 간했다.


"대왕께 아뢰오."


  "무슨 일인고?"


  "대왕께서 지으셨다는 경서에 대해서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그 말에 궁예는 입이 딱 벌어졌다.


"내가 지은 경서에 대해서라? 어떤가, 고금에 보기 드문 훌륭한 경서지?"


지극히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석총은 똑바로 궁예를 쏘아보더니 거침없이 내뱉았다.


"고금에 다시없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고금에 다시 없는 고약한 것으로 아뢰오."


"뭣이라?"


  궁예는 벌떡 일어섰다.


병적(病的)으로 혼탁한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그러나 석총은 이미 진정한 불도(佛道)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터였기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내 소신을 밝혔다.


"대왕께서 경서라고 내세우시는 말들은 억설과 괴담일 뿐, 부처의 가르침의 거룩하심을 오히려 욕되게 하고 있나이다."


궁예가 발을 구르며 노발대발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맨발로 뛰어 내려가더니 손수 쇠망치를 집어 석총의 머리를 내리쳐 죽여버렸다.


이러한 망발과 폭행이 거듭되자 강씨는 더욱 애를 태우게 되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큰 뜻인 부처님까지 욕되게 하니 날로 높아가는 원성은 마침내 어떤 화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보다도 궁예를 아끼는 강씨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사태가 최악의 경우에 이르기 전에 수습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믿을 만한 신하들은 모두 몸을 사리어 발길을 멀리 하고 있으며, 가까이 도는 자라고는 아첨만 일삼는 간신배들 뿐이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나설 사람은 자기 혼자 뿐이라고 강씨는 생각했다. 물론, 거의 실성하다시피 한 궁예에게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예로 보아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강씨는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날 강씨는 특히 몸을 단장하고 궁예의 거실을 찾아 들어갔다.


궁예에게는 여러 후궁들도 없지 않았지만 누구부다도 왕비 강씨를 사랑했다. 사랑했다기보다도 강씨에겐 모정(母情)에 가까운 다정다감함을 느꼈다고 보는 것이 옳을는지 모른다.


궁예는 어려서부터 한쪽 눈을 못 보는 애꾸눈이었다.


그가 애꾸가 된 연휴는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그의 부친은 신라 제47代 헌안왕(憲安王)이라고 한다.


  궁예는 바로 5월 5일, 외가에서 출생했는데, 그때 지붕 위에는 서기가 무지개처럼 뻗치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자 일관(一官)은 왕에게 고하기를
"이 아기는 중오일(重午日)에 탄생하셨을 뿐아니라, 나면서부터 이가 돋아 있으며, 또한 이상한 빛이 나타났으니 장차 나라에 해롭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왕은 사람을 외가로 보내어 아기를 죽이도록 하였다.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은 아기를 유모의 품에서 빼앗아 높은 다락에 올라가 내려던졌다. 그러나 유모는 어디까지나 아기의 목숨을 구하고자 다락 밑에 숨어 있다가 떨어지는 아기를 두손으로 받았다. 그 순간 손가락이 아기의 한쪽 눈에 들어가서 애꾸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어려서부터 애꾸가 된 궁예는 그 애꾸라는 사실에 늘 비굴함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성을 대할 때면 한층 더 심했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른 후궁들을 대할 때, 궁예는 그 비굴감의 반동으로 강압적이거나 위악적(僞惡的)인 태도를 취했다 한다.


그러나 강씨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이성이라기보다도 모성을 대하듯 비교적 온건하고 인자하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강씨의 충고에만은 가끔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마침 적적하던 참인데 부인, 잘 들어왔소."


궁예는 강씨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려 했다.


그러자 강씨는 그 손을 가볍게 물리치고 근엄한 표정으로
"오늘은 대왕께 귀에 거슬리는 말씀을 드리러 왔시요."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 부인의 말은 간혹 도움이 되는 수가 있으니 어서 말해 보오."


  그때까지만 해도 궁예의 태도는 자못 부드러웠다.


"지난번에는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지 마시라 아뢰었는데 그 말은 들은 척도 아니하시고 이제는 부처의 흉내까지 내시어 불도를 욕되게 하시니 이러다가는 백성의 원한과 멸시를 사서 장차 어떠한 화를 입을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나이다."


"백성들의 멸시를 산다?"


궁예의 눈꼬리가 이내 샐죽해졌다.


"오직 백성들의 멸시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처와 같이 높이 굴어야 하지 않겠소?" "그것이 대왕께서 그릇 생각하시는 점입니다. 누누히 말씀 드렸으나 힘이나 허세는 오로지 굴복일뿐이지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지 않나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따른다는 거요?"


  "무엇보다도 덕으로 다스리시어야 하나이다."


그 말을 듣자 궁예는 허리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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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omix Art youya Pro.
글쓴이 : you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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