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흐는다

[스크랩] 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 망우리 공원묘지

오늘행복스마일 2018. 12. 29. 11:51

 

 

 

이중섭·한용운 묻힌 망우리공동묘지 시민유산 될 듯

 

 

 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

 

 

 

 

 

망우리 공원묘지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산69-1번지일대(구리시 일부 포함)

망우리공원은 1933년 일제 강점기 때 서울시립망우리공동묘지로 지정된 이후 노고산과 미아리, 이태원에 있던 묘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규모가 커졌고 지금은 산과 숲이 어우러진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름 없는 시민, 독립투사, 예술가, 정치인, 과학자, 의사, 가수 등 다양한 사람이 함께 안식하는 역사교육의 현장! 죽음의 공간에서 빛을 찾는 경건한 공부방이기도 하다.

 

시민공모 통해 보전대상지로

죽산 조봉암의 비석에는 비문이 없다. 195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형돼 정부가 비문을 새기지 못하게 했던 탓이다. 20111월 대법원에서 간첩죄 등에 대해 무죄 선고가 내려진 뒤 유족과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는 뒤늦게 비문을 새기는 방안과 함께 비석의 공백을 그대로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비문 없는 비석이 한국 근현대사의 상흔을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31일 죽산이 묻힌 서울 중랑구 망우리 공동묘지에 동행한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의 저자 김영식(50)씨는 이곳을 격동의 근현대사를 만날 수 있는 역사적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1933년 개장 이후 분묘가 가득 찬 1973년까지 사망한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묻혀 있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보전 대상지 시민 공모전 이곳만은 꼭 지키자’ 10회에 강화도 남단 갯벌,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 등 6곳과 함께 선정돼 오는 26일 시상을 앞두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란 시민들의 자발적 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해 관리하는 시민운동이다.

 

망우리 공동묘지에는 화가 이중섭과 독립운동가 한용운,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아동문학가 방정환, ‘백치 아다다를 쓴 소설가 계용묵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1938년 묻힌 뒤 1973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으로 이장된 안창호와 순조의 딸 명온공주 등도 여기에 묻혔다.

 

그러나 망우리 공동묘지 내 묘지 관리는 사실상 방치 상태에 있다. 중랑구가 연보비를 세우고 산책로를 정비하는 등 관리에 힘을 쏟고 있지만 국립묘역이 아닌 까닭에 개별 묘지는 유족이 관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3년 국립묘지로 이장된 독립운동가 박찬익의 비석이 두 동강 난 채 쓰러져 있는 것이나 한국에 유족이 없는 소설가 최학송의 묘가 수풀로 덮여 있는 것 등이 단적인 예다. 김씨는 프랑스의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처럼 역사공원이나 문화재로 지정해 국가가 관리하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페르 라셰즈는 작곡가 프레데릭 쇼팽과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 등이 묻힌 파리의 관광 명소다.

 

채동선, 차중락, 박승빈, 아사카와 다쿠미...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있는 망우산은 해발 281.7m이며 망우산 일대에는 서울시립장묘사업소 망우묘지가 있다. 이곳이 공동묘지로 지정된 것을 1933527일 경기도의 임야 일부를 경성부에서 양도받아 공동묘지로 사용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현재 서울시 안에 있는 유일한 공동묘지로 총면적 490,884평에 약 28,500기의 분묘가 있으며 1973325일 봉분이 가득차 더 이상 묘지 쓰는 것이 금지된 이후 현재는 이장과 납골을 장려하면서 20059월말 현재 17,041 기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어들 전망이다.

 

망우리공원에서는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효시인 방정환,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인 오세창, 한용운, 천연두 보급의 건구자로 의학자이며 국어학자인 지석영, 임시정부 내무부서기를 역임한 문명원, 동아일보 주필과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했던 장덕수, 제헌국회의원이며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 등의 묘소가 있으며, 이들 일곱분의 유명인사 연보비가 공원내 산책로 조성과 함께 지난 972월에 설치되었으며 이어서 982월에 시인 박인환, 문일평, 서병호, 서옹일, 오재영, 서광조, 유상규, 교육가 오긍선 등 여덟 분의 변보비가 추가로 설치되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독립운동가 김정규, 화가 이중섭, 소설가 계용묵, 김말봉, 김이석, 최학송, 작곡가 채동선, 언론인 설의식, 정치인 이병홍, 가수 차중락, 친한 일본인 아사가와 다쿠미, 조선시대 순조의 첫째 딸인 명온공주 등이 안장되어 있음이 최근에 밝혀졌다.

 

또한 망우동 산 57-1번지 일대 망우리공원 내의 순환도로 5.2km를 아스콘포장하여 산책로를 만들었으며 산책로의 이름을 공모하여 985사색의 길로 정하고, 도시환경과 자연관찰로, 종합안내판, 나무정자, 약수터 등이 새로이 설치되어 구민의 휴식 및 자연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시인 박인환,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화가 이인성과 이중섭, 문인 최학송과 김말봉, 김상용, 김이석, 계용묵,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과 박희도, 의학자 지석영과 오긍선, 서화가 오세창, 독립운동가 안창호와 조봉암 등 40여 명

  

풍수를 중요시했던 태조는 무학대사, 하륜 등으로 하여금 자신의 음택(陰宅)을 물색하게까지 했다. 양주 땅 검암산 밑에 좋은 음택 자리가 있다는 전갈을 받은 태조는 그곳으로 왕림한다. 청룡, 백호 두 산줄기가 너른 벌판을 감싸안은 아늑한 명당은 돌도 별로 없는 옥토였다. 결국 태조는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의 뜻대로 이 명당에 묻혀 건원릉(健元陵)이 마련되고 그 후에도 능이 여럿 들어서 '서울 동쪽의 9'이라 해서 동구릉(東九陵)이 되었다.

 

 

 

 

연극 '동승'을 쓴 함세덕과 작곡가 채동선, 27세 새파란 나이에 낙엽이 되어 떨어진 가수 차중락,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맞춤법에 맞섰던 변호사 박승빈, 해방 정국 좌우익 갈등으로 희생된 삼학병(三學兵), 한국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한반도에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처음 심은 사이토 오토사쿠

 

 

 

좋은 신후지지를 정한 태조는 만족했다.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망우리고개에 올라서서 자신의 음택이 될 자리를 바라보고 혼자 말하듯이 한 마디 했다.

 

"이제야 근심을 잊겠노라."

 

근심()을 잊겠다()는 뜻의 이 한 마디 말은 결국 망우(忘憂)라는 지명을 낳았고, 이것이 고개이름과 동리 이름으로 붙여진 것이다.

 

 

망우리공원은 193322일자 동아일보 미아리 공동묘지가 조만간 가득 찰 것에 대비하여 경기도 망우리의 임야 70여 만 평을 경성부의 공동묘지로 결정하였다.” , 19351024일자 동아일보 이태원의 공동묘지를 택지화하기 위하여 37,000餘基 중 연고자가 있는 묘는 망우리로 이장하고 무연고 묘는 신사리(新寺里)에서 화장하기로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망우리 망우산을 1933년부터 서울시의 공동묘지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40년이 지난 1973325일에는 28,500여기의 분묘가 가득차 더 이상의 묘지 쓰는 것이 금지된 이후 현재는 이장과 납골을 장려하면서 20059월말 현재 17,041가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어들 전망이다. 이 시기에 도산 안창호, 고하 송진우, 명창 임방울, 애국지사 조종완, 박찬익, 백대진 등의 묘소도 이장하여 국립묘지와 사립공원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19922월에는 이곳에 안장되어 있는 방정환, 오세창, 한용운, 조봉암, 지석영, 문명훤, 장덕수 등 7명의 연보비를 중랑구에서 산책로를 중심으로 조성했으며, 19982월에는 추가로 박인환, 문일평, 서병호, 서동일, 오재영, 서광조, 유상규, 오긍선 등 8명에 대한 연보비가 추가로 5.2km의 산책로에 조성하였다.

 

그 동안 망우리 공원에는 3.1독립운동을 주도했던 萬海 한용운 등을 비롯한 17인의 유명인사가 안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각 언론사 인명록 및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중심으로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장묘문화센터의 고인 검색을 통해 묘역을 확인하고 현장 답사를 통해 소설가 계용묵을 비롯한 10인의 유명인사가 추가로 안장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 서울시 중랑구청 홈페이지에서 인용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얼룩진 역사를 살다간 사람들의 흘러간 삶

망우산 일대 832,800의 공간에 조성된 묘지공원이다. 1933527일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733월에 28,500여 기의 분묘가 가득 찼다. 이장과 납골을 장려한 결과 20059월 기준으로 17,041기의 묘가 남아 있다. 한용운, 오세창, 서동일 등 독립운동가들과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17인의 유명인사가 잠들어 있으며, 안창호 선생의 묘도 이장되기 전에는 이곳에 있었다. 산책과 조깅을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5.2km의 산책로 곳곳에 15인의 연보비가 놓여 있다.

 

망우추모공원은 망우산 일대 832,800평방미터의 공간에 조성된 묘지공원입니다. 1933527일 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733월에 28,500여 기의 분묘로 가득 찾다. 이후로는 더이상 묘를 쓸수가 없었고, 그동안 이장과 납골을 장려한 결과 20059월에는 17,041기가 남았으며 특히 중랑구에서 공원화사업의 일환으로 이장비(80만원)를 지원하면서 이장이 대폭 증가 하여 2012831일 기준으로 8,539기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금년부터 중랑구청에서는 예산부족으로 이장비를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랑구 "사색의 길"로 지정되어 산책과 조깅을 즐길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4.7km의 산책로 곳곳에 15인의 연보비가 놓여있어 역사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망우리고개 망우동 유래

망우동의 동명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시의 경계되는 망우고개가 있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망우고개라는 명칭은 조선초부터 불리워져 왔으며, 조선시대 이래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으로 있다가 일제 강점기 때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로 개칭되었으며, 196311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편입되었습니다. 편입된 후에도 동대문구 망우출장소에서 196811(조례 제491)까지 행정을 담당하였습니다. 망우동은 경기도, 강원도 방면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망우리고개와 공동묘지가 있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예부터 수도방어의 요충지였습니다. 공동묘지와 고개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도로확장 및 구획정리사업 후 교통이 편리해졌을 뿐만 아니라 신흥주택가와 교육지구로 변모하였습니다. 망우동의 동쪽으로는 망우산(281m)의 능선을 경계로 경기도 구리시와 인접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면목동에 맞닿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상봉동과 경계를 짓고 북서쪽으로는 신내동과 접해 있습니다.

- 서울시 중랑구청 동명유래에서 인용

 

 

 

 

 

 

1 김호직(金浩稙) 개인묘지 1905.4.16~1959.8.31, 영양학자,문교부차관

2 김말봉(金末峰) 100768 1901~1961, 여류소설가,작품 '찔레꽃'

3 박인환(朴寅煥) 102308 1926~1956, 시인

4 김석영(金夕影) 103459 평론가, 1929.1.15~1966.12.20

5 이중섭(李仲燮) 103535 1916~1956, 화가

6 오재영(吳哉泳) 103570 1897~1948,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7 서동일(徐東日) 107266 1893~1966,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삼형제바위

8 최학송(催鶴松) 205288 1901~1932, 소설가, 작품'탈출'27번 전주,

9 계용묵(桂鎔默) 105383 1904~1961, 소설가, 작품'백치아다다'

10 차중락(車重樂) 105689 1941~1968 대중가수,'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11 이병홍(李炳洪) 205129 1891~1955 정치가, 2,3대 민의원 역임, 반민특위 활동

12 최경국   1910.7.2~1953.10.1, 경기고,명치대학,서울여자학원 창립이사

13 서광조(徐光朝) 108919 1897~1972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14 이광래(李光來) 108899 19081968. 극작가?연출가?연극이론가

15 장덕수(張德秀) 109257 1895~1947 정치가 ,친일명단

16 임숙재(任淑宰) 109335 1891~1961.6.8 숙명여대 초대총장

17 노필 204942 영화감독

18 조봉암(曹奉岩) 204717 죽산(竹山) 1898~1959 독립운동가, 정치가,

19 함세덕 109511 극작가

20 한용운(韓龍雲) 204411 만해(萬海) 1879~1944 승려, 독립운동가

21 설의식(薛議植) 204325 1900~1954 언론인,동아일보 주필, 부사장 역임

22 박희도 109628 독립운동가,언론인

23 김이석(金利錫) 203693 1915~1964 소설가,작품'뻐꾸기'

24 문일평(文一平) 203742 호암(湖巖) 1888~1939 독립운동가, 민족사학자

25 오세창(吳世昌) 203733 위창(葦滄) 1864~1953 독립운동가, 서예가, 언론인

26 최영주(崔泳柱:최신복) 109956 아동문학가, 1906 ~ 1945. 1. 12

27 방정환(方定煥) 203703 소파(小波) 1899~1931 독립운동가, 아동문학가

28 명온공주 (明溫公主), 김현근 (金賢根)  203747 명온공주 (明溫公主) 1810~1832 왕족, 순조의 첫째 딸

김현근 (金賢根) 1810~1868, 명온공주의 남편, 영의정 역임

29 오긍선(吳兢善) 203636 해관(海觀) 1878~1963 의학자, 사회사업가 ,친일명단

30 이영준(李榮俊) 203620 오긍선의 제자

31 박승빈(朴勝彬) 203610 1880~1943 한말의 국어학자. 저서는 조선어학강의요지,조선어학

32 유상규(劉相奎) 203555 1897~1936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33 안창호(安昌浩)묘터   강남구로 이장함

34 이인성(李仁星) 203574 1912~1950,화가

35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203363 1891~1931 친한 일본인, 한국의 수목 연구, 민예 미술의 전도사 36 이경숙(李景淑) 203364 1924.3.9 ~ 1953.11.18, 사회운동가

37 지석영(池錫永) 202541 송촌(松村) 1855~1935 의학자, 국어학자

38 김상용(金尙鎔) 109956 19021951,시인, 남으로창을내겠소

39 삼학병 109954, 199955, 110000 김명근,박진동,김성익

40 권진규(權鎭圭) 201720 19221973, 조각가

41 최백근(崔百根) 111672 1914~1961, 민족통일운동가

 

 

 

 

 

 

 

○공원내 안장된 유명인사
 
  • 연번성명생존년도주요활동
    1서동일(徐東日)1893~1966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2오재영(吳哉泳)1897~1948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3김정규(金貞奎)1883~1960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4유상규(劉相奎)1897~1936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5문명훤(文明煊)지기(知期)1892~1958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6문일평(文一平)호암(湖巖)1888~1939독립운동가, 민족사학자
    7오세창(吳世昌)위창(葦滄)1864~1953독립운동가, 서예가, 언론인
    8한용운(韓龍雲)만해(萬海)1879~1944승려, 독립운동가
    9서병호(徐丙浩)송암1885~1972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국장
    10서광조(徐光朝)1897~1972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11박인환(朴寅煥)1926~1956시인
    12방정환(方定煥)소파(小波)1899~1931독립운동가, 아동문학가
    13이중섭(李仲燮)1916~1956화가
    14장덕수(張德秀)1895~1947정치가
    15조봉암(曹奉岩)죽산(竹山)1898~1959독립운동가, 정치가,
    16오긍선(吳兢善)해관(海觀)1878~1963의학자, 사회사업가
    17지석영(池錫永)송촌(松村)1855~1935의학자, 국어학자
  •  

    ○기타 유명인사

     

    연번성명생존년도주요활동
    18계용묵1904~1961소설가, 작품'백치아다다'등
    19김말봉(金末峰)1901~1961여류소설가,작품 '찔레꽃'등
    20김이석(金利錫)1915~1964소설가,작품'뻐꾸기'등
    21채동선(蔡東蘚)1901~1953작곡가, 작품'망향'등
    22차중락(車重樂)1941~1968대중가수,'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23최학송(催鶴松)1901~1932소설가, 작품'탈출'등
    24설의식(薛議植)1900~1954언론인,동아일보 주필, 부사장 역임
    25이병홍(李炳洪)1891~1955정치가,1,2대 민의원 역임, 반민특위 활동
    26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친한 일본인, 한국의 수목 연구, 민예 미술의 전도사
    27김현근 (金賢根)1810~1868왕족, 명온공주의 남편, 영의정 역임
    28명온공주 (明溫公主)1810~1832왕족,순조의 첫째 딸

     

     

    ○망우리 공원에서 이장된 유명인사

     

    연번성명생존년도주요활동
    1안창호(安昌浩)1878~1938독립운동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으로 이장
    2송진우(宋鎭禹)1889~1945독립운동가, 정치가
    1988.5.3. 서울국립묘지로 이장
    3조종완(趙鍾完)1891~1947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1995.5.10. 대전국립묘지로 이장
    4백대진(白大鎭)1892~1967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1988.10.21. 대전국립묘지로 이장
    5박찬익(朴贊翊)1884~1949독립운동가, 건국훈장 독립장
    1993.11.19 서울국립묘지로 이장
    6임방울(林芳蔚)1904~1961명창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남한강공원묘지로 이장

     

     

    관리부서 : 공원녹지과 ☏ 02-2094-2344

     

     

     


    그와 나 사이를 걷다

    저자
    김영식 지음
    출판사
    골든에이지(Golden Age) | 2009-04-0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그와 나 사이를 걷다 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
    가격비교

     

     

         그와 나 사이를 걷다

     

     

     

     

    저자 김영식 지음    
    출판사 골든에이지(Golden Age) | 2009.04.06    
    형태 판형 A5 | 페이지 수 288          
    정가 13,50010,260

     

     

     

    망우리라는 땅의 성격을 대페로 연로하신 어머님의 '내 방'같은 느낌이다. 어머님

    에게 '내 방'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천하의 명당이다. '내 방'은 나만의 '둥지'이다. 둥지는 안온함과 안전을 보장하는 곳으로 믿는다. 망우리에서 어머님의 '내 방' 맛을 보라. 죽음도 생각해보라. 이 책은 망우리 사색객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 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 -


    1933년부터 ‘망우리공동묘지’로 불리던 그곳이 1998년 유명인사의 연보비 건립과 산책로 조성으로 시민의 ‘망우리공원’으로 탈바꿈한지 벌써 올해로 십일년, 그곳에 인문학적 깊이까지 덧붙여 ‘문화재’로서 도약에 디딤돌이 되어 줄 책이 발간되었다.

     


    지은이 김영식(46 수필가?번역가)은 3년간에 걸친 현장답사와 자료조사를 통해, 이미 망우리공원의 유명인사로 알려진 문일평, 박인환, 방정환, 오긍선, 오세창, 유상규, 이중섭, 장덕수, 조봉암, 지석영, 한용운(가나다 순) 등은 물론이고, 아직 망우리공원에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연극 ‘동승’의 원작자 함세덕, 가사가 세 번이나 바뀐 곡의 작곡가 채동선, 27세에 낙엽 따라 가버린 가수 차중락, 지금의 한글맞춤법에 대항했던 변호사 박승빈, 해방 정국 좌우익 갈등의 희생자 삼학병(三學兵), 한국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한반도에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심은 사이토 오토사쿠,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박희도 등도 새로 소개하고 있다. 총 40여명의 근현대 거인들을 소개했다.


    그들의 삶을 정리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작업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이 책은 유족 취재와 많은 자료 조사를 통해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어, 저자의 손과 발이 꽤 수고하였다는 느낌이 와 닿는 책이다. 그 중에서도 차중락의 숨겨진 애인으로 일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미국 여대생 ‘알린’의 편지와 사진이 차중락 사후 40년 만에 이 책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것은 한국가요사에 큰 수확이 아닐 수 없고, 동대문구장 최초의 홈런을 친 원조 야구 스타 이영민의 활동을 일본 자료까지 동원해 상세히 밝힌 것은 한국야구계의 역사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렸거나,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이 숲 속에서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온 몸으로 체험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곳이다. 필자는 산책과 등산으로 적당한 운동도 되고, 전망도 좋고, 때때로 자신의 삶도 돌아볼 수 있고, 역사 공부할 수 있는, 게다가 접근성까지 좋은 이런 공원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또 본문의 이중섭 편에서는 “이중섭이 잠시 살던 집은 문화재로 관리를 받는데, 몇 십년간 잠들고 있는 집(묘)은 왜 문화재가 되지 못하는지” 문제제기를 하며 우리들의 인식을 전환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고인과 관계가 있거나, 고인을 추모하려는 이들을 위해 찾아가는 길과 기일을 정리해 놓았다.

    망우리공원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역사가 고정된 장소로 독립지사 외로도 우리나라 근대 각 분야의 선구자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곳이다. 언젠가 누군가 반드시 정리했어야 할 작업의 결과물인 이 책은 아마 올해 우리 출판계의 큰 수확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더없이 중요한 역사 공간이 된 망우리공원을 우리는 하나의 문화재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청순한 산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 망우리공원을 거닐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아들임을 떠올리며 멀리 한강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몇 차례 학생들과 여기를 답사 다녀왔고, 또 어느 해 봄엔 여기를 찾아갈 것이다.
    유 홍 준 <명지대 교수, 전 문화재청장>

    망우리라는 땅의 성격은 대체로 연로하신 어머님의 ‘내 방’같은 느낌이다. 어머님에게 ‘내 방’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천하의 명당이다. ‘내 방’은 나만의 ‘둥지’이다. 둥지는 안온함과 안전을 보장하는 곳으로 믿는다. 망우리에서 어머님의 ‘내 방’ 맛을 보라. 죽음도 생각해보라. 이 책은 망우리 사색객(思索客)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최 창 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책속으로

    <저자 서문>
    모든 삶은 누군가에게 기억된다
    죽어 말 없는 이와 우리 사이,
    어제와 오늘 사이,
    그와 나 사이의 능선을 걷다

    서울시 중랑구 망우1동 산 57번지. 우리가 흔히 ‘망우리묘지’라고 부르는 시립묘지 망우리공원이 그곳에 있다. 대학시절, 그곳에 가까운 동네에 살 때 공원까지 산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본 묘지의 풍경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흘러가도 너는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 어느 비석에는 일찍 죽은 아들을 기리는 글이, 그 옆에는 비석조차 세울 형편이 못 됐는지 검은 페인트로 ‘아버님 잠드신 곳’이라고 쓴 비목이 세월의 풍상을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 저 너머 어느 무덤 앞, 소주병을 옆에 두고 고개를 숙인 청년에게는 또 무슨 사연이 있었던가. 산 밑을 내려다보니 이곳 묘지는 이리 조용한데, 저 멀리 차 소리가 도시의 심장 소리처럼 시끄러웠다. 세상은 역시 산 사람들의 것, 죽은 이들은 말이 없었다.
    ----
    또, 망우리공원이라는 작은 공간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살다 간 인물들을 비명을 통해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작지만 크고, 유일한 공간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가 그곳 비석에서 숨을 쉰다. 당시를 살다간 고인의 비문에서, 또는 비문이 준 단서에서 그 시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근대 각 분야의 개척자와 선구자들이 그곳에 따로, 또 같이 누워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특별한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와 같은 모습으로 잠든 국립묘지는 건조하다. 그에 비해 이곳 망우 ‘공동(共同)’ 묘지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다 간 다양한 인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역사 공간이자 오늘의 축소판이다. 유명무명의 독립지사뿐 아니라 친일과 좌익의 멍에를 짊어진 죽음, 시대가 만든 억울한 죽음도 있다. 당대 최고의 시인, 소설가, 화가, 작곡가, 가수, 의사, 학자, 정치가 등 다양한 삶이 있다. 또한, 비록 대중의 기억 속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연민과 사랑을 새긴 그 시대의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함께 있다.
    -----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렸거나,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이 숲 속에서 삶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온 몸으로 체험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곳이다. 산책과 등산으로 적당한 운동도 되고 전망도 좋고, 때때로 자신의 삶도 돌아볼 수 있고,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게다가 접근성까지 좋은 이런 공원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 추천사 (유홍준 명지대 교수, 전 문화재청장)

    ■ 안내지도 (답사길)


    ■ 고인들을 만날 수 있는 날 (忌日)

     
    ■ 들어가는 말



    ♣ 제1부 그 잎새에 사랑의 꿈

    ■ 시를 남기고 가을 속으로 떠난 ‘목마’ / 시인 박인환
    박인환 묘와 비석을 통해 그의 삶과 시를 새롭게 해석.

    ■ 동화 속으로 떠나간 아이들의 산타 / 소파 방정환
    방정환의 첫사랑 줄리아의 소개. 방정환의 다방면의 활동 소개.
    후배 최신복 가족 3대가 함께 방정환 묘 밑에 묻힌 사연을 새로 밝힘.

    ■ 한국 근대유화의 슬픈 자화상 / 이인성과 이중섭
    근대유화가 1,2위의 거장이 망우묘지에 있다는 사실. 이인성의 16세에
    입선한 ‘세계예술전람회’는 방정환 주관의 행사였음을 밝힘.
    이중섭 묘에 서 있는 소나무의 사연,
    조각품을 세운 후배 차근호의 비화를 소개.

    ■ 이념의 벽 앞에 잊힌 문인 / 함세덕·최학송
    알려지지 않은 ‘동승’의 작가 함세덕, 일제시대 빈궁(貧窮)문학의
    최고봉 최학송의 묘를 발견, 소개.

    ■ 가사가 세 번이나 바뀐 노래의 작곡자 / 작곡가 채동선
    그의 대표작 ‘그리워’는 원래 정지용의 ‘고향’이었고, 6?25후 박화목의
    ‘망향’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이은상의 ‘그리워’로 된 후,
    이제야 원래 곡으로 돌아온 사연. 묘 존재를 거의 최초 소개.

    ■ 낙엽 따라 가버린 ‘오빠’의 원조 / 가수 차중락
    1960년대 원조 오빠 가수의 요절 사연, 숨겨진 애인 미국 여대생
    알린의 편지와 사진을 최초 공개. 묘도 거의 최초 소개.
    무덤에 묻힌 오빠 부대의 펜레터 소개.

    ■ 한국 야구의 원조 ‘호무랑’ 타자 이영민
    동대문구장 첫 홈런을 친 야구 스타의 원조, 이영민의 활약상을
    일본 사료까지 동원하여 상세히 정리. 거의 최초 소개.
    밀반출된 흑사자기를 되찾아야.

    ■ 망우리공원의 문인들/ 감말봉, 김상용, 김이석, 계용묵

    ♣ 제2부 이 땅의 흙이 되어

    ■ 민족대표 33인의 영(榮)과 욕(辱) / 한용운과 박희도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으나, 일제말의 친일행위로 이름이 생소한
    박희도를 최초로 소개.

    ■ 한국의 나무와 흙이 된 일본인 / 다쿠미와 오토사쿠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존경받았던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총독부 말단
    산림과 직원이면서 조선의 공예와 도자기 역사를 쓴 인물. 그의 수필
    ‘조선소녀’를 초역으로 소개.
    총독부 산림과장, 영림창장으로 한반도에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심어,
    오늘의 포플러와 아카시아가 울창하게 만든 장본인. 그 공(功과 과(過)가
    아직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일본인 고위관료 사이토 오토사쿠.
    일본의 후손들이 찾지 못했던 그 무덤이 최초로 소개

    ■ 근대 서양의학의 선구자 / 지석영과 오긍선
    의대 양대 산맥인 서울의대의 초대 교장 지석영, 연세의대 최초 한국인
    교장 오긍선을 소개. 오긍선의 후계자 이영준 묘를 처음 소개

    ■ 개화에 앞장선 근대 최고의 서화가 / 위창 오세창
    개화의 주역, 민족대표 33인, 그리고 우리 문화재 수호의 선구자를 소개

    ■ ‘조선의 마음’을 일깨운 역사가?언론인 / 호암 문일평
    식민지 시대에 사라져가는 조선의 역사와 마음을 일구었던 선구자

    ■ 독특한 국어학자였던 조선의 변호사 / 학범 박승빈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맞춤법은 30년대에 치열한 학술 논쟁의 결과였다.
    지금 맞춤범의 대표적인 반대자, 변호사 박승빈을 최초 소개

    제3부 한 조각 붉은 마음은

    ■ 사라진 도산의 유언 /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도산의 비서를 지내고, 도산의 아들처럼 사랑받던 유상규. 도산공원으로
    이장된 도산은 유언으로 유상규 옆에 묻히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힘. 도산은 원치않는 도산공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 죽산 조봉암
    ‘글 없는 비석’의 사연. 장남 조규호의 사부곡

    ■ 좌우의 투쟁 속에 사라진 젊은 혼 / 삼학병
    저자가 최초로 소개하는 무덤. 1946년 1월 19일 ‘학병동맹사건’의
    희생자 3인의 묘. 이념의 시대가 만든 비극의 젊은 주인공들.

    ■ 깊이 감추고 팔지 않음이여 지사의 뜻이로다 / 남파 박찬익
    무성입토(無聲入土)를 원하여 망우묘지에 조용히 잠든 김구의 오른팔,
    진정한 지사 박찬익을 소개.

    ■ 동아일보 초대 주필 / 설산 장덕수
    4형제가 모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장덕수 형제, 민족정론 동아일보
    의 기초를 만든 인물

    ■ 몰락한 왕조의 상징 /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
    순조의 딸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의 합장묘는 수풀에 뒤덮여 있다.
    상석 위의 낙서는? 최초 소개 부분 많음.

    ■ 독립운동의 역사를 말하다 / 망우리공원의 독립지사들
    유명하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의 초라한 무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본
    독립운동의 역사와 양상을 소개. 의열단, 다물단이란?

    <망우리론> 어머님의 ‘내 방’같은 명당, 망우리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

    <망우리 공원 개요>

     

     

    저자 김영식

    김영식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4살때 상경하여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수필가이며 번역가이다. 중앙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했으며,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일본문학취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미쓰비시상사에 근무했다. 일본 무역과 번역을 하는 지원상사 대표로 있다. 옮긴 책으로 '기러기', '라쇼몽' 등이 있다.

     

     

     

     

     

     

     

     

    출처 : 도시 여행자
    글쓴이 : 草霧 원글보기
    메모 :